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회
도서관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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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금 빈혈이 많은 몸이라서 말이죠. 너무 놀라서 잠시 그대로 있어 버렸네요. 우후후.”
“거짓말 같은데.......(중얼중얼)”
에우드에게서 떨어진 디에스는, 후훗거리는 웃음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티아나는 최대한 막내에게 못 다가오도록, 계속 그 앞에 있었다.
디에스는 방금 꺼낸 책을 에우드에게 건넸다.
“여기 있답니다. 어려운 책일 텐데, 특이한 흥미네요.”
들어보니 역시 이 관은 아이들이 읽기 어려운 책들이 많은 모양이다.
단순히 책만 있는 것이 아닌, 아카데미를 비롯한 수많은 세력의 학술지.
유명 논문의 사본. 그 외에도 어려운 외국어의 서적들.
사실상 성인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한 장소라고.
에우드는 그것을 듣자, 어쩐지 전체적으로 책장이 좀 높다 싶었다.
디에스도 맨 위 책장엔 닿지 않았지만, 구태여 건들진 않는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일로 이렇게 방문하셨나요?”
디에스는 귀여운 동생들에게 질문하듯 말했다.
티아나는 여전히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만.
일단 에우드가 보기에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말이 나쁘지 않다는 거지, ‘나쁘다와 좋다’의 위에서 비교하면 딱 중간이었을까.
선인도 악인도 아니란 느낌이다.
“3년 뒤 아카데미 시험을 준비하려고요. 과목들을 찾을 수 있나해서. .......그리고, 그냥 재밌는 것이 없나 보고 있었어요.”
“어머머. 맞아요. 메트리 쪽도, 여러분도 아카데미에 입학한다고 했죠. ......으음, 재밌는 건가요.”
에우드의 대답이 디에스에겐 꽤 신기했던 것 같았다.
정말 놀란 듯 눈을 반짝이며, 다시 은은한 미소를 품는다.
“그렇군요, 그 책은 그런 의미군요. 미궁이론도 아카데미 시험 중 하나니까요.”
디에스도 아카데미의 과목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저도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거든요.”
“디에스님도......?!”
“이미 졸업반이랍니다. 또 학점도 다 채웠고. 남은 강의도 별로 없어 밖에 자주 나온답니다. 여러분들이 올 때는 이미 학생 신분이 아니겠네요.”
티아나가 놀라는 것에 디에스는 여유롭게 웃었다.
오늘 이곳에 틈을 내서 온 것도, 졸업 논문을 위해 조사차 온 거라고 한다.
학술지와 논문이 많다 보니, 이 시립도서관은 상당히 멋진 자료창고라고.
“조금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외국어 쪽을 하나 추가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나중에 저처럼 논문을 준비할 때도 외국어 자료를 보는 건 정말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꽤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외국어면........”
“에우드가 처음 배우는 거라면 수인어를 추천드려요. 공용어와 어순이 많이 비슷해서,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답니다.”
“트라이벨어는 어려운가요?”
“어렵다- 라고 단정하기보다. 엘프 쪽이 주로 쓰는 언어기에, 그들만의 특이한 억양이나, 어원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거든요.”
그렇게 들어보자, 에우드는 제시카가 두 언어 다 마스터했다는 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론 연금술도 좋은 과목이죠.”
티아나가 대신 들어주고 있던 연금술 책도 본 모양이다.
티아나는 디에스의 시선에 노트와 책을 꼭 안았다.
조금 뒤였다.
“-디에스 아가씨. 슬슬 미팅 시간입니다.”
“어머, 그랬군요. 엘토.”
책장 너머에서 또 한 사람- 정장의 중년 남성이 다가왔다.
정장에 새겨진 문양과 그 정갈한 움직임.
아마 디에스를 보좌하는 집사이리라.
“그럼, 나중에 또 보도록 하죠. 혹시나 아카데미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나 연락을 주세요. 가레스님이, 저희 쪽으로 전서구를 보내주실 거랍니다.”
디에스는 우아하게 인사를 전했다.
엘토라 불린 중년 집사 또한, 디에스와 함께 깔끔한 움직임으로 인사한다.
디에스는 마지막까지 에우드를 싱글벙글 바라봤지만,
티아나가 재빨리 에우드와 디에스의 사이에 서서 그것을 가로막았다.
“재밌는 거, 꼭 찾아내기를 기도할게요. 에우드.”
“......예.”
디에스는 그 말을 끝으로 엘토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고 나서야, 티아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뭔가 낌새가 안 좋은데.”
“티아나 누나?”
“저 사람, 에우드한테 너무 이상하게 관심을 보였어.”
티아나는 에우드에게 다시 연금술 책을 돌려줬다.
그리곤 노트를 쥔 채로, 에우드를 꼭 끌어안는다.
꼬오오옥-
“......왜 그래?”
“.......”
티아나는 에우드에게 대답하지 않고 계속 꼭 끌어안는다.
“계속, 계속 누가 뺏어가려는 거 같아. 에우드는, 나랑 언니 건데........”
“티아나 누나?”
티아나는 한참 동안 꼭 끌어안은 후, 다시 에우드의 손을 꼭 잡는다.
에우드는 들고 있던 두 권의 책이 떨어지지 않도록 바로잡았다.
“언니랑 상의해야겠어! 어서 언니랑 제시카가 있는 쪽으로 가자!”
“아, 응.”
티아나는 에우드를 붙잡고, 성큼성큼 다른 두 사람을 찾기 위해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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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뒤 도서관의 밖.
엘토가 펴준 양산의 아래에서, 특유의 쥘부채를 쥔 디에스는-
“설, 설마 여기서 만날 줄은.......!? 후우욱......! 후우우우.......!!”
“정말 잠깐의 여유로 들어간 것이었는데. 이렇게 볼 줄은 몰랐군요.”
“보고 소리 지를 뻔했어........!”
“잘 참으셨습니다.”
디에스는 부채 아래로 완전히 빨개진 얼굴을 가린다.
그리곤 훅훅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까부터 심장이 계속 뛰고 있던 탓이었다.
그렇게 철창 너머로만, 투구와 가면 너머로만 입맛 다시며 보던 아이였으니 말이다.
그 와중 만져진 게 꽤 자극이 컸나 싶다.
엘토가 들어보니, 완전 공주님처럼 안겨졌다고.
“정말 건강해진 기분이야....... 확실해. 오늘, 내 수명은 늘어났어.”
“거, 의학과 회복마법의 이론을 초월하는 말씀이시군요.”
곧바로 심호흡을 끝낸 디에스는, 엘토에게 기세 좋게 고개를 돌린다.
“엘토.”
“네, 아가씨.”
“방금 그 애와 대화한 덕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나 좀 도와줘.”
의기양양, 정말 엄청난 생각을 떠올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엘토는 이미 그게, 정상적인 생각은 아닌 것을 눈치챘다.
그보다 얼굴이 반짝반짝거리고 있다.
처음으로 그 소년에게 안긴 것에 상당히 고양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엘토로서는 정말 ‘진짜 이 아가씨, 취향 참.......’할 상황이다만.
“저 엘토. 일단은 집사로서의 예의가 있으므로, 한번 들어는 보겠습니다.”
“3년 뒤에 내가 아카데미 교수가 될 수 있도록-”
“-아, 이럴 줄 알았습니다. 역시 이상한 말 하고 있습니다, 이 아가씨.”
“어라?! 엘토, 반응이 너무 안 좋네?! 왜 이해를 못 해?! 이거 진짜 딱 좋은 기회라니까?!”
디에스는 자신의 취향을 전파하려는 소녀처럼 허겁지겁 말했다.
“아니, 이번 해로 졸업하시는데. 그럼 2년 안에 다시 교수직으로 들어가시겠다는 겁니까.......?”
“그래도 자격은 충분해! 어차피 아카데미 졸업은 단순 커리어! 이미 내 성과는 학회에서도 인정받았고! 그리고 내 능력과 우리 가문의 이름이면 전부 해결되고!”
틀린 말은 아니다.
엘토가 기억하길, 과거 데우트 심 메트리도 그런 식으로 교수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를 감당만 할 수 있다면’,
아카데미는 재야의 인재가 교수를 하겠다는 걸 말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딱한 취향의 영애라지만, 디에스는 교수직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취향만 아니면 디에스는 상당히 우수한 귀족 영애다.
오히려 지금 유펠하이넴 본가에서 이 말을 들으면, 적극적으로 동의하리라.
디에스가 차기 당주인 만큼, 경험과 커리어 쌓기는 정말 중요하니까.
디에스의 아버지는, “우리 둘째 딸, 당주로 확정됐다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구나.......!”라며 감동하겠지.
........다 이 뒤틀린 취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저택에서도 디에스의 취향을 아는 건, 엘토를 비롯해서 정말 몇 명 없다.
디에스는 가족들에게도 취향을 잘 숨기니 말이다.
“방금 외국어에 대한 밑밥도 조금 뿌렸으니까! 그쪽 관련으로 교수직을 알아봐야겠어. 후후후. 게다가 앞으로 3년....... 그럼 그 애는 드디어 ‘열세 살’....... 성장기에 완전히 들어서면서, 내가 기다리던 나이까지 딱 하고 맞아!”
디에스는 입맛을 다시며 힘차게 걸었다.
어떻게 아깐 저 표정을 용케 감췄는지, 엘토도 참으로 신기했다.
“-그러니까 엘토도 같이 들어가자. 교수 자격 가지고 있잖아?”
엘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저는 왜 끌어들이십니까........?”
“그럼 나 혼자 또 거기서 낑낑 지내라고?! 내 옆에서 잡일 해줄 사람은 있어야지!”
“........”
아마 엘토는 저택 내부이기만 했어도, 당장 디에스에게 꿀밤을 꽂고 싶었으리라.
“좋아, 오늘 저택에 돌아가면 준비하는 거야! 엘토, 가자! 미팅을 최대한 빨리 끝내겠어!”
“이렇게 건강하면서, 매번 빈혈은 무슨........”
“교수로서 그 애와 접점을 만든 다음에, 자연스럽게 혼담으로 가는 거야! 우헤헤헤!”
딸뻘인 아가씨를 향해, 엘토는 정말 칠칠치 못한 딸을 보듯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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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못생겼으면서도 묘한 매력을 가진 눈....... 으으, 정말 뭔가 당하는 기분이에요.”
“역시 제시카는 이해해 주시는군요.”
몇 시간 뒤, 도서관에서 나오고서 거리를 돌던 중.
저번에 왔던 인형가게에 다시 들어와 봤다.
포에닉스 삼남매가 고른 책들은, 역시 그 이름을 대자 문제없이 빌리는 것이 가능했다.
책을 담은 가방은, 밖에서 호위역을 해주는 헌터들에게 맡겨뒀다.
아까도 도서관 안팎으로 여러 헌터들이 주변을 경계해주고 있었다.
인형가게는 저번과 똑같이, 푸근한 인상의 점장이 가게를 보고 있었다.
아쉽게도 또 그 인형의 제작자는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신작은 그새 2개나 더 만들었는지, 진열대 한곳에 사이좋게 붙어 있었다.
토끼에 이어, 사자와 강아지 모양의 인형.
그리고 여전히 모두 탈력감 넘치는 인형이다.
“........(지긋)”
가게 중앙의 거대 곰인형을, 셀레나는 이번에도 미련을 담아 보고 있다.
점장은 난처한 웃음과 식은땀으로 그 옆에 살짝 다가와 지켜보고 있었다.
“아, 언니 진짜! 지금 그거 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깐!”
“으와-”
티아나는 셀레나를 쭉 잡아당겨 거대 곰 인형에서 떨어트린다.
점장의 진심어린 안도가 소리 없이 울렸다.
“두, 두 개 다 살까요.......? 아니, 그래도 조금 과소비인가요.......”
“돈이 모자란가요?”
“아뇨, 모자란 건 아닌데. 하나하나 미리 절약해야........!”
제시카는 땋은 머리를 붕붕 휘두르며 고민을 거듭한다.
에우드가 사주겠다는 말을 했지만(용돈을 비롯하여 마인 센티피드 소재 몇몇의 현금화로, 에우드의 소지금은 상당했다.), 그건 제시카가 극구 거부했다.
이 이상 교사로서 위엄이 떨어져선 안 된다나.
어젯밤에 끌어안은 것도 지금 와서 생각하니 상당히 부끄러운 모양이다.
에우드도 거기에 따지지 않고, 제시카의 인형 고르기를 쭉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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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스 엘루 유펠하이넴?”
“응, 언니! 난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유펠하이넴 차기 당주님이잖아.”
“.......엥?”
“.......바보 티아나. 까먹었나 보네.”
티아나가 멍해진 것에, 셀레나가 살짝 한숨 쉬었다.
셀레나가 이어서 유펠하이넴 당주는 반년 전에 결정됐다던가.
그 시기에 부모님들이 멀리 사교회에 갔다 왔다던가 말하자-
“으와아...... 실수했다....... ”
티아나도 그제야 떠오른 모양이다.
“이따가 에우드랑 같이, 아빠한테 만났다고 꼭 보고해야 해?”
“으, 응. 알겠어.”
에우드는 당연히 모를 테니 어쩔 수 없다 치고.
원래라면 티아나가 먼저 그것을 기억하고, 거기에 맞게 더욱 예를 표해야 했다.
다만 티아나도 변명할 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디에스가 에우드에게 보내는 눈빛이 너무 끈적했기에,
그 눈빛에서 에우드를 보호하느라 차마 기억을 되새기지 못한 것이다.
셀레나는 가게 한쪽 의자에 폴싹 앉았다.
손에는 어느새 사용인들이 챙겨준 비스킷 주머니가 쥐어져 있다.
티아나를 나무라면서도, 그새 비스킷을 꺼내 입에 넣어준다.
“......그래도. 위험하다는 건 인정해.”
“(오물오물)- 구, 구러치?!(꿀꺽!)”
“우리 막내는 너무 페로몬을 팍팍 뿌리고 다녀.......”
“그렇지?!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우리 둘 다, 에우드의 누나로서 조금 자제를 시킬 필요가 있어.”
“아카데미에 가면 더 심해질지도 몰라.”
셀레나도 티아나의 이야기를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페리아도.”
“맞아, 언니. 페리아 위험하지. ......또 플로라. 걔는 아예 처음부터 노렸지. 작정하고 붙었어.”
“제시카.(소근소근)”
“응, 제시카도 솔직히 위험해.(소근소근)”
포에닉스의 첫째와 둘째 사이에 묘한 비상이 걸려간다.
백금색 머리를 서로 찰랑이며 “으으으음.......”이라는 목소리로 고심을 거듭한다.
그때였다.
딸랑-!
“오호호, 점장님! ‘실비아’ 있나요?!”
문이 갑작스레 열리고, 기세 좋은 여자아이의 목소리-
아니,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인즈 상회에서 맡긴 물건을 받으러 왔답니다~!”
푸른 빛의 양 갈래머리 소녀.
오호호 웃음을 울리며 들어온 건, 플로라였다.
“플로라?!”
“플로라네.”
“어머?! 티아나, 셀레나?! 어떻게 여기에 다 계시는 거죠?! 아니, 아니죠, 그렇다면 두 분만이 아니라!!”
티아나와 셀레나를 본 플로라의 눈이 휘둥그레.
그리곤 곧 가게 안에 있는 에우드를 발견한다.
“에우드님-!”
“플로라?!”
플로라는 단숨에 에우드에게 달려가 포옹을 했다.
.......두 누나의 표정이 한순간에 험악해졌다.
[작품후기]연참입니..... 쿠헤헤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