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77화 (477/650)

477화 세이지 쇼크

코인 시장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강하게 불타올랐다.

대표 코인이라고 불리는 코인은 특이점이라고 보는 10,000달러 선을 넘은 뒤에도 멈출 생각이 없이 올라 어느새 15,000달러 선에 안착했다.

코인은 이제 과거처럼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된다는 시각이 시장에 널리 퍼진 것이었다.

코인이 돈이 된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퍼지자 코인 시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주식과 같이 과거 투자를 하던 사람들은 익숙한 환경으로 코인에 쉽게 접근했다.

주식은 도박이라며 멀리했던 사람조차 코인은 다를 수도 있다며 코인에 다가왔다.

남자와 여자, 나이 든 사람과 어린 사람 가릴 것 없이 코인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코인은 이제 새로운 메이저 시장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코인에 대한 위상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함께 주목받는 곳이 있었다.

[코인 그라운드 상장 결정. 공모가는 20달러 선으로 예상되며 시장가치 300억 달러에 기업공개를 진행할 예정]

[예상보다 낮은 가격에 공모가가 결정되며 매력적인 상품으로 뉴욕거래소에 등장할 예정]

[코인 그라운드에 대한 IPO 일정에 모든 투자자의 관심이 쏠려]

[코인 그라운드의 IPO 담당 증권사로 JM모건이 선정. 금년 내 상장을 목표로 다음달 중순 IPO일정 공개]

[시장의 높은 관심으로 일정이 생각보다 당겨져 진행될 수 있다고 전해져. 연내 상장이 아닌 다음 분기 상장이 유력]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이 코인 그라운드의 공모가를 밀어 올린 것으로 보여. 예상 공모가 40달러 육박]

뉴욕 월가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코인 그라운드의 상장에 관한 뉴스가 쏟아졌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거물급 기업공개에 뉴욕도 들썩거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코인 그라운드의 상장 소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었다.

세이지 인베스트먼트.

아시아 변방의 자그마한 나라에서 왔다는 세이지 인베스트먼트가 코인 그라운드의 지분 20%를 확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단숨에 시장의 중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바뀌는 코인 그라운드의 몸값이었지만, 최소 수십억 달러를 세이지 인베스트먼트가 확보할 것만큼은 바뀌지 않는 사실이었다.

코인 그라운드의 가치가 상승할 때마다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가치도 함께 상승했고 월가에서는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세이지 인베스트먼트 코인 그라운드에 이어 테라의 지분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

[테라의 지분 10% 이상을 확보한 것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이차전지 시장에서도 큰 영향을 보이고 있는 회사로 알려져]

[세이지 인베스트먼트 본격적으로 뉴욕 시장을 두드리기 위해 진출한 것으로 보여]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활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임이 확인]

코인 그라운드에 이어 테라의 지분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에 관한 소문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코인 그라운드의 기업공개만큼이나 세이지 인베스트먼트의 관심이 뜨거워져 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비단 미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의 세이지에 관한 관심은 미국 이상으로 뜨거웠다.

그동안 국내 증권사들이 해외 시장을 많이 두드리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크게 부각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되어 버린 세이지증권의 모습에 사람들은 코인 그라운드의 기업공개가 성공하길 빌었다.

그렇게 된다면 세이지증권 펀드에 가입하는 것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적인 유명 증권사의 펀드에 가입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명성에 기분 좋게 월가에서 넘어오는 소식을 즐겼다.

이렇게 사람들이 월가의 소식에 관심이 높아져 갈 때 그 소식을 이용하는 세력들 또한 함께 늘어났다.

[세이지증권이 보증한 새로운 시장]

[코인 시장. 새로운 투자처]

[4차 산업혁명의 중심지]

[코인이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세이지증권과 함께 바뀐 패러다임에서 뛰어놀자]

코인과 세이지를 한데 묶어 코인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었다.

세계적인 투자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이지.

그 세이지를 이슈화한 코인 그라운드라는 회사.

그리고 코인 그라운드가 취급하는 상품.

코인.

코인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코인과 연관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세이지와 코인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코인도 함께 시장의 화두로 만들어간 것이었다.

***

한진영은 최석영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뉴욕 사무실에서 시청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진행자는 가볍게 최석영에게 인사를 건네고 최근 근황에 관해 물었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

-아무래도 사업 개편도 있었고 사업부가 분사하여 새살림을 꾸리기도 하여 어수선한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던데요?

진행자의 말에 최석영이 머쓱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고 계속 진행 중인 사항입니다. 결정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은 소식이라는 것이 코인 그라운드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여 미리 선수 친 최석영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과 함께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화면 속에 나온 최석영의 말을 듣고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지금 상황을 알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이미 기업공개 주관사와 일정이 다 나왔으니 말입니다.”

JM모건의 주관하에 다음 달부터 공모가 진행된다는 일정이 이미 확정이 됐다.

조지훈은 이렇게 일정이 나온 마당에 그냥 오픈 하고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이 낫지 않냐는 생각에 한진영을 향해 물은 것이었다.

“오늘은 코인 그라운드의 상장 때문에 화면에 나온 게 아니니까 상장 관련 이야기는 접어두는 편이 좋아. 괜히 이야기의 주제만 흐려질 수 있으니까.”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의 말대로 기업공개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처음 알려지게 된다면 방송 주제가 코인 그라운드의 기업공개 쪽으로 바뀔지 몰랐기 때문이다.

조지훈이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자 그곳에서는 인사가 끝이 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최근 코인 시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코인 시장이 요즘 굉장히 뜨거운 상태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코인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바라보는 중입니다.

예상했던 대답에 진행자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세이지증권이 생각하는 코인 시장의 상승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코인이 4차 산업혁명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

진행자는 예상했던 대답이 나오면 바로 다음 질문을 하기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최석영의 입을 통해 나오자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최석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시 한번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코인 시장을 어떻게 보고 계신다고요?

-저희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부정적…… 이라고요?

진행자는 모두 쓸모없게 되어버린 질문지를 잠시 내려다봤다.

모든 질문이 코인 시장을 세이지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작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자리는 그걸 바탕으로 코인 시장의 미래를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에 처음부터 이야기가 꼬이고 말았다.

진행자가 잠시 머뭇거리자 이어폰을 통해 조정실에 앉아있는 PD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PD는 목소리 높여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잘 됐음을 이야기했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 방송국 입장에서는 오히려 호재라고 판단 내린 것이었다.

PD는 진행자가 끼고 있는 이어폰으로 급히 수정된 진행 방향을 알려줬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진행자의 순발력에 기대서 진행해야 하는 만큼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말로 어두워져 갔던 진행자의 머리를 깨웠다.

최석영은 수시로 바뀌는 진행자의 모습에 가만히 바라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 세이지증권은 물론이고 자회사들 모두 코인에 투자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유는 조금 전 이야기한 대로 코인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석영의 말에 진행자는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던졌다.

-세이지가 코인 거래소인 코인 그라운드에 투자했다고 알고 있는데 잘못된 사실이었던 겁니까? 아니죠. 분명 조금 전 확정된 것은 없지만 계속 진행 중이라며 코인 그라운드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아닙니다.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최석영은 카메라를 바라보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인 그라운드에 투자했고, 상장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중이 맞습니다.

-그런데 코인에 부정적이시라고요? 세이지의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세이지는 코인 그라운드와 같은 코인 거래소에는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지만, 코인에는 부정적이라는 것. 이것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최석영의 말에 조지훈이 살짝 걱정하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최 전무님의 목소리로 들으니 더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괜찮을까요?”

“분위기가 안 좋겠지. 지금까지 내 편이었던 자가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큼 불편한 진실은 없으니까.”

“그걸 아시는데도 진행하신 건가요?”

조지훈은 한진영의 이번 판단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모르는 척 지나가고 나서 나중에 사실 우리는 코인에 투자하지 않았다 정도만 이야기해도 되었는데 말입니다. 혹시 저들이 세이지 이름을 거론한 것이 불편했다면 공식적으로 우리 이름을 언급하지 말란 주의만 줬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서요.”

“왜? 코인 쪽 사람들이 들고일어날까 봐 걱정돼?”

태연한 한진영의 모습에 조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됩니다. 그리고 코인 쪽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상장을 진행하고 있는 브릿지랜드와 홀리스 인베스트먼트 나아가 상장 당사자인 코인 그라운드까지…… 지금 최 전무님의 방송을 그들이 지켜보고 있지는 않겠지만 분명 저 이야기는 이곳까지 전해져 올 게 분명합니다. 그랬을 때 그들이 불편해할까 봐 걱정입니다.”

“불편하면 불편한 거지. 그리고 불편하라고 지시한 거야.”

“불편하라고요?”

조지훈은 한진영이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말에 주춤거렸다.

단순히 화가 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한진영의 말에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번 정도 정리하고 가야 할 타이밍이었어. 대한민국의 상황도 그렇고 코인 그라운드와의 상황도 그렇고…….”

똑똑.

한진영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무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여 문을 열 것을 지시하자 조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사무실 문을 열고 노크를 한 직원 앞에 서서 보고를 들었다.

직원의 보고를 들은 조지훈은 놀랐다는 듯이 살짝 눈을 크게 뜨고는 몸을 돌려 한진영에게 직원이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브릿지랜드에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웃으며 화면을 턱짓했다.

“저거 브릿지랜드가 안 본다고 조 실장이 그랬는데, 그 말이 틀렸나 봐. 저거 보고 연락한 거 맞지?”

“그런 거 같습니다. 브릿지랜드에서 방송에 관해 문의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그냥 본대로라고 이야기해.”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흘깃 방송을 살폈다.

“코인에 부정적…… 이게 우리 회사의 방침이라고 이야기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그리고 코인 그라운드에는 긍정적. 여기까지 이야기해. 그래야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조지훈은 재미있는 반응이라는 말까지 듣자 더는 한진영에게 지금의 상황을 묻지 않았다.

어찌 됐건 한진영의 의도로 상황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직원에게 한진영의 뜻을 알렸고, 직원은 조지훈의 지시를 듣고 브릿지랜드에 연락하기 위해 움직였다.

한진영은 직원이 떠나간 사무실 문을 슬쩍 돌아본 뒤 다시 최석영이 나오는 화면을 바라봤다.

***

세이지증권의 최석영 전무가 나온 방송이 끝나자마자 시장이 요동쳤다.

믿고 있던 세이지증권이 코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며 코인 가격이 급락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코인에 세이지가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하던 코인 관계자들은 모두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가 나와 아니라고 하는데 다른 할 말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15,000달러를 넘어 20,000달러를 향해 달려가던 코인은 단숨에 13,000달러대까지 떨어져 내렸다.

세이지증권 한마디에 10%가 넘게 하락한 것으로 시장에서는 이번 하락을 세이지 쇼크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쇼크의 영향은 대한민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시장의 유동성이 가장 풍부한 대한민국의 시장이 출렁이자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시장도 같이 출렁였다.

정확하게 동일한 가격에서 움직이지 않지만, 거래소 간 가격 차가 좁혀져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10%가 넘게 하락하자 다른 나라들도 10% 이상 하락하며 세이지 쇼크를 온몸으로 느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장밋빛으로 밝아오던 코인 시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코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코인이 과연 정말로 4차 산업에 속하는 것까지 의심하며 시장을 바라봤다.

코인에 대한 의심의 싹이 사람들 가슴 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세이지 쇼크로 인해 영향을 받은 것은 코인 시장만이 아니었다.

당장 코인 그라운드를 상장하기 위해 움직이던 브릿지랜드와 홀리스 인베스트먼트에도 불이 떨어졌다.

“도대체 왜 그런 겁니까?”

바비 힉스가 자리에 사람들이 앉기도 전에 한진영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왜 그런 말을 해서 코인 시장을 뒤흔든 겁니까?”

한진영은 자리에 앉으며 여전히 서 있는 바비 힉스를 올려다보고 물었다.

“혹시 코인에도 투자하셨습니까?”

“크흠. 그게 아니라…… 거 코인 그라운드 상장에 부정적이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누가 코인에…… 투자했다고…… 흠…… 흠…….”

조금 전까지 날카롭게 소리치던 바비 힉스의 모습이 지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코인에 왜 투자하냐면서도 한진영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 바비 힉스가 코인에 투자한 것을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자리에 있는 사람 중 JM모건의 대표로 자리에 온 CIB(Corporate & Investment Bank) 대표인 해리스 서머스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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