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두 누나에 대해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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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식들은 8번 마차에 전부 실어라!”
“개인 물품은 전날에 나눠야겠네.”
“야, 망할 놈아! 소재 적재용 마차에 이상한 거 넣지 마!”
“페어리 인분(鱗粉)도 이번에 채취할 거니까, 전용으로 담을 주머니를 챙겨와.”
“대장장이 팀의 장비도 들어갈 거다! 마차 한 대 더 끌고 와!”
무슨 일인가 싶어 에우드가 살짝 창문 너머를 보니, 포에닉스의 헌터팀들이 보였다.
“이제 또 원정이거든.”
옆에 있던 티아나가, 에우드의 옆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벌써?”
“으음, 지금이 원정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래.”
얼마 전 돌아왔던 원정에 이어 일주일 뒤에 새로운 원정을 간다고.
포에닉스의 사용인들과 헌터들이 각각의 물자를 모아 마차에다 싣고 있었다.
이렇게 가문 소속의 헌터대로 원정을 가는 것은 포에닉스의 주 가업 중 하나.
포에닉스의 원정은 매번 상당한 규모로 이뤄진다.
기본적으론, 약 일주일간 몬스터 토벌을 진행한다. 짧지 않은 기간일까.
무기의 손상이나 교체, 현장에서의 손질도 자주 필요하다.
특히나 몬스터의 소재는 상당히 희귀한 것들이 많다. 채취에도 특수 기술이 요구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한다. 이런 소재는 각 몬스터 마다 채취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렇기에 원정에는 전문 직종들과 여러 보조역의 기술자들이 동행하는 것이다.
소재는 뿔이나 뼈 같은 잔해물만으로도, 여러 광석이나 마석과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미노타우로스의 뿔이나, 페어리의 날개 분진 같은 것들.
.......에우드가 드림랜드에 있었을 땐, 그렇게도 부셔댔던 뿔이었다.
에우드는 며칠 전 원정에서 복귀했던 헌터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원정으로 가져왔던 몬스터 소재들은 그야말로 산더미였다. 가치로 치면 수많은 금화와 같은 양이었으리라.
게다가 몬스터 사냥을 주 사업으로 삼는 만큼, 저택 부지 내엔 여러 가공시설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저택 바깥에 장인들의 도움도 받는다고.
에우드가 느끼기에 포에닉스의 사업은, 거의 하나의 ‘상단’이자 ‘길드’라 불릴 규모였다.
멀리서 보자 헌터들의 준비를 진두지휘하는 알베르토가 보였다.
현장을 직접 뛰지는 않지만, 헌터대의 전체적인 관리는 아직 그의 몫이라 한다.
“이번에도 좋은 재료 가져오려나~”
티아나는 벌써 원정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페리아의 언니인 헌터- ‘엘리리’에게 항상 희귀 소재를 조달받는다고 했었지.
“아! 그럼 나도 거기에 맞춰서 시약이랑 재료랑 새로 사와야........ 어라?”
혼잣말을 하던 티아나는 갑작스레 깜짝 놀라 에우드를 봤다.
“에우드 너 여기 오고 나서 아직 밖에 한 번도 안 나갔지?!”
“........아. 정말 그러네.”
티아나의 말에 에우드는 그걸 겨우 깨달았다.
저택에 온 지 2주. 에우드는 이 저택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딱히 큰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나갈 일도 없었고 나가도 된다는 말을 듣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나갈 이유가 없었다.
포에닉스 저택은 물론 부지까지 넓다 보니 에우드로선 답답함을 못 느꼈다는 게 정설이리라. 이곳은 드림랜드의 투기장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예를 들어 에우드는 알베르토와의 연습을 위해 수련장으로 이동할 때- 그 걸음만으로도 상당한 자유를 느끼고 있다.
심지어 목이나 사지에 사슬 같은 것도 없지 않은가. 여기까지 왔으면 사치로운 자유다. 자유의 과다공급이다.
물론 구속구는 없을지언정 여전히 숙제 때문에 자주 방에 박혀 있지만.
드림랜드를 나오고서 에우드가 알게 된 건, 사람의 자유는 언제든 무형적인 것으로도 제한된다는 걸까. 에우드에겐 꽤 큰 깨달음이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에우드에게도 숙제가 없다. 같이 수업을 듣던 티아나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 수업이 끝나자, 조안은 내일 하루는 숙제 없이 수업을 쉰다고 전해줬다.
아무래도 원정이 가까워지면서 조안도 다소 바쁘게 된 모양이다. 사용인들의 총괄인 만큼, 일은 계속 들어오리라.
즉, 에우드는 오늘 밤부터 내일 하루 내내 자유롭다는 이야기.
티아나도 오랜만에 온 휴일에 신이 나 있었다.
“그럼 나랑 밖에 나가자! 내일 나도 사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메이드들한테 말해서 같이-”
티아나가 에우드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 때였다.
“-에우드.”
“........응?! 언니?!”
어느새 셀레나가 두 사람에게 찾아왔다.
에우드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에 놀라버렸다.
저택에 오고 나서부터 단 한 번도 말을 건 적도, 에우드 쪽에서 말을 걸어본 적도 없는 셀레나다. 이렇게 셀레나가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티아나하고도 겨우 얼마 전에서야 말을 튼 거지만.
“알베르토 스승님이....... 오늘이랑 내일 수업 쉰대. 원정 준비로 좀 일이 바빠졌대.”
아무래도 알베르토의 말을 대신 알려주러 온 것 같다.
셀레나는 알베르토에게 항상 스승님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검을 가르침 받기 때문이겠지. 에우드도 따져보면 알베르토를 그리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에우드는 서둘러 셀레나에게 고개를 꾸벅했다.
“감사합니다, 셀레나님.”
팍!
감사를 표하던 에우드의 머리를 티아나가 찰싹 때렸다.
“뭔 셀레나 님이야! 언니한테도 똑바로 ‘셀레나 누나’라고 불러! 존댓말 빼고!”
“.......내가 누나?”
“이 언니는 왜 또 뭘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지, 이제 와서?! 아, 정말! 이 답답이들아!”
답답이들로 가득한 상황에 티아나는 낑낑거리듯 소리쳐버린다.
“-그래, 맞아! 언니, 언니도 내일 나가자!”
“나가자니?”
“내일 연금술 재료 사러 갈 거야, 에우드도 같이! 그러니까 언니도 쇼핑 좀 동행해줘!”
에우드는 뭔가에 대답한 적이 없는데 어느새 티아나와의 동행이 결정되어 있었다.
다만 티아나의 말을 들은 셀레나는 티아나에게 멍하니 되물었다.
“검이랑 관계있어?”
“.......언니, 내 말에 지금 ‘검’이라는 말 하나도 안 들어갔어.”
“그럼 싫어.”
“누아아악!!”
백금색 단발을 휘날리며 티아나는 셀레나의 어깨를 죽어라고 흔든다.
“내일은- 나- 계속- 연습할 거야-.”
똑같은 백금색 웨이브의 소녀는 흔들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을 밝혀간다.
검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정말 탈력적이면서 열정 또한 뚜렷하게 전해졌다.
그래도 티아나에겐 여전히 너무한 이야기다.
“좀 가끔은 동생한테 어울려줘!!”
“.......검이랑 관계되면.”
“언니는 분명히 한 번 크게 데일 거야! 꼭 큰코다칠 거야!!”
셀레나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에 티아나는 계속 떼를 썼다.
정말 꾸미는 것도, 서로 감추는 것도 없는 평범하게 사이좋은 자매다.
(“우드 오빠는 어쩌다가 드림랜드로 왔어?”)
우드는 아주 잠시 ‘함께 살아남았던’ 아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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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이라 전해 들었지만, 에우드는 바로 쉬기가 애매했다.
원래 알베르토의 의도로는 몸의 여유를 주라는 의미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조안의 숙제까지 없다 보니, 역시 시간이 남는다.
2년간 긴장을 거듭했던 몸은, 오히려 긴장이 풀리는 게 어색할 때가 많았다.
때문에 에우드는 오늘 하루 짧게나마 홀로 연습해보려 했다.
가뜩이나 알베르토에게 배우는 유파라는 것에 아직 어색한 점이 많다.
원래 수업이 있는 평소보다도 조금 일찍 향하는 훈련장.
외출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로 넓은 부지를 저벅저벅 걸어간다.
그렇게 훈련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휘이이익!! 촤아아아악!!
목재로 된 문을 열기 직전 그 안에서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덜컹-
“........셀레나님?”
“누구- ........에우드?”
수련장에 셀레나가 먼저 와 있었다.
아니, 먼저 와 있었다기보다....... 아마 꽤 오래전부터 있었으리라.
땀이 차 있는 모습이, 겨우 몇 분 정도 검을 휘두른 것으론 보이지 않았다.
평소 저택에 있을 때처럼 폭신폭신한 옷은 아니었다.
백금색의 웨이브 머리는 뒤로 묶어 올렸고, 옷은 상당히 가벼운 가죽과 천 재질의 것이었다. 아마 이게 셀레나가 검을 다룰 때의 모습이겠지.
아까보다도 훨씬 생기 넘치는 얼굴에 에우드가 잠시 신기하게 바라봤다.
“.......뭐 하러 왔어?”
다만 셀레나는 금세 평소대로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게다가 조금 뾰로통하다.
아무래도 에우드에게 수련을 방해받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검을 연습하는 데 조금 감이 안 잡혀서요........”
에우드는 최대한 빨리 답했다.
최근 티아나와 대화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대답이 빨라졌다.
“검?”
그런데 어째서인지 대답을 듣자마자 갑작스레 셀레나의 눈이 반짝인다.
훅하고 가까이 다가와 에우드에게 그 얼굴을 가까이했다.
바짝 근접해온 셀레나의 눈에, 또다시 ‘그 아빠의 그 딸들이다’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티아나도 그렇고 혹시 포에닉스 일가는 특유의 접근법이 있는 걸까.
“네, 넵. 그래서 적어도 오늘은 혼자서 연습해보려고요.”
눈을 살짝 피한 뒤, 에우드는 목검이 꽂혀 있는 구석으로 향했다.
손질이 잘 된 나무 목검에 반듯한 차가움을 느낀다.
하지만 눈을 돌리자 어느새 다시 셀레나가 가까이 따라와 있었다.
이번엔 에우드와 에우드가 쥔 목검을 번갈아 본다.
“.......셀레나님?”
셀레나는 자신이 들고 있던 목검을 고쳐 쥐더니, 에우드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그럼 나랑 한 번 대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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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준비는 잘 되어가나?”
전용 집무실에서 원정용 서류를 확인하던 알베르토에게로, 가레스는 머그잔 하나를 가져왔다.
원래라면 이런 서포트는 알베르토에게 배정된 메이드들이 해야 할 일이리라.
그러나 가레스는 가끔 이렇게 직접 마실 것을 가져다줬다.
대귀족의 수장인 그이지만, 가문에 소속된 이들에겐 언제나 스스럼이 없다. 그것이 포에닉스의 풍조였다.
특히나 알베르토의 경우 가레스가 10살이었던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서로가 수십 년을 함께한 만큼 격 같은 걸 내세우지 않는 사이다.
“이번엔 던전에 들어가는 게 아니니 그리 큰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던전.
미궁이라도 불리며, 간단하게는 몬스터의 소굴이라 불리는 그곳.
만약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보통 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몬스터들이 넘쳐나는 전장에서 짧게는 1주, 길게는 한 달을 버텨야 한다.
지금과 같은 준비로는 버틸 수 없다. 더욱 본격적으로, 그리고 더욱 많은 인원을 데리고 가야 한다.
물론 알베르토는 은퇴한 상황.
후계의 성장을 위해 포에닉스 헌터대의 일선에선 물러났다.
그런 이유로, 알베르토가 현장에서 헌터대와 함께 싸운 지는 꽤 되었으리라.
그렇다고 알베르토가 헌터의 감을 잃었다는 건 전혀 아니다.
가끔 몸을 풀겠다고 혼자 원정을 떠날 때도 있을 정도니까. 원정에서 가져오는 소재 또한 홀로 마차 하나 수준으로 채워올 정도고.
알베르토 체로스라는 이름은 현재까지도 유그라시아 헌터계의 전설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티아나가 에우드랑 같이 외출을 하겠다고 허락 맡으러 왔었지.”
물론 알베르토의 앞에 있는 이 남자 또한 그에 버금가는 전설이다만.
그런데 내일까지 수업을 쉬기로 하자마자 티아나가 그새 에우드와 약속했다니.
수업을 쉬는 건 원정 준비 때문이긴 하지만, 좋은 타이밍에 여유를 준 듯했다.
“괄괄하시지만 정이 많으시죠, 티아나 아가씨는.”
알베르토의 집무실 책상에는 티아나가 챙겨줬던 청록색 사탕도 있었다.
알베르토에겐 다소 달기에 많이 먹진 못해도, 피곤할 땐 도움이 되는 물건이었다.
“근데 셀레나는 아직 에우드랑 별로 엮이질 않더라고.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하나.”
“.......셀레나 아가씨는 관심을 주는 범위가 매우 한정되어있으니 말이죠.”
“최근엔 내 집무실에도 찾아오지 않는다니까~”
“그건 티아나 아가씨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그보다, 최근이라 할 것도 없이 원래 그리 많이 안 찾아오시고, 두 분 모두.”
“아니네! 티아나는 최근엔 가끔 찾아온다고! .......다 에우드 관련해서다만. ........어흠, 그럼, 다른 말로 가볼까.”
그 말에 알베르토가, “역시 그냥 친절히 마실 거 주러 온 건 아니었구만.”이라고 항의하듯 혼잣말. 곧 알베르토와 가레스가 함께 쓴웃음을 주고받는다.
“-셀레나가 최근 벽에 부딪힌 거 같은데, 맞나?”
가레스가 꺼낸 것은 다시 첫째 딸에 대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