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는커녕, 트루스와 붙기도 전에 전원 전멸당한다.?128회
메트리 파벌128.
10초 조금 넘은 시간에 두 명의 엘프가 기절하자, 관객석도 열광인지 충격인지 모르는 소릴 내어간다.
작전을 바꿔야 한다.
이미 이렇게 접근한 이상, 견제 공격이라던가, 탐색이라던가, 전부 의미가 없어진다.
남은 것 다섯.
서둘러 포메이션을 새로이 해야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전멸이 되지 않도록 살려야 하는가,
아니면 여기서 총력전을 걸어야 하는가.
접전이 개시된 지 겨우 20초 정도밖에 안 지난 거 같았는데.
이미 시아른의 사고는 흡사 최종국면을 앞둔 이와 가까웠다.
아니, 그것은 어떤 의미론 틀린 말이 아닐까.
여차하는 순간 전멸일 게 분명하니 말이다.
시아른은 더는 수를 아낄 수 없었다.
자신들이 초반에 쓰려 했던 전략을, 더는 사용할 수 없었다.
시선을 돌린다. 근접전 멤버 중 둘은 아웃당했지만, 아직 저격수들은 건재하다.
그 시선의 의도를 알아챈 여학생이, 재빨리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윈드 애로(Wind Arrow)’!!”
퍼어어어어어엉!!
시아른의 눈짓을 이해한 엘프 여학생 한 명이, 재빨리 거대한 바람의 화살을 발포했다.
마법사들이 지팡이에 마력을 두르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화살에 힘을 담아, 마법과는 다른 찰나의 방출 현상을 만들어낸다.
기사나 헌터들 사이에선, 흔히 ‘투기’라고 불리는 기술이었다.
종횡무진의 기세였던 레니안느에게, 풍압을 가득 두른 화살이 날아온다.
엄청난 속도.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바람의 화살은 레니안느의 상반신을 가격할 것이다.
그러나, 레니안느는 거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몸을 슬쩍 돌릴 뿐.
마치- 누군가 오는 걸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늦어, 바보 오빠.”
“레니안느가 너무 빠른 거야~”
트루스의 도착 또한, 레니안느가 이미 푸른 마안으로 파악하고 있던 걸까.
엘프들이 트루스가 접근하는 기척도 느끼지 못한 사이.
레니안느의 앞에 도착한 트루스는, 단숨에 목검을 휘둘러 바람의 화살을 산산조각 베어버렸다.
퍼어어어어어엉!!
휘리리리리릭!
화살을 뒤덮었던 바람의 투기가, 기압을 비틀며 주변으로 터져간다.
“이런........!”
화살을 쐈던 엘프 여학생은 그 경악을 멈추지 못했으리라.
아무리 황급하게 쏘았다 해도, 절대 그냥 쏜 게 아니다.
적어도 C급 몬스터는 일격으로. B급 몬스터들에겐 단숨에 치명타를 입힐 화살이었다.
패를 감추지 않고, 오로지 레니안느부터 빨리 끝내기 위해 쏜 화살이었는데.
그러나 엘프 여학생의 사고는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퍼어어어어엉!
“투기의 위력, 나쁘진 않았어.”
레니안느가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도달했으니까.
“뭣-”
퍼어어어어어어억!!
또다시 일격.
도약과 동시 내질러진 레니안느의 주먹에, 여학생은 활을 떨어트리며 저 멀리 나무 위로 충돌했다.
당연하지만 엘프 여학생은 기절.
온트라스에 남은 인원은, 순식간에 넷에 도달했다.
말이 4 VS 2로 몰린 상황이지, 실제론 4 VS 7.
시아른의 머릿속에, 더 이상의 보험을 남길 여지가 사라졌다.
“-포메이션 C로 전환!!”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시아른의 지령에, 남아있던 저격조 두 명이 재빨리 숲 필드 속으로 이동했다.
근접조였던 멤버도, 재빨리 검을 집어넣고 이동. 곧바로 등에 진 활을 들었다.
포메이션 C는 오로지 원거리 저격만으로 승부를 내는 포메이션.
시아른으로선 엘프 왕가 특유의 품위 문제로, 그다지 즐겨 쓰는 전략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레니안느의 눈까지 있다. 가까이 있어서야 상황이 밑도 끝도 없이 꼬인다. 한 번 물러나 전황을 조정하고, 판을 뒤엎어야 한다.
“레니안느.”
저격조 학생들이 빠르게 몸을 숨기는 즉시, 트루스는 가벼운 목소리로 여동생에게 말했다.
“활쟁이들 좀 처리해주고 올래?”
“또 뛰기는 귀찮은데........”
“에우드가 우리 레니안느의 활약을 보고 있어~”
“......가긴 하겠는데, 돌아오면 오빠 뒤통수 한 대 칠 거야.”
“......살살 부탁할게.”
그야말로, ‘오빠 대신 심부름 좀 다녀올래?’ 같은 가벼움 가득한 대화.
레니안느는 관객석을 한 번 보곤, 재빨리 저격조를 쫓았다.
여유. 여유. 여유. 여유.
그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 행동이었다.
지금 앞에 남은, 파벌에서 가장 강할 시아른조차, 너무나 가볍게 보는 것이다.
“큭......! 트루스, 심 메트리.......!”
분명 시아른 또한 트루스는 자신이 직접 맡으려 했지만.......
이런 형태로 대치하게 될 줄은, 5분 전까지만 해도 생각 못 했을 테지.
양면으로 나뉜 국면에, 관객석에서도 경악이 계속해서 터져간다.
국면의 진행 속도는 너무나도 빨랐다.
순식간에 탈락자들이 나온 상황에, 각 파벌은 식은땀을 멈출 수 없었으리라.
“시, 시작할 땐 7대2의 상황이었는데.......!”
“벌써, 4대2라고.......?”
심지어 비등비등한 것도 아니다.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실상 레니안느 혼자서 셋을 처리한 거기도 했고.
트루스는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 꼴인 것이다.
“레니안느님은 사교회에서도 싸우지 않으시니까요. ......소문으론 듣긴 했지만.”
플로라는 감탄과 긴장을 품으며, 입술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함께 다과회를 가졌던 아이들은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만. 그래도, 여전히 믿겨 지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셀레나는 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레니안느는, 트루스랑 상당히 비슷한 기백을 두르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마안만이 아니야. 레니안느 본인의 신체 자체가 천부적이야.”
그런데도 그 기백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뿐일까, 애초에 싸우는 거 자체를 귀찮아하는 성격이다.
게다가 특유의 사차원 행동까지.
덕분에 지금까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드디어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리나가 포에닉스 파벌에게 첨언했다.
“데우트님은 트루스님의 보좌로서 동생인 레니안느님을 선정하셨죠. 3년 전 귀족 가문들은 모두, 그게 트루스님의 사무적인 일을 보조하기 위해서라고 예상했을 테지만-”
“역시, 역할이 달랐던 거군요.”
에우드는 이리나의 말에 저 두 남매의 진짜 관계를 확신했다.
“네. 레니안느님의 주 임무는, 트루스님의 전투능력을 보조하는 것에 있답니다. ‘마안을 제외한’ 순수 전투능력으론, 레니안느님이 트루스님보다도 강하시답니다.”
요 3년간 귀족 가문 중에서도, 상급 귀족 몇몇만이 알아챈 정보였다.
곧바로 관객석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트루스와 시아른의 대치를 봤기 때문이리라.
* * *
“크으윽.......!”
“아하하. 혹시, 노리던 상황이 아니셨나 싶은데요.”
남은 멤버들을 숲 안쪽으로 보낸 후, 시아른은 나무 위에서 트루스를 노려봤다.
트루스는 여전히 능글맞은 웃음으로 시아른을 응시한다.
“섬멸전에서는 리더와 리더의 대치가 가장 의미가 크니까요. 시아른 선배.”
“트루스 네놈, 처음부터 우리를 깔보고.......!”
“아뇨아뇨, 깔본 건 아니에요. 아까 투기 가득한 화살도 그렇고. 즉각적인 포메이션도 그렇고. 아, 역시 온트라스 파벌이라 해야 할까요. 화살 한 방에 그 위력이라니.”
트루스는 목검을 쥔 손을 툴툴 털었다.
“그보다 진짜로 깔봤으면요, 처음부터 저 혼자 나왔을 거라고요?”
“뭐라고........!?”
“여러분의 연계는 상당히 귀찮다고 올테라가 말했으니까. 그래서- 포메이션을 무력화시킬 레니안느도 함께 올라온 거고요.”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선, 포메이션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 수 위의 상대는 물론, 두 수 위의 상대까지.
대처에 따라 각 멤버들의 능력을 비대화할 수 있는 게 바로 포메이션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힘의 차이가 크면 그마저도 의미는 없다.
“한방 크게 먹여야, 대전이 끝나고 제 말에 따라주시지 않겠어요? 시아른 선배도, 온트라스 파벌 분들도.”
이미 승부를 끝낸 듯 말하는 트루스를 보며, 시아른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을 살짝 짓는다.
“훗......!”
그건,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회심의 미소였다.
시아른은 아직 승기를 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굳세게 움켜쥐었다.
“-그 오만함은 너무나 짜증나지만.......! 그래도 덕분에, 네놈이 외통수에 몰렸구나.”
“흠?”
그 순간 필드의 숲이 요동쳤다.
녹음이 가득한 주변이, 생명을 뿜어내듯 움직여간다.
“이 마법은-”
“인공적인 숲이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보여주도록 하지, 엘프의 마법을!!”
멀리 떨어진 관객석에서, 숲이 요동치고 있음을 눈치챘다.
시아른의 주위로, ‘녹색의 줄기’들이 퍼지기 시작한다.
마력을 담은 줄기가, 특수한 마법을 기동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자연 속성 마법.......!”
“이 정도 규모라면, 8절 이상일 게 분명한 마법이야!”
“설마 아까부터 준비하던 건가!?”
그 말대로.
시아른은 이곳에 트루스만이 남은 순간부터, 미리 랑그를 읊어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의 품에 숨겼던 완드를 통해 마법을 구축한 것이다.
원래 시아른의 진짜 적성은 전사나 저격수 쪽이 아닌, 마법 계열. 검과 활을 다룰 순 있지만, 어디까지나 호신에 불과하다.
마법과 지휘.
그야말로, 엘프 지도자의 피를 이은 재능이 돋보였을까.
시아른은 머릿속 사고를 정확히 병렬로 진행하여, 최적의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레니안느가 저격조를 쫓아 주변을 벗어나고, 트루스가 여유를 부리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시아른이 트루스의 오만을 찢을 순간이다.
쿠드드드득!
촤아아아아아아!
쿠자자자자자자자!
준비한 마력을 터트리자, 숲이 더더욱 요동쳐간다.
울창한 나무들은 시아른의 명령에 그 줄기를 강대하게 키워간다.
트루스 또한 주변을 뒤흔드는 마력에, 감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둘러봤다.
“아하....... 그렇군요. 이미 숲이 있으니까. 그 준비에 필요한 마력을, 아예 위력에 몰아 버린 건가요.”
“자연 마법이야말로, 엘프들만이 그 진가를 다룰 수 있는 마법! 네놈에게, 자연의 위압을 보여주도록 하마, 트루스!!”
시아른은 준비를 끝낸 완드를 꺼내, 트루스에게 겨눴다.
“‘포레스트 레이지 랜스(Forest Rage Lance)’!!”
좌라라라라라라라!!!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시아른이 3절로 축약된 랑그를 외치는 순간.
트루스의 주변에 있는 나무들이, 일제히 나무줄기를 쏘아낸다.
덩굴은 채찍으로.
가지는 창으로써 휘둘러진다.
아까 몰아쳤던 화살의 빗줄기와는 규모가 다른 위력.
아무리 트루스라도, 그것에 전부 직격당하면 버틸 수 없으리라.
트루스의 검술은 분명 투기의 화살을 베어낼 만큼 강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질량을 끌어올린 전방위 공격은, 그 정도 검술론 쉽사리 상대할 수 없다.
“트루스에게 공격이 몰려든다!”
“리더전에서 트루스가 패배하는 건가!?”
“저것 봐, 메트리 파벌 인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멀리서 리더의 위기를 알아챈 걸까.
필드 한쪽에서 대기하던 메트리 인원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트루스가 절체절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트루스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놈, 피하는 행동조차 하지 않는다고?!’
몰려 들어오는 숲의 공격에, 트루스는 목검도 휘두르는 것 없이.
그저 방긋, 눈웃음을 지을 뿐이다.
그것도- ‘검은 마력을 일렁이는 눈’으로.
“진짜. 우리끼리 할 수 있다니까. 다들 너무 과보호네.”
마안이었다.
시아른으로선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으리라.
레니안느의 청색 마안에 이은, 흑색 마안이라니.
분명, 이 둘은 남매일 게 분명한데.
‘남매가 둘 다 마안 보유자?! 포에닉스도 아닌데?! 메트리는 카틀레야도, 마리아돌트의 피도 섞이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도 두 남매가 이 정도의 마력을 가진 마안에 개안했다고?!’
시아른 또한 그게 말도 안 되는 확률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트루스의 눈에서 일렁이는 게 얼마나 강대한 마력임을 느꼈다.
그 순간,
“‘고르곤(Gorgon)’.”
두우우우우웅-!
......끼기기긱.
기기기기기이이익.......!
거대한 하나의 생명같이 움직였던 숲과 나무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뭐, 뭐야........?”
“숲이, 멈췄어.......?”
“아니, 마력의 흐름 자체도 멎었어! 뭔 일이 일어난 거야?!”
방금까지 마력, 생명력을 가득 머금었던 숲은.
흡사 침묵을 자아내듯 모든 움직임을 거뒀다.
아니, 움직임이 멈춘 것이 아니다.
마력 감각이 있는 이들이라면,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콰아아아아아악......!
꽈드드드드득!! 구구구구구구국......!!
정체 모를 검은색의 마력이, 트루스를 덮치지 직전이었던 숲을 강렬하게 붙잡고 있었다.
‘이게, 트루스가 예전에 말했던, 드러내는 마안의 힘.’
에우드는 언젠가의 메트리 사교회를 떠올린다.
이어서, 로로나가 알려줬던 마안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마안에는 ‘보는 것’과 ‘드러내는 것’. 그 두 가지로 나뉜다고.
트루스의 마안에서부터 드러난 검은 마력이, 숲을 끈끈한 덫으로 붙잡듯 공세를 틀어막아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신화 속 마안 같았을까.
셀레나와 티아나 또한, 동조하듯 그것을 마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회심의 마법이 막혀버린 시아른은,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당혹을 내비쳤다.
연속으로 마주한 축복의 재능에, 자랑하는 병렬사고도, 판단력도 멈춰버린다.
그때-
“살살할 테니까요.”
트루스는 어느새 시아른의 눈앞에 있었다.
시아른의 판단이 늦어지는 사이, 단숨에 행동을 재개한 것이다.
“뭣-”
“온트라스도 이제부터는 동료네요.”
퍼어어어어어억!!
몸에 마력 경화를 두를 틈도 없이,
시아른은 초고속의 목검에 목을 가격당하곤, 정신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곧, 레니안느 쪽도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대, 대전 종료!! 온트라스 파벌의 전원 기절! 메트리 파벌의 승리입니다!”]
저격 포메이션을 갖추려 했던 엘프 학생들은, 그 자리를 잡기도 전에 레니안느에게 세 명 모두 리타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