학기 첫 파벌 대전은, 그렇게 트루스 측의 압도적 승리로 막을 내렸다.?129회
메트리 파벌129.
압도적.
파벌 대전에서도, 이런 식의 압도는 많이 일어나지 않았던 걸까.
콜로세움의 관객석은, 순간 정적에 몰려 있었다.
그렇지만 정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상당한 연계를 자랑하던, 숲의 암살자들이라 불리는 엘프들이 패배했다.
동시에, 메트리 파벌에 흡수되는 것이 결정.
대격변의 봉화에, 학생들은 모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엄, 엄청 열광하네........”
“기본적으로 기숙사 생활이다 보니. 다들 가십에 굶주려 있답니다.”
티아나가 관객석의 열기에 놀라자, 이리나가 차분하게 변호한다.
다들 본가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사교회도 많이 나가지 않으니 말이다.
재학생들에겐 아카데미의 여러 사건 사고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특히 일반 학생들에게, 파벌 대전이나 공식전은 거의 ‘스포츠’라 여겨지는 느낌이었다. 변수로 가득한, 아카데미만의 즐길 거리였을까.
그렇기에 아카데미 측에서도, 매년 여러 행사를 준비하는 걸지도.
그보다 에우드로선.......
멀리서 느껴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만.
“에엑.......”
“에우드? ......아.”
셀레나가 그걸 이해하고 볼을 꼬옥 부풀렸다.
필드 위에서, 트루스가 해맑게 웃으며 이쪽에 손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곧 트루스 쪽으로 돌아온 레니안느도, 재차 팔을 붕붕.
당연하지만, 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만큼 관객석은 가득가득 채워진 상황.
메트리 남매의 행동에, 관객석의 시선도 포에닉스 파벌 쪽으로 점점 향해간다.
“역시, 포에닉스 파벌도 와 있었나........!”
“아냐, 아직 임시라고!”
“간부급의 부재라고 했지.......”
“검은 사자 파벌 대전을 대비한 사전조사인가!”
“그보다 트루스랑 레니안느가 저 정도로 인사할 정도면.......!”
대체 어디까지 마이페이스고, 또 어디까지 계산적 행동인지.
레니안느 쪽은 마이페이스라 해도, 트루스는 아마 의도를 꽤 담아서 바라보고 있는 거겠지.
포에닉스 쪽 근처에 있는 이들도, 저마다 술렁였다.
“-그럼, 여러분. 트루스님의 전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리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간부급의 소개는 내 쪽에서 충분히 가능해. 내게 말만 해준다면, 포에닉스 파벌이 완벽히 완성되도록, 전력의 지원을 해주겠어. 그리고 우리 메트리 파벌은-’”
이리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언제든 동맹을 기다리고 있어, 포에닉스 삼남매 여러분. 이야기를 받아준다면, 아무 때나 우리 아지트로 와줘.’- 이라고 하십니다.”
첫 파벌 대전은 끝났지만, 그 후폭풍은 계속해서 불어닥치고 있었다.
셀레나에게 메트리 파벌 아지트의 약도를 건넨 후, 이리나는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관객석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곧 트루스와 레니안느가 돌아올 대기실로 향하는 거겠지.
대전자 대기실은 콜로세움 1층에 있는 듯하니 말이다.
“.......동맹.”
“트루스님 추천의 간부급인가요.”
대전 전까지 아나트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던 만큼, 다들 거기에 여러 생각을 가졌다.
플로라도 솔직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한다.
“트루스님이 이름을 걸고 말한 거면, 보장된 인재일 게 분명하니까요.”
분명, 절대 포에닉스의 이름을 깎을 이는 아닐 테지.
물론 그건, ‘파벌완성도’라는 값만 봤을 때의 얘기다.
“받는 순간, 포에닉스는 메트리랑 완전히 같은 배를 타게 돼. 말이 언제나 동맹을 바란다지, 사실상 둘이 똑같은 이야기야.”
포에닉스의 장녀답게, 셀레나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뭐가 됐든 메트리의 지원을 받는다는 건 동일.
결국 트루스가 원하는 대로 간다는 이야기다.
트루스와 엮이면 매번 이렇다고, 에우드는 한숨을 살짝 쉬었다. 차라리 가레스나 알베르토가 있다면, 적절한 조언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아나트. 잭스. 토르랑.
트루스. 레니안느. 메트리-
여러 이름이, 에우드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오고 갔다.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우오오오오오오?!”””
이번엔 콜로세움의 복도 쪽에서, 정체 모를 소란이 들려왔다.
아이들 모두, 어리둥절 소란이 들린 곳을 바라봤다.
“싸움이야!”
“대전 끝나자마자?!”
“‘공식전의 광견’과 ‘공식전의 악마’가 맞붙는다는데?!”
“빅 매치잖아?!”
.......광견은 몰라도, 악마는 누군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별명이었다.
* * *
사건 3분 전.
아나트는 소란스러운 관객석에서 필드를 바라봤다.
그 옆에서 잭스는 어버버하면서 입을 뻐끔거렸다.
“장난하냐고....... 저런 힘, 말이 안 되잖아.......!”
그래도 한때 메트리 세력권 최고 서열이었던 토르랑이다.
잭스도 아나트도, 두 남매가 마안을 가지고 있단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트루스의 마안이 저런 강력한 것임은 처음 알았으리라. 아마 그 마안이 뭔지 알던 귀족 가문은, 3측근 정도였겠지.
공식전의 악마라 불리는 아나트지만, 그럼에도 역시 긴장은 지우기 힘들었다.
‘분가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토르랑의 실권을 쥐려면. 무엇보다 이후에도 본가에 예전과 같은 힘이 돌아오게 하려면.......’
최종적으론, 저 말도 안 되는 남매의 방해를 떨쳐내야 한다. 적어도 버틸 수는 있어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될 메트리의 압박에서 태연한 척이라도 해야, 토르랑은 파벌 항쟁에서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메트리의 위협도 눈 껌뻑하지 않아야, 후에 상당한 영향력을 얻는 기반이 된다.
현재 아나트는 아카데미 전반에, ‘토르랑이 파벌 항쟁에 참가한다’라는 소문을 퍼트려놨다.
악조건이 몰려올 걸 고려하여, 학기 시작 전부터 의도적으로 뿌린 정보였다.
10대 귀족 파벌에 들어가기 힘든 토르랑이지만,
유그라시아 귀족 세력도에 큰 영향을 안 받는 파벌이라면 가능성이 꽤 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실력과 수완만큼은 앞선 2년간 인정받은 아나트다.(덕분에 공식전의 악마 같은 별명이 붙었다만.)
그런 덕에, 은근히 아나트의 힘을 노리는 이들이 존재했다.
졸업하는 이들이 나오고, 신 멤버를 넣어야 하는 학기 초는 언제나 그렇다.
때문에, 최초에 퍼트린 소문은 그런 이들을 향해 던진 미끼.
......정확히 말하자면, 소문을 퍼트린 건 차선책으로 준비했던 보험이었다.
아무리 아나트가 몇몇 세력에게 선호 받는 인재라 해도, 최선책- 포에닉스만큼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뭐, 이건 아나트의 계산 오류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하아, 역시 3년쯤 되니까 슬슬 일이 마음대로 안 풀리네........”
“응? 아, 잠깐, 아나트! 기다려줘, 나 아직 메모가-!”
“시합 끝난 지가 언젠데, 그걸 아직도 메모하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중얼거리면서 아나트가 일어나자, 잭스가 다급히 소리쳤다.
나름대로 정보를 적던 것일까.
살짝 보자, 트루스의 마안이나, 레니안느의 움직임 등이 조금씩 적혀 있었다.
쓰레기여도, 한때 헤릭스와 S급 헌터들에게 배운 놈이니까. 분석 자체는 적당히 할 줄 알았다.
.......아직 인성이 다 뜯어 고쳐지려면 멀었다만.
그렇게 한심한 오빠가 메모를 끝내는 걸 기다린 후, 아나트는 콜로세움을 나가려 했다.
“-역시 여기 있었네. 몰락한 토르랑분들.”
“.......”
“뭐, 뭐야, 이것들.......?! 설마.......!!”
그리고 콜로세움 출구로 향하는 복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금색 롤 머리’의 소녀와 패거리들이 함께 서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타깃은 아나트와 잭스였다.
패거리들은 모두 메트리 파벌의 학생들.
관객석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분위기가 살벌해지는 것에 저마다 웅성거려간다.
“하, 앨리스 가름.”
금색 롤 머리- 그 소녀의 이름, 앨리스 가름.
아나트도 수없이 봤던 여자다.
같은 3년 차인 만큼, 아카데미에서 싫어도 엮이게 되어있다.
엮인 이유는 간단했다.
메트리 최강 무가였던 토르랑이 빠진 후, 그 뒤를 꿰찬 것이, 바로 가름 가문.
가름 가문은 사실상 과거의 토르랑이 하던 역할을 이어간 가문이다.
덕분에 아나트와 앨리스는, 바라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알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만-
“이거이거, 트루스님의 충견 아니신가요. 충견께서 이러고 있으셔도 되나. 기르던 강아지가 사라지면, 주인이 곤란해한다고요?”
“말을 참 이쁘게 하네요. 거지 근성으로 버티고 있는 토르랑이.”
결코 좋은 관계일 리는 없다.
그보다 서로 엄청 싫어한다.
교칙이라는 게 없었다면, 눈을 마주친 당장이라도 서로 머리를 태워주고 싶을 정도로. 아니, 이미 몇 차례 붙기도 했었다.
아름다울 것이 분명한 두 소녀의 대치에, 복도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긴장을 삼켰다.
느껴지는 거겠지. 기백이. 마력이.
그리고- 서로 죽어라고 싫어하는 것이.
“.......아나트 토르랑. 잭스 토르랑. 트루스님의 전언이에요.”
성질머리를 슬쩍 감추며, 앨리스는 입가에 손가락을 고혹적으로 대며 말했다.
“최근 같잖은 밑밥을 까는 거 같은데.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걸요? 메트리의 명성을 더럽혔던 토르랑을 봐주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데우트님과 트루스님의 자비라는 걸 깨달으라고요.”
“아하-”
아나트는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슬쩍 앨리스와 패거리를 지나친다. 잭스는 서둘러 여동생의 뒤를 따라간다.
“그러는 앨리스 가름, 너도 적당히 몸은 사리는 게 좋을 거야.”
“......뭐?”
복도로 향하기 직전, 아나트는 앨리스에게 슬쩍 비웃음을 보냈다.
“새로운 충견이 나타났다간,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
퍼어어어어어억!!
단숨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나트가 비웃자마자, 앨리스가 주먹을 아나트의 안면에다 박았다.
“꺄아아악!?”
“잠깐 갑자기 여기서 충돌이라고?!”
“메트리 파벌?! 그리고 저건....... 아나트 토르랑!?”
메트리와 온트라스 파벌의 싸움이 끝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폭력사태는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으갸악?! 아나트?! 우어어?!”
“-제발 호들갑 떨지 좀 마, 오빠.”
“흐익!? 아나트 멀쩡했냐?!”
콰드드드득.......!
물론, 아나트도 괜히 공식전의 악마로 불리는 게 아니다.
도발한 순간부터, 이 성질 드러울 롤 머리가 들이닥칠 건 예상했다. 아나트도 똑같이 성질이 드럽기에, 오히려 확신하고 있었다.
안면으로 날아온 앨리스의 주먹을, 단숨에 붙잡아 쥐어간다.
“뭐야? 근데 조금 아쉬워하는 거 같다, 망할 오빠?”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아나트 토르랑, 망할 몰락가문년이......! 힘 하나는 여전하네요. 고릴라. The 고릴라라고 불러드릴까요.”
“그러면, 넌 주인님들이 함께 산책 안 해줘서 체력이 넘쳐나나 봐요? 덕분에 행동에 필터링이 안 걸리나.”
그 충돌을 긴장으로 바라보던 학생들은-
“‘공식전의 악마’와, ‘공식전의 광견’.......!”
“베스트 매치! 역시 3년 차에 들어서도 또 시작인 건가!!”
“싸움이다! 비공식 대전이야!!”
충격과 환호를 다시 질러간다.
“-알아서 꼬리 말면 딱히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만!”
앨리스는 재빨리 뒤로 한 번 물러난 뒤, 메트리 파벌 남학생에게 손을 뻗었다. 그 의도를 이해한 남학생은, 재빨리 가지고 있던 원통형의 물건을 넘긴다.
철컥철컥철컥!!!
그것을 펼치자, 단숨에 단창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공식전의 광견’, 앨리스의 주무기 중 하나였다.
아나트 또한 품에서 검은색의 단검 칼집 하나를 꺼냈다.
토르랑이 ‘머더 메이지의 습격을 받은 이후’....... 그 피바다에 떨어져 있던 한 자루의 단검.
그때부터 다루기 시작한, 아나트의 최고 주력 무기였다.
이미 그나마 행동에 제한을 걸어주던 교칙 따위, 두 소녀는 생각조차 안 하는 걸까.
아니, 생각은 하고 있으리라. 그래도-
“꼬리를 잘라주지, 악마년!!”
“자를 건 네 꼬리고, 광견년이!!”
양측 다 앞에 있는 여자의 안면에다, 한 방 먹여 주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클 뿐이다.
퍼어어어어엉!!
강렬한 각력의 후폭풍과 함께, 두 여전사가 싸움을 개시한다.
단검을 역수로 쥔 아나트가 복도를 박차고,
창을 날카롭게 휘두르는 앨리스가, 맞대응을 위해 달려든다.
고속과 고속.
악마와 광견이 서로의 일격을 꽂기 위해 으르렁거린다.
* * *
다만 그때였다.
“-아나트 선배?!”
아나트의 단검과 앨리스의 단창이 충돌하기 직전.
전의가 가득한 복도에, 이제 막 도착한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에우드?! 흐기약?!”
“엥?!”
소년- 에우드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아나트의 행동이 꼬였다.
다음 걸음이 순간 삐끗하며 어긋난다.
그와 동시, 아나트에게 충돌하기 직전이던 앨리스의 움직임도 꼬였다.
가뜩이나 서로 엄청난 기세로 돌진하려 했는데.
당혹스런 이레귤러에, 두 소녀 모두 다리가 엉켜 넘어지기 직전이었다.
포옥.
“어이쿠.”
“히햑?!”
그 사이 재빨리 학생들 사이에서 나온 에우드가, 넘어질 뻔한 아나트를 붙잡았다.
상당한 기세로 돌진하던 중이었을 텐데. 에우드는 그것을 능숙하게 잡았다.
반면-
삐끗.
“-앗.”(앨리스)
쿠우우우우웅! 털썩!
휘청거린 순간 잡아주는 사람이 없던 앨리스 쪽은.......
그대로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복도에 넘어져, 우당탕탕 굴러버렸다.
앨리스가 달려나간 방향은, 메트리 파벌 인원의 반대방향이니 말이다....... 그들도 차마 붙잡아줄 수가 없었으리라.
“.......크으읏!”
경쾌하게 넘어진 것이 너무 부끄러운지.
롤 머리 광견은 바닥에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포, 포에닉스의 막내다!”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가 개입했어!”
“포에닉스 파벌이, 메트리와 토르랑의 충돌에!?”
곧, 에우드의 출현에, 아나트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까지도 전부 반응하기 시작했다.
다만- 학생들보다도 더욱 격하게 반응하는 이가 있었으니.
“업, 억, 으억, 허어억.......!!”
갑작스레 나타난 에우드를 보자, 잭스의 숨이 거칠어졌다.
에우드도 뒤늦게, 이 자리에 잭스가 있음을 깨달았다.
아나트를 안은 채, 별 의도 없이 눈을 살짝 그쪽으로 돌렸다.
“히이이이이익!? 죄,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살, 살려주세요오오오?!”
.......마주치자마자, 잭스의 비명이 콜로세움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