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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88화 (488/650)

488화 내가 원할 때 나와 함께 해야 한다

홍대민은 지금까지 파악한 브릿지랜드의 자산을 가지고 운용 방향에 대해 보고했다.

-기존 브릿지랜드의 경우에는 매우 공격적인 포지션을 잡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상품이 극도의 성장형에 초점을 맞춰져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걸 조금은 유연하게 바꿀 생각입니다. 기존에 설정된 포트 비중을 살짝 조정하여 채권 비중을 좀 더 높이는 것이 어떤가 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조금은 안전판을 튼튼하게 만들 필요는 있습니다. 그럼 이건 그렇게 진행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한진영의 허락이 떨어지자 홍대민은 브릿지랜드의 자산 배분에 관해 탄력을 받을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일을 진행하게 되면 따라오는 반발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회장님. 혹시 브릿지랜드 내부에서 반발이 나오지 않을까요?

“우리가 브릿지랜드를 흡수했다는 것 때문에 브릿지랜드 내부에서 반발이 나올까 걱정하시는 겁니까?”

-네. 아무래도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것과 같으니까요.

현재 세이지의 자산은 20조를 갓 넘긴 수준이었다.

폭발적인 상승을 타고 펀드를 내는 족족 성공하고는 있지만 수십 년간 이어온 브릿지랜드의 180조에 가까운 자산에 비하면 1/9, 1/8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브릿지랜드를 흡수한다고 하기에는 저울추가 심각하게 기울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세이지 내부에서도 불안은 커져만 갔다.

먹고 흡수가 될지 걱정하는 사람들과 차라리 세이지가 브릿지랜드에 들어가는 편이 낫지 않냐는 이야기까지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 중이었다.

한진영은 걱정하는 홍대민을 안심시켰다.

“브릿지랜드가 지금까지 살아서 영업을 지속했던 이유는 레이 젠슨이라는 인물 때문이었습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해 펀드를 완벽하게 장악했기에 회사가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강력한 카리스마는 우리가 브릿지랜드를 흡수할 때도 도움이 될 겁니다.”

-레이 젠슨 회장님이 브릿지랜드 내부를 진압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그리고 고문으로 레이 젠슨 회장님을 영입한다면 브릿지랜드 내부의 불만은 걱정할 게 되지 않을 겁니다.”

한진영의 이야기를 들은 홍대민은 그제야 조금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레이 젠슨 회장님이 자리를 지키고 세이지에 힘을 몰아 주신다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레이 젠슨 회장님이 가시는 곳이 브릿지랜드입니다. 반발하는 사람들은 정리하고 오신다고 하니 그건 우리가 걱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쪽을 걱정해야지요. 어떻습니까? 본사에서는 별말이 없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조금 전까지 걱정하던 홍대민의 모습은 단숨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짓고는 한진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브릿지랜드를 문제없이 인수할 수 있는지에 관해 걱정하고 있을 뿐 오히려 좋아 죽으려고 합니다. 이제 자본시장의 본토에 가서 본격적으로 매매를 할 수 있는 거냐고 들떠 있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매매야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데 뭐가 다르다고 그럽니까?”

-아무래도 월스트리트에 진출하는 게 증권업계에서는 꿈과 같은 일 아닙니까? 야구선수라면 메이저리그, 농구선수라면 NBA를 갈구하듯이 증권업계의 사람이라면 월스트리트를 꿈꾸기 마련이니까요.

“그럼 자산운용사의 본사를 뉴욕으로 옮기는 것도 크게 반대하지 않겠군요.”

-오히려 그걸 더 기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더 기대했다고요?”

한진영이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홍대민이 잔뜩 신난 얼굴로 이야기했다.

-이름만 월스트리트에 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몸까지 옮기는 것을 직원들이 더 기대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제대로 뉴요커들과 겨루고 싶다는 분위기까지 생겨날 정도입니다.

“하하하.”

한진영은 홍대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어떤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지 눈에 선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걱정했던 일이 의외로 쉽게 해결된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 됐습니다. 그럼 바로 본사를 옮기도록 하시죠. 이곳에 넘어와서는 브릿지랜드의 건물을 사용할 계획이니 몸만 오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아시아본부를 남길 생각이니 넘어오기 싫다는 사람의 경우에는 계속 남아도 상관없다고 전하십시오.”

-혹시 남는다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으면 어떻게 하죠?

“그럼 한국에서 사람을 충원하면 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넘어올 사람은 다 넘어오라고 하세요. 우리는 계속 사람을 모집해도 될 정도로 몸집이 커가는 속도를 사람 머리 숫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홍대민은 큰 걱정이 사라졌다는 시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진영은 말을 마친 뒤에도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다음 이야기는 뉴욕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을 남기고 홍대민과의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뒤를 이어 바로 조수아를 화면에 불러왔다.

-어머. 회장님. 얼굴이 말이 아니시네요.

조수아도 한진영의 얼굴을 보자마자 걱정하는 말투로 한진영의 몸 상태부터 물었다.

한진영은 웃으며 홍대민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조수아와 또 한 번 나눴다.

그리고 인사를 모두 마친 뒤 조수아를 연결한 이유를 먼저 이야기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브릿지랜드를 흡수하는 기념으로 브릿지랜드와 같은 운용 형태를 가지는 펀드를 새롭게 출시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헤지펀드 계열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조수아는 한진영의 의도를 파악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럼 몇 명을 모집하는 것으로 할까요? 100명이면 될까요?

“100명만으로 충분한 자금을 모집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모집 규모는 얼마로 생각하시고 계세요? 모집 규모를 먼저 알아야 숫자를 설정하기 좋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우선 스타트는 2조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2조요?

조수아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통상 헤지펀드의 경우에는 소수의 인원만 모집하여 운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헤지펀드 계열의 펀드가 많지 않았다.

모집 인원이 적다 보니 모집 금액 또한 작았기 때문이다.

헤지펀드가 활성화가 되어 움직이는 미국에서는 적은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큰 금액을 모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 달랐다.

시장 규모부터 헤지펀드의 인식 그리고 원금 보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투자성향까지 모든 것이 미국과는 달랐던 것이었다.

그래서 1억 이상을 고위험상품에 투자하는 사람을 모집하는 것보다 소액이더라도 많은 사람을 모으는 편으로 대한민국의 펀드시장이 성장했다.

그런데 한진영은 2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큰 금액을 모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2조를 모으겠다는 것에 조수아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몇 명을 모집하려 하시는 건가요? 10,000명이 넘어가면 헤지펀드 계열로 모집을 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설마 제가 10,000명을 모집하며 헤지펀드라고 이야기했겠습니까?”

-그럼…… 몇 명을…….

조수아는 도대체 몇 명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 감도 잡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우선 가볍게 최대 500명으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가입 금액은 처음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최소 20억으로 잡는 건 어떨까 합니다. 그렇게 진행하여 2조가 다 차면 500명이 안 되더라도 금액으로 잘라 더는 가입을 받지 않는 것으로 하도록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진영의 말에 조수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에 뭘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멍하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그녀를 보고 이해한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아 보인다는 것을 말입니다.”

한진영이 이해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자 조수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시네요. 저는 모르시는 줄 알았어요. 2조라니요? 500명으로 모은다면 최대 5,000억? 그것보다도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500명으로 2조라니요? 서로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시니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서로 안 맞는다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진영은 조수아의 말에 고개를 젓고는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자산이 아니라 투자를 그것도 투기 상품에 40억을 투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생각보다 부자가 많고 그 부자들의 투자 규모는 생각 이상으로 대단합니다. 그건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

한진영의 자신 있는 모습에 조수아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진영은 모든 것을 증명해왔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까지 주장을 한다면 한진영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것에 여전히 조수아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조수아의 모습에 빙그레 웃고는 지시를 내렸다.

“우리가 브릿지랜드를 흡수한 뒤 펀드를 판매한다는 발표를 하세요. 그리고 지켜보시면 제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펀드 판매를 발표하라고요? 브릿지랜드 흡수도 발표하고요?

“네. 발표하시면 됩니다. 흡수 과정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사실 실질적으로는 법률 과정만 남아있을 뿐이지 흡수를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덕분에 제가 이렇게 얼굴이 상한 것이고요.”

한진영이 얼굴을 쓰다듬으며 자기 얼굴이 상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수아는 한진영의 말에 미국에서 치열한 협상 과정이 있었다고 상상했다.

그래서 밤새 브릿지랜드 측과 조율하느라 한진영의 얼굴이 말이 아닌 상태가 된 거로 오해했다.

-네. 그럼 바로 지시대로 움직일게요.

미국에서 이렇게 한진영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면 지금은 의문을 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조수아는 한진영의 지시를 받아 바로 움직이겠다는 말을 남긴 후 화면에서 사라졌다.

한진영은 시계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때 막 노크를 한 뒤 들어온 조지훈을 바라보고 울상을 지었다.

“가야지?”

“네. 가실 시간이 됐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하아~ 내가 도망갈까 봐 잡으러 오셨나 보구나.”

한진영이 한탄하는 말을 내뱉자 조지훈의 뒤로 레이 젠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말로 뭐라고 그런 거야? 설마 가기 싫다는 말을 한 건 아니지?”

한진영은 기운이 달려 이제 그만두려 한다는 양반이 자기보다 더 기운찬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지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갈 시간이 됐는지 물어본 겁니다. 왜 직접 오셨습니까? 약속 장소에서 만나도 되는 데 말입니다.”

“알려줄 것이 있어서 왔지. 가세. 내 차로 타고 가면서 이야기 듣도록 해.”

“아~ 차도 같이 타야 하는 겁니까? 이런…….”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는 레이 젠슨 곁에 섰다.

“가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뒷모습을 보고 잠시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

“안녕하십니까?”

“아~”

한진영의 인사를 받은 보스턴 연은 총재인 로라 콜린스 총재는 손을 잡은 채로 한진영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한진영의 곁에 서 있는 레이 젠슨을 향해 웃는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께서 후계자를 동양인으로 세우실 줄은 몰랐습니다.”

상대방이 있는데도 굴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인종 차별적인 말을 한 로라 콜린스였다.

마치 한진영은 물론이고 레이 젠슨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하는 이야기한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레이 젠슨은 그런 그녀의 발언에 웃는 표정을 잃지 않고 말했다.

“저는 백인이나 흑인 그리고 황인을 따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후계자의 조건은 딱 하나. 뛰어난 감각만 원했고…….”

“여기 있는 동양인 소년이 그 조건에 부합한다는 이야기인가요? 이제 겨우 대학을 졸업했을 것 같은 이 소년이요?”

로라 콜린스가 한진영을 다시 한번 위아래로 훑었다.

한진영은 그런 로라 콜린스를 향해 자기소개했다.

“제 소개가 늦은 것 같습니다. 세이지의 한진영이라고 합니다.”

“세이지? 세이지 인베스트먼트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요? 제가 듣기로는 세이지 인베스트먼트가 코리아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용케도 세이지 인베스트먼트가 총재님의 관심을 끌었나 봅니다.”

“모를 수가 없지요.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코인 그라운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어서 말씀이나 해보세요. 관계가 있는 겁니까?”

“네. 제가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로라 콜린스는 가만히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진영을 위아래로 다시 자세히 살피고는 눈을 찌푸렸다.

“제가 듣기로는 분명 성이 나 씨라고 하던데…… 당신은 미스터 한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나 사장은 제가 임명한 사람입니다. 제가 오너입니다.”

“당신이요? 혹 집안에서 경영하던 겁니까? 아니지. 그런 사람을 젠슨 회장님이 후계자로 세웠을 리가 없지. 하지만 당신은 분명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졸업하지 않은 사람 같은데 당신이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이라는 겁니까?”

로라 콜린스는 절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한진영을 향해 꼬치꼬치 물었다.

“코인 그라운드와는 어떻게 인연이 된 겁니까? 그리고 지분 정리를 왜 한 겁니까? 당신이 주인이라면 대답해보세요.”

“제가 대답하지 못할 질문은 아니지만 대답하더라도 총재님께서 믿지 않으실 것 같군요.”

“그래서 대답을 못 하겠다?”

로라 콜린스는 코웃음을 치고 레이 젠슨을 향해 말했다.

“젠슨 회장님. 사람 잘못 보신 듯합니다. 차라리 제 제자 중에서 한 명을 뽑으시지요. 제가 조만간 제자들 이력서를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젊은 친구는…… 동양인 사기꾼 같으니 집어치우세요.”

레이 젠슨은 그녀의 말에 가만히 웃기만 했다.

로라 콜린스는 레이 젠슨에게 한진영은 아니라는 말을 다시 한번 남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떠나면서 한진영에게조차 인사하지 않은 로라 콜린스가 멀어져 다른 사람과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레이 젠슨이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기분이 좋지 않나?”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쟁이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화가 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기분이지?”

레이 젠슨은 한진영을 돌아봤다.

그리고 한진영의 표정을 살피며 한진영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얼굴을 살폈다.

한진영은 멀리 떨어져 있는 로라 콜린스를 바라본 채로 레이 젠슨의 질문에 대답했다.

“글쎄요. 피곤하다? 감정 소모를 하는 것을 저는 싫어하니까요.”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레이 젠슨의 말에 한진영이 환하게 웃었다.

“맞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는 에너지 소모가 몇 배나 되니까요.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시장의 흐름을 보는 편이 저는 더 낫지 않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레이 젠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앞으로 한동안 더 많은 곳에 다녀야겠어.”

“앞으로도 계속 다녀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그런데 시간 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와 약속했지?”

레이 젠슨은 브릿지랜드를 넘기는 조건을 한진영 앞에서 읊었다.

“인수가격은 제로. 대신 브릿지랜드라는 펀드 이름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 나와 함께 다녀야 한다. 어떤가? 피곤하면 돈을 내고 인수해가도록 하게. 인수가격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테지?”

레이 젠슨의 말에 한진영이 기가 찬다는 듯이 대답했다.

“못해도 200억에서 300억 달러는 되지 않습니까? 세이지를 몽땅 팔아도 그 정도 돈은 없습니다.”

“그러면 군소리하지 말고 내 곁에 붙어서 따라다니도록 해. 귀찮아하지도 말고…….”

레이 젠슨의 말에 한진영은 고등학생이 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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