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후기]잘 부탁드립니다.?2회
팔려가다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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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는 덜컹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투구의 창 너머로 나무색의 공간이 보였다.
뒷목이 지끈거린다.
대체 무슨 일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어찌어찌 마지막 기억을 되살려본다.
‘팔렸다고? 내가? 뭔 소리야 그게.’
분명히, 마지막에 그 요원들이 말했지.
“너는 드림랜드에서 팔렸다.”라고.
“마차인가?”
밖에서 희미하게 목소리와 발굽소리가 들린다.
의외로 넓은 걸 보면 짐을 옮기거나 여러 사람을 태우는 데 사용하는 마차다.
양측에 길게 간이 의자도 설치되어있었다.
나무의 냄새도 상당히 고급 목재에서 나는 향이었다.
우드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구속되어있다던가, 재갈이 물려있다던가. 노예들을 옮길 때 쓰는 식으론 되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한 담요가 덮어져 있다.
“어?”
2년 간 덮었던, 그런 거칠거칠한 부직포 쪼가리가 아니다.
꽤나 비싸게 느껴지는 좋은 담요.
우드는 그것을 매만져봤다. 보들보들했다. 좋은 냄새도 나고.
몇 차례 더 만져버렸다.
정신을 잃고 얼마나 지난 걸까.
처음에는 마차를 탈출할까 했지만 곧바로 관뒀다.
일단 당장은 뭔가 당할 것 같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여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분명....... 포에닉스인가 뭔가.”
우드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귀족 가문.
그중에서도, 10대 귀족이라는 대귀족 가문 중 하나의 이름이었다.
드림랜드에서 지내며 우드는 여러 유력자들에 대해 알음알음 들었다.
대부분 근처 방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대화에서.
또는 경기장 너머에서 들리던 VIP들의 대화에서.
그리고 자신을 찾아오던 어떤 여자에게서였다.
포에닉스는 분명 10대 귀족 중 무가(武家)로서 상당한 힘을 가진 가문.
과거의 전쟁에서 거대한 무훈을 세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거로는 추리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런 단서 가지곤, 우드는 왜 자신이 팔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덜컹덜컹덜컹- .........
그 때 차츰 차체의 움직임이 덜해졌다.
덜컹거리는 것이 사라지고, 말들이 푸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차가 멈췄다.
덜컹.
이윽고 짐칸으로 몇 명의 인원들이 들어왔다.
우드는 그 인원들의 복장을 보고, 재빨리 투구를 바로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온 이들의 복장은 헌터의 제복.
이들은 즉 나라에서 공인받은 몬스터 사냥꾼들이자 실력자들이다.
움직임 또한 상당히 단련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의 백색과 검정색이 어우러진 깔끔한 전투복은, 헌터들에게 필수되는 복식이었다.
그리고 헌터들의 복장은 세력에 따라 조금씩 다른 디자인과 문양을 갖고 있다.
지금 이들의 전투복에 새겨진 것은 불사조 문양.
이어서 들어온 인원까지, 마차엔 우드를 제외하면 총 일곱 명의 사람이 있었다.
남자 다섯과 여성 둘.
우드가 그들 사이의 상하관계를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뒤늦게 들어온 두 사람은, 헌터 복장이 아닌 상당히 격식 있는 복장이었으니까.
그래, 드림랜드에 찾아오는 귀족들처럼.
두 사람 중 젊은 쪽의 남자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우드에게 다가왔다.
“자네로선 한 2년 만에 보는 햇빛인가?”
“.......뭐 하는 사람이신가요?”
우드는 오로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투구 쓴 소년이 전한 당돌한 말에 당주라 불린 남자는 놀란 듯 웃었다.
막상 보면 놀랐다기보다도, 꽤나 상쾌한 웃음일까.
다만 우드의 말에 반응한 건 당주가 아니었다.
서어어어어엉!!
단숨에 세 개의 칼날이 우드의 목을 향해왔다. 헌터들의 검이었다.
“이 꼬맹이, 말버릇 봐라?”
“당주님 앞에서 무례하다.”
“예의가 부족합니다.”
“........”
투구 밑으로 느껴지는 서슬 퍼런 철의 감각.
턱끝을 덮은 투구에 날카로운 철이 닿는 소리가 들린다.
우드는 투구 아래에서 그들을 곁눈질로 살폈다.
칼을 뽑은 것은 남성 셋.
그리고 뒤에서 대기하는 게 여성 둘.
그녀들 또한 당장이라도 칼을 겨눌 기세였다.
“그만 둬라.”
당주의 옆을 보좌하던 수염의 중년이 그들을 말렸다.
“당주님께 이런 태도입니다. 예의는 먼저 가르치고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베르토 대장님!”
“디안. 내가 하는 말 못 들었나.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멋들어진 수염 남성- 알베르토의 말을, 이들 다섯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알베르토가 말을 이었다.
“자극하지 마라.”
“알베르토 대장, 그게 무슨....... 흐으읍?!”
찰나였다.
칼을 뽑아 든 남성- 디안은 소름 끼치는 감각에 몸을 떨었다.
디안 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전해졌다.
한순간에 숨을 옥죄이는 공기.
그리고 그게 누구에게서 나오는 건지는 확실했겠지.
이제 겨우 10대 초반일 소년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퍼져 나오고 있다.
이건 마력이 아닌 순수한 살기다.
이 조그만 소년의 기백은 그것만으로도 목을 죌 만큼 위협적이었다.
평범한 아이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투구 너머에서 전해지는 압박에 디안을 비롯한 이들이 숨을 죽였다.
대번 조용해진 부하들을 보며 알베르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화내지 말게, 알베르토. 애들 마음도 이해하고. 하지만, 난 이 애를 위협하려고 너희와 동행한 게 아니니까.”
당주는 그런 알베르토와 헌터들에게 쓴웃음을 전한다.
당주의 말에, 결국 헌터들도 그 검을 거둬간다.
“우리 애들이 무례했던 거에 사과하지. 저택까지 가는 데에 이들이 내 안전을 지켜주는 역할이라 말이야. 다들 그저 임무에 열심히 임한 것뿐이야. 이해해주겠나?”
“.......저택?”
“나도 참 정신이 없었군. 내 소개부터 해야겠지.”
우드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 당주는 몸을 살짝 숙였다.
시야를 우드의 투구 앞으로 가까이한다.
순간 부하들이 격한 반응을 보일 뻔했지만, 알베르토의 눈짓에 곧바로 행동을 거둔다.
“난 포에닉스 가의 22대 당주, 가레스 알라이트 포에닉스라고 하네. 이 멋진 수염을 가진 이가 내 보좌인 알베르토 체로스. 그리고 이들은 우리 가문에 소속된 프로 헌터들이지.”
역시나, 우드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님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 눈앞의 당주- 가레스가 눈높이를 맞춰줬다는 것 또한 이해한다.
아마 존중에 가까운 행동이다.
노예 신분. 심지어 아직 아이인 우드에게는 과분한 태도일 것이다.
그런 가레스에게 우드도 태도를 바꿨다.
적어도 지금 당장 자신을 해코지할 인물은 아니다.
아마 이 사람이 주라고 했을 담요도 포근했고.
우드는 날 선 분위기를 거두고 입을 천천히 열었다.
“.......저는, 우드 갈레아입니다.”
“잘 알고 있다네. 지금껏 계속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주시했다고요?”
“내가 자네를 처음 본 건 1년 전이었나. 처음 그 날은........ 맞아, 자네가 와이번의 날개를 뜯어버린 날이었지.”
드림랜드에서 2년간 지낸 우드다.
와이번과 싸운 건 셀 수 없이 많았다. 굳이 1년 전이 아니더라도, 와이번은 벌써 스무 번 이상 맞붙은 몬스터였다.
그러나 가레스의 말을 들은 헌터들이 일제히 술렁거렸다.
“뭐, 뭐?!”
“저런 꼬맹이가....... 와이번을?!”
“아니, 가능할 리가!”
“-전부 조용히 하고 있어라. 당주님이 말씀하시는 중이다.”
“““.........”””
다시 들려온 알베르토의 주의에, 다섯 명은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다만 가레스는 거기에 별로 신경 쓰진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가레스는, 지금 혼자만의 세계에 있다고 해야 할까.
“비슷한 시기 크레센트 베어의 가죽을 손날로 찢어냈을 땐 얼마나 짜릿하던지. 아, 저번 달 포획됐던 웨어 울프. 그놈하고의 싸움도 아주 멋졌어. 그 살점을 뜯어내던 자네의 모습은....... 하아, 나도 정말 잃어버린 젊음을 되살릴 만큼 흥분됐지.”
가레스가 계속 말하는 것들은 우드의 이전 싸움들.
쓰러트린 몬스터가 하나하나 언급될 때마다, 헌터들은 믿을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우드가 감회를 느낄 일은 없으리라.
툭 까놓고 말해 가레스는 변태 같았다.
아까부터 뜨거운 호흡을 보이는 가레스는, 우드로선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투구가 없었으면 진즉에 입김이 뺨에 닿았을 것이다.
또 잃어버린 젊음이라는 둥 말한다만 우드가 보기엔 아직 젊은 남자였고.
“뭐, 결국 결론은 이거라네!”
가레스는 그 흥분 가득한 얼굴을 우드에게 가까이했다.
우드는 뜨거운 숨결이 전해지는 게 소름 끼쳤다.
“1년에 걸친 조사와 고심에 걸쳐, 나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네. 우리 포에닉스 가문은, 너를 데려오기로 한 거지.”
가레스는 “정확힌 이미 데려와 버렸지만.”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알베르토에게서 어떤 양피지 서류를 건네받아 펼쳤다.
우드의 소유권을 받았다는 서류였다.
.......확실히 팔려온 건 맞는 거 같다.
그것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으로.
우드 갈레아의 양도서류에는 수많은 0의 표기가 찍혀 있었다.
저거면 평생-
아니, 삶을 세 번 정도 더 살아도 문제없이 살아갈 돈이 아닐까.
만약 하루 모든 끼니를 가벼운 식사로만 해결해간다면, 3번은 무슨 10번은 더 가능하리라.
그럼 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시키려 하는 걸까.
기술이라 해봤자 몬스터를 죽이는 일밖에 못 하는 우드다.
물론 이 세상에선 그것만으로도 큰 메리트는 맞다. 몬스터에게선 수많은 상업 소재를 얻을 수 있으니까. 때문에 몬스터 사냥을 업으로 하는 국가직 헌터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하지만 겨우 그걸 위해, 저만한 거금으로 자신을 사 왔다는 건 과해도 너무 과했다.
애초에 이들은 포에닉스 가문이다. 국가에서 내로라는 강자들의 가문인 것이다.
당장만 해도 우드는 알 수 있었다.
가레스의 보좌라는 알베르토. 그는 우드 이상의 힘을 가진 전사다.
우드가 오늘 상대한 미노타우로스(솔직히 시간관념이 애매해 오늘인지도 확신치 못했다.)조차 단 한 수로 죽일 수 있으리라.
심지어 이 포에닉스의 당주 가레스는....... 그 이상이었다.
넘쳐흐르는 마력. 가까이하면 할수록 예상이 불가능 해지는 무력.
우드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 외에도 뒤의 헌터들처럼 고용하고 있는 전투인원 또한 상당수일 게 분명.
인재가 넘쳐날 거다.
우드가 추리를 거듭하고 있는 걸 알아챈 걸까.
가레스는 흥미로운 눈으로, 우드의 투구 너머를 바라봤다.
“내가 자네를 무슨 목적으로 사온 건지 생각하고 있었나? 이 거금까지 들여서. 그래도, 내 생각엔 아마 자네는 못 맞출 거라 생각한다네.”
우드를 그게 비꼬는 말로 들리진 않았다.
가레스 본인도 보통 일이 아님을 알기에 말하는 것이다.
가레스가 어깨를 으쓱이자 알베르토가 이젠 포기했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알베르토는 짐칸에 놓였던 어떤 물건을 꺼낸다.
번쩍거리는 외투와 와이셔츠, 바지.
그 외의 간소한 액세서리나 장식들까지, 총 1세트가 되는 복장이다.
참으로 호화로운 외관이었다.
양식은 아마 가레스나 알베르토가 입고 있는 것과 동일하리라.
맨 위에 놓인 외투 상단에 화려한 불사조 마크가 그려져 있으니까.
그 마크는 또 지금 헌터들의 전투복에 새겨져 있는 마크와 동일했다.
그리고 알베르토는-
“자네의 것이야. 우드 갈레아.”
“네?”
그것들을 우드에게 건넸다.
우드가 뭔 말인지 파악 못 하는 사이, 알베르토는 억지로 우드에게 옷들을 쥐여줬다.
“자, 여기서부터 이야기라네. 실낙원의 사신 투구, 우드 갈레아.”
드디어 또래의 아이처럼 어리둥절하는 우드에게, 가레스는 투구를 벗겨주며 선언했다.
“난 자네를 우리 가문의 양자로 받아들일 거라네.”
투구를 벗자 나온 꾀죄죄한 소년은, 대체 이 사람이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싶어 눈을 크게 뜬다.
다만 아무리 투구를 거두고 봐도 가레스의 눈은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