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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마검사 도련님-122화 (122/264)

?122회

아지트를 살펴보자122.

단발머리의 소녀.

예전에 티아나가 했었던 단발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찰랑거리진 않고 살짝 곱슬머리인 것이, 볼륨이 느껴지는 머리칼.

그러면서도 분홍색과 갈색의 사이에 있는 머리의 색은 건강한 것이, 기품과 활기를 함께 돋보이게 한다.

표정에 드러나는 것은 이기적이면서, 한편으론 자존심이 높은 분위기였을까.

마치 에우드가 이전에 마주했던 어떤 일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름 기척을 숨겨본다고 숨겨본 건데, 이렇게 빨리 눈치채다니요. 역시 너무 조심성이 없었나.”

곱슬머리 소녀는 입가에 손을 대곤 호호 웃었다.

곧, 슈가가 소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아나트 아가씨......!”

아나트.

에우드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아나트 토르랑.

그 머더 메이지 사태에서 살아남은 토르랑 가문의 막내이자........

‘토르랑의 현재 실세. 그리고 무엇보다....... 아카데미에서도 유명한 천재.’

플로라가 얼마 전 전해준 정보에 따르면....... ‘공식전의 악마’라고 불린다고.

“슈가,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요. 예전보다 훨씬 표정이 풍부해졌어요, 슈가.”

아나트는 3년 만에 만나는 슈가를 보며 방긋 웃었다.

슈가는 아나트에게 반가움을 드러냈지만, 이내 그것을 거뒀다.

토르랑 일가 내에서 사용인들에게 유일하게 잘해주던 것이 아나트라고 했었다.

분명, 슈가에게 있어 그녀는 결코 나쁜 인물이 아니리라.

하지만 지금 슈가는 포에닉스 소속의 메이드.

......그 이상으로, 이전에 얻은 정보로 인해 역시 경계를 품고 있었다.

아무리 과거 잘 대해준 영애라 해도, 지금의 슈가로선 쉽사리 안도할 수 없다.

이미 슈가는 이변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 스커드 속에 숨겨둔 암기를 꺼낼 준비를 마쳤을 정도다.

그런 슈가의 복잡한 표정에, 에우드는 뺨을 살짝 긁었다.

“-슈가, 괜찮아요.”

“도련님.......? 하지만.......!”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그리고- 귀족 영애분이 전한 안부 인사예요. 그에 따른 격식을 차려주세요.”

에우드는 슈가에게 ‘포에닉스 메이드’에 걸맞은 모습을 보일 걸 부탁한다.

에우드가 한순간 보여준 귀족으로서의 모습.

분명 피가 이어지지 않았을 텐데도, 그 분위기는 가끔씩 가레스와 비슷해질 때가 있었다.

슈가도 그것을 요 3년간 실감해가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에우드 도련님.”

에우드의 허락에, 슈가는 아나트에게 인사를 전했다.

“저야말로. 아나트 아가씨가 무사히 잘 지내셔서, 정말로 안심했습니다.”

다만 그건 주인이 아닌, 주로 가문의 손님에게 하는 인사였다.

둘은 이제 주종관계가 아니니까.

10대 귀족가의 메이드와, 귀족가의 영애.

완전히 남남이다.

그렇기에 그에 따른 새로운 격식을 차리는 것이다.

아나트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슈가의 인사에 살짝 웃음 지었다.

“슈가. 포에닉스로 간 사용인분들 모두, 거기서 잘 지내고 있나요?”

“네. 모두, 문제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다들-”

슈가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포에닉스 가문과, 동료들 모두가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정말 가족처럼 대해주셔서, 다들 이젠 마음껏 웃을 수 있게 됐습니다.”

“........”

아나트는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정말로, 다행이네요.”

진심으로 웃었다.

***

다만 진심의 웃음은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아나트 토르랑은 곧바로 아까와 같은 분위기를 띠었다.

애초에 에우드가 이곳에 온 건 어제와 오늘이 끝이다.

그런데도 아나트는, 에우드와 슈가가 오기 전 먼저 이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올 거라는 보장도 없음에도 말이다.

그건 즉, 어디선가에서 에우드와 슈가가 움직이는 걸 보고 앞질러 왔다는 거겠지.

무언가 목적을 갖고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두르고 있던 분위기를 바꿨다는 건, 이제 그 목적을 위한 본론을 꺼낸다는 것일 테고.

“그래도 형식상 자기소개는 해야겠죠. ........아나트 토르랑. 무가 토르랑의 막내딸. 현 아카데미 3년차랍니다.”

“........포에닉스 가문 막내.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알지만, 형식상의 인사와 예를 전해간다.

그리고 에우드는 거기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잠시 제 쪽에서 먼저 말해도 될까요?”

“아, 네. 물론이죠. 괜찮아요.”

이야기에 앞서, 에우드는 꼭 해야 할 말을 전해야겠다 싶었다.

“이틀 전에는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상황이 귀찮았었는데, 덕분에 무사히 끝났어요.”

“......”

에우드가 감사 인사를 전하자, 아나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러나 곧바로 모르겠다는 듯 의문을 띄워간다.

“흐응, 무슨 소리이신가요?”

“말투가 너무 달라서 헷갈렸는데. 역시 그때 도서관 휴게실에서랑 똑같은 목소리셔서요.”

“.......”

이틀 전 검은 사자 파벌이 파벌 대전을 걸려고 했을 때.

그 학생 인파들 사이에서 ‘포에닉스는 정식 파벌이 아니다’라고 해준 목소리.

에우드는 그게 아나트의 목소리였음을 방금 확신했다.

생각해보면 아까 기척을 감추던 방식도, 이틀 전과 비슷했을까.

무슨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상황이 끝나도록 도와준 거긴 하니까.

에우드는 10대 귀족 포에닉스의 일원으로서,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선 꼭 인사를 전해야 했다.

곧 아나트 쪽에서도 시치미 떼봤자 의미 없다고 생각한 건지.

한숨을 살짝 내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거 두 마디 들었다고 목소리를 완전히 기억했다니요. 무슨 말도 안되는 능력이신가요.”

단박에 들킬 줄은 아나트도 전혀 예상 못했던 거 같다.

“역시, 제 오빠- 잭스 토르랑을 사정없이 쓰러트렸을 만하네요.”

잭스 토르랑.

에우드는 그 이름에 눈빛을 바꿨다.

“.......도와준 건 고맙지만, 그래도 만약 당신이 제게 다가온 목적이-”

에우드는 시꺼먼 기백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놈의 복수라도 하러 온 거라면, 당장이라도 상대는 해드릴 겁니다만.”

“호오-”

에우드와 아나트 사이의 공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어간다.

포에닉스 부실의 정원 위로, 적의로 가득한 압력이 둘러싸여 간다.

당장이라도 서로 충돌하기 직전으로.

슈가 또한 주인의 위기에 대비해 적의를 뿜어내간다.

다만-

“-아뇨 근데. 오해는 마시길. 전 딱히 그놈 복수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있어요.”

“아.”

“먼저 말하겠는데,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 하진 말아요.”

아나트는 곧바로 정말 농담하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에우드에게 맞서고 있던 아나트의 적의가, 금세 기세를 줄여갔다.

“저는 어디까지나, 그나마 남은 직계친족이라 그냥 놔두는 것뿐. 그 인간쓰레기의 복수를 할 생각은 절대 없어요. 오히려 그놈이 저질렀던 일들은, 제 쪽에서 꼭 사과드리고 싶어요.”

“.......그, 그런가요.”

아무래도 이건 진심인 것 같다.

“그리고 그때 휴게실에서 도와드린 건 그냥 그 이상 대화를 해도 헛돌 게 분명했으니까요.”

“그건....... 그랬죠.”

“칼투스는 똑바로 설명 안 해주면, 다짜고짜 밀어붙이려는 성향이 심하거든요. 검은 사자들뿐만 아니라, 호전적인 수인족분들은 상당수가 그런 성격이지만요.”

대답은 딱히 안 했다만, 에우드는 아나트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요 며칠 겪은 두 종족의 수인족 모두 그런 성격이 대부분이었지.......

에우드도 약간 힘이 빠져 적의를 줄였다.

곧 에우드에게서 적의가 줄어들었다는 걸 안 건지. 아나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도련님이 분위기를 바꾼 것에, 슈가 또한 나이프 홀더로 향하던 손을 내렸다.

“오늘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그런 사소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

아나트가 오빠의 복수를 사소하다고 여기는 건 둘째치고.

살살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게 뺨에 닿아온다.

아나트 토르랑은 뺨을 콕콕 건드리는 곱슬머리를 기품있게 귀 뒤로 넘겼다.

곧, 아나트는 비어있는 새하얀 손을 에우드에게 내밀었다.

“저 아나트 토르랑. 포에닉스 파벌에 가입을 요청함과 동시- 당신, 에우드 홀라이트 포에닉스와 동맹을 맺고 싶답니다.”

***

“.......동맹?”

“네. 동맹.”

설마 트루스에게 듣던 말을 다른 사람에게도 들을 줄은.

물론 에우드도 그럴 확률이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리퀴아도 그랬다.

에우드가 포에닉스임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많다고.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다가오든 잘 판단해서, 그것을 잡을지, 역으로 이용할지 결정을 내리라고.

다만 3년 전 사교회에서의 사건으로, 포에닉스와 토르랑의 관계는 이미 되돌릴 수가 없어졌다.

설령 되돌리려 해도 불가능한 것이, 본가의 일원 대부분이 죽었으니까.

그런 만큼, 역시 에우드도 토르랑 쪽에서 동맹을 맺자고 말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슈가는 긴장을 머금었다.

며칠 전 정보수집 중 들은 ‘토르랑의 파벌 항쟁 참가’.

그것이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려 하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적대관계인 포에닉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하필 삼남매 중 에우드만 있을 때 이렇게 다가오다니.

아니, 아나트 쪽에선 ‘에우드만 있는 것’을 노린 걸 테지만.

처음부터 아나트는, 두 누나 없이 에우드가 홀로 남은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에우드 도련님-”

“-슈가.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죠.”

에우드는 슈가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아나트를 향해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먼저 묻고 싶은 건........ 왜 포에닉스 쪽에 동맹을 제안하는 거죠?”

“말을 되돌리는 형태가 됩니다만. 오해는 마시길.”

“오해? 무슨 소리죠?”

아나트는 내밀었던 자신의 손을 가슴에 얹으며 말했다.

“제가 동맹을 부탁드리는 건, 어디까지나 에우드, 당신에게예요.”

“.......어째서죠?”

“당신이 저랑 비슷한 처지- 하아, 아, 역시 이 말투는 답답하네. 이제부터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선 감추는 건 줄여야 할 테니. 그냥 하던 대로 할래.”

아나트는 헛기침을 살짝 냈다.

“-네 처지가 나랑 비슷하기 때문이지.”

휴게실에서 들었던 그 말투다.

아마 이게 아나트의 본래 말투이리라.

자존심 넘치며 공격적인, 토르랑 특유의 억양이었다.

에우드도 그에 따라 말을 놓기로 했다.

상대는 에우드에게 있어선 선배이지만, 아마 저쪽도 괜히 존댓말 하는 걸 바라진 않으리라.

“비슷하다고?”

“아- 엄밀히 말하면 다르지만. 그래도, 난 너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어. 너는 포에닉스 가문에 입양된 분가 출신이잖아?”

정확히는 분가조차 아니라, 노예 출신이지만.

에우드도 슈가도 거기에 대해선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에우드의 과거- 드림랜드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3년이 지난 지금도 포에닉스의 극비 기밀이다.

“슈가에게 이미 들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메이드의 피를 이은 딸. 헤릭스 토르랑의 딸이긴 해도, 결코 정통성을 가진 토르랑의 핏줄이 아니야. 호적만 치면 ‘지금의 어머니’하곤 완전히 남남인 관계지.”

“.......죄송합니다.”

“됐어, 슈가. 귀족가 대부분이 알고 있는 이야기. 공공연한 비밀. 그리고- 난 이 핏줄에 절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아나트의 눈은 매우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에우드에게도 느껴졌다.

......아나트는 자신의 어머니가 메이드임에 어떤 불만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금 하려는 일을 해내기 위해선 조금 힘이 부족하다는 건 인정하고 있지만.”

“하려는 일?”

아나트는 에우드에게 슬쩍 웃었다.

“토르랑을 전부 집어삼키는 것.”

아까 호호 웃던 것과는 전혀 다른, 야망이 가득한 웃음이었다.

“잠깐.......! 아나트 아가씨는 지금 차기 당주에 가장 가까우신 분일 텐데- 실, 실례했습니다! 제가 감히 두 분의 대화에 끼어들어.......!”

“괜찮아요. 어차피 저도 그걸 묻고 싶었어요, 슈가.”

“나도 상관없어, 슈가인걸.”

무례를 범했다 생각한 슈가가 고개를 숙이는 것에, 에우드와 아나트는 털털하게 반응했다.

두 사람 다 그런 것에 심하게 얽매이는 귀족은 아니었다.

“슈가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야.”

에우드는 아나트의 의도가 뭔지 이해했다.

“불확실하다는 이야기인가?”

“바로 그거지.”

아나트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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