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머더 메이지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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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한 중년남성은 이 인형가게의 점장이라 한다.
그래도 역시 포에닉스가 관리하는 도시.
포에닉스 본가에 두 명의 딸이 있다는 건 점장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에우드를 보자 순간 어리둥절 한다.
그래도 에우드의 옷에도 포에닉스 문양이 있었다. 곧바로 같은 일행이라 판단을 내린다.
“아직 에우드 도련님에 대해선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니까요.”
엘리리가 몸을 살짝 낮춰 에우드에게 귓속말로 전해줬다.
아마 점장 쪽에선 에우드를 포에닉스 분가의 친척으로 여긴 것 같다고.
맞는 말은 아니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우드는 ‘홀라이트 포에닉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홀라이트는 포에닉스 분가의 성.
즉 서류와 절차상으론 먼 분가의 조카로 되어있으니 말이다. 점장의 판단은 적절했다.
추후 있을 사교회에서 에우드의 존재가 알려지면, 그때부터 점점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퍼질 것이라 한다.
에우드로서는 딱히 퍼지든 안 퍼지든 상관없는 이야기다만.
“에우드, 에우드. 근데 왜 인형가게였어? 인형 갖고 싶었던 거야?”
“아니, 그게.”
“응?”
자신의 옷소매를 꼭꼭 잡아당기는 티아나의 말에 에우드는 잠시 머뭇거렸다.
“예전에 인형 얘기를 조금 들은 게 있어서. 그냥........”
드림랜드 때의 일이다 보니 에우드는 여기서 말하기가 어색했다.
티아나는 방금 발견한 주머니 많은 인형을 이미 꼭 안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는 건 거의 확정인 거 같다.
마음에 들었나 보다. 소중히 해줄 테지.
........그래도 시약 홀더가 되는 운명 또한 확정이겠다만.
에우드가 이 인형을 다음번에 만날 때면, 민트향과 약품 냄새를 물씬 풍기리라.
“난 역시 이 곰.”
“언니, 포기하라고.”
“.........오늘은 용돈도 많이 받았으니까. 충분히 살 수 있을 거야.”
“이 인형이 끝이 뭔지 아니까 말리는 거야!”
셀레나와 티아나가 다시 티격태격한다.
사실 에우드는 이 거대 곰 인형을 조금 기시감 넘치게 보고 있었다.
큰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그저 드림랜드 시절 쓰러트렸던 몬스터와 정말 닮아서일 뿐.
크레센트 베어- 정확히는, ‘크레센트 렉스 베어’.
렉스 베어라는 몬스터의 희귀한 아종이었는데, 에우드가 1년 전에 싸운 적이 있었다.
거대한 크기에 털가죽이 매우 두꺼운 몬스터다.
그 발톱에 처음 가격당했을 땐, 에우드도 뼈가 엄청나게 부러져 한참을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거대 곰 인형은 말만 곰이지 거의 그 몬스터와 비슷했다.
인형인 이상 귀여운 건 확실했지만, 곳곳에 상당히 정교한 점들이 많다.
반달무늬부터 시작해서 발톱의 색이나 특이하게 뾰족한 귀 등등.
마치 직접 본 사람이 만든 것 같았다.
그 기시감을 품고 있던 에우드가 점장을 보며 물었다.
“.........혹시 크레센트 베어를 직접 본 다음에 만드신 건가요?”
“오, 알아보시는 겁니까!”
에우드가 다소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걸 말하자, 점장 쪽에서 놀란 듯 반응했다.
“실은 제가 디자인한 건 아니지만....... 반년 전부터 조수로 들어온 아이가 이전에 봤던 몬스터를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죠. 디자인은 그 아이가, 실 작업은 제 쪽이 말이죠.”
그 조수 아이는 잠깐 다른 점원과 일을 위해 나갔다고.
이 인형 가게에선 출장을 통해 인형을 고쳐주는 것도 겸업하고 있다고 한다.
“하긴요. 크레센트 렉스는 희귀한 몬스터니까요, 저희 팀도 벌써 본지가 1년은 더 됐네요.”
엘리리의 말에 점장이 고개를 끄덕끄덕.
현직 헌터인 엘리리가 그리 말할 정도다. 꽤 드물긴 하나 보다.
에우드도 과거 크레센트 베어와 붙기 직전, ‘일주일 전 포획된 희귀한 몬스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 차라리 에우드가 사! 언니한테는 절대 안 돼!”
멍한 표정의 셀레나를 티아나가 크레센트 베어 인형에게서 떨어트려 간다.
마침내 셀레나의 표정으로 불만이 차오른다. 어제 에우드가 시합을 받지 않으려 했을 때의 표정이었다. 잘못하다간 또 싸우리라.
그렇다고 해서 에우드가 사긴 좀 그랬다.
차분해 보이는 가게이지만 인형들은 각각이 상당한 가격.
티아나가 꼭 안은 인형만 해도 에우드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격이다.
그럼 분명, 이 눈앞의 거대 곰 인형은 그에 몇십 배는 비싸리라.
용돈을 많이 받았다 해도 차마 살 엄두가 안 난다. 셀레나와 티아나의 금전 감각으론 푼돈일 수도 있겠다만.
“하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정말 다행히도 가게 장식용 물건이었다.
아무래도 이 상가에선 꽤 유명한 인형인 듯하다. 가게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다고.
점장의 말에 티아나와 에우드는 안도를, 셀레나는 뺨을 꼭꼭 부풀린다.
그런 도중, 에우드는 구석에서 어떤 인형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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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 인형은 둘.
티아나가 마음에 꼭 든 인형 하나.(점장의 말로는, 과거 여행 중 들은 어떤 동화의 모델이라고.) 그리고-
“다른 귀여운 인형도 많았는데.”
에우드가 마지막에 발견한, 큰 귀의 토끼 인형이다.
축 처진 눈이 인상적이다. 그 눈이 엄청 마음에 드는 건 아닌지, 티아나가 불평하듯 말했다.
“왜 그거 골랐어?”
“......닮아서.”
“닮았어?”
에우드는 잠시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엘리리는 셀레나와 짧은 잡담 중이었다.
“드림랜드에서 본 인형이랑 닮았어.”
“아.”
에우드의 작은 목소리. 이해력이 빠른 티아나도 거기에 짧게 반응했다.
엘리리는 에우드가 드림랜드 출신인 걸 모르니 말이다.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말을 꺼내는 건 조심해야 한다.
“........거기에도 인형이 있었어?”
“있었다기보다는, 아는 애가 만들었어.”
그렇다. 만들었었다.
VIP들이 버리고 간 손수건이라던가, 더는 돌아오지 않는 이의 물건을 겨우 모아서.
그런 쪼가리를 이용해 인형을 만들던 아이가 있었다.
인형이라 해서 대단한 건 아니었다.
몸을 씻으라 준 소량의 물로 천을 세척한 뒤, 그걸 토대로 여러 재료를 욱여넣은 것뿐.
누더기에 가까운 형태였다고 해야겠지.
그래도 그런 열악한 환경을 감안해도 대단한 결과물이었다.
“아는 애?”
“동생 같은 아이. 알고 지낸 건 1년 전까지지만.”
“설, 설마.”
“아냐아냐, 다행히 좋은 사람들이 데려갔다고 했어.”
그 말에 티아나가 살짝 안도한다.
그 아이를 어느 부유층의 노부부가 샀다는 것까진 에우드도 들었었다.
노부부 쪽에선 입양, 혹은 말벗이 되어줄 아이를 찾다가 드림랜드까지 왔었다나.
이후 그 애는 바로 드림랜드를 나갔기에 에우드도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애가 떠나고서 1년 동안은 또 계속 몬스터와 싸웠는걸.
그렇게 싸우다, 결국 이곳까지 왔지만.
“크레센트 베어........”
셀레나는 아직 그 곰 인형(샌드백)이 아른아른거리나 보다.
그걸 들은 티아나가 바로 새침하게 말한다.
“알겠으니까, 알겠으니까. 언니가 가고 싶은 데에 먼저 가도 되니까. 그니까 이제 좀 포기해!”
티아나의 말에 셀레나가 번쩍.
“그럼........ 이참에 네 장비를 살래.”
“엥.”
셀레나가 즉시 대로 위를 뛰기 시작했다.
“티아나 최근 운동부족이야.”
“아냐! 알베르토랑 가끔 운동한단 말이야! 그보다 그 이상 하기 싫고!”
예기치 못한 선물이 온다는 사실에 티아나가 강력히 저항한다.
분명 검술용 장비같은 걸 받았다간, 다음 단련 때 자신도 불릴 거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검술이든 연금술이든 결국 마지막에 가면 다 체력이야. 다음 연습 때는 너도 오게 할 거야.”
그래도 이미 행동을 결정한 셀레나의 속도엔 따라가질 못한다.
“싫어! 시러시러시러!! 이러다간 알베르토가 ‘허허, 아가씨 드디어 할 맘이 생겼습니까.’라면서 기대해버린다고!”
포에닉스치고 운동엔 쥐약인 티아나는 언니에게 헛된 저항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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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그 토끼 인형 팔렸어요?!”
한 시간 전까지 포에닉스의 아이들이 있던 인형 가게.
막 돌아온 점원 여자 아이- ‘실비아’는 자기 작품이 놓여 있었을 전시장 보며 놀랐다.
나이는 에우드나 티아나와 거의 비슷한 또래였을까. 어린데도 꽤 행동이 야무진 아이였다.
“둘 다 수고했다. 사실, 아까 포에닉스의 따님들이 왔다 갔었거든.”
“포에닉스!”
“와........ 도시 귀족님들이 웬일로 왔대?”
실비아의 뒤를 따라 들어온 남성 점원- 점장의 아들인 ‘에멕크’가 다소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보통은 10대 귀족으로 불리는 포에닉스지만, 관리 도시인 포에닉시안 내에선 ‘도시 귀족님’이라는 말로 불릴 때가 많았다.
“허허허,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그리고 누구든 손님이면 좋은 거지. 넌 뭔 말을 그렇게 하냐. 이 삐딱한 자식.”
1층의 판매대 앞의 점장이 바느질을 하며, 에멕크에게 잔소리를 전했다.
지금 점장이 만드는 것은 티아나가 가져간 인형의 새 제품이었다. 점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섬세한 바느질을 이어간다.
“그럼 포에닉스 아가씨들이 사 간 거예요?! 그거 안 팔린 지가 벌써 한 달이라 인기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취향이 듬뿍 들어간 인형이다 보니, 실비아는 솔직히 팔리는 건 포기하고 있었다. 조형 능력은 좋은데 취향은 한정적인 게 이 어린 재봉사 소녀의 단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가씨들이랑 함께 있던 도련님이 사 갔지.”
“도련님?”
“응? 포에닉스에 도련님이 있었어? 아가씨 둘이 끝 아니었나?”
“친척 아이지 않나 싶다만. 어쩌면 입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점장은 “귀족들은 별별 일이 다 일어나니까.”라며 말했다.
“하긴, 예전엔 엄청 흉흉한 일도 있었지. 그때 분가에서 애들 입양해온 귀족들도 많았다고 했나.”
“‘머더 메이지’........ 였나요.”
실비아는 그때 완전히 갓난아기였기에 그 이름의 위압을 실감하진 못했다.
그래도 이곳 상가에 와 일을 해가며, 얼마나 흉악범이었는지는 드문드문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아까 인형 고치러 간 ‘육화 상단’에서 들은 얘긴데.”
에멕크는 인형정비용 도구상자를 가져오며 말했다.
“다른 도시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나 봐. 그것도 그때랑 비슷하게.”
“정말이냐?”
깜짝 놀란 점장의 되물음에, 실비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카스 상회의 회장이 살해되었다나. 낌새가 조금 이상하니까, 그쪽 상단주님이 조심하래.”
“흐음........”
점장은 잠시 만들던 인형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머더 메이지일리는 없겠지만......... 에멕크. 일단 당분간은 외출은 자제해라.”
“앗. 에이, 말 잘 못 꺼냈네. ........내일 데이트 약속 있는데.”
“혹시나 모르는 일이니까. .........아니, 네가? 정말? 누구랑?”
“그거까지 알아서 뭐하게!”
“그럼 왜 들으란 듯이 말하는 거냐!”
에멕크의 투정에 점장 또한 벌떡 일어나 말싸움.
이후 점장에게 헤드락을 당하고서야 에멕크는, “아, 알았어!! 말할 테니까! 단풍 여관의 딸! 루코! 루코야, 루코!”라며 겨우 이실직고한다.
“맞아, 에멕크 같은 녀석보다도 얘, 실비아 네가 조심해야지.”
“나 같은 녀석보다라니?! 아버지 맞아?!”
에멕크에게로의 헤드락을 이어가며 점장이 실비아에게 걱정을 표했다.
“에이, 다른 도시 살인사건이잖아요. 설마 여기 포에닉시안까지 일이 있겠어요.”
“넌 꼬마애가 너무 겁이 없다. 그래도 네 할아버지- ‘벨브 옹’이 걱정할 거니까, 당분간은 조심해서 다녀라. 돌아갈 때는 에멕크 네가 계속 데려다주고.”
“알겠으니까! 다 알겠으니까, 아버지! 이거 놓고 말해!! 켁!!”
다급히 대답하는 에멕크가, 점장의 등을 팍팍 치며 항복을 소리친다.
실비아는 언제나 있는 부자의 장단을 슬쩍 뒤로 넘기며, 조용히 자신의 물건을 정리해갔다. 그리고 한 시간 전까지 계속 있었을 인형의 자리를 작은 손으로 매만졌다.
‘근데 내가 생각하긴 그렇지만 참 특이한 취향이네.’
1년 전까지 함께 지냈던 남자아이를 떠올리며, 실비아는 혼잣말했다.
“정말, 그 오빠 같은 사람이 또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