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머더 메이지 014.
●
포에닉스 저택에서부터 쭉 이어져 가는 가도.
그 가도를 지나, 마차는 시가지로 점차 다가간다.
포에닉스 가문이 관리하고 있는 유그라시아의 대도시, ‘포에닉시안’.
벽돌과 목재의 건물들로 가득 이뤄진, 정말 풍족한 거리였다.
몇 주 전에 마차에 실려 올 땐 단편적으로밖에 보지 못한 에우드다.
때문에 마차의 창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아름다움엔 연거푸 감탄을 표했다.
“어때! 포에닉시안은 정말 아름답지!?”
창문 쪽으로 손을 쭉 펼쳐, 한껏 자랑을 표하는 티아나.
에우드도 거기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동의한다.
티아나는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자, 제 일인 것 마냥 빙긋 웃음을 띠었다.
새로이 온 동생이 자신들 가문의 도시에 놀라니, 티아나도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 것이다.
티아나의 옆에서 셀레나는 어느새 비스킷을 먹고 있었다.
셀레나의 합류를 들었던 저택의 메이드가 챙겨준 것이었다.
메이드들 사이에선 셀레나의 먹성을 알기에 외출용 휴대식을 항상 준비해놓는다고.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먹지만 정작 셀레나는 전혀 살이 찌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에 어울리지 않는 단련된 몸이니 말이다.
그 모든 게 검을 휘두르는 데 열량을 다 사용하기 때문이겠지.
사실 셀레나가 먹는 걸 좋아하는 건 그 나름의 에너지 공급이라 할 수 있겠다.
운동량이 매우 많다 보니 그만큼 요구하는 식사량이 많은 거다.
실제로 저녁 식사 때도 보면, 셀레나는 티아나와는 식사량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역으로 에우드는 셋 중 가장 적게 먹는 쪽이었다.
알베르토와의 수업으로 인해 운동량은 에우드도 많긴 하다. 그러나 수년간 궁핍하게 먹은 탓인지 에우드의 뱃속은 꽤 줄어들어 있었다.
“언니, 혼자만 먹지 말고 에우드도 좀 챙겨 줘! 항상- 우굽.”
티아나가 뭐라 하자, 셀레나는 비스킷을 티아나의 입에 쏙 집어넣었다.
잔소리를 사전차단하는 행동이다.
그리곤 곧바로 에우드의 입에도 쏙.
“아하하, 세 분 다 정말- 어라, 저까지인가요?!”
호위를 위해 함께 탄 엘리리에게도 준다.
마차 안으로 한동안 뽀샥뽀샥 소리가 울렸다.
셀레나는 어제 식사 이후에도 에우드에게 대결을 요구했다.
단순히 패배 때문에 시합을 요구했다기보다는, 정말로 더 싸우고 싶었던 것 같았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찾은 아이 같았다. 물론 에우드는 살면서 장난감이란 걸 손에 쥐어본 적은 없었다만.
다만 에우드도 티아나와의 외출 약속이 있으므로, 밤새어가며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보다 셀레나의 실력이 정말로 뛰어나기에 에우드도 연전을 치르기엔 부담이 크다.
때문에 에우드는, 거기서 낮에 있던 일을 떠올리며 셀레나를 설득했다.
(“내일 티아나 누나의 외출....... 그거 같이 와주시면 돌아와서 바로 대결해드릴게요. 괜, 괜찮을까요?”)
셀레나의 동행거부에 티아나가 삐지듯 반응했었으니 말이다.
그러자 셀레나는 몇 초 정도 고민을 거듭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보아하니, 당장이라도 대련하곤 싶었지만 아무래도 동생의 이름에 승낙을 한 것 같았다.
물론 또 한편으론 내일 외출이 ‘검에 관련되어버렸으니’ 때문이기도 할 테고.
티아나는 셀레나에게 그때 상황에 대해 듣자, “흐, 흐응....... 그, 그랬어?”라며 에우드를 힐끗힐끗 봤다.
어쨌든 출발 직전만 해도 티아나가 셀레나에게 삐진 듯 툴툴댔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둘이서 사이좋게 투닥거린다.
조금 뒤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포에닉스의 마부가 문을 열어주자 티아나와 셀레나가 폴짝 뛰어내린다.
에우드도 잠깐 머뭇거리다가 함께 폴짝 뛴다.
도착한 곳은 포에닉시안의 중앙 광장.
일반적인 도시에서도 몇 없는 높은 건물들이 곳곳에 보였다.
수많은 벽돌로 포장된 도보는, 많은 사람들과 마차가 오가고 있다.
그리고 대형 도보를 좌우로, 여러 상단이나 개개인의 상점이 많이 보였다.
이제 막 정오를 넘으려는 시간.
이 포에닉시안의 거리에선 벌써 여러 경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처음 저택으로 끌려올 땐 에우드도 잘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 큰 도시였다.
가레스의 말에 따르면 포에닉스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도시’.
즉, 이것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인 도시가 아직 넷이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도시들은 대체 얼마나 거대하다는 건가.
지금 에우드 눈에 보이는 것조차도 포에닉시안 내에선 극히 일부분일 테고.
세상이 지하투기장에 한정되어있던 에우드는, 차마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 살면서 처음 느끼는 거대함에 대한 경외심이었으리라.
엘리리는 포에닉스의 마부와 대화를 한 후, 다시 세 남매의 쪽으로 왔다.
마차는 곧바로 대로변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추후 시간이 되면 다시 데리러 온다고 한다. 적어도 저녁 직전까지는 이곳에서 자유로이 보내면 된다고.
“그럼 아가씨들, 도련님, 어디로 먼저 가볼까요? 티아나님은 계획하신 순서가 있으신가요?”
엘리리의 말에, 티아나는 두 눈을 감으며 고민을 표했다.
“으음, 시약도 약초도, 그리고 기구도 추가로 필요하니까........ 3번가로 먼저 가는 게 나은지, 종합시장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아무래도 살 것이 곳곳에 분포되어있는 듯하다. 티아나는 그 이동 순서를 머릿속으로 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셀레나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오른손으론 광장을 둘러보며 “와.......”하고 감탄하던 에우드를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고민 오래 걸리면 내가 원하는 데부터 갈래. 가자, 에우드.”
“이 언니가 진짜!! 에우드는 또 왜 끌고 가는 거야!! 그리고 솔직히 처음엔 나한테 어울려줘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나가자고 한 건데!”
“그래도 이쪽에 더 재밌는 것들이 있어. 네 쇼핑은 좀 지루해.”
“재밌는 거라고 해봤자 무기점이잖아!!”
“나랑 에우드한테 맞는 검술용 부츠를 찾을 거야.”
“나도 에우드랑 연금술 장비 살 거야!!”
셀레나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 붙잡힌 에우드를 이번엔 티아나가 붙잡는다.
곧 흡사 허수아비가 되듯 에우드의 양팔이 쭈욱 잡아 당겨졌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저, 저기..... 놓고, 일단 놓고.......!”
양팔이 당겨지는 아픔에 에우드는 얇은 비명을 전한다.
물론 이 두 누나는 동생의 위기경보를 들을 틈은 없어 보인다.
“두 분 다 정말! 도련님 망가지겠어요!”
결국 엘리리가 두 누나를 말려준 후, 겨우 에우드를 떼어냈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요. 다 돌아볼 거면 차라리 가위바위보가 어떤가요?”
평소에도 둘이 싸우는 일이 자주 있던 덕인지, 엘리리는 둘의 싸움을 중재하는 데에 능숙했다.
엘리리의 말에, 셀레나와 티아나는 서로 볼을 부풀린다.
“.......그럼 언니, 이긴 쪽이 동선 정하기야.”
“좋아. 딴말하기 없기.”
곧바로 셀레나도 티아나도 양손을 위로 불쑥.
임전 태세의 표정으로 가위바위보를 준비한다.
“........”
“........”
그리곤 둘 다 에우드를 바라봤다.
“.......?”
갑작스런 시선의 집중에, 에우드는 셀레나와 티아나를 번갈아 본다.
“에우드 도련님도 가위바위보에 참가하라는 거예요.”
엘리리의 말에 그제야 에우드도 상황을 이해한다.
“뭐, 공정성이니까! 물론 내가 이길 게 당연하지만, 일단은 에우드한테도 참가권을 줄게!”
“나도 상관없어. 하지만, 대련이라면 몰라도 가위바위보는 내가 더 잘해. 티아나보다 더.”
에우드는 사실 어딜 먼저 가든 상관없었지만, 여기서 말을 꺼냈다간 일이 더 복잡해질 테지.
그렇기에 따지지 않고, 하라는 대로 팔을 들어 올린다.
가위바위보의 규칙은 다행히 에우드도 알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각 손모양의 관계를 되새겨간다.
“그럼 세 분 모두........”
엘리리의 크흠소리가 울리자, 셀레나와 티아나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가위, 바위-”
““보!!”” “.......”
포에닉시안의 광장 위로, 세 남매의 가위바위보가 작렬했다.
●
포에닉스 본가의 수장이자, 포에닉시안 도시의 장으로서, 가레스는 정말 많은 업무를 진행한다.
낮에는 저택에 붙어있을 수 없을 때가 많으며, 각각의 협력처나 거래처에 향할 때가 많다.
특히나 귀족들 사이에서의 사소하고 큰 만남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업무는 가레스뿐만이 아닌 로로나도 수행한다.
가레스처럼 회의에 직접 나가기보다도 크고 작은 사교회에서 그 활동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가레스는 그런 귀족들 중 하나- 10대 귀족은 아니지만, 상당한 유력 귀족과의 미팅을 마쳤다. 오전의 일을 끝낸 가레스는 이어서 길드로 향하는 길이었다. 유그라시아 길드회관은 포에닉시안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장소였다.
아무래도 유그라시아 북부 지역인 ‘벨벳 라인’에 어떤 거대 던전이 발생했다는 듯하다.
현재 길드에서 명명한 던전 명은 ‘무덤 동굴’.
위험도나 내부 생태계도 불명.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내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때문에 던전의 추후 조치에 대해, 길드 및 여러 헌터 보유 가문들이 모여 회의를 하게 된 것이다.
가레스는 침침한 눈을 꾹꾹 눌러간다.
최근엔 또 헌터대의 원정 준비가 겹쳤다. 가레스로서는 요 2주는 계속 피로한 나날이다.
그래도 마냥 지치기만 하진 않았다.
나름 즐길 수 있는 것은 자식들 사이에 최근 이뤄진 변화 덕분이다.
오늘도 함께 나간다고 하여 자신도 모르게 용돈을 많이 쥐여 줬다.
셀레나도 함께 나간다고 들었을 땐 역시 가레스도 놀랐다.
그걸 에우드가 이끌었다는 얘기를 듣자, 가레스는 상상 이상의 성과에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연습 계획을 뒤로 미룰 정도로 ‘에우드와의 대결’이 더 흥미로웠던 거다.
뭐, 여기까지 오면 이젠 그저 오늘 하루 아이들이 무탈하게 잘 놀다 오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가레스의 그런 따뜻한 마음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 가레스님.”
“음?”
가레스가 틈틈이 서류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포에닉스의 마부가 조금 의아한 목소리로 가레스를 부른다.
“전서구입니다. 아무래도 케인즈 상단에서 보낸 듯합니다.”
“케인즈?”
그 말에 가레스는 마차의 창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다리에 편지를 달아 날아오는 초록빛의 비둘기가 보인다.
여러 운송물들을 보내주는 전서구는 각 세력이나 가문에 따라 그 색과 종에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붉은색이면 포에닉스 가. 보라색이면 메트리 가.
초록색의 비둘기라는 건 마부가 말했듯 케인즈 상회가 관리하는 전서구다.
케인즈 상단은 포에닉스와도 거래를 거듭하고 있는 세력이었다.
원정에 필요한 물자나, 원정 중의 서포터들의 지원- 포에닉스의 가업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동맹관계다.
하지만 이렇게 이동 중인 가레스에게 전서구를 보내는 일은 정말 드물다.
가레스는 케인즈 상단의 리더인 ‘소일 케인즈’와 큰 친분을 가진 사이다. 그럼에도 이런 다급한 분위기는 다소 위화감이 있다.
가레스는 본능적으로 그 전서구가 심상치 않음을 인지했다.
창 너머로 팔을 뻗어 초록색 전서구를 팔 위로 착지하게 한다.
다리에 묶인 종이를 풀어 그 내용을 확인한다.
“.......이런.”
가레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곧이어 마부를 향해 더욱 서두를 것을 부탁한다.
“대, 대체 무슨 일이 전달된 겁니까?”
“일이 좋지 않아졌다네.”
“좋지 않아졌다고요.......?”
가레스는 자신의 품에서 펜을 꺼냈다. 그리곤 전서구의 다른 한 쪽 발에 달린 종이에 ‘수령확인’ 사인을 새긴다.
마법에 의해, 지금 가레스 본인이 편지를 확인했다는 걸 케인즈 상단도 인식했으리라.
“오늘 새벽........ 유그라시아 내의 상회- 바르카스 상회의 상회장이 돌연사했다네.”
“네?!”
너무나 생각지 못한 말에 마차가 순간 뒤흔들렸다.
마부의 동요에 일순 말들이 동요의 울음소리를 낸다. 서둘러 그것을 진정시키고 마부는 다시 가레스에게 물었다.
“돌연사라니, 그게 무슨.......!”
“나도 정신이 없나, 말이 조금 새버렸군. 정확히는 타살이지.”
“타살?!”
가레스는 전서구를 밖으로 날려 보내며 말했다.
“‘머더 메이지’. 그놈이 다시 나타난 거 같다네.”
‘머더 메이지(Murder Mage)’.
그 이름을 듣자, 마부는 순식간에 소름과 함께 식은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