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회
아카데미로101.
●
에우드는 복도에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창문을 닫았다.
그리곤 소리를 슬쩍 더 들어봤다.
“이번에 겨우 산 건데.......! 하필 제일 귀여운 걸 잃어버리다니, 으에에엥.......”
수인어를 마스터한 제시카의 수완 덕일까.
에우드는 3년간, 상당한 회화가 될 만큼 수인어를 익혔다.
때문에, 꽤나 일상적인 중얼거림임에도 알아듣는 데엔 문제없었다.
근데 이 새벽에 무슨 일인 걸까.
에우드는 계속 엿듣는 것도 아니다 싶어, 복도를 살짝 걸었다.
덜컹덜컹 소리가 울리는 복도를 쭈욱 나아가자-
“진짜 어딨는 거냐고.......”
한 소녀가 복도 한쪽에 쭈그려,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 공간은 낮에 들렀었던 휴게실 중 한 곳.
다만 지금은 시간도 늦었기 때문인지.
이곳에 있는 건 에우드와, 쭈그린 후드티 소녀 한 명이었다.
그리고 에우드가 들어온 걸 소녀 쪽에서도 알아챘다.
“-헉!”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혹스러워 보이지만, 그래도 힘찬 보랏빛의 눈동자.
살짝 마음껏 기른 것 같은 거친 남색 머리칼.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 위에 나 있는 수인족 특유의 귀.
아마 개나 늑대 쪽의 귀였다.
평소엔 뾰족할 것 같은 귀는, 당면한 문제 때문인지 살짝 축 처져 있다.
뭐, 그것도 에우드를 보곤 깜짝 놀라 다시 쭉 펴졌다만.
에우드는 상대가 괜히 경계하지 않도록 수인어로 말해봤다.
“무슨 일이신가요?”
“.......?!”
3년간 배운 수인어를 이용해 첫 마디를 걸어본다.
사실 회화까진 된다곤 생각해도, 진짜 수인족하고 대화한 적은 많지 않았다.
아카데미 입학시험은 통과했지만, 실생활 대화를 해볼 기회는 적으니 말이다.
애초에 포에닉시안은 수인족이 별로 없고.
그래도 말이 통한 건지, 수인족 소녀는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만 경계는 계속하고 있다.
에우드는 자신이 수상하게 느껴지나 싶어 좀 더 고민했다.
혹시 발음이 좀 이상했을까.
“으으음, 그러니까.......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도와드릴까요. .......맞는 거 같은데.”
“맞, 맞아요.”
그러자, 드디어 수인족 소녀가 말했다.
아무래도 놀라서 그랬던 것뿐, 에우드의 발음이 이상하진 않았나 보다.
“아....... 그리고 딱히 수인어로 말해주시진 않아도 돼요.”
수인족 소녀가 일반적인 공용어로 말을 바꿨다.
발음이 꽤나 능숙했는데, 역시 이 소녀 또한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듯하다.
에우드도 다시 공용어로 말을 바꿨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어쨌든 대화가 통했으니, 에우드는 다시 물어볼 걸 물어보자 싶었다.
“......물건을 잃어버렸거든요.”
“물건?”
수인족 소녀는 쭈그렸던 무릎을 피고 일어났다.
“.......사실 열차에서 잃어버린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제 객실도, 다른 휴게실도 찾아봤는데, 어디에도 안 보여서.”
하긴, 그러면 꽤나 초조하긴 할 것이다.
또 열차는 내일 아침에 도착하지 않는가.
만약 여기서라도 못 찾으면, 그대로 잃어버리는 것이다.
물건의 소중함을 아는 에우드인 만큼, 그게 더욱 딱하게 느껴졌다.
에우드는 이렇게 된 거, 잠깐 팔을 걷어보자 싶었다.
“무슨 물건인지 혹시 말해주실 수 있나요?”
“네, 네에.......? .......머, 머리핀인데요.”
그러고 보니 아까, ‘산 것 중에 제일 귀여운 걸 잃어버렸다’라고 중얼거렸나.
“혹시 다른 특징도 들을 수 있을까요?”
수인족 소녀는 에우드의 질문에 의심스러운 눈을 하면서도, 그것에 답해줬다.
“........인, 인형이 달려 있어요. 강아지 인형이 달린 머리핀. 저기 근데 대체 왜-”
“-아. 케인즈 상회에서 파는 머리핀이군요.”
“어!? 알고 있나요!?”
에우드가 머리핀에 대해 알고 있자, 수인족 소녀가 강아지 같은 눈을 반짝였다.
방금까진 ‘얘 뭐 하는 사람이지.......? 갑자기 왜 나한테 관심이래?’라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에우드는 순간 크게 웃을 뻔했다.
“유명하니까요. 저희 누나들도 좋아했거든요.”
“그렇죠! 그래서 이번에도 그걸 사려고 포에닉시안에 미리 들리고 온 건데.......!”
수인들 사이에서도 열풍적인 인기인지.
소녀가 살던 데에선 이미 전부 팔려 재고가 없었다 한다.
그래서 본점이 있는 곳에서 직접 사 왔다고.
눈을 반짝이는 걸 보면, 정말로 관심이 있었나 보다.
“그런데...... 가장 마음에 드는 걸 잃어버렸어요.”
그게 바로 강아지 인형 장식의 머리핀인가 보다.
그 머리핀의 디자인이라면, 에우드도 기억에 확실히 남아있다.
각 머리핀의 최초 생산 제품은, 매번 플로라가 포에닉스 가문에 가져와 줬으니까.
덕분에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팍 잡힌다.
에우드는 주변을 둘러봤다.
열차 내부에 있는 덕에, 주변은 예전 던전처럼 ‘일자’ 형태로 이뤄져 있다.
“그럼 잠깐만요.”
“.......네?”
“흐으으읍-”
소리를 지른다.
“―――――!!!”
“꺅?!”
음역을 높여, 다른 사람들에겐 안 들리게 소리치는 에우드의 기술.
한동안 헌터 활동을 하면서, 현재는 그 정밀도가 더욱 높아졌다.
소리의 반사를 통해, 머릿속에 이미지가 확실한 물건 정도면 찾을 수 있었다.
좁은 공간 한정이지만.
“.......후우. 으으음, 없네요.”
다만, 휴게실 내부에 ‘강아지 머리핀’으로 감지되는 것은 없었다.
에우드는 멋쩍게 수인족 소녀 쪽을 봤다.
그러자 수인족 소녀는, 자신의 머리 위 귀를 꼭 잡곤 울상으로 에우드를 보고 있었다.
“말 좀 하고 소리 지르세요!!(수인어)”
“어라, 들렸어요?!”
“당연히 들리죠! 깜짝 놀랐잖아요!?(수인어)”
분명 웬만한 사람한테는 들리지 않는 음역일 텐데.
수인족 소녀에겐 에우드의 소리가 들린 모양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말도 다시 수인어로 돌아왔다.
그제야 에우드는, 일반적인 사람과 수인족이 들을 수 있는 음역에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인족 소녀도 에우드의 반응을 이해한 듯하다.
강아지 같은 귀를 꾹꾹 누른 후, 이어서 말했다.
“저희는, 여러분들보다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일족이 많아요.”
“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너무 놀라서 심하게 말해버렸어요. 그, 그래도 도와주시려 한 건데. 이런 식으로 소리를 내는 건 ‘검은 박쥐 일족’이나, ‘조인족’ 중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인간족 중에서도 있을 줄은 몰랐어요. 인, 인간족 맞으시죠?”
“네, 맞아요.”
겨우 진정된 가슴을 쓸어내리며, 수인족 소녀는 에우드를 신기하다는 듯 봤다.
다만 곧바로 침울해졌다.
“하지만 결국 핀은 없는 거군요.”
“그래도 다른 장소에서 더 찾아보는 게-”
“여기가 마지막 장소였어요.......”
오늘 들렀던 곳은 이미 이 잡듯 살폈다고 한다.
벌써 3시간은 찾아다녔다고.
“역에서 이미 잃어버렸던 걸까요........ 아니면 누가 이미 주워서 가져갔다고 보는게....... 하아.......”
수인족 소녀는 정말로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긴, 포에닉시안까지 와서 사려 한 거니까.
그만큼 아쉬움이 큰 것이겠지.
.......그런데 잘못했다간 아예 울 것 같았다.
애초에 벌써 울먹울먹거리고 있다.
에우드가 그걸 허둥지둥 보던 중이었다.
“-맞다.”
“.......?”
에우드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무언가 기억에 닿는 것’이 있었다.
“괜찮으면, 잠깐만 기다려주실래요?”
●
몇 분에 걸쳐 객실에 서둘러 다녀오자 수인족 소녀는 다행히 휴게실에 앉아있었다.
울먹거리는 건 멈추고, 둥근 의자에서 다리를 붕붕 흔들며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에우드가 돌아온 걸 보곤, 수인족 소녀의 귀가 쫑긋거렸다.
“.......어?!”
“이거라도 괜찮으면 가지세요.”
에우드는 자신의 가방 속에서 가져온 것을 수인족 소녀에게 건넸다.
“강, 강아지 머리핀?!”
“조금 예전에 받은 물건이긴 한데요.”
케인즈 상회의 초인기 인형 머리핀 중에서도, 상당히 초기 모델인 머리핀이었다.
모양은 똑같이 강아지 인형- 이지만, 아마 세부적인 것은 다르리라.
처음 시제품이 만들어졌을 때, 플로라가 포에닉스에 가져다준 것 중 하나였다.
에우드는 딱히 핀을 쓸 일이 없기에 안 받으려 했지만.......
그래도 몇 개는 형식상으로라도 가져가라나.
시제품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포에닉스와 케인즈의 관계표시라는 듯하다.
덕분에 벌써 3년은 된 물건이었다.
사용하지 않고 보관했기에, 품질도 예전이랑 거의 비슷했고.
그러다 에우드는, 그걸 이번에 가방에 넣었던 기억이 있었다.
토끼 인형의 제작자가 만든 머리핀들이기도 하니.
토끼 인형과 같이, 방에 인형 장식으로라도 쓰자는 생각으로 넣은 거다.
그렇기에 에우드는, 이거라도 선물로 주면 마음이 놓이지 않을까 싶어 가져왔는데-
“하악하악하악.......!?”
“으응?!”
마음을 놓는 건 둘째치고, 거의 흥분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머리핀을 보고 있었다.
울먹거렸다는 사실조차 없었다고 여겨질 정도다.
“이, 이건......! 3년 전에 처음 발매했던 케인즈 초기 머리핀이잖아요?! 인형 머리핀의 시작이자, 흥행을 알린 첫 제품군........! 초기 물량이 전부 완판되고, 이후 모델들을 만들게 한-”
“그, 그런가요.......!”
“게다가 이 초기 모델은 더는 똑같이 생산하지 않아서, 이 형태의 인형 머리핀은 이제 개인이 만든 짝퉁 말곤.......!! 아니, 하지만, 이 상표는 확실하게 케인즈 상회 정품!! 인형의 실 처리도, 박음질도, 전부 장인의 기술이!!”
“히이이익.”
에우드가 건넨 머리핀이 정품임을 알고, 더욱 호흡이 거칠어진다.
근데 머리핀에 대해 잘 안다.
아니, 진짜 너무 잘 안다.
에우드도 몰랐던 사실들이 속속히 튀어나온다.
플로라는 이런 이야기 알고 있긴 할까.
수인족 소녀에게 너무 압도된 나머지, 에우드는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혹시 하악하악하는 건 수인족 특유의 호흡일까.
지금 보니 어느새 등 쪽으로 꼬리까지 나와 있었다.
그에 이어 귀와 꼬리가 파닥파닥 움직이는 게 영락없는 강아지.
지금 쥐고 있는 강아지 머리핀보다도 훨씬 훌륭한 강아지였다.
“.......잠깐, 이걸 주신다고요?!”
“네, 네에에........”
“자랑하려고 가져온 게 아닌 건가요?!”
“그냥 자랑하려고 가져온 거면 진짜 너무한 거 아닐까요......!”
겨우 자랑하려고 울먹거리던 애를 몇 분이나 기다리게 한 거면, 사람으로서 좀 안된 행동이다.
“괜찮아요. 전 안 쓰는 물건이고. 누나들은 이미 똑같은 거 가지고 있고.”
애초에 설령 에우드가 머리핀을 써도, 이 인형 머리핀은 너무 귀여우니 말이다.
........아마 웬만해선 쓸 일이 없으리라.
수인족 소녀는 에우드의 말에, 복슬복슬한 강아지 꼬리를 수도 없이 요동쳤다.
그 와중에 틈틈히 ‘대체 꿍꿍이가 뭐야.......?’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참 감정표현이 바쁜 소녀였다.
여전히 받아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걸까.
당장이라도 손을 내밀고 싶지만, 쉽사리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 평소에 모르는 이에게 호의를 받는 것에 대해, 교육을 잘 받아왔으리라.
다만 에우드는 이래서야 끝이 안 나겠다 싶었다.
조금 무례할 순 있어도, 수인족 소녀의 팔을 당겨 재빨리 핀을 쥐여준다.
“캐앵!?”
“괜찮아요. 드릴 테니까요.”
기쁨과 난색이 뒤섞이는 수인족 소녀를 보고 괜찮다고 재차 말한 후, 에우드는 바로 손을 뗐다.
그리곤 재빨리 휴게실을 나가려 했다.
“저, 저기......!”
“네?”
“........아카데미 신입생이시죠?”
“아-”
에우드는 그제야, 이 열차에 있는 또래라면 대부분 ‘아카데미 신입생’이라는 걸 이해했다.
하긴, 목적지는 보통 알카라시아일 테니까.
“맞아요. 그쪽도?”
“네, 넵.”
머리핀에 환호하고 싶은 걸 겨우 참으며 답하는 모습에, 에우드는 결국 웃음을 지어버렸다.
“‘키루미나’라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에우드예요.”
나름 예를 갖춰 전하는 인사에, 에우드도 통성명을 한다.
원래는 상대가 부담 같은 거 안 느끼게 재빨리 가려고 했는데.
키루미나는 고개를 꼭꼭 끄덕이며 “에우드, 에우드.......”라고 이름을 기억해가고 있었다.
그 뒤론 짧은 인사를 더 나누며, 서로 고개를 한 두어 번 꾸벅인다.
나중에 운이 좋으면, 아카데미에서 지나가다 마주칠지도 모르리라-
라는 생각을 하며, 에우드는 객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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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드, 저거 봐!!”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객실에서 간단한 식사를 할 때쯤.
티아나가 멀리 보이는 경치에 소리쳤다.
티아나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에우드도 “와아.......”라며 감탄을 보냈다.
셀레나도 플로라도 슈가도, 모두 솔직하게 놀란다.
“변함없이 크네요, 저곳은~”
제시카는 후식으로 내린 차를 호로록 마시며 말했다.
학원도시 알카라시아.
그리고 도시의 중심이자 상징, 유그라시아 마법대학- 아카데미.
아침 7시 반.
포에닉시안에서 출발한 열차는 드디어 아카데미에 도달했다.
●
“기다리고 있었다. 키루미나.”
열차에서 바로 내리자마자 보이는 바보 오빠와 그 패거리의 얼굴에, 키루미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사울드 아즐볼프.
아카데미에서 이번 세대 ‘푸른 늑대 파벌’을 통솔하는 리더.
즉, 키루미나-
키루미나 아즐볼프와 피를 나눈 친오빠였다.
.......키루미나에게 있어선 전형적인 힘 바보 뇌근육인 오빠였다만.
사울드의 뒤로는, 아카데미 재학생들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두가, 푸른 늑대 파벌에 속한 수인족 학생들이었다.
“이번 파벌 싸움, 반드시 우리 ‘푸른 늑대’가 정점에 선다! 키루미나! 우리 일족에서도 나와 함께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네가 전력을 내주면, 충분히 그 승산이 올라가겠지! 그만큼 이번에 네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
“-대체 오자마자 여동생한테 싸움 강요하는 오빠라니, 말이 돼? 걱정이나 학업 응원은 못 할지언정?”
“엑.”
“나중에 엄마한테 꼭 이를 거야.”
키루미나는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들리는 근육근육한 말에, 짜증을 감추지 않고 오빠를 지나쳐 걷는다.
“야, 야아앗! 키루미나! 그래도 오빠가 기껏 마중까지 나왔는데!?”
“됐네요. 이 마중도 내가 싸우도록 비위 맞춰주려고 온 거면서.”
“윽, 들켰........! 아, 그게 아니라......! -그래! 머리핀이 예쁘구나, 그게 포에닉시안에서 산다고 했던 머리핀이니!?”
“아냐.”
“아, 아니구나.......”
“받은 거야.”
“받, 받았다고?”
키루미나는 오빠의 말에 흥이라는 소리로 고개를 돌리곤, 다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에우드, 에우드라고 했지.’
그 와중 키루미나는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남색 머리에 꽂은 머리핀을 매만지며, 복슬복슬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작품후기]우후후의 의미는.......
어흠 쿨피스는 건전한 후기를 이어갑니다!
.....짐승귀 짐승꼬리도 좋아한답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