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회
포에닉스 파벌112.
강의실에 들어온 이는, 바로 유펠하이넴의 차기 가주.
디에스 엘루 유펠하이넴이었다.
“모두 정말 혈기가 넘치네요. 보기 좋은 모습이에요.”
“디에스님.......!”
“디에스님이 수인어의 교수라고.......?!”
“10대 귀족이 교수직을 맡는 일이 있나.......?”
“아냐, 예전엔 그 데우트님도 교수였던 적이-”
한쪽으로 살짝 내린 갈색 머리에, 교수직에 걸맞게 깔끔히 묶은 장발.
사교회에서 가끔 보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에, 에우드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강의를 담당하는지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수인어 담당일 줄은 에우드도 몰랐다.
“설마 디에스님일 줄은. 강의 끝나면, 두 분한테 빨리 말해야겠네요.(중얼중얼)”
플로라는 놀라면서도, 어째서인지 경계를 유지하며 혼잣말했다.
디에스는 신입생들의 웅성거림 속에서도 조용히 웃었다.
귀족 사교계에서도 유명한, 기품 있는 미소.
사교계의 아가씨들 중, 가장 당당하면서도 단아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 평해지는 게 바로 디에스다.
덕분에 디에스를 알아보는 학생 중엔, 놀란 걸 넘어 감동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만 역시 티아나와 셀레나는 볼 때마다 별로 안 좋아하니 말이다.
에우드는 적어도 이번 학기에, 두 사람이 수인어 강의를 듣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겼다.
곧, 디에스의 조용한 웃음이 강의실 전체에 퍼진 걸까.
저마다 웅성거리며 대화를 주고받던 학생들이 점점 조용해졌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눈앞에 있는 건 일반적인 아카데미 교수가 아니다.
지금 교수로서 들어온 여성은, 무려 10대 귀족의 후계자.
그것을 이해한 학생들은, 사교회 때와 같이 정신을 바짝 차린 모습이 되었다.
일반 학생들도 귀족 아이들의 행동에, 본능적으로 디에스의 위치를 깨달았으리라.
“너무 딱딱하게 있지는 않으셔도 돼요. 저는 어디까지나 교수의 입장으로 온 것. 신분은 잠시 내려두고, 교육자로서 여러분을 이끌기 위해 온 것이랍니다.”
그 말을 들었다고 바로 풀어지는 멍청이가 있을 리가.
귀족 가문의 자제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엄청난 부동자세였다.
약간의 경직은 풀릴지언정 무례하게 행동하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던 중, 디에스는 교실의 한쪽을 바라본다.
에우드가 있는 곳을 발견한 것이다.
에우드는 거기에,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서로가 아는 사이라 해도, 지금은 학생과 교수.
여기서 대놓고 아는 척을 하며 말을 거는 건 매너가 아니다.
유펠하이넴 가문과 면식이 있는 플로라도, 작게 목례를 한다.
디에스는 그 행동에 만족스러웠는지 방긋 웃었다.
“아시는 분들도 여럿 있으시겠지만- 디에스 엘루 유펠하이넴. 이번 학기,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의 수인어를 담당하는 교수로 결정되었습니다.”
사교회 때와는 다른 교육자로서의 인사.
거기에, 학생들 모두 앉아서 목례로 인사를 받아갔다.
디에스의 정체에 긴가민가하던 일반 학생들도 이제 확신을 내리곤, 똑같이 따라 인사했다.
“수인어는 원래 수인족 교육자분들이 가르쳐드리는 것이, 가장 수준 높은 강의라고들 합니다만- 그래도, 제 수인어에 대한 조예는 여타 수인 교수분들과 동등하다고 자부할 수 있답니다.”
실제로 사교계에서도, 디에스의 언어능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제시카가 3개국어가 가능했는데, 디에스 또한 3개국어 사용자.
아예 그 이상으로 각국 정상들과의 대화에도 무리가 없는 실력이라고.
소문으로는, 이제는 사장된 각 세계 언어들까지 상당수 사용할 줄 안다고 한다.
“적어도 여러분과 수인어에 대해 탐구해나가는 데 있어선, 똑같은 유그라시아 사람의 시선 또한,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양쪽을 아울러 알기에, 오히려 여러분께 전해지는 것이 있을 겁니다.”
제시카와 3년을 공부해온 에우드이기에, 거기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디에스는 그 모습을 보며 후후 웃었다.
다른 학생들은 그런 디에스의 고풍스런 웃음에, 매료되듯 멍해져 버렸다.
“뭐, 너무 걱정은 마세요. 만약 제 강의가 도중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른 수인족 교수분들의 강의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니까요~ 저도 그랬듯, 첫 1주는 언제나 맛보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되는 시기랍니다.”
디에스는 농담을 하듯 한 마디를 더한 후, 앞으로의 강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이어서 평가나 과제가 어떤지를 설명하곤, 맛보기로 짧은 강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강의가 시작되고서 10분.
확실한 건, 이제 이 강의를 옮길 학생은 아마 없다는 걸까.
내용은 약식으로 이뤄졌다만. 그 수준은 여타 강의와 궤를 달리했다.
처음엔 티아나, 셀레나처럼 조금 불만스런 태도였던 플로라도 어느새-
“흐음......! 흐음흐음흐음........!”
왠지 모를 감탄과 함께, 디에스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다.
“디에스님. 분명 취향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강의 실력은 그에 걸맞을 만큼 더 위험하네요.(소근소근)”
“플로라, 취향이 위험하다니요?(소근소근)”
“에우드님은 몰라도 된답니다.(소근소근)”
플로라는 에우드에게 흥, 소리를 내며 다시 디에스의 강의에 집중해갔다.
에우드는 여전히 어리둥절하며 똑같이 앞을 본다.
가끔씩 디에스에게서 끈적끈적한 시선이 오는 것만 뺀다면.
에우드가 생각해도 디에스의 강의는 정말 훌륭했다.
***
그렇게 모두가 아카데미에서의 첫 강의를 끝낸 날의 저녁.
교수들도 학생들 못지않게 진이 많이 빠져 있었다.
일반적인 학생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앞에 있는 건 국내외에서 내로라는 신분을 가진 아이들이 상당수.
수많은 준비를 해와도, 보통 긴장되는 것이 아니다.
덕분에 스케줄을 전부 소화하고 온 제시카는, 힘이 쏙 빠져버려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런 제시카의 위에서, 슈가가 부채를 슝슝 부쳐준다.
“고생하셨습니다. 제시카 선생- 교수님.”
“그냥 이제 제시카로 부르라니깐요. 선생님은 잠시 휴직이고~ 교수님은 딱딱하고~”
“그럼 제시카.”
“와, 전환 빨라. 저야 편하지만요.”
부채 바람이 솔솔 오는 것을 받으며, 제시카는 침대에서 폴싹 몸을 일으켰다.
제시카는 신입생만 맡는 게 아니라, 기존 재학생 강의도 맡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오늘 강의는 모두 재학생들의 강의.
예전에 자신이 바라보던 교단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게 꽤 신기했다고.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어요.”
“혹시 제시카한테 무례하게 대하는 학생은 없었습니까?”
“무례하게요? .......그런 낌새는 안 보였는데.”
그보다 아카데미의 성적은 교수들에게 전적으로 달려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고위 귀족 자제가 많을지라도, 그들도 웬만해선 교수들에게 막 나가진 않는다.
애초에 상대가 무례를 보이면, 이쪽은 그에 걸맞은 학점으로 보답하면 되고.
이 제시카 올데그랑트, 절대 그냥 당할 성격은 아니다.
과거 아카데미에 재학 중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저도 졸업생인 만큼, 어떤 식으로 해야 학생들이 만족하는지는 알고 있고. 강의는 문제없을 거 같네요.”
“다행이군요. 안심했습니다.”
“저도 교육자 경력은 좀 된다고요. 걱정은 마세요. 그보다 슈가는요? 오늘부터 업무가 제대로 진행됐을 텐데, 무슨 문제 없었어요?”
제시카가 첫날 강의를 나간 동안, 슈가는 이곳 교수용 숙소에서 업무를 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혹시 일이 있었냐는 말에 슈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포에닉스 출신 메이드임을 알자 모두 친절해졌습니다.”
“아하하하, 좋군요. 포에닉스의 이름이라는 건.”
포에닉스가 사용인들을 잘 챙기는 건 특히나 유명하다.
슈가가 아무리 아카데미로 왔다 해도, 그 소속은 여전히 포에닉스.
게다가 3년 전 그 토르랑과의 사건은, 귀족 가문 사용인들 사이에서도 계속해서 오르내리고 있다.
그로 인해 포에닉스 출신의 메이드들에게는, 되도록 무례를 범하지 말라는 소문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건 사용인 쪽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특이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용인 쪽에서 들은 이야기가 아니다-
즉, 슈가가 개인적으로 낮에 조사한 이야기인 모양이다.
“무슨 일이에요?”
“토르랑의 그 막내분에 대해서입니다.”
제시카는 침대에 놓였던 베개를 꼭 안으며 그것을 들었다.
“토르랑 막내라면...... 분명 예전에 도련님하고도 얘기했었죠.”
“네. ‘아나트 토르랑’입니다.”
“그럼 잭스 토르랑도 같이 있죠?”
“네. 그래도 기존에 계시던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잭스의 경우 별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얌전하다는 건가요?”
“얌전하다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문제 행동을 못 하도록 막내분께서 막고 있다고 하시니까요.”
“그건 다행이군요.”
분명 가문 내의 구조가 바뀌었다고 하니까.
머더 메이지에게 당한 후, 모든 권력이 분가로 뺏기기 직전.
그 소녀가 전부 권력을 본가에 집중시켰다고 했나.
“그럼, 들려왔다는 건 어떤 이야기죠?”
“‘토르랑 또한 파벌 싸움에 참전하려 한다.’- 라는 소문입니다. ”
어제 강당에서 일어났던 난리 북새통을 본 제시카는, 눈을 잠시 껌뻑여버렸다.
“뭘 노리는 걸까요. 메트리 파벌에 들어가는 게 목적일까요?”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건 아닐 거라 봅니다. 이미 메트리 파벌은 2년 전부터 주요 직책들을 전부 채워뒀습니다.”
그렇기에 들어가봤자, 하위권에 있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토르랑 가문의 둘은, 트루스에게 ‘2년 동안 불리지 않았다.’
트루스 쪽에서도, 딱히 넣을 생각이 없던 것이다.
3년 전 사건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는 일이다만.
역시 파벌 싸움은 무섭다고, 제시카는 침대 위로 몸을 풀썩하고 날렸다.
“그래도 혹시, 도련님과 아가씨들에게 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싶으면.”
슈가는 자신의 메이드복 치마를 살짝 드러냈다.
마리와 마찬가지로, 전투용 암기(暗器)들을 꽂은 홀더가 허벅지 위에 있었다.
“언제든지 조치하겠습니다.”
“역시 막상 보면 꽤 무섭다니까요, 그거.”
가레스 직속으로 구축된 포에닉스의 특수 암살팀.
그 소속인 슈가 엘리체는 언제든지 뒤에서 움직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젠 암살팀을 직접 이끄는 마리와 달리, 슈가는 그 임무지 이동이 자유로운 쪽.
그게 슈가가 제시카의 동행인으로 결정된 이유 중 하나였다.
제시카의 말에, 슈가는 차분히 웃으며 치마를 다시 내렸다.
조금 뒤 제시카와 슈가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려 했다.
아카데미 교수라는 게 기본적으로 혜택이 많은 직책인 덕인지.
교수용 숙소의 경우, 식사할 땐 방이나 식당 중 바라는 곳을 선택하는 게 가능했다.
방 자체가 넓은 덕에, 만찬을 즐기기에도 충분하고.
제시카는 슈가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방에서 함께 식사하기로 정했다.
그보다 비단 오늘만이 아니라, 저녁은 웬만해선 슈가와 함께 방에서 먹기로 했다만.
식당에선 사용인과 함께 식사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럼 제시카. 왜건을 가져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시길. -잠깐. 왜 함께 나가려는 겁니까.”
슈가가 왜건을 가지러 가려 하자, 제시카가 슬쩍 옆에 같이 섰다.
“저도 먹기 전에 미리 무슨 메뉴인지 알고 싶다고요.”
“미리 안다고 하셔도, 막상 식사시간이랑은 얼마 차이도 나지 않을 겁니다만.......”
그런 제시카에게 한숨을 내쉬면서, 막상 슈가도 싫진 않은지 함께 방을 나섰다.
그렇게 둘이 함께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들어봐, 엘토! 오늘 그 애가 내 말에 꼭꼭 고개를 끄덕였다니깐! 내 첫 강의도 잘 들어줬고!”
““.......??””
제시카가 사용하는 방의 옆- 10대 귀족용의 호화로운 방에서, 대화가 조금씩 들려왔다.
“그렇습니까. 그건 잘 됐군요. 그래도 방은 정리하고 여운에 잠기셔야죠. 아니, 잠깐. 설마 강의실에서 침을 흘리셨다던가-”
“안 흘렸거든?! 하아, 그보다 교수가 되길 정말 잘했어.......! 어서 내가 아는 걸 다 가르쳐주고 싶어, 츄르르릅!”
“그럼 제발. 방 정리는 하고 사십쇼, 디에스님. 당주님이 보지 않으신다고, 이렇게 대충 하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집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빨리 다음 주가 됐으면 좋겠어!”
“여기에 사용인분들이 아가씨 방을 청소해준다곤 해도, 귀족으로서 최소한의 정리라는 게 필요........ 하아, 진짜 계속 이러시면 당주님한테 다 보고합니다.”
“잠깐, 아빠한텐 이르지 마!?”
““........””
옆방이 분명, 그 10대 귀족 디에스 엘루 유펠하이넴의 방이라 했나.
티격태격하는 것이, 아무래도 함께 왔다는 집사와의 대화인 것 같았다.
“역시 10대 귀족엔 특이한 분들이 많네요.”
“동감입니다.”
제시카와 슈가는 최대한 대화를 못 들은 척 현장을 벗어났다.
***
그리고 비슷한 시각.
에우드는 저녁 식사 후에 잠깐 기숙사 밖으로 나와 있었다.
아카데미의 도서관 한 곳을 찾아가 ‘개인적인 조사’를 끝낸 후,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택에서 챙겨온 크로스백엔, 도서관에서 조사해온 종이나 노트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역시 아카데미의 도서관.
그 장서량의 웅장함은 포에닉시안 시립도서관과 맞먹었다.
자주 다녀본 시립도서관과는 달리, 구조는 조금 복잡했다만.
앞으로 도서관을 자주 다닐 예정이니 말이다. 곧 익숙해지겠지.
“그런데.......”
에우드는 주변을 둘러보며 난처하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너무 의욕이 가득 했었나 봐.”
“구르륵.”
이게 웬걸.
길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