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회
재조우090.
●
광장 사람들은 저마다 도망가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노점을 펼치고 있던 사람들도 정신없이 주변에서 벗어난다.
“전할 말이라고? 처음부터 이쪽 죽이려 한 주제에 이제 와서 무슨 짓거리야.”
“애초에, 너도 내 목소리 들렸을 때부터 내 머리 터트릴 생각으로 가득했잖아. 위협으로라도 검 안 휘둘렀으면, 나도 크래프트의 병신같은 꼴처럼 될 뻔했다고. 정당방위지.”
“뭐가 목적이야.”
“내 말을 듣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나?”
“........”
에우드는 몇 차례의 고민을 반복했다.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지금 이 대화조차, 자신과 포에닉스 사람들을 죽이려는 수작일 수 있다.
아니, 하지만.
사실 저놈은 이런 수작을 저지르지 않아도.......
슈가부터 시작해서, 이곳에 있는 누구라도 죽일 수 있었다.
에우드는 알 수 있었다.
저놈은 지금 ‘정말로 손대중을 하고 있다.’
두 번의 싸움에서 보였던 행동과는 다르다.
놈의 말은, 신뢰할 수 없을지언정 거짓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또 만약, 에우드가 지금 다시 싸운다면-
죽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놈의 팔 한쪽에 부상이 남아있는 건 거짓이 아니다.
방금 충돌로 느껴졌다.
한쪽 검이, 아주 조금이지만 위력이 약했다.
에우드가 새긴 상처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반면 에우드의 몸 상태는 현재 최적의 상태다.
안나와 헌터들의 능력도, 앞선 3주간 리퀴아와의 훈련으로 매우 높아졌다.
적시. 적기.
지금이야말로 놈을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악연에 종지부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
놈도 그걸 알고 있기에, 시종일관 가볍게 말하면서도 무기를 거두지 않는다.
에우드는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죽이고 싶었다.
머리를 터트리고, 사지를 부러트려 다신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서 에우드는 생각이 닿았다.
설령 모두 힘을 합쳐 놈을 죽일 수 있다고 해도.
이번엔 에우드를 제외한 이들-
제시카가, 슈가가, 안나가, 다른 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
머더 메이지는 그런 존재다.
저놈은 에우드와 같은, 그쪽의 괴물이다.
싸운다면 몇 명이 죽을까.
대체 몇 명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몸을 스스로 보호할 수단이 없는 슈가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죽을 확률이 높다.
저번과 달리 마차도 없다.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이라곤 두 다리뿐이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에우드는.
놈을 죽이는 것보다도, 포에닉스 저택의 사람들을 잃는 것이 더 두려웠다.
바로 어제 자신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던 이들을 잃는 게,
정말로 가족처럼 대해주는 그들을 잃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이제 막 열한 살이 된 소년에겐, 목숨의 저울질은 너무나도 어렵다.
자신의 목숨을 저울 위에 올려두는 거라면 간단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저울에 올려야 하는 건 자신의 목숨이 아니다.
“도련님, 신호를 주시면 바로 공격할게요.”
안나는 검을 바로잡으며 에우드에게 작게 말했다.
에우드가 말하는 순간에 맞춰, 총공세를 걸 목적이겠지.
헌터들 모두 은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려 하더라도, 헌터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리라.
처음부터 그걸 위한 호위였으니까.
머더 메이지만 쓰러트릴 수 있다면, 그들은 은인인 에우드를 위해 기꺼이 싸울 게 분명하다.
그러나 에우드는, 그런 식의 명령은 할 수 없었다.
“........안나, 잠시 멈춰주세요.”
“에우드 도련님!?”
“제가, 책임질게요.”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아무리 포에닉스의 도련님이라 해도, 이 위험한 상황을 전부 책임질 수 있을 리 없다.
애초에 여기서 가장 목숨을 위협받는 건 에우드다.
설령 에우드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명령도 에우드를 보호하는 것보다 우선될 수 없다.
“제 말을, 따라주세요......!”
그렇지만 안나도, 다른 헌터들도 차마 거기에 따질 수 없었다.
“흐읍.......!?”
안나가 이전에 봤던 것과 같다.
에우드의 눈에서 시꺼먼 기운이 퍼지고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살기가, 머더 메이지에게로 향하고 있다.
“힉.......!”
“커흡.......!!”
뒤에 있던 제시카와 슈가도, 헌터들도,
머더 메이지를 향하는 에우드의 살기에, 호흡이 꼬이며 공포를 느꼈다.
.......에우드는 곧바로 살기를 아주 조금 줄였다.
머더 메이지도 그걸 인식했으리라.
“-받아들인 것으로 하겠어.”
에우드의 살기가 줄어들고, 모두 겨우 호흡이 돌아올 때.
머더 메이지 또한 살기를 조금 거뒀다.
슈가와 헌터들에게 겨누고 있던 단검을 살짝 밑으로 내렸다.
긴장 상태는 매우 일시적인 소강을 맞이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난 당분간 널 못 노리거든. 우리 교주가 한동안은 너희 쪽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단 말이지.”
“못 노린다고......? 교주.......?”
“기억 안 나는 거야? 분명 그 바보 놈이 그때 던전에서 말했던 거 같은데.”
바보놈- 크래프트를 말하는 것이다.
거기서 에우드는 기억에 닿는 말이 있었다.
‘기억의 교단.’
그렇다면......
교주라는 건 지금 머더 메이지의 뒤에 있는 존재란 의미인가.
아지랑이 같은 얼굴 아래로, 머더 메이지는 비웃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축하해, 우드 갈레아. 넌 우리 기억의 교단의 교주- 이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여자의 사랑을 받게 됐어.”
“.......뭐?”
“그 여자의 사랑을 받으면, 그 여자가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로 골치 아프거든. -나도 그랬고.”
머더 메이지는 단검과 흑철검을 든 채로,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교주가 전해달라더군. [우드 갈레아. 수년 뒤 당신이 맞이할 ‘계승절’. 그때, 축복이 성장했을 당신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그날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천천히 기다려주시길.’]-이라고. 이상이야. 나참, 겨우 이것 때문에 사람 부려먹고 말이야.”
머더 메이지가 하는 말은, 에우드에겐 너무나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투성이였다.
“무슨 소리야, 그게....... 애초에 네놈들의 교주가 대체 누군데!?”
“누구냐고?”
머더 메이지는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케이오스’.”
“케이오스......?”
머더 메이지는 오른손의 나이프들을 재차 쥐었다.
“-남은 건 차차 알게 될 거야.”
할 말을 다 전한 듯, 머더 메이지는 ‘자신의 위를 노리는 적의’에 눈을 돌린다.
-셀레나와 마리였다.
“대단하네. 포에닉스는 메이드들도 싸울 수 있는 건가?”
“-!!”
“에우드!”
“에우드님-!”
촤아아아아아악-!!!
검과 암기(暗器).
간식을 사러 갔었을 셀레나와 마리가, 급속도로 머더 메이지의 뒤를 노리며 들어왔다.
마리가 몸 곳곳에 숨겨놨던 암기가 머더 메이지의 위로 쏟아진다.
촤자자자자자작-!!
머더 메이지가 암기를 회피하자마자, 셀레나는 목검 위로 마법검을 만들어 머더 메이지에게 몰아쳤다.
제시카에게 배워 이미 실전 레벨에 가까워진 검으로, 머더 메이지에게 맹공을 가해간다.
그 사이로 마리가 연속해서 던진 암기가, 머더 메이지에게 내려 찍힌다.
“-나쁘진 않다만. 둘 다 느려.”
카가가가가가가가강!!
그 암기들을, 머더 메이지는 똑같이 나이프를 던져 전부 격추했다.
“큭!?”
시선을 전혀 돌리지 않았음에도.
엘리리의 화살을 피할 때처럼, 머더 메이지는 본능적으로 공격의 궤도를 감지하고 있다.
그 틈을 노려 머더 메이지의 목을 노린 셀레나였지만, 그럼에도 머더 메이지에게 닿지 못했다.
미처 유효타를 내지 못한 마법검의 칼날은, 그저 머더 메이지의 검은 후드 끝을 베어낼 뿐이다.
“큭.......!”
“너하곤 계속 못 싸워봤지. 작은 검성 아가씨.”
“뒤져........ 뒤져, 뒤져-!! 우리 동생한테서, 우리한테서 떨어져!!”
격한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셀레나가, 머더 메이지에게 검을 휘두르며 온갖 욕설을 쏘아낸다.
하지만 머더 메이지는 그 공세에 압도되는 것 없이, 셀레나의 쉴 새 없는 연격을 전부 피했다.
“떨어질 거야. 괜히 너랑 붙었다간-”
콰아아아아앙-!!!
“-네 동생한테 자극을 주니까.”
머더 메이지가 셀레나를 상대하기 시작한 그 순간.
에우드는 더는 살기를 자제할 수 없었다.
셀레나에게로 뛰쳐나가려던 안나와 제시카를 제지함과 동시, 에우드는 광장의 바닥을 금이 갈 정도로 밟았다.
“에우드-!?”
“셀레나 누나한테서 떨어져, 개자식아!!”
콰아아아아아아아!!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마력으로 가득한 각력으로 단숨에 접근하여, 머더 메이지의 복부에다가 주먹을 꽂아버린다.
그러나-
“케이오스 그년이 제한만 안 걸었어도, 나도 당장 마음껏 상대해주겠는데 말이야.......!”
“망할......!”
“이번엔 서로, 기회가 안 됐다고 생각하자고.......!”
복부에 충돌하던 주먹을, 그 사이 머더 메이지가 두 자루의 흑철검으로 순식간에 가로막았다.
검과 몸 위로 경화까지 겹친 것인지. 머더 메이지는 그 공격을 받고도 각혈을 토하는 게 끝이었다.
카아아아아아아앙!!
머더 메이지는 에우드를 밀쳐낸 후, 광장의 건물 위로 뛰어오른다.
“하아........ 거봐, 괜히 심부름 왔다가 상처만 더 늘어났잖아. 이러니까 오기 싫었다고. ........어차피 당분간은 만날 일도 없다만. 교주가 원하는 만큼 네가 자랄 때까지, 나도 포에닉스 쪽은 미뤄둬야 하니까.”
“머더 메이지-!!”
그 건물 위에서 머더 메이지는, 조소와 함께 어떤 나이프를 꺼내 땅에 내려찍는다.
“계승절을 맞이할 때까지 잘 있어라, 포에닉스. 우드 갈레아- ‘유그라시아의 강한 노예’여!”
채애애앵-!!
솨아아아아아아!!!
곧바로 솟아오른 연기 속에서 머더 메이지는 또다시 모습을 감췄다.
●
에우드는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오른손의 부상을 치료받았다.
날카로운 흑철검을 쥐면서 생긴 상처였다.
다행이었던 건, 머더 메이지와 재차 조우했음에도, 일행 중엔 에우드 말고 부상은 없었다는 걸까.
해봤자 처음 충돌에서 있었던 타박상 정도다.
당연한 이야기다.
머더 메이지는 처음부터 힘을 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치료가 끝난 에우드는 현재 가레스와 로로나, 알베르토의 앞에 있었다.
불려온 곳은 가레스의 집무실.
.......저택의 다른 인원은 누구도 두지 않았다.
“놈이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는 소식이, 우리에게도 아까 도착했어.”
“활동을 재개했었다고요?”
가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베르토가 그 말을 이어받는다.
“헤릭스 토르랑이 살해당했다네.”
“.......!!”
들어보니, 토르랑 저택이 며칠간 조용했다는 게 원인이었을까.
거기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왕국 경비병에게 신고한 모양이다.
그 후 왕국 경비병들이 저택에 들어가 보자-
헤릭스 토르랑과 일가.
그리고 S급을 포함한 가문의 호위 헌터들이 죽어있었다고 한다.
살아남은 건 토르랑 일가에서도 단 세 명.
마을에 내려가 있던 토르랑의 부인과, 토르랑의 막내 여자아이.
마지막으로 기숙사에 있던 잭스 토르랑이라고.
나머지 일가는 헤릭스를 포함해 전부 살해당했다.
“웃긴 점은.”
가레스는 집무실 책상 위에 손가락을 톡톡 치며 말했다.
“남은 사용인들은 죽이지 않고 쫓아낸 모양이야.”
“.......뭐냐고요, 그게.”
“그때 토르랑은, 사용인들을 거의 다 이직시켜 노년의 집사와 메이드들뿐이었으니까. .......동정이라도 생긴 건지. 아니면 진짜 의도가 있는 건지, 아직 모를 일이다만.”
머더 메이지들은 남아있던 열댓 명의 사용인들에게,
“퍼트리면, 그 즉시 죽이러 올 것이다. 조용히 하고 있어라.”라는 말만 하고, 저택 밖으로 전부 내보냈다고.
아까까지만 해도, 그놈은 포에닉스의 사람들을 죽일 뻔했는데.
그런 주제에 위선적인 행동을 했다는 게, 에우드는 너무나 짜증 났다.
“.......제가, 안일했어요.”
“에우드, 왜 그래요.......? 무슨 말인가요......?”
“안일했어요. 안일했어요. 안일했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방심하고 있었단 것에 너무나 화가 났다.
로로나의 물음에, 에우드는 자신의 실책을 되새기며 말했다.
“언제든 이렇게 될 수 있었어요........ 오늘 끝낼 수도, 있었어요.......”
어쩌면 끝낼 수 있던 머더 메이지와의 상황이다.
희생을 감수하고, 앞으로의 평화를 얻을 수도 있었다.
사실 방금 광장에서 했던 선택은, 가레스의 본래 의도와는 달랐을 것이다.
에우드의 역할은, 계약서에 명시되었듯이 원래 두 누나의 방패.
머더 메이지가 물러나려 했기에, 이후 셀레나와의 충돌에서도 부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래서야 주목적이 바뀌었다.
진짜로 에우드가 두 누나의 방패역이라면.
나아가 정말로 앞으로를 위해서라면, 거기선 머더 메이지를 쳤어야 한다.
설령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에우드-”
“제가 판단을 흐렸어요. 어떻게든, 아까 그놈을 죽였어야 했는데......”
에우드는 어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로로나도 알베르토도, 에우드가 자책하는 모습에 동요했다.
지금까지, 아무리 싸워왔어도 흔들림 없어 보였던 아이였기에 더더욱.
그러자 가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보 녀석아.”
바로 에우드에게 다가와, 굳게 끌어안았다.
“네 판단은 틀리지 않았어. 잘 한 거야. 결코, 틀린 판단이 아니야.”
“하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어. 티아나도 셀레나도 상처 없이 돌아왔어. 그럼 된 거야.”
가레스는 에우드를 나무라지 않고 품었다.
“그걸로 된 거야, 에우드.”
에우드가 진정할 때까지, 가레스는 아버지로서 막내를 꼭 안아줬다.
●
이후 추가적인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에우드는 집무실에서 나왔다.
어른들은 더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렇게 복도를 걷는 도중, 자그만 두 손이 에우드를 잡았다.
“-깜짝이야, 티아나 누나, 셀레나 누나........”
“에우드, 얼굴 이리 대.......”
“닦아줄게. 뚝. 그만 뚝.”
복도에서 에우드를 기다리고 있던 두 누나가, 손수건을 들곤 막내의 눈가를 슥슥 닦아준다. 에우드는 자신도 모르게 훌쩍이고 있던 걸까.
.......그런데 두 누나 또한 눈가가 새빨개져 있었다.
티아나도 셀레나도, 에우드가 나오기 전까지 훌쩍였던 것 같다.
포에닉스 아가씨들은, 한동안 복도에서 서로 손을 꼭 잡곤 막내의 눈을 닦아줬다.
그리고 조금 뒤-
“-에우드, 검 연습하러 가자!”
“가자.”
여전히 눈이 빨간 주제에, 두 누나는 그걸 꾹 참고 에우드에게 연습을 부탁한다.
포에닉스의 아가씨들은 언제나 씩씩하다.
[작품후기]???:크리스마스? ......아아, 이녀석을 말하는 건가?
???:키사마아아아
같은 느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포에닉스 삼남매가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네요.
인식장해-라고 쓴 게 사실 맞긴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