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자 파벌 내에, 경악과 환성의 포효가 울렸다.?115회
포에닉스 파벌115.
이제 곧 첫 휴일을 맞이하는 시간.
에우드는 평소대로 도서관에 와 있었다.
요 5일간 여러 강의를 듣고, 에우드도 앞으로의 아카데미 생활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대충 감이 잡혔을까.
그리고 현재는 이수할 강의를 확정 내려, 아카데미의 각 학관에다가 서류를 제출한 후였다.
선택 강의 자체는 3년 전에 골랐던 것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았을까.
에우드가 입학시험으로 골랐던 과목은, 마법, 검술, 수인어, 미궁이론-
그리고 종교를 배우는 ‘신학’.
원래는 이변이 없는 한 티아나에게 배운 연금술을 하려 했다만.
그럼에도 신학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리퀴아가 실종되고서부터 에우드에게도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의 교단’은 일단은 종교라고 했던가.
그건 유그라시아를 비롯한 여러 성당교회와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진 집단.
그래도 그들 또한 종교임에는 다름이 없다.
무언가를 믿고, 무언가의 경지에 다가가려 한다.
생명이 당연하게 밟고 있는 땅 위가 아닌, 정신적인 세계를 지향한다.
그렇기에, 에우드는 종교라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의 교단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에 따른 배경지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현재 유그라시아 전반에서 믿고 있는 종교가 무엇인지 공부하길 원했다.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알아야, 대처를 확실하게 세울 수 있다고 했는가.
조안과의 교양수업에서 배운 말은 언제나 마음에 와닿는다.
실제로 가레스가 말하기로도, 리퀴아에게도 상당한 종교적 지식이 있다고 한다.
과거 아카데미에 함께 재학했던 ‘크로나스’라는 인물 덕분이라나.
게다가 리퀴아도 세계를 방랑할 때, 그 지식에 여러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크로나스. 황금의 기사 중 한 축이자, 현 황금의 기사 최연소 멤버.
원래는 어떤 귀족가 자제였지만, 성기사로서 활동하기 위해 모든 신분을 내려둔 독실한 신자다.
그런 크로나스의 특징이자 취미가, 친분 있는 사람에게 종교적 지식 설파하기였다고.
졸업 직전 크로나스와 함께 다닌 리퀴아는, 원하든 원치 않든 그걸 자주 들은 모양이다.
덕분에 과거 매번 대화가 시작될 때마다-
(“망할 크로나스 시꺄, 니 진짜 고마 팍 내 귓구녕에 신성 인챈트를 처박을 생각이가?!”)
(“아닙니다, 이건 다 리퀴아님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어서 들으십시오! 과거 천 년 전, 이 대륙에 신이 내려왔을 때-”)
(“하 참내, 밥 처먹을 땐 그냥 밥 좀 먹어라! 니 땜시 얹힌다!!”)
-라는 식으로 말싸움이 일어났다고.......
(“크로나스 걔는 평소엔 말이 없는데...... 좋아하는 게 나오면 대화량이, 농담 아니라 100배 정도 늘어나거든.”)
가레스 말로는, 리퀴아에게 있어 크로나스의 지식 설파는 트라우마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른바 신성 트라우마라나.
뭐, 말은 그렇게 해도.
실제론 성당교회 성기사단 단장의 지식 설파이니, 그 가치는 천금을 줘도 모자를 테지만.
어쨌든 에우드는, 리퀴아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종교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언젠가 일어날 사건에 능숙히 대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그로 인해 시험과목 중 연금술을 빼야 해서, 한동안 티아나가 조금 삐졌다는 거겠지.
“흐응~ 이 누님과 같이 강의 듣는 것도 포기하고 선택한 과목을, 아주 열심히도 찾고 있었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에우드가 도서관에서 신학 관련 도서를 손에 쥐었을 때.
어느새 옆에 찾아온 티아나가 입을 삐죽이며 그것을 말했다.
“미, 미안.......”
“농담이야~!”
삐죽인 건 장난이었는지.
에우드가 고개를 추욱 숙이자, 티아나가 빙긋 웃으며 머리를 폭폭 쓰다듬는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막둥이가 할 공부까지 강요할 생각은 없어. 연금술을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다음 학기에도 연금술 들을 수 있다고 하고.”
3년 전과는 달리 길게 기른 백금색 머리칼이, 에우드를 쓰다듬을 때마다 찰랑찰랑 흔들린다.
티아나의 손에는 언제나처럼 연금술 서적이 쥐어져 있다.
방에도 책은 많지만, 티아나는 항상 그것으론 부족하다는 듯 새 책을 찾아다녔다.
이런 열정 덕에 당연하게도, 입학시험에서 티아나는 연금술 시험에서 2위를 기록했다.
......도중 티아나 특유의 폭주(연금술 실기 시험의 결과물이 잘 나와, “이걸 놓칠 수 없지!!”라며 정량의 10배를 만들다가, 레시피에 오류가 났다나.)로 인한 감점만 아니었어도, 충분히 1위가 가능했다고 한다.
애초에 티아나는, 그 카밀라 에메스 라그나릴에게 조언을 받으며 공부한 학생이다.
신입생 중에 티아나와 연금술을 견줄 수 있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1년 뒤에 있을 계승절까지 보내면, 티아나도 서둘러 연금술사 자격을 따리라.
그리고 이 정도로 연금술에 의욕 빵빵한 티아나가-
“슬슬 램프에 불 좀 붙이고 싶은데........”
현재 일주일이 다 되도록 연금술에 손을 못 대고 있다.
부실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나, 마안으로 연금술 못할 때도 며칠은 쉬었잖아.”
“그 고통스러운 일을 또 겪으라는 건 너무한 거지!”
정확히는 이론 복습과 레시피 작성, 그리고 불씨가 필요치 않은 작업- 배합 같은 것은 하고 있다만.(여기까진 셀레나가 허가해줬다.)
그래도 연금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램프 열에 의한 가열.
그것들을 전부 다 할 수 없는 것이 답답한 것이다.
티아나 말로는, 아예 램프에서 나는 약간의 탄내와 열기로 보글보글거리는 소리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물론 그 냄새나 소리는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 있다만.
그래도 에우드는 그 정도면 금단현상이 아닐까 싶었다.
들어보니 카밀라도 비슷한 증세가 있는 듯하다.
역시 만나면 연금술로 3일을 밤새는 중증 연금술 중독자들 답다.
“이거 봐, 에우드! 누나의 손이 떨리는 거!”
“어디- 별로 떨리지도 않구만........”
“부들부들!”
에우드가 빈손으로 티아나의 손을 꼭 잡자, 티아나가 묘한 의성어를 질러버렸다.
일단 에우드의 손끝엔 떨리는 게 잘 안 느껴지는 거로 보아, 아직 버틸 순 있는 것 같다.
“아, 아무튼! 파벌 부실이라도 받으면, 이제 거기서 연금술 할 거니깐! 이 누나, 밤 팍 새버릴 거니깐!”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외출 자체는 자유로웠다.
때문에, 파벌들의 경우 파벌 부실에서 마법연구나 과제를 하느라 밤샐 때가 있다고.
물론 말이 연구니 과제니 하지, 실제론 아마 놀자판일 때도 있으리라.
아무리 내로라하는 높은 계층의 학생들이 있다 해도, 기본적으론 아직 활기찬 젊은 학생들이니.
......트루스가 활기차게 논다는 건, 에우드에게 차마 예상이 안된다만.
레니안느나 라다루스라면 그나마 가능하다 쳐도.
그래도 학생회가 부실마다 순찰을 다니기에, 과하면 제재를 받는다곤 한다.
“강의 있는 날을 앞두고 밤새는 건 하지 말아줘, 티아나 누나. 이제 학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벌써 강의 못 나간다고. 애초에 파벌 부실에서 잠들었다간 누가 누나를 기숙사로 데려다주는데.”
“흐흥, 그럼 에우드가 업어서 기숙사까지 데려다주면 되는걸!”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 동생한테 업히려는 거야......”
이렇게 말해도, 요 3년 티아나는 자주 에우드에게 업혀서 방에 돌아가곤 했으니까.
에우드의 키가 아직 작았을 시절엔, 공주님처럼 품에 쏙 안겨서,
그리고 에우드에게 성장기가 오고 나서부터는 아예 폭 업혀서 옮겨졌다.
에우드는 티아나가 자신을 좋은 탈것으로 여기는 거 같아서 난감했다.
아니, 이동식 침대일지도 모른다.
사실 티아나뿐만이 아니라, “나도 한 번 받아볼래.”라고 한 셀레나라던가.
또 언제나처럼 술에 취한 제시카라던가.
에우드의 안기&업기는 의외로 이용 고객이 여럿 있었다.
“저택 밖에서도 동생한테 업힌다는 거 어머니가 들으면, 나중에 돌아가서 혼날걸.......”
“으윽.......”
에우드가 로로나에 대해 말하자, 티아나가 입을 물결치듯 꼭 오므렸다.
난처함을 보이는 모습이 정말 언제나의 작은 누나라고, 에우드는 키득키득 웃었다.
“에, 에우드가 엄마한테 안 이르면 되는걸!”
“뭐야, 그게.”
“.......에우드. 엄마한테 누나 이를 거야?”
티아나가 눈을 촉촉이 하고 바라보자, 역시 에우드도 단호히 대답할 수 없었다.
셀레나도 그렇고 티아나도 그렇고.
두 누나가 백금색 눈으로 이렇게 보면, 에우드라도 항상 쓴소리하기가 어렵다.
아니, 최근 들어 티아나는 특히나 그 효력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안 이를 테니까, 그래도 자제 좀 해줘.”
티아나의 표정이 금세 뾰로롱 웃음으로 바뀐다.
“헤헷, 좋아좋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노력해볼게! 그땐 에우드도 같이 부실에 남아있기!”
“웬만해선 ‘되도록 안 하도록 노력해볼게’라고 말해주는 게 좋겠는데....... 그보다 나도 같이 밤새야 하는 건가.......”
“언니한테도 같이 가자고 해야지! 플로라랑, 프란시느랑, 드로와도! 아, 역시 피르티는 바쁘려나....... 일단 티아나 누나와 함께하는 보수는, 피로회복에 좋은 과일맛 포션 세트랍니다!”
여기선 솔직해서 좋다고 해야 하리라.
천진난만한 누나의 행동에, 에우드는 푸훗하고 웃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도, 일곱 번째 파벌 인원이 확정되고서야 가능한 거겠다만.
“맞다, 제시카한테 저번에 강의 들어봤다고 했지, 에우드?”
“응, 미궁이론 강의. 교수답게 문제없이 강의했어.”
“약간 불안했는데 다행이다. 역시 제시카, 할 땐 하는 선생님!”
“한동안은 교수지만.”
티아나는 제시카와의 강의가 없었기에, 나름 불안했던 듯하다.
확실히 제시카는, 디에스 못지않게 엄청 능숙한 실력으로 첫 강의를 이끌었었다.
원래 본 성격을 감추는 건 정말 잘 하는 제시카인 만큼, ‘저, 능력 있는 교수랍니다 아우라’가 퐁퐁 뿜어져 나왔었다.
포에닉스 출신 교수라는 점도, 학생들의 존중을 얻는 데에 크게 한몫했을 테고.
‘아, 제시카한테 그 불지옥의 마술사에 관해서 물어봤어야 했는데.’
수인족들과 엘프족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금발의 인간족 마법사.
혹시 졸업생인 제시카도 아는 인물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꼭 물어보러 가보자고, 에우드는 책장에서 책을 꺼내며 다짐했다.
***
그렇게 에우드와 티아나가 도서관에서 작게 작게 잡담을 나누고 난 후.
에우드는 슬슬 무시하기도 힘들다 싶어 눈을 살짝 돌렸다.
“......계속 보고 있네.”
“에우드, 왜?”
“아니....... 누가 이쪽을 계속 보고 있거든. ......응? 둘? 아니지, 방금 건 착각인가. 하나는 확실한데.”
“......뭐?”
에우드의 말에, 티아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방금까지 웃던 것이 거짓말 같았으리라.
물론 이미 도서관에서 여러 사람이 에우드와 티아나를 알아보고 살짝씩 보고 갔다만.
포에닉스라는 이름과 티아나의 귀여움 덕에, 시선은 자연스럽게 모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에우드도, 이 정도로 미동 없이 3분 정도를 쭉 보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오히려 여기까지 안 움직이는 게 더 무섭게 느껴질 수 있었을까.
에우드의 피부가 살짝 조여질 만큼의 시선이었다.
“.......설마 또 에우드한테 싸움 걸러 온 애는 아니겠지?”
티아나는 연금술책을 잠시 책장에 꽂더니, 손을 뚜둑뚜둑 풀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에우드에게 대련을 신청하는 학생이 나타나면 자신이 손봐주겠다는 표시.
에우드로선 티아나가 싸우는 걸 놔둘 수 없다만.
애초에- 만약 이게 검은 사자 파벌의 시선이라면.
며칠 전 사울드가 말했던 것과 관계된 거라면.
에우드도 이대로 그냥 있지는 말자 싶었다.
“티아나 누나.”
“응, 에우드는 이 티아나 누나가 지켜줄 테니까-”
“아니아니, 잠깐만 이 책들 좀 맡아주라.”
“응?”
에우드는 방금까지 고른 책을 티아나에게 건넨 후-
“붙잡아볼게.”
“뭣-”
타아앗!
가볍게 바닥을 밟아, 시선이 전해지는 곳을 향해 재빨리 움직였다.
그리 멀진 않다.
수많은 책장이 있는 도서관이지만, 실제로 시선이 전해지는 건 책장 다섯 개 정도 너머.
곧바로 에우드는 단번에 책장과 책장의 사이로 들어가-
타아아악!
“뭣, 크르르릉-!?”
그 인물의 뒤에 도달해, 단번에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상대의 힘도 상당하다.
넘어트리려 했는데도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역시 실력자를 보낸 건가.
진짜 검은 사자 파벌이라면, 그 행동의 의미와 목적을 확실하게 물어야 할 것이리라.
만약 누나들에게 피해를 주려 한다면, 에우드가 직접 움직일 준비도 해야 할 테고.
그렇게 찰나 동안 생각하면서, 에우드가 팔을 당겨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자-
“너 대체 누구- .......응?! 키루미나였어요?!”
거기엔 푸른 머리칼이 건강하게 휘날리는, 수인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
“망할, 어떤 새끼가 감히.......! 킁킁- 어, 어라?! 에우드?! 분명 방금까지 저기 있- 헙!”
송곳니를 드러내던 키루미나는, 자신의 말실수를 감추려는 듯 입을 꼭 다물었다.
-그때였다.
“......에우드야?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이제 막 강의가 다 끝나고 온 셀레나가 도착한 걸까.
메이드들이 만들어준 오밀조밀한 베이지색 가방을 멘 셀레나가, 에우드와 키루미나가 있는 책장 쪽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있었다.
“에우드, 잡았어?! 누가 보고 있던 거야?!”
티아나 또한, 에우드의 뒤를 따라 허겁지겁 현장으로 달려온다.
그리고-
두 누나 모두 키루미나를 발견한다.
““........””
막내 동생이 수인 소녀의 팔을 잡은 걸 두 눈으로 확인한다.
책장과 책장 사이에서,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에우드, 누구야?””
“히익.”
“캥!?”
셀레나와 티아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아하하, 설마- 알아챘을 줄은 몰랐는데.’
도서관의 멀리서 소년의 목소리를 슬쩍 듣던 소녀-
아나트 토르랑은, 방금 에우드가 자신의 시선을 눈치챘음을 알아챘다.
물론 잠깐일 뿐이고. 곧바로 다른 시선을 쫓아 움직였지만.
‘생각 이상이네. 저건 진짜야. 아마 3년 전에, 마음만 먹었으면 잭스 그 등신의 머리를 뽑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아마 잭스가 살아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사고를 친 게 사교회였기 때문일 뿐.
만약 외부-
‘3년 전 그 검은 암살자’가 나타났던 날처럼, 귀족의 울타리가 없던 곳이었다면.
그 즉시 머리를 잃었겠지.
자신들의 아버지처럼. 자신들의 형제들처럼.
자신의 배다른 오빠는 참으로 악운만 좋은 남자라고,
아나트는 펼쳐놓은 책으로 입가를 가리며 조소를 보낸다.
도서관의 구석진 창가 자리 한 곳에서, 읽을 생각도 없는 주제에 의미 없이 글씨의 나열을 바라본다.
그런 중, 아나트는 창밖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고개를 돌렸다.
“......어머나.”
거기엔 검은 갈기와 피부를 가진 수인들의 무리가 있었다.
“빨리도 움직이네. 다들 뭐가 그리 급할까.”
키득키득 웃으며, 아나트 토르랑은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즐겁게 기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