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회
준비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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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너네는 아직 다 핏덩이 같은 꼬맹이들이다. 벌써 하기 싫네, 니가 하네, 마네, 그런 말은 안 해도 된다.”
리퀴아는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아카데미에서 충분히 공부하고. 귀족의 정치질도 이해해 가고. 그다음에 결정해도 된다. 가레스도 그렇게 서두르진 않을 거다. 아직 쟁쟁하기도 하니, 니들 아빠는 앞으로 20년은 무슨, 30년은 더 현역으로 굴러도 무리 없다. 라그나릴이나 메트리가 특이하게 빠른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리퀴아의 말에, 티아나도 셀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다 보면 여러 생각이 새로 날 거다. 나도 그렇고, 다들 그랬다. 처음이랑 많이 생각도 달라지고.......”
리퀴아는 과거를 되새기고 있던 걸까. 조금 추억에 젖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카밀라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조안을 향한 첫사랑’만큼은 끝까지 안 달라지셨죠, 리퀴아님.”
“-커흡!”
리퀴아는 막 마시려던 음료를 쏟을 뻔했다.
“카, 카밀라. 니 그거 누가 말하디?”
“당연히 아버지죠?”
“펠리노어 그 자슥.........”
리퀴아는 부끄러움과 함께, 나중에 갚아주겠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5년 전에 저희 작은 이모랑 혼담 나온 것도, 그것 때문에 거절한 거 아닌가요?”
“그건 또 왜 얘기가 나오나!?”
“작은 이모, 리퀴아님 정말로 존경했는데. 지금도 좋아하고 계신다고요.”
“““혼담?!”””
무소속 황금의 기사인 리퀴아가 라그나릴과 혼담이 있었다니.
만약 성사되었다면, 지금 세력도는 여러 의미로 뒤집혔을 것이다.
“근데 조안이 찰랑찰랑 아저씨의 첫사랑?! 잠, 잠깐만. 조안이 나이가......? 아, 아저씨는, 으으, 나이 차가.......!”
“.......듣고 싶어.”
“우, 우와아아아-”
티아나, 셀레나, 페리아, 세 명 다 리퀴아를 향해 기대를 가득 표했다.
“뭐, 뭘 그리 보나?! 애들 들을 얘기 아니다!”
““우우우우!!””
셀레나와 티아나의 야유에 리퀴아가 목소리를 높여버렸다.
아가씨들 옆에선 페리아가 소극적으로 “우, 우우우......! 듣, 듣고싶어요......”라며 야유에 가담해본다.
사용인 총괄자와 황금의 기사 사이의 스캔들이라니.
이건 페리아도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 와중 제시카는.........
“흐에에에.......”
살짝 반응이 있다.
술기운에 헤까닥인 상태인데, 아무래도 그새 리퀴아의 연애담이 귀에 들린 듯하다.
“제시카? 일어났어요?”
“-나이차이나는커프으을.........”
“........?”
일어나지는 않고 중얼중얼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취기는 여전한지 다시 잠들어간다.
안 되겠다 싶어, 에우드는 잠시 이대로 놔두자 싶었다.
“내 안 말할 거다, 니들 기대하는 눈 좀 하지 마라?!”
리퀴아는 아이들의 기대하는 시선에서 완전히 눈을 피해버렸다.
“어, 어흠.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직은 조금 부들거리는 손으로, 리퀴아는 컵에 다시 손을 댔다.
“아카데미에선 배울 게 넘쳐난다. 막상 가면, 의외로 생각도 못 했던 거에 눈이 갈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좋아하는 것을 더욱더 밀도 있게 공부할 수도 있고. 배운다는 건 그런 거다.”
“.......응?”
티아나는 리퀴아의 말이 의아하게 들렸다.
“잠깐, 왠지 다 경험한 사람이 하는 말처럼 들리는 데.......? 어? 찰랑찰랑 아저씨도 혹시 아카데미 출신이었어?!”
“어, 맞다. ........응? 내 말 안 했나?”
“안 했지?!”
“험악한 아저씨, 아무 말 안 했어.”
“카하하하, 벌써 20년 정도 전 이야기다!”
리퀴아 또한 아카데미 출신.
여기서 그걸 알고 있던 사람은 카밀라뿐이었다.
제시카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잠들었으니 말이다.
들어보니 과거 가레스도.
심지어 그 메트리의 당주인 데우트도 아카데미 출신이었다고.
‘크로나스’라는 성기사도 아카데미 출신이라 했으니, 황금의 기사 중 네 명이 아카데미에 다녔던 거다.
다만 데우트의 경우, 나이 차이가 있기에 동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데우트는 졸업하고 얼마 뒤에, 여러 경험을 쌓겠다고 꽤 오래 아카데미에서 교수역을 했다. 그런 도중 내 듣던 과목의 교수도 맡았었다.”
새로이 듣는 옛날이야기를, 아이들 모두 신기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 새끼가 나한테 F를 줬다.........”
“““엑.”””
어쩐지 리퀴아가 데우트를 싫어할 만하다 싶었다.
“뭐, F는 됐다 치고. 또 가레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적이 좋았지. 여자든 남자든, 모두한테 인기도 많았고.”
“아빠가?! 그건 좀 의외야........”
“티아나, 니는 니 아빠 좀 팍팍 믿어라. 니 아빠 억울해서 또 울겠다.”
티아나 11세, 오늘도 아빠의 업적을 살짝 의심해본다.
“그리고 크로나스는 나 졸업반 들어갔을 때, 열두 살 나이로 들어왔는데, 고놈은 처음엔 공부하고 검밖에 몰랐다. 애초부터 성당교회에 들어간다고 온 거였으니까.”
12세에 입학이라면, 라다루스가 하려는 것처럼 나이 제한을 딱 맞춘 입학이다.
어쨌든 황금의 기사 다섯 중 넷이(한 명은 교수도 겸했지만) 동창이라는 건, 정말 의외의 정보였다.
황금의 기사 중 마지막 한 명-
현 10대 귀족 그리피너의 당주, 솔렌이라는 인물만은 다른 기관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가서 잘 배우라는 얘기다. 거긴 ‘다른 종족’도 의외로 많고, 또 문화도 다양하다. 사람은, 결국 부대끼면 생각이 달라진다. 또는- 확고해질 수 있고. 우리도 뭐가 됐든, 배우고 나서 다들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다른 종족.
수인. 소인. 엘프. 등-
유그라시아 내외의 여러 이종족들 또한 초청제도를 통해 들어온다고 한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방법은 시험, 추천, 초청- 이렇게 세 가지다.
자국의 소수 이종족 부족이나, 해외의 이종족 부족.
혹은 아예 국가의 기반인 종족이 완전히 다른 해외 국가 등.
아카데미에서는 그런 세력과 국가에서 매년 일정 인원들을 초청한다고.
그 외에도 해외의 나이 어린 유명 인사들이나, 인재 또한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선 해외 왕족까지 입학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종족이나 나라의 생활관념이 많이 부대낀다고 한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그로 인한 분쟁도 자주 있다는 모양이다.
”뭐, 일단 내가 할 말은........ 그런 여러 사람이 모이기에, 반대로 꺼리던 게 생각 외로 친근하게 느껴질 기회도 있다는 거다.”
리퀴아는 티아나를 살짝 보면서 말했다.
티아나는 그게 무슨 의도인지 안 걸까, 딴청을 피우며 눈을 돌린다.
“발견이라는 게 꼭 방구석에만 박힌다고 되는 건 아니다. 몸도 가끔 팍팍 움직여주고. 목검도 한 번 쥐어보고 해라. 안 그러나, 카밀라.”
“연금술이든 마법이든, 언제나 자극이 중요하죠.”
리퀴아와 카밀라가 빙긋거리면서 티아나를 본다.
“........알, 알겠어! 알겠다고! 알겠습니다!”
결국 티아나도 입을 살짝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평소 잘 쓰지 않는 존댓말까지 입에 담았다.
리퀴아는 흡족히 웃은 후 셀레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셀레나 니도 좀 더 다른 것에도 관심을 넓혀보고. 집중력이 정말 좋으니까 말이다. 가레스한테 들어보니, 역사도 좋아한다고 했나? 그건 참 좋은 흥미다. 그런 식으로, 좀 더 네가 재밌을 만한 걸 찾아봐라.”
“응. 알겠어.”
셀레나는 그 말에 딱히 반발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는 말임을 알기에, 리퀴아에게 바로 수긍한다.
“뭐, 니는 이미 실력도, 목표도 확고해가꼬, 이 이상 크게 말할 건 없을 거 같다.”
무심한 척하지만 의외로 야무진 장녀다.
검술 재능도 매우 뛰어나고. 리퀴아도 이 소녀에게, 무언가 더 말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우드.”
“.......?”
리퀴아와 에우드는 잠시 눈을 마주쳤다.
“혹시 아카데미에 가서- 아니, 그냥 니 자신이 하고 싶은 거, 있나?”
“하고 싶은 거요........?”
누나들과는 달리, 이번엔 리퀴아가 물어보는 쪽이었다.
에우드는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걸 느꼈다.
다만-
에우드는 바로 답하진 못했다.
지금은 이렇게 지내고 있지만, 실제론 어디까지나 ‘두 누나의 방패역’으로 시작한 것이니 말이다.
아카데미에 간다는 목적은 있어도, 진짜 배우고 싶은 건 잘 안 떠올랐다.
에우드는 잠시 그 말에 고민을 거듭했다.
표정을 찌푸리고, 무언가의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려본다.
그러자 리퀴아가 손사래를 쳤다.
“야야, 괜찮다. 바로 안 정해도 된다.”
순식간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에우드를 리퀴아가 말려간다.
“지금 답을 내리라는 게 아니라, 생각만 좀 미리 해보라는 거다.”
“아........”
“너도 목표가 있는 게, 또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리퀴아는 에우드를 보며 난감하게, 한편으론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셀레나하고 티아나. 둘 다 3년간 막내 많이 이끌어줘라.”
“응.”
“으, 응!!”
“페리아도, 뒤에서 잘 지원해주고.”
“넵!”
리퀴아의 말에 두 누나와 페리아 모두 착실하게 대답했다.
티아나와 셀레나는, 에우드를 양쪽에서 꼭 잡아 안심시키려는 듯 밀착한다.
맛있게 식사를 한 덕에, 셋 다 몸에 열이 따땃하게 올라온다.
그로부터 좀 더 이야기를 나누자, 시간은 어느새 마차가 올 시간이 되었다.
헤기는 아까 가게 위치를 들었는지, 근처에 마차를 세워두고 가게 앞까지 마중을 왔다.
리퀴아는 어느새 계산을 마치고서 돌아왔다.
“제시카 선생님, 진짜 많이 마신거였구만........”
계산 내역에는 고기값 보다 술값이 좀 더 나왔다고 한다.
리퀴아는 빈 술잔들을 보며 다시 한번 전율했다.
그 와중 리퀴아의 한 손에는 큰 종이봉투가 있었다.
야간 근무하는 사용인들에게 줄 야식이라고.
곧 다가온 헤기에게, “다들 뭘 좋아할지 몰라서, 파는 거 걍 대충 사봤다.”라며 그 봉투를 건넸다. 헤기는 송구스럽게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술값의 주인공, 제시카의 경우-
“흐가아아아.......”
“제시카씨, 엄청 취했군요. 매디가 있었으면 어떻게든 말렸을 텐데........”
“아하하하........”
완전히 술기운으로 골아떨어졌다.
결국, 헤기와 에우드가 함께 제시카를 마차까지 실어갔다.
이때 리퀴아는 의외로 돕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나 같은 아저씨가 다 큰 처자 막 만지면 안 된다!”
.......라나.
에우드와 헤기, 둘이서도 충분했으니 상관은 없었다만.
이후 돌아가는 마차에선 다들 배가 부른 덕일까.
에우드를 제외한 아이들은 모두, 저택에 도착했을 땐 어느새 솔솔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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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에 도착한 것이 10시 정도.
셀레나와 티아나는 비몽사몽 하는 사이, 사용인들이 세면을 시켜주러 욕실로 데려갔다.
카밀라 또한 아직 실험할 것도 남아있으니, 티아나 쪽에 함께 향하기로 했다.
페리아는 리퀴아가 숙소로 데려다 주기 위해 업어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남은 제시카는 에우드가 홀로 방까지 옮겼다.
사실 사용인들이 들고 가겠다곤 했다.
하지만 힘 빠진 성인의 몸은 남녀 상관없이 꽤 무겁다.
게다가 지금 온 사용인들은 모두 메이드들.
괜히 메이드들이 제시카를 업고 가다가 다치는 게, 에우드에겐 더 걱정이었다.
반면에 에우드는, 제시카를 들고 1층에서 5층까지 가는 데에 전혀 문제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기로 한 것이다.
메이드들의 걱정을 일축하고, 에우드는 순식간에 5층으로 향했다. 키 때문에 뒤뚱뒤뚱하지만, 그래도 능숙히 들고 올라간다.
문앞에 도착하자, 다행히 방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그대로 제시카를 안은 채, 에우드는 요령껏 문을 열었다.
들어오자 보이는 것은, 어떻게든 꾸미려는 시도가 보이는 방.
구색갖추기 인형이라던가. 또 꽃이라던가, 향수라던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래도 그런 것들보다, 수많은 수업 자료들이 더 눈에 띄었다.
물론 에우드는 제시카의 방을 자주 찾아오긴 했다.
매일 가방을 들기 위해 문 앞에 오고,
또 저번 무덤 동굴에 가기 전에도 들어온 적 있었으니 말이다.
에우드는 제시카를 안은 채로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곳곳에 제시카의 옷가지나 피부관리용 물건들이 정돈되지 않고 퍼져있었다.
발이 치이는 곳에도 옷가지가 있었으므로, 실수로 밟지 않게 조심한다.
곧 침대에 가까이 가 제시카를 조심스레 눕힌 후-
“.......어쩐지 도중부터 숨소리가 달라졌다 싶었는데. 이미 일어났죠, 제시카?”
에우드는 방금 막 알아차린 것을 입에 담았다.
“........으으으으.”
쭉 자는 척 해보려 했던 제시카의 표정이 결국 흐트러졌다.
입꼬리가 부들부들하더니, 완전히 부끄러움으로 꽉 차간다.
“일어났으면 말 좀 해주시지.”
“그, 그게.......! 그게........!”
제시카는 아직 알딸딸한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며 몸부림쳤다.
“부, 부끄러워서 어떻게 말해요, 진짜........!!”
제시카가 말하길, 저택 2층 계단쯤부터 정신이 들었다고.
도중 에우드가 안고 있는 걸 알고, 죽어라 자는 척했다고 한다.
제시카는 침대의 베개를 끌어안더니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으으으- 으앗?!”
“제시카?”
“두통이 갑자기........”
“.........”
그 와중에 또 어질어질한 모양이다.
제시카는 부끄러움과 두통으로 눈을 찌푸렸다.
[작품후기]누나. 오네쇼타. 또래친구.
셋 중 무엇이 더 대중적일까요......?
쓰면서 자주 상상력이 활성화되는데(히토미 켜지는데),
쿨피스는 꾹 참고 있답니다.
코멘트로 주신 의문에 답을 드리자면,
조금 서술을 피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우선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과거의 탐사대는 심부까지 들어갔고, 사망자가 상당했다는 것.
그리고 제시카가 말해주는 7대던전은, 어디까지나 교사로서 아는 이론의 범위라는 것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