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515화 (515/650)

515화 다이빙 선수가 스프링보드 위에서 힘차게 발 구름을 한 모습

춘절 연휴로 11일간 휴장했던 중국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블랙 먼데이’를 맞이하고 말았다.

상하이 종합지수가 8% 가까이 하락했다.

특히, 개장하자마자 30분 만에 3,000개가 넘는 종목이 가격제한폭인 10%까지 하락하며 거래가 정지하는 기록을 써 내렸다.

중국이 공장 폐쇄로 인해 GDP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시장이 흔들린 것이었다.

중국의 흔들림에 전 세계가 같이 흔들렸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2%가 넘게 하락하며 여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S&P 500과 나스닥도 2% 가까이 떨어지며 우한 폐렴에 대한 이슈가 상승장을 끝내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힘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테라의 상승세만은 여전했다.

280달러 자리를 꿋꿋이 지켜내며 어떻게든 300달러를 넘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테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만큼 나스닥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 새로운 달이 시작되며 증명됐다.

2월의 첫날이 밝아오자 뉴욕증시는 전날의 폭락을 딛고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나스닥이 1.3%의 상승을 보이며 9,200선을 어떻게든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증시의 상승 선두에는 테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소비재들이 높은 실적을 바탕으로 미국의 경기가 죽지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비록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타격을 받고 있지만, 소비 천국인 미국이 건재하는 한 이번 일은 지나갈 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중이었다.

그리소 소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유동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며 결국 시장은 우한 폐렴이라는 악재를 딛고 다시 상승세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연준(Fed, 연방준비제도)의 2주 만기 레포(RP, 환매조건부채권)에 600억 달러가 몰려들었다.

연은의 한도는 300억 달러로 레포의 한도보다 2배 가까운 금융기관들의 자금이 몰려든 것이었다.

시장에는 유동성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것이 레포 시장을 통해 증명됐다.

300억 달러 입찰에 실패한 자금은 그대로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흘러 들어간 자금은 마구잡이로 주식을 낚아챘다.

일방적인 매수세에 나스닥이 2.1% 오르며 결국 신고가를 작성하고 말았다.

다우와 S&P 또한 신고가에 접근하며 당장 내일이라도 신고가를 뚫어낼 거라는 신호를 시장에 건넸다.

그리고 중국 쪽에서 나온 뉴스가 이런 신호에 힘을 더했다.

인민은행이 대출우대금리(LPR)와 지급준비율(RRR) 인하를 적극 검토 중이라며 시장에 대규모 자금 공급을 예고한 것이었다.

G2라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중앙은행이 시장을 지키고 있는 만큼 이제 우한 폐렴 이야기는 오히려 시장에 건전한 조정을 준 자극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시장은 재차 상승을 위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시장 분위기와 반대로 움직이는 곳이 있었다.

“현재 각 펀드의 보유분을 50% 이하까지 비워놓은 상황입니다.”

홍대민 자산운용사 사장의 보고에 한진영은 서류를 내려다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40% 수준까지 꾸준히 낮추면 됩니다. 브릿지랜드 쪽의 포지션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공매도 포지션을 강화해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풋옵션도 계속 모아가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공매도와 풋옵션에 한계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잡히는 대로 족족 잡아가는 중입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대로 쭉 진행하면 됩니다. 원유 쪽은 어떻죠?”

한진영은 서류를 넘기며 질문을 던졌고 홍대민은 준비해온 것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주식시장과는 반대로 현재 원유 선물 시장은 계속 하락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50달러 지지대를 깨는 것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가만히 서류를 덮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톡 톡 톡 톡.

홍대민은 한진영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말없이 한진영이 생각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한진영은 홍대민을 바라보고 물었다.

“한 타이밍 끊었다 가자고 한다면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한 타이밍 끊는다고요?”

“네. 여기서 매도했던 포지션을 풀고 조금 더 높은 곳에 다시 매도 때리는 것 말입니다.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홍대민도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하자면 못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그 폭이 크지 않다면 안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렇지요?”

“다 저 때문입니다.”

홍대민은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포지션이 공개된 바람에 시장에서 우리의 포지션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상황입니다. 이런 때에 가지고 있던 매도 포지션을 풀게 되면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를 주시하는 시선을 더욱 강화할 것이 분명합니다.”

홍대민의 말에 한진영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그렇게 우리를 살피다가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지금의 포지션을 본다면…….”

“좋습니다. 그럼 끊어가는 것 없이 그대로 가는 거로 합시다.”

“죄송합니다.”

홍대민은 한진영의 말에 허리를 숙여 급히 사과했다.

한진영은 구십 도로 허리를 꺾은 홍대민을 보고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이미 지난 일입니다. 이제 그만 미안해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우리 포지션이 공개되었다고 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번처럼 끊어 가는 것을 저 때문에 하지 못하니…… 마음이 좋지 못합니다.”

“어차피 끊어가든 끊어가지 않든 크게 차이 없습니다. 겨우 500틱 정도 더 이득을 보는 건데 거의 10,000틱을 먹을 것을 생각한다면 1/10도 되지 않는 이득은 무시해도 되는 수준입니다.”

“10,000틱이요?”

홍대민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10,000틱을 먹을 일이 있나?’

10,000틱을 먹기 위해 끊어가자는 것이라면 그건 말이 됐다.

그러나 한진영이 한 말은 10,000틱을 먹을 테니 끊어가지 말자는 것이었다.

10,000틱이라면 100달러부터 0달러까지 모든 걸 발라먹었을 때나 가능한 숫자였다.

그런데 지금 세이지가 들어간 숫자는 65달러였다.

현재 50달러가 되며 1,500틱을 먹어놓은 상태였지만 10,000틱에는 한참 모자라는 숫자였다.

게다가 0달러가 된다고 하더라도 6,500틱으로 10,000틱과는 차이가 크게 났다.

홍대민은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다 지워지기 전 한진영이 재차 이야기하며 홍대민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네. 저는 10,000틱을 먹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잡고 견디도록 하시죠. 괜히 500틱 먹겠다고 덤비다가 다른 포지션에도 영향을 줄지 모르니까요.”

“회장님.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까? 10,000틱이라고요?”

한진영은 홍대민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대로 잘 들으셨습니다. 10,000틱 맞습니다.”

“아니. 지금 어떻게 10,000틱을…… 먹는다는 말씀인가요? 원유가격이 0달러가 될 리도 없지만 0달러가 되더라도 6,500틱이 한계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지금은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두고 보십시오. 불가능이 현실이 되는 일이 곧 벌어지게 될 테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홍대민은 더는 묻지 못했다.

두고 보면 안다는 말에 다시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가가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10,000틱이 갈 일이 있나?’

홍대민은 10,000틱을 먹을 방법은 밑으로 더 빠지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0달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0달러 혹은 -40달러까지 가야지 한진영의 말이 현실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기름을 사면 돈을 주는 세상이 오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이너스로 가는 일은 이론이건 현실이건 모두 불가능했다.

원유 선물의 하단은 0.01달러에 물리적으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는 물론이고 0달러에는 주문이 들어가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마이너스로 가는 일은 ‘현재’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혼란스러워하는 홍대민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뉴욕지수가 그려지고 있는 화면을 바라봤다.

고점을 뚫어낸 지수는 이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다시 한번 힘차게 나아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한진영의 눈에는 도약 위치가 다르게 보였다.

다이빙 선수가 스프링보드 위에서 힘차게 발 구름을 한 모습.

한진영은 지수의 모습이 다이빙 선수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

미국의 경제에 대한 자신감은 상당했다.

연준 의장이 의회에 출석해 미 경제에 낙관론을 내비치자 시장은 다시 한번 힘차게 위로 힘을 뽑아낸 것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지만 그런 모습은 아시아 변방에서 일어난 모습쯤으로 만들어 버렸다.

실적발표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70%가 넘는 기업이 예상 실적보다 더 좋은 실적을 발표하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더욱 희망차게 했다.

시중의 유동성은 이런 장밋빛 상황에 더욱 밝은 빛을 칠해 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그것보다 미 경제의 단단함에 사람들이 계속 손을 들어주는 모습이었다.

“회장님. 마무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홍 사장에게 고생했다고 전해줘.”

레이 젠슨은 소파에 앉은 채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한진영의 질문에 레이 젠슨 고문은 고개를 돌려 시장을 그리고 있는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9,700까지 근접한 나스닥을 바라보고 말했다.

“9,800까지 한 걸음이야.”

“네.”

“아직도 자네 생각은 바뀌지 않았나?”

“네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면 큰일 아닙니까? 테라를 300달러에서 절반을 던진 시점에 여기서 더 시장이 앞으로 달려나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큰 문제 아니겠습니까?”

불안감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한진영의 모습에 레이 젠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미 회사를 넘긴 시점에서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게 우습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 자네 정말 확신이 있는 건가?”

“확신이 없다면 저런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만은 않겠지요.”

쾅!

티비 화면 속의 머치 버치킨스는 세이지라고 적힌 도자기들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역시 동양인 놈들은 믿을 놈이 없어. 이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놈들. 뭐? 나스닥은 10,000을 찍지 못할 거라고? 테라의 끝은 300달러라면서 물량을 던져대더니 아주 정신이 돌아버린 건가? 거의 다 왔으니 정리하라고? 코로나바이러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고? 뒤져라 이 마스크맨아!

쾅! 쾅! 쾅!

“제작 지원을 철회했더니 저럽니다. 하지만 잘됐지요. 덕분에 우리가 고점에서 물량을 빼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으니까요.”

“그러니까 알려져도 괜찮을 정도로 확실하다는 거지?”

“확실합니다. 물량을 정리하고 인버스로 갈아탄 포지션만 현재 200억 달러에 달합니다. 잘못되면 우리도 타격이 상당합니다.”

“흐음~”

한진영의 말에 레이 젠슨은 더는 닦달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고민이 깊은 사람이 한진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이지가 포지션을 완성한 뒤에도 나스닥의 상승은 꺾이지 않았다.

테라의 상승도 마찬가지였다.

300달러에서 멈출 거라고 이야기하고 정리했던 것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테라 상승은 300달러를 뚫은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9,800을 뚫고 마무리됐습니다.”

조지훈은 장 마감 장면을 확인하고 한진영에게 보고했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하여 중국의 경기부양 노력과 주요 경제지표 등의 호조로 장중 9,838까지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 막판 살짝 밀리며 9,817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테라의 종가는 303.2달러에서 마무리됐습니다.”

한진영은 자리에 앉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 왔네.”

“정말 다 온 건가요?”

보고를 마친 조지훈은 걱정하는 눈으로 그래프를 바라봤다.

9,700을 뚫어내고 9,750대에서 횡보하던 나스닥 지수가 오늘 아시아에서 나온 뉴스와 경제지표 발표 덕에 갭으로 횡보 라인을 뛰어넘었다.

이제 정말 10,000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10,000까지는 가고 무너지지 않을까요?”

“평소라면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어.”

평소의 한진영이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한진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지도 모를 조지훈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의 곁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자기조차도 지금 지수 모습에 힘이 없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지수의 상승세는 꺾일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쾅!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세이지 놈들 그 사기꾼 새끼들 말은 들을 필요 있다고 했습니까? 없다고 했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10,000을 못 찍을 것 같다는 사람 있으면 나와봐. 내가 다 이렇게 머리통을…….

쾅!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수박을 머치 버치킨스가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박살을 내버렸다.

조지훈은 마치 수박이 한진영의 머리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굳이 이런 화면을 띄워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리모컨을 들어 올렸다.

“가만히 놔둬. 더 보고 싶으니까.”

조지훈은 리모컨을 다시 내리고 한진영의 표정을 살폈다.

한진영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이지 놈들 하방 포지션을 잡았다는 소문이 월스트리트에 파다하게 퍼졌는데…… 어이? 미스터 한? 마스크맨? 지금 속 쓰리지? 손이 벌벌 떨리지? 여기서 더 올라가면 어쩌나 오줌이 질질 나오지? 너흰 이제 X된 거야. 알았어? 지금이라도 살고 싶으면 마스크 들고 여기로 나와. 돈도 함께 들고 오고……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돈을 버는지 알려줄 테니까. 이 등신 같은 놈아!

조지훈은 대놓고 화면을 통해 한진영을 향해 비속어를 남발하는 머치 버치킨스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머치 버치킨스의 말도 자기를 향한 말이 아닌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한진영의 모습에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돌리던 조지훈의 눈으로 새로운 뉴스가 하나 들어왔다.

[베이징 푸싱 병원의 확진자 수가 20일 기준으로 36명으로 늘어. 이 주 전의 9명에서 가파르게 증가했다고 알려져. 베이징대학 인민병원에도 3명의 확진자가 나와 격리에 들어갔다고 중국 매체가 보도. 코로나바이러스가 베이징까지 타격한 것으로 보여]

새해부터 나오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뉴스가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잦아드는 것이 아니라 확산되고 있다는 이야기만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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