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두 누나에 대해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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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문이 열렸다.
상당히 인상적인 귀족 여성이 조안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다.
그 여성의 뒤로 두 명의 소녀 또한 따라 들어온다.
그녀들이 분명 가레스의 아내와 두 딸.
이 포에닉스의 정통한 구성원들이다.
보자마자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에우드는 조용히 생각했다.
가레스가 불안을 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그 부인인 로로나는 매우 차분했다.
응접실의 소파에 앉자마자 로로나는 조용히 에우드를 바라봤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다. 에우드는 지금 로로나의 눈이 ‘자신의 여러 가지’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에우드가 옷을 입고 있는데도 옷 속까지 뜯어내는 것 같은 시선.
머리카락을, 눈동자를, 가슴팍을, 손끝을, 살갗 아래의 근육을- 에우드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다.
거기서 무엇을 찾아내고 있는 걸까.
에우드는 처음엔 잠시 머뭇하다가 이내 적응하고 받아들였다.
어떤 식으로 보던 따질 입장은 아니다.
“.......괜찮네요.”
“그, 그렇지?!”
이내 로로나는 에우드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만족스러운 말투였다.
사실 가레스가 보인 안도가 더 눈에 띄었다만.
“포에닉스에 온 걸 환영해요, 에우드. 로로나 알라이트 포에닉스라 해요.”
그게 로로나 나름의 ‘합격’을 표하는 말임을, 에우드가 못 알아챘을 린 없었다.
다만 로로나와 대비될 정도의 시선이 한 명 있었다.
포에닉스 가의 둘째 딸, 티아나 알라이트 포에닉스.
그녀는 에우드가 마음엔 안 든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백금색 단발머리를 요리조리 찰랑이며, 묘한 시선을 계속해서 준다.
그리고 똑같이 백금색 머리에 아가씨다운 웨이브를 넣은 첫째 딸, 셀레나 알라이트 포에닉스는.......
뽀샥뽀샥.
다과로 나온 쿠키를 꼭꼭 씹어 먹고 있다. 그 행동이나 표정은 다소 탈력적이다.
가끔씩 쿠키 부스러기가 떨어지자, 뒤에 있던 조안이 거기에 살짝 주의를 주곤 했다. 셀레나는 조용히 “네.”라고 답하지만, 정작 시정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에우드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어 보였다.
“에우드, 방금 소개했듯이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이 현재의 포에닉스 본가. 그리고 너의 가족이 될 일원들이야.”
“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오늘부터 네 누나들이지.”
별로 환영받는 느낌은 아니기에 제 처지를 잘 아는 에우드는 짧은 대답만을 전했다.
“자, 셀레나, 티아나. 동생한테 인사는 해줘야지.”
“(뽀샥뽀샥)”
“.......”
“셀레나, 티아나?”
당연하다싶을 정도로 보여주는 무관심에 에우드는 역으로 안도했다.
다짜고짜 아들로 부르라던 가레스가 이상한 거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리라.
다만 가레스는 두 딸의 반응에 꽤 허둥지둥했다. 딸들이 저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던 걸까.
“천천히 알아 가면 되는 거죠. 신뢰를 쌓는 과정에 재촉은 좋지 않아요. 알겠죠, 여보?”
“으.......”
로로나만이 홀로 매우 차분하게 말했다.
가레스는 조금 찔려 보였다. 자신이 방금까지 한 행동을 들킨 것 같았겠지.
알베르토가 그 뒤에서 조용히 동의를 표한다.
일단 이 자리에서 확실해진 건, 저택에서 가장 입김이 강한 게 로로나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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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리도 큰 방을 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규모만 따지면, 드림랜드에 있을 때 할당된 방(감옥)을 한 30개 정도 합친 크기일 것이다.
당연히 내부는 검은 벽돌과 철제 쇠창살이 아닌 목재와 등, 온갖 호화로운 가구들.
놀랍게도 이곳이 에우드의 방이었다.
심지어 에우드가 더 놀란 건 이것조차 중간 사이즈라는 거다. 저택에는 이보다도 큰 방들이 많다고 한다.
‘미노타우로스 집어넣어도 넓다고 뛰어다닐 거 같은데.’
당연히 과장 조금 보탠 생각이다.
왜냐면 미노타우로스 놈들은 조금 뛰다가 참지 못하고 벽을 부술 테니까.
“짐은....... 역시 없으시겠죠. 그럼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오죠. 페리아.”
“네, 네엡! 여기 있어요!”
엄격하고 원리주의적인 표정의 노년 메이드- 조안은 함께 동행한 페리아에게 어떤 물건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페리아는 낑낑거리더니 그녀에겐 조금 클 수 있는 가방을 가져왔다.
곧바로 그걸 풀어 방 곳곳에 배치해간다.
옷이나 가구 같은 건 이미 정리가 끝나 있었다.
에우드를 입양하는 건 아예 결정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미리 방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러다 분주하게 물건을 배치하는 페리아를 보고 에우드가 움직이려 했다.
“저도 같이-”
“이제부터 당신은 ‘포에닉스’입니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동안, 저희는 에우드, 당신을 포에닉스의 자제 중 한 명으로서 대할 것입니다.”
그건 즉, ‘포에닉스 답게’ 행동하라는 의미겠지.
“그러니 지금은 저희에게 맡겨주시길.”
“괜, 괜찮아요! 제 일이니까요!”
“.......네.”
조안과 페리아의 제지에, 에우드도 행동을 관뒀다
정리가 끝나자, 해가 저물었다.
고급스러운 창문의 새시 안을 어두운색이 한껏 채우고 있었다.
에우드는 그런 창문 밖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저기........ 너무 오랜만에 봐서요.”
드림랜드는 원래부터 자연광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곳의 시간은 항상 낮도 밤도 아닌 황금의 광휘 뿐.
또한 에우드가 있던 투기장엔 광휘조차 없이 어둠만이 존재한다.
해와 달, 낮과 밤의 경계조차 모호한 그 세계에서 2년이다.
때문에 에우드는 정말로 오랜만에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을 받았다.
조안은 에우드가 무슨 의미로 말하는지를 이해했다.
“.......많이 피곤하실 거라 봅니다. 오늘은 그만 쉬시도록 하시죠, 에우드님.”
“네.”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페리아를 찾으시면 됩니다. 이 아이를 비롯한 아까 메이드들이, 당분간 에우드 님을 지원할 겁니다.”
조안은 에우드에게 예를 표하며 고개 숙였다.
페리아 또한 같이 고개를 한 번 숙인다. 이번엔 실수하는 모습이 없었다. 엄격한 조안의 옆이기 때문인지, 최대한 정신을 바짝 붙잡고 있는 듯 했다.
추가로 에우드에게 저택 구조와 같이 몇몇 간단한 것들을 알려준 뒤, 조안과 페리아는 방에서 나갔다.
아무도 없는 방은 항상 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상당히 달랐다.
쇠창살 너머의 소음도 없다.
누군가가 소리치거나.
노예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음담패설이 들리거나.
음탕한 교성이 들려오거나.
그 어떤 소리도 없었다.
정적을 이룬, 별세계 같은 공간이었다.
에우드는 침대로 가 거기에 걸터앉아봤다.
당장이라도 엉덩이가 튕겨 나올 것 같은 침대. 소파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감촉이었다.
다만 그걸로 끝이었다.
에우드는 이 넓고 호화롭고 또한 따뜻한 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뒤바뀐 세계는 이리도 밝은데,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 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당연한 거다. 원래라면 알려줄 필요가 없는 상식이니까.
덕분에 에우드의 머리론 여기서 시간을 보낼 방법을 떠올릴 수 없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벽에 몸을 기대고 멍하니 있었을 뿐이다.
그건 2년간의 노예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택지를 늘려줘 봤자 뭘 능숙히 이뤄내겠는가.
눈을 돌리자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그냥 많다도 아니다. 에우드의 키의 두 배는 되는 책장이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책들이 마법이나 인쇄기술로 만들기 쉬워졌다 해도, 꽤 값나가는 물건임은 다름이 없다. 그런데 그것이 100권이나 넘게 차 있는 모습이라니 이 무슨 사치.
하지만 그 책을 열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아무 갈피도 못 잡은 채 에우드는 침대 위에 앉아있을 뿐이다.
어떻게 된 건지 이렇게 멍하니 있는 게 에우드에겐 더 마음이 편했다.
진흙처럼 한참 붙어있던 공복조차도 남지 않았다. 2년 만에 배불리 먹은 음식이었다.
이곳은,
누구의 죽음도 가깝지 않았다.
에우드는 2년 만에 다가온 정적에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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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평소의 새까만 세계가 아니었다.
쇠나 돌이 부딪히고 온갖 고통을 표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정면에 보이는 것은 고풍스러운 천장. 그리고 창밖에서 들리는 작은 새들의 울음소리.
한동안 이곳이 어디였는지를 혼란스러워하는 채 눈을 굴릴 때였다.
어제 이후로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열렸다.
“에, 에우드 님. 아침입니다.”
또래 메이드인 페리아가 들어오고 나서야, 에우드는 자신의 상황을 다시 파악했다.
꿈이 아니었다.
몽롱한 느낌은 여전히 드는 채로 에우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우드는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기에, 침대 위의 이불이나 베개는 약간만 흐트러졌을 뿐 별달리 정리할 부분은 없었다.
페리아는 방에 들어오고서 침대가 어제와 거의 비슷하다는 거에 갸웃했다.
이내 무슨 일인지를 깨달은 듯 했다.
에우드 또한 어제의 복장 그대로이기도 했고.
“안, 안돼요! 갈아입으셔야 하는데!!”
허둥지둥 방에 있는 옷장을 열더니 새로운 옷을 꺼낸다.
.......갑자기 옷을 벗겨 갈아입히려 했기에 에우드도 이번만큼은 저항했다.
페리아에게 옷을 받은 후 직접 갈아입겠다고 말한다.
단 하루 입은 옷을 갈아입는다는 건 에우드로선 참 계속되는 사치였으리라.
그 뒤로 페리아가 가져온 식사를 먹은 에우드는, 가레스의 집무실로 불려갔다.
아침 식사는 여전히 호화로웠다. 빵에 수프. 그리고 소시지가 곁든 계란 요리.
갑자기 올라간 식사의 수준에 어제부터 에우드의 혀끝이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망가진 미각이 정신없이 새로운 맛들을 갱신해간다.
“조금 서두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늘부터 네 교육을 진행할 생각이야.”
집무실에 도착하자, 가레스가 그것을 말했다.
집무실엔 알베르토와 조안 또한 함께 있었다.
어제 양자가 나눴던 계약서에 명시된 ‘교육’.
그건 가레스의 약속이며 에우드가 받게 되는 혜택. 또한 에우드의 의무였다.
아카데미에 가기까지 3년. 그때까지 그들이 바라는 수준만큼 지식과 교양을 쌓아야 하니까.
“교육담당은 여기 있는 조안. 조안이 네 대부분의 교육을 맡을 거야. 뭐, 선생님이라고 여기는 게 맞겠지.”
그 말에 조안은 에우드에게로 살짝 고개를 숙여줬다.
어제부터 그랬지만 조안은 아이인 에우드에게-그것도 원래는 노예출신인 에우드에게 절대 나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마치 에우드가 이제까지 계속 포에닉스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대했다. 아마 조안의 엄격함에서 나오는 행동이겠지.
.......다만 그 엄격함이 지금도 짜릿짜릿 에우드에게 전해진다.
별별 몬스터와 싸워온 에우드도, 외안경 아래의 눈빛은 버티기 힘들었다.
“조안이 주로 해줄 교육은 기본적인 학문과 역사. 그리고 교양- 이렇게 말해도, 이것들만으로도 꽤나 빡빡한 일정이라 생각하지만. 그리고 또 하나........ 우린 너에게 다른 교육 또한 진행하려고 해.”
“다른 교육인가요?”
“무예.”
그 말에, 에우드는 잠시 갸웃했다.
무예- 즉, 싸우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이야기인가.
“네 실력은 1년간 봐온 만큼 잘 알지. 넌 웬만한 국가공인 헌터들보다도 강해. 그 랭크는 S에 가까울까.”
에우드의 랭크가 S라는 말에 조안의 분위기가 살짝 바뀌지만, 곧바로 평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네 싸움법은 정말로 살육전에 특화되어있어. 시쳇말로 하면....... ‘예의가 없지’.”
그건 에우드도 인정해야 했다.
에우드는 누구에게 전투법을 배운 게 아니다. 오로지 죽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기술을 만들어온 것일 뿐이다.
에우드의 전투법은 에우드만의 기술이며, 반드시 생존하는 것만 바라보는 기술.
엄밀히 따지자면 기술이라고도 볼 수 없는 영역이리라.
“아카데미는 수많은 고위 자제, 유력자들의 자제들이 오는 장소. 온갖 것이 암약하는 장소라곤 말했지만, 기본적으론 결국 배움의 장소지. 그렇기에, 지금의 네 정석에서 벗어난 싸움법은 보여주기가 어려워.”
다만 가레스는 곧바로 눈빛을 바꿨다.
“물론 딸들에게 오는 위협을 막아 내야 할 땐, 그런 건 전혀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만.”
요컨대 가레스의 말은- ‘사교용’ 무예를 익히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