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525화 (525/650)

525화 도움도 주고 이득도 얻는다

한진영의 예상대로 폭락이 있었던 그날 저녁 미국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로 고통받는 시간제 노동자에게 급여세를 인하하고 구제책을 제시하는 법안을 의회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호텔과 항공, 크루즈 등 미국인들이 여행 계획을 취소함에 따라 피해를 본 관련 산업에 대한 지원책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언론은 대통령의 발표를 받아 급히 속보로 소식을 띄웠다.

근로소득세의 감면 조치는 부양책으로서는 꽤 의미가 있는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감면 규모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큰 액수일 것을 언론은 예상했다.

그리고 이런 도움은 근로자는 물론이고 사업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부양책은 효과적으로 시장을 진정시킬 것이며 이번의 폭락을 잠재우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거로 기대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듯 시장은 전날의 하락을 복구하겠다는 모습으로 기운찬 상승을 준비했다.

“나스닥을 기준으로 전날 대비 3.38% 상승한 8,219에서 시작했습니다.”

조지훈의 보고에 한진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8,000을 깬 순간 다시 8,000을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실제로 시장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맞은 편에 자리하고 있는 나창운 사장을 바라보고 조금 전까지 하던 이야기를 마저 나눴다.

“그러니까 코인 그라운드의 타일러 버드 CEO가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요?”

“네.”

나창운은 짧게 대답한 후 잠시 고개를 돌려 모니터링 화면을 살폈다.

시가를 기준으로 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지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창운은 괜히 바쁜 시간에 찾아와 한진영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될 만큼 지수의 공방은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진영은 나창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 사장님 쪽이 지금은 더 중요해 보이니까요. 계속 말씀해 보세요.”

한진영의 말에 나창운은 정신을 차리고 조금 전 이야기를 자세히 했다.

“현재 코인 그라운드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까지 급등했던 코인 가격이 현재 1/5 수준까지 빠져 내려가며 코인 거래소들이 극심한 자금난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코인 그라운드조차 자금난을 걱정해야 할 지경입니다.”

“자금난…… 딴짓한 거 아닙니까? 코인 가격이 오르거나 말거나 수수료를 받아먹는 코인 그라운드가 자금난에 빠질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요?”

“딴짓 때문이라기보다는 지급 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코인 가격이 급락하면서 기업가치가 하락한 것이 큰 문제입니다.”

“지급 준비금을 코인으로 보유하고 있었다고요?”

한진영이 황당하다는 듯이 묻자 나창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한진영과 같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네. 코인 그라운드뿐만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코인 거래소들이 지급 준비금을 코인으로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코인 호황기에는 거래소에 이득을 몇 배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라 많이들 선호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불황기이겠죠.”

한진영은 비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표정을 보고 바로 모니터링 화면에 코인 그라운드와 대표 코인의 현재 차트를 띄웠다.

폭포가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면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직각으로 꺾여 내린 것이 보는 것만으로 시원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진영은 바뀐 화면 속의 차트를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고점 대비 1/5 토막이 났군요. 코인 가격은…… 그것보다 더 심하게 빠졌고요. 대표 코인으로 불리는 코인 가격이 3,000달러 대까지 빠졌으니…… 걱정이 될 만도 하겠습니다.”

나창운은 고개를 돌려 한진영이 보고 있는 화면을 같이 바라보고는 말했다.

“인베스트먼트에서 분석하기로는 여기서 가격이 더 하락하여 2,000달러대를 하회할 경우 뱅크런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뱅크런이 발생했을 시 코인 그라운드가 필요한 자금은 약 300억 달러로 예상됩니다.”

“300억 달러…… 고객들에게 줄 돈을 코인으로 보유하고 있으니 더 머리가 아프겠군요.”

한진영은 가볍게 웃으며 나창운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코인 그라운드에서 빠지자 브레이크를 걸어줄 사람이 없었나 봅니다. 그러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레버리지를 걸어버린 것이겠죠.”

한진영의 말에 나창운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씀대로인 것 같습니다. 잘될 줄 알고 욕심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얻어맞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창운은 코인 그라운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는 입맛이 씁쓸한 것을 느꼈다.

코인 그라운드는 자그마한 회사일 때 나창운이 직접 컨택하여 투자를 진행한 곳이었다.

코인 그라운드가 업계 일인자가 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성장하여 독보적인 회사로 자리 잡는 것까지 곁에서 다 지켜봤다.

비록 코인 그라운드와 생각하는 바가 달라 서로 찢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창운에게는 남과 같지 않은 기분을 가져다주는 곳이 바로 코인 그라운드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코인 그라운드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에 한진영에게 보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기왕이면 코인 그라운드가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한진영과 대화를 해보자 그들의 잘못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진영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코인 그라운드는 욕심을 냈던 것이었다.

나창운이 반쯤 포기하고 다음 보고를 하려 할 때 한진영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좋습니다. 한번 만나보지요.”

“네? 만나주시겠습니까?”

“네. 만나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나창운을 향해 한진영이 빙그레 웃었다.

“나 사장님이 감사할 일은 아니지요. 할 일을 한 것뿐이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진영은 코인 그라운드를 대신하여 감사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후 잠시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일로 어려움에 처한 것은 코인 그라운드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같은 일로 많은 기업이 자금 경색을 겪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나창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그래도 그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이번 코로나19와 유가 사태로 많은 기업이 타격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입니다. 투자를 진행하려는 곳은 은행들로부터 대출이 나오지 않아 투자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운영자금이 필요한 곳들도 마찬가지로 자금 압박을 받기는 마찬가지고요. 좋은 기업들이 자금을 구하지 못해 많이 쓰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나창운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계속 이야기했다.

“우리가 투자한 기업들도 많이 힘든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금 증액을 요청하거나 아니면 새롭게 투자받고 싶다는 곳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코인 그라운드와 마찬가지로 세이지가 여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많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나창운의 보고에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시죠.”

한진영은 나창운을 향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이번에 우리가 얻은 수익이 꽤 많습니다. 어차피 이 돈을 모두 증시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규모도 크고 자산운용사의 현재 인력만으로는 많이 벅찬 상황이니까요.”

나창운은 아직 정확하게 자산운용사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였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룹 내의 떠도는 소문으로는 1,000억 달러쯤 벌지 않았겠냐는 이야기가 흘러 다닐 뿐이었다.

한진영의 말을 듣고 소문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 나창운은 마른침을 삼키며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단기간에 1,00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 듯한 표정도 지어 보였다.

한진영은 나창운의 표정에 웃으며 말했다.

“그 돈 중 일부를 인베스트먼트 쪽으로 돌리겠습니다. 지금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곳에 두 배의 자금을 집행해 주십시오. 만약 자금난을 겪고 있는 곳이 있다면 특별 대출을 진행하여 자금난을 해결해 주시기도 하시고요.”

“계획된 돈의 두 배를 집행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이번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들의 숨통이 조금 트이지 않겠습니까?”

“트일 뿐입니까? 이야기를 들은 곳들은 모두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지금 시장에 도는 소문이 워낙에 험악해서 걱정입니다.”

나창운의 말에 한진영이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겁니다. 시장에서는 걱정이 많겠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이번에 번 돈도 꽤 많고 투자를 진행하는 곳은 자금난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있는 곳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모두 좋은 곳이라고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그러니 자금난을 해결해 줘야지요. 우리가 기존에 투자한 자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한진영은 가볍게 웃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가 아주 좋지 않습니까? 그렇게 좋은 회사들이 자금난을 우려하고 있는 이때 우리가 돈을 더 투자하고 지분을 획득한다면…… 우리의 수익이 더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역시…… 회장님께서는 단순하게 투자 회사를 돕기보다는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으실 생각이시군요.”

“겸사겸사 도움도 주고 이득도 얻으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한진영이 은근하게 웃자 나창운은 한진영의 의도를 파악하고 바로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투자금 확대 계획을 정리해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진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모니터링 화면을 가만히 바라봤다.

마침 그곳에서는 테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시장의 화두는 테라였다.

폭발적인 상승력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식이라는 것이 합쳐져 뉴스 대부분을 테라가 차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였다.

그렇게 폭발적인 상승이 꺾이자 제일 깊은 하락을 보여줬다.

“테라가 150달러를 찍었군요.”

나창운은 고개를 돌려 한진영이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관심을 보였던 만큼 하락의 깊이도 깊은 것 같습니다. 최고점이 320달러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반 토막 이상이 난 상태입니다. 소문에는 공매도 또한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작년 저점 대비 5배가 오른 종목이니 공매도도 많았겠지요. 떨어지길 바란 사람들도 많았을 테고요. 우리도 꽤 많이 공매도를 쳐 놓은 상태입니다.”

“우리도 말입니까? 그건 몰랐습니다.”

나창운은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자산운용사와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에 자산운용사가 어디에 어느 정도나 공매도를 쳤는지 알지 못하는 나창운이었다.

그저 한진영이 주재하는 사장 회의나 임원 회의에서 지금의 포지션을 어렴풋이 듣는 게 전부였던 나창운이었다.

그래서 단순히 나스닥지수 고점 근처에서 매도 포지션을 잡았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테라도 공매도를 쳐 놓고 있을 줄은 몰랐던 나창운이었다.

한진영은 나창운의 놀란 얼굴에 가만히 웃고는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공매도를 치고 지분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저는 여전히 테라를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나창운에게로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테라의 노아 스미스 CEO에게도 물어보십시오. 자금이 필요한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면…… 함께 만나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함께요? 누구와 함께 말입니까?”

나창운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자기와 함께 만나자는 거라면 한진영이 굳이 ‘함께’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코인 그라운드와 함께 보고 싶습니다.”

“코인 그라운드와…… 테라를 함께 보시겠다고요?”

“네. 어차피 두 곳 모두 같은 상황인 만큼 굳이 따로 만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함께 보도록 하죠.”

나창운은 한진영의 의도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했다.

아무리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엄연히 다른 두 곳의 회사였다.

그런 곳을 함께 보자고 하다니 나창운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허튼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던 한진영이었기에 나창운은 알겠다는 말을 건네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진영과 나창운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3.38%에서 시작한 나스닥 지수가 약보합 선까지 밀려 내려갔다.

그동안 시장을 짓눌러오던 힘이 빠져나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장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정부는 장 막판 시장을 돌려세울 만한 모습을 보여줬다.

대통령이 의원들과의 대책 회의에서 소득세를 올해 말까지 면제하기로 한 것이었다.

시장은 단숨에 환호와 함께 상승을 향한 깃발을 들어 올렸다.

소득세 면제는 시장을 기쁘게 할만한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다우와 S&P 500 그리고 나스닥까지 모두 5%에 근접한 상승을 보였다.

전날 7%가 넘는 하락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상승이지만 그래도 장 막판 보여준 큰 폭의 상승에 시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가에서도 좋은 소식이 이어졌다.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통화를 하여 에너지 시장 등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는 발표가 백악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시장은 미국 대통령이 이번 유가 사태와 관련한 대책 협의를 사우디와 한 것이 아니냐고 판단했다.

한편, 러시아에서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이 러시아 국영 방송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OPEC 회원국과 비OPEC 산유국들의 감산 협정이 연장되지 않은 것이 우리가 더 이상 협력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그는 “필요할 경우 감산과 증산 등의 여러 수단이 있으며 새로운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시장 상황을 평가하기 위해 오는 5~6월에 정례 회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로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장은 기존 감산과 추가 감산 사이를 가르는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의 발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치킨게임으로 가는 것을 러시아가 원하지 않다고 인터뷰를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가는 한때 8%까지 근접하여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백악관의 발표와 러시아의 이야기로 유가가 30달러대를 재차 하락할 일은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시장의 판단에 유가가 상승으로 화답했다.

증시와 유가는 잠시 봄기운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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