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화 컨셉이 아닌 진짜가 되려 한다
한진영은 몹시 아깝다는 얼굴로 레이 젠슨 회장을 향해 말했다.
“세이지 인베스트먼트는 물론이고 세이지 전체를 합쳐도 회장님. 아니. 지금은 고문님이시죠? 고문님보다 돈을 많이 받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사 가도록 해.”
레이 젠슨이 한진영의 말에 툴툴대며 말했다.
“내가 큰 인심 써서 그냥 넘기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나 유지할 수 있게 1년에 5,000만 달러만 달라고 했더니 뭐? 5,000만 달러가 아깝다고?”
레이 젠슨은 한진영을 훽하고 돌아보고 말했다.
“그래. 그럼 그냥 사가도록 하게. 시장에서는 우리 브릿지랜드의 가치가 300억 달러쯤 한다니까. 그 돈 주고 사가도록 하게.”
“에이. 왜 그러십니까? 300억 달러야 그냥 호사가들이 아무렇게나 정한 금액 아닙니까? 대충 5억 달러쯤이면 될 것 같은데요?”
“5억 달러? 허허. 양심도 없지.”
레이 젠슨은 황당하다는 듯이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튼 돈놀이하는 놈치고 도둑놈 아닌 놈 없다더니 나한테도 사기를 치려고 그러나?”
“사기라니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당당하게 인수하려고 하는 거지요.”
“브릿지랜드를 5억 달러 주고 사겠다는 게 당당한 거야? 에이. 염치도 없는 놈아.”
레이 젠슨은 더는 듣기 싫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리 오게. 자네하고 이렇게 노닥거리면서 시간 보낼 수는 없어. 지금부터 인사해도 여기 온 사람하고 다 인사 못 할 테니까.”
“또 인사해야 하는 겁니까?”
한진영이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자 레이 젠슨이 한진영을 끌고 갔다.
“따라와. 오늘 아니면 인사 못 할 사람이 저기 있으니까.”
“매번 보는 사람마다 오늘 아니면 못 보는 사람이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게 정말이니까. 그러지. 잔소리 하지 말고 따라오게.”
레이 젠슨은 한진영이 뭐라고 하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한진영을 끌고 뉴욕 주지사 앞에 섰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을 뉴욕 주지사에게 소개하며 자기가 한진영을 믿기에 브릿지랜드를 맡길 수 있었다는 말하며 소개했다.
이런 소개는 파티 회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계속됐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은 정관계는 물론이고 경제계에서도 내로라하는 사람들로 파티장이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는 브릿지랜드의 고객들이었다.
깡깡깡.
레이 젠슨은 와인 잔을 포크로 두드리고 파티회장 가운데에 섰다.
“오늘 이렇게 참석해주신 많은 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레이 젠슨이 말문을 열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레이 젠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흥미로운 눈으로 레이 젠슨과 그의 곁에 서 있는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미 몇 번 만남의 자리를 가져 한진영이 익숙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진영에 관해 이름만 들어봤을 뿐 얼굴을 처음 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동양의 젊은 남자를 유심히 살피며 레이 젠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은 브릿지랜드와 세이지 인베스트먼트가 하나로 합쳐진 기쁜 날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분이 브릿지랜드와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합병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오늘 자리를 빌려 여러분의 오해를 해소해드리고자 이렇게 잔을 들어 올리게 됐습니다.”
레이 젠슨은 와인 잔을 들어 올린 채 계속 이야기했다.
“저는 5년 전부터 은퇴를 고민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은퇴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저를 대신하여 브릿지랜드를 이끌어줄 사람을 찾지 못해 늙은 몸을 이끌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한 회장을 만난 이후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을 손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저는 한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 젊은 나이의 그가 잘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냐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물론이고 현재 월스트리트의 누구보다 탁월한 펀드 운용 능력을 보여주는 한 회장을 보고 생각을 고쳤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나를 대신할 수 있다. 아니. 나보다 더 나은 브릿지랜드로 만들 수 있다. 확신이 생겼습니다.”
레이 젠슨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레이 젠슨이라는 거물이 이렇게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존재가 지금까지 있었냐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세이지는 브릿지랜드와 다른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브릿지랜드와 달리 세이지에는 한진영 회장 외에도 많은 인재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레이 젠슨은 지금 말을 할 때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지금까지 오랫동안 브릿지랜드를 이끌며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인재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이지에는 한진영이라는 존재 외에도 나창운이라는 기가 막힌 투자의 귀재가 존재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홍대민이라는 운용의 대가 또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수많은 인재가 줄줄이 세이지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펀드를 운용하기 위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브릿지랜드와 세이지의 다른 점이자 가장 부러운 점입니다.”
레이 젠슨은 말을 멈추고 부러운 듯이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나의 오랜 친구이자 오랫동안 함께 해온 고객인 여러분들에게 당당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세이지는 우리 브릿지랜드보다 더 나은 곳이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저를 믿듯이 한 회장을 믿어 주시고, 브릿지랜드를 지지하듯이 세이지를 지지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랜 세월 감사했습니다.”
레이 젠슨이 말을 마치고 제자리에 선 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박수로 레이 젠슨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대신 전했다.
그들의 주머니를 두둑이 만들어줬던 오랜 전우가 전쟁터를 떠나는 것을 그들의 따뜻한 박수 소리가 멀리까지 그를 배웅했다.
레이 젠슨은 악수를 청해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맞아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스무 명쯤의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을 때 레이 젠슨 앞에 한 사람이 다가왔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의 옷자락을 잡아끌어 자기 곁에 오게 만든 뒤 찾아온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오실 거로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저를 불러주셨으니 저도 와서 인사를 드려야지요.”
60대의 백인은 레이 젠슨을 향해 거리를 둔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다.
레이 젠슨 또한 살갑게 대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데면데면한 모습으로 남자를 향해 인사를 하고는 한진영을 소개했다.
“인사드리도록 하게. 텍사스 지역 석유 업체 연합의 의장직을 맡고 계시는 로열 트러스트사의 존 애벗 CEO이시네.”
한진영은 드디어 보고 싶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것에 반가운 마음으로 존 애벗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니요. 저는 레이 젠슨 회장님과 이야기하러 왔습니다. 당신은…… 그만 물러나세요.”
존 애벗은 한진영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한진영은 명백히 인종차별로 느껴지는 존 애벗의 시선에도 웃는 얼굴을 잃지 않았다.
레이 젠슨과 함께 여러 번 단련한 덕분인지 존 애벗의 이런 시선쯤은 웃으면서 받아넘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애벗 CEO님을 이곳에 모시자고 한 건 저이니 저와 이야기를 나누시겠습니까?”
“나를 당신이 부르자고 했다고요?”
“네.”
한진영은 레이 젠슨을 슬쩍 바라본 뒤 그렇지 않냐는 시선을 보냈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존 애벗에게 말했다.
“사실입니다. 존 애벗 CEO님을 부르자고 한 건 여기 있는 한진영 회장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회장이 아니니 회장이라고 부르시지 마시고 그저 고문으로 불러주십시오.”
“고문이요? 하하. 완전히 세이지에 종속되어 들어가셨군요.”
존 애벗은 한심하다는 듯이 레이 젠슨을 바라보고 말했다.
“우리가 비록 10년 전 인연이 끊어졌다지만, 그 전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을 생각하여 이곳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한심스럽게도 변하셨습니다. 냄새 나는 돈에 자신을 팔아야 할 만큼 그렇게 돈이 궁하셨습니까?”
존 애벗의 말에 레이 젠슨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과거 좋지 못한 상황에서 헤어졌다지만 존 애벗의 말이 너무 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냄새가 나든 말든 돈은 돈이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설마 존 애벗 CEO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돈이 싫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진영은 무슨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는 얼굴로 존 애벗을 살폈다.
그리고 혀를 차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애벗 CEO 앞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말은 꼭 드려야겠습니다.”
한진영은 한 걸음 다가가 존 애벗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냄새를 따지기 전에 먼저 손에 움켜쥐고 주머니에 집어넣어야 진짜 사업가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진영은 얼굴을 뒤로 물리고 벌레 씹어먹은 얼굴을 하는 존 애벗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50만 톤 ULCC(Ultra Large Crude Carrier : 초대형 유조선) 40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원하시면…….”
한진영의 말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존 애벗은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손을 들어 한진영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레이 젠슨을 향해 말했다.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회장님의 마지막 모습을 기대하고 이곳에 왔는데…… 세이지? 하하. 어디 이름도 없는 동양의 코흘리개와 함께 잘해보십시오.”
존 애벗은 한진영을 향해 눈을 흘기고 몸을 돌렸다.
레이 젠슨을 향해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떠나려는 존 애벗을 향해 한진영이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가시는 길에 마스크와 독감 진단키트 잊지 말고 가지고 가십시오. 저희가 투자한 회사에서 만드는 겁니다. 혹시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이야기하시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존 애벗은 한진영이 자기를 향해 조롱한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고개를 홱 돌려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갈 듯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제가 로얄 트러스트로 소개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보고 필요하시다면…….”
한진영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존 애벗은 몸을 돌려 빠르게 파티장을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놀렸다.
한진영은 그런 존 애벗을 향해 끝까지 소리쳤다.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해 주십시오. 저희는 항상 로얄 트러스트를 기다리며 문을 열어놓을 테니 말입니다.”
레이 젠슨은 한진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말했다.
“자네 뭐 하는 건가?”
“뭐하긴요? 오늘과 같은 자리가 쉽게 오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영업을 하는 것이지요.”
“영업을…… 자네는 이렇게 해왔나?”
레이 젠슨은 지금까지 한진영이 제대로 일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가 어떤 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는지 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지금 이순간 레이 젠슨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정말로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는 말인가?”
“설마 그러기야 했겠습니까?”
한진영은 그럴 리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하는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레이 젠슨과 말을 하며 손을 들어 조지훈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조지훈을 향해 지시하는 것을 옆에 들은 레이 젠슨은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한진영은 조금 전 존 애벗을 향해 이야기한 일을 진짜로 지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로얄 트러스트에 미래해운에 관한 소개서를 보내도록 해.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말이야. 그리고 보낼 때 진단키트와 마스크도 잊지 말고 보내도록 하고…….”
“마스크는 얼마나 보낼까요? 1,000장이면 될까요?”
“1,000장? 어…… 너무 많다. 100장만 보내. 그 정도만 보내도 충분해.”
레이 젠슨은 이마를 짚으며 한진영에게 물었다.
“마스크라는 게 그 아무 색깔도 들어가지 않은 하얀…… 병원에서 쓰는 그거 말하는 건가?”
“네. 비슷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만드는 건 조금 더 고급이죠. 바로 이겁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레이 젠슨을 향해 자랑하듯이 펼쳐 보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정한 규격이 있습니다. 미세먼지를 얼마나 차단해줄 수 있는지에 따라 80, 94, 99로 등급이 나뉩니다. 보통은 80과 94만 돼도 일상생활에서 쓰는 데는 충분하죠.”
“아니. 여보게. 도대체 뭐 하는 건가? 내가 마스크 설명을 오늘 같은 자리에서 들어야겠어?”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와 브릿지랜드의 합병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초대하여 온 손님들의 경우에는 브릿지랜드의 고객들로 그들에게 세이지에 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 합병 후에도 계속 고객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런 곳에서 한진영은 생뚱맞게 마스크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레이 젠슨으로서는 한진영이 이러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진영의 미소는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한진영은 웃는 얼굴로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입구에 가지고 온 것 놔두고 떠나시는 분들에게 친절히 나눠드려.”
“네. 이미 지시해 놓았습니다.”
“잘했어.”
레이 젠슨은 파티장 입구에 커다란 박스들이 날라져 오는 것을 보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저게 뭔가?”
“가시는 분들에게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나눠드리기 위해서 가지고 온 겁니다.”
“여보게.”
레이 젠슨은 화를 내는 것도 이제는 기운이 없는 것인지 잔뜩 힘이 빠진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저걸 왜 여기에서 나눠줘?”
“그러면 저에 대한 느낌이 머리에 확실히 각인 될 테니까요.”
“뭐?”
“마스크를 나눠주고 진단키트를 나눠준 세이지로 말입니다.”
“지금 오늘 자리에서 내가 자네를 소개한 게 부족하다고 느낀 건가?”
“솔직히 고문님의 소개만으로는 저를 알리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뭐라고?”
“월스트리트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젠슨 회장님과 같은 분들 말입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한진영의 말에 레이 젠슨 또한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들었다.
한진영이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분이 모인 곳에서 저를 각인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단순히 실력으로 저들의 머릿속에 세이지와 한진영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려면 10년도 부족하고 20년은 걸려야 겨우 미스터 한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게 될 뿐이겠죠.”
한진영의 말에 레이 젠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월스트리트에서 이름을 알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레이 젠슨이 이렇게 일부러 자리까지 만들어 한진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템과 함께 이야기한다면 우습게도 저를 잘 기억하게 될 겁니다. 마스크만 보면 제 생각이 날 테니까요.”
“이름만 알려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이름만 알리는 것만으로 큰 효과를 보는 것이지요.”
한진영은 입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저라는 존재를 머릿속에 떠올리게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일이 쉽습니다.”
한진영은 가지고 온 박스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슬쩍 쳐다봤다.
그들은 와인 잔을 든 채로 세이지 직원들이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풀어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티장에 이런 류의 물건이 들어오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한진영의 손가락을 따라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는 레이 젠슨의 귀로 한진영의 말이 들려왔다.
“엄청난 수익을 올려야 겨우 그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던지며 저를 찾게 될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렇게 제 이름부터 먼저 각인시킨다면…… ‘그래서 그 사람은 어느 정도의 수익을 올린다고?’라는 말과 함께 저를 찾게 될 겁니다.”
“이미 저들은 내 고객이자 앞으로 자네의 고객이 될 사람이라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네를 찾을 거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이곳뿐만 아니라 저를 만나는 사람에게 모두 할 생각입니다. 일관되게 말입니다.”
“일관되게?”
“그게 중요하죠. 그래야 제 이름이 더 깊게 각인 될 테니까요.”
한진영은 나갈 때 받아 가는 것이 아니라 벌써 손을 내밀어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받아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 고객이 되었다고 주지 않고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만 준다면 그건 컨셉일 테니까요. 하지만 내 고객이건 아니건 모든 사람에게 준다면 컨셉이 아닌 진짜가 되는 겁니다.”
한진영은 마스크와 자기 쪽을 번갈아 바라보는 파티장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