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51화 (451/650)

451화 부탁했던 일의 결과를 듣다

지수가 2,000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오자 사람들은 공포에 젖어 들었다.

2,000이라는 상징적인 지수대가 무너지게 된다면 어디까지 빠지게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연신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학계도 마찬가지였다.

경제계는 이대로 정부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이제서야 활로를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일본이 밖을 바라보기 시작한 기업들을 향해 손짓했다.

우리도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으니 우리 반도체를 사도록 하라.

대한민국 반도체 회사들에 의해 고사하기 직전에 처했던 일본 반도체 회사들이 살길을 열어주겠다며 자기들 제품을 사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업계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급하기로서니 이미 뒤처진 일본 반도체를 찾을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미국을 다녀온 뒤 바뀌고 말았다.

물량을 배정 받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미국의 반도체 회사들은 몰려오는 거래요청에 이미 생산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기존에도 삼선전자나 하이식스에 비해 물량 면에서 뒤처지고 있던 그들이었기에 삼선전자 등의 물량을 모두 소화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밖으로 눈을 돌렸던 이들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다시 국내를 바라봤다.

그사이에 바뀐 게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바뀐 게 없이 오히려 나빠져만 가는 상황에 그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까지 막연히 위기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숫자로 위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진영은 회의실에 앉아 국내 전략 파트의 파트장을 맡은 조태준 파트장의 보고를 들었다.

“국내 기업들의 3분기 실적이 수정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4분기 예상 실적도 일제히 낮추어 잡았습니다. 평균 영업이익은 10% 낮춘 것으로, 상황이 계속 나아지는 것이 없게 된다면 최종 20% 이상의 실적 하락을 예상합니다.”

한진영은 조태준 파트장의 보고를 들은 뒤 시장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야 그렇다고 치고…… 각 증권사의 보고서는 어떻습니까?”

조태준은 한진영의 질문에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는 대답했다.

“국내 증권사는 우선 중립인 상태로 시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해결이 되지 않겠냐고 기대 섞인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해외 증권사들입니다.”

“해외 놈들은 자기들이 해 놓은 게 있으니 당연히 안 좋게 보겠군요.”

“맞습니다. 공매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겠다는 것인지 일제히 매도 리포트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삼선전자와 하이식스의 목표주가가 어떻게 되지요?”

한진영의 질문에 잠시 조태준은 전략실 실장인 김준하를 슬쩍 바라봤다.

김준하는 조태준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고 어서 이야기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한진영 앞에서 처음 보고하는 조태준은 등 뒤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다 꼬리뼈 부분이 땀에 축축이 젖은 모습이 밖에 보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될 정도로 조태준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그만큼 지금 조태준이 보고하고 있는 이야기가 대한민국을 현재 흔들고 있는 문제라는 뜻이었다.

조태준은 깊은 한숨을 이번에는 내쉬고는 천천히 한진영을 향해 보고했다.

“삼선전자의 평균 목표주가는 150만 원이었습니다. 하이식스의 경우에는 3만 원입니다. 두 곳 모두 매도포지션을 제안했으며, 보수적인 시각의 증권사의 경우에는 삼선전자 100만 원, 하이식스 2만 원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하하.”

한진영은 조태준의 보고에 큰 목소리로 웃었다.

“100만 원과 2만 원이요?”

“네. 그렇습니다.”

“어딥니까? 그렇게 도전적으로 목표가를 제시한 곳이 말입니다.”

“일본계 증권사인 노이즈미 증권사입니다.”

“하하하.”

한진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는 뭐 눈치도 보지 않으려 하는군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진영이 조태준을 향해 손을 들어 수고했다는 뜻을 전하자 조태준은 한진영을 향해 꾸뻑 인사했다.

그리고 땀을 손으로 닦으며 김준하의 곁에 앉았다.

“홍 본부장님.”

한진영이 홍대민을 부르자 자리에 앉아 있던 홍대민이 마이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뒤 대답했다.

“네.”

“1,800까지만 봅시다.”

한진영의 말에 홍대민은 급히 펜을 들어 가지고 온 노트에 한진영의 말을 적었다.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듯이 하는 말 같지만 지금 한진영이 하는 말이 앞으로 시장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다른 임원들에게도 보였다.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서로 얽혀있는 시장이었기에 코스피 목표지수는 그들에게도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회의실이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종이 위를 지나가는 펜 소리만 들리는 것을 느끼며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여기서 10% 더 빠지는 자리까지만 보고 그 자리에서는 공매도 포지션을 풀도록 하십시오. 만약 모든 물량을 풀기에는 시간과 물량이 빠듯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홍 본부장님의 판단하에 적절히 유연하게 움직여도 됩니다. 어쨌든 우리가 가지고 가는 공매도의 목표 지점은 1,800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최 상무님.”

한진영은 홍대민에게 지시한 뒤 최석영을 찾았다.

“네. 말씀하세요.”

한진영의 바로 오른쪽에 앉아있던 최석영은 한진영의 부름에 기대에 찬 눈을 하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의 눈빛이 무얼 뜻하는지 알고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방송에서 찾았는데도 나가지 않고 잘 참으셨습니다.”

“아닙니다. 회사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 거니까요.”

“이제 슬슬 방송에 나가시죠.”

“그래도 됩니까?”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졌다.

기다리고 있던 일이 시작된 것에 벌써 기대하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잔뜩 기대에 찬 최석영을 바라보고 웃으며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방송 몇 개 잡아봐.”

“어디를 기준으로 할까요?”

“아무래도 기왕이면 공중파가 낫겠지? 케이블 증권방송보다는 말이야. 그렇다고 우리나라 문제로 해외 방송에 나가기에는 좀 그렇고…….”

“CNBC에서 취재를 요청하기는 했었습니다.”

최석영은 CNBC에 나가고 싶다는 뜻을 눈으로 계속 전했다.

자리에 다른 사람 임원들이 없었다면 한진영을 향해 달려들어 CNBC에 나가겠다고 소리쳤을지도 모를 정도로 최석영은 들썩였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에게서 고개를 돌려 조지훈을 바라보고 고개를 저었다.

“거기는 그냥 기사만 제공하는 거로 해. 나가는 건 국내 방송이야.”

최석영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왜 CNBC에 나가면 안 되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CNBC에 얼굴 한번 비추는 것만으로도 지명도가 차원이 다르게 오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석영은 CNBC에 나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단호했다.

“우선은 국내 공중파부터 시작하시죠.”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나 이내 그동안 막혀있던 방송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털어냈다.

그리고 한진영이 말한 ‘우선’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고는 언젠가는 다시 CNBC에 공식적으로 출연할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

한진영은 실망했던 최석영의 표정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마무리에 들어갔다.

“다들 국내장의 움직임을 주시하시면서 유기적으로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타겟 지점과 자세한 가격은 전략실의 김 실장이 따로 각 본부에 전달할 겁니다.”

한진영이 김준하 쪽을 돌아보자 김준하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뜻을 한진영에게 보냈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를 향해 고생했다는 손짓을 건네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진짜 움직임은 공매도 뒤에 나오는 매수입니다. 짧은 시간에 들어오는 돈에 너무 심취해서 큰 걸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임원에게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홍대민에게 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이지증권의 운용 부문을 대한민국 최고로 만든 홍대민이었지만, 그도 공매도라는 달콤함에 취해 욕심을 낼지 몰라 주의를 준 이야기였다.

한진영은 마음을 다잡는 듯한 홍대민을 바라보고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 수 있어 헤지펀드들이 공매도를 즐겨 쓰지만, 우리는 그것보다 더 큰 금액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매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지요.”

한진영의 말에 홍대민이 고개를 끄덕였고 한진영은 마무리 말을 꺼냈다.

“자 그럼 다음 자리는 2,000을 깬 뒤가 될 것 같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자리에서 하는 것으로 합시다. 오늘은 우리가 달려가는 방향만 정리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한진영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세이지증권의 임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는 한진영을 향해 인사했다.

조지훈이 열어준 문을 통해 한진영이 밖으로 나가자 임원들은 긴장이 풀린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홍 본부장이 공매도에 심취했었나 봐?”

최석영이 홍대민의 곁으로 다가가 농담을 건넸다.

그러나 받아들인 사람은 농담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홍대민은 놀란 얼굴로 최석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제 얼굴에 그게 드러나던가요?”

“어?”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기는 했는데…… 사장님께는 다 보였나 봅니다.”

홍대민은 허탈함이 묻어 나오는 표정으로 한진영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봤다.

한진영이 회의실을 나오자 조지훈이 한진영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사무실에 이성우 사장님께서 와 계십니다.”

“성우가?”

한진영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조지훈을 돌아봤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회의하는 동안 보고 받은 내용을 전했다.

“이성우 사장님께서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걔는 오랜만에 한국 왔으면 집으로 갔어야지 집에는 안 가고 뭐 하러 여기로 왔어.”

한진영은 뭐 하러 왔냐고 이야기했지만, 얼굴에는 반갑다는 표정이 가득 묻어 나왔다.

한진영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

한진영은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있는 이성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진영은 이성우를 향해 양팔을 들어 다가가며 인사했다.

“오랜만이다.”

“진영아.”

이성우는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한진영 품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한진영을 꽉 끌어안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너무 힘들었어.”

“고생했다. 고생했어.”

한진영은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는 이성우의 등을 토닥거렸다.

조지훈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산가족이 만나는 모습인 것처럼 절절해 보이는 광경을 지켜보며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았다.

그러나 이성우의 귀에는 조지훈의 웃음소리가 들린 건지 고개를 돌려 조지훈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모르면서 왜 웃어?”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이거 봐. 이거 보라고.”

이성우는 한진영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 조지훈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성우에게 자기 볼을 들이밀며 말했다.

“얼굴에 살 빠진 거 봐라. 내가 살이 5킬로나 빠졌어. 아주 해골이 돼서 왔다니까. 장난 아니었어. 5킬로야. 5킬로.”

마지막에는 한진영에게 알아달라는 듯이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팔을 잡고 다시 한번 다독였다.

“고생했다. 이번 일에서 네가 제일 고생했어. 일본에 독일까지…… 네가 얼마나 나가 있었던 거지?”

“두 달. 두 달 동안이나 한국 땅을 밟아 보지를 못 했다니까.”

“그래. 이제 그 두 달 동안의 이야기 좀 들어보자. 앉아. 앉아서 이야기 좀 해줘.”

한진영이 이성우의 팔을 잡아당기자 이성우는 조지훈에게서 떨어져 소파로 돌아갔다.

한진영은 자리에 앉는 이성우를 바라보고 조지훈에게 차를 내올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이성우를 향해 다시 물었다.

“이야기 들었다. 독일에서 물건이 다음 달 초에 들어오기로 했다고?”

“어. 하이식스에서 샘플을 받아서 테스트를 해봤는데 괜찮데. 그래서 다음 달 초에 물건 들여와서 받아 바로 돌린다고 하더라.”

“그래?”

“네가 타이트하게 잡으라고 해서 하이식스 내부에서도 쫄린 상황인가 봐. 나한테 얼마나 진행된 거냐고 물어오는 통에 아주 죽는 줄 알았다.”

“수고했다. 네가 이번 일의 1등 공신이다.”

다시 한번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 한진영은 팔걸이에 몸을 걸치고 이성우를 향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야기한 엑스트라 물량은? 어떻게 됐어?”

“그 이야기 하려고 여기로 바로 달려온 거야. 네가 궁금해할 것 같아서 말이야.”

누구도 거치지 않고 직접 이성우에게 부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답을 알려줄 때도 누구도 거치지 않고 바로 알려달라고 했던 한진영이었다.

이성우는 그걸 똑똑히 기억하고 인천에 내리자마자 한진영이 있는 세이지증권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목소리보다 더욱 낮게 한진영이 듣고 싶어 하던 말을 건넸다.

“이번에 확보한 물량만큼을 독일 업체 측을 통해 물건을 확보했어. 다만 물량이 많아서 한 번에는 안 되고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한대. 그리고 가격도 조금 더 비싸고…….”

“얼마나 비싼데?”

“40억 정도…….”

이성우는 대답하고는 한진영을 살폈다.

한진영이 물건을 어디다 쓸지는 모르지만 10억짜리 물건을 50억에 가지고 온다는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이성우의 걱정과 달리 호탕하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돈은 내가 바로 보내줄 테니까. 그대로 진행해 달라고 해. 그리고 한 달 딜레이 되는 건 오히려 우리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야. 그렇게 해달라고 해.”

이성우는 시원하게 대답한 한진영의 모습에 살짝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로 물었다.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계속 궁금했던 건데…… 지금 이 물량은 어디다 쓰려고? 하이식스는 내가 이번에 구한 물량만으로도 올해는 충분히 넘긴다고 하는데 말이야. 설마 일 년이 넘게 이번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 미리 확보하는 거야?”

“아니. 따로 쓸 곳이 있어서 너한테 부탁했던 거였어.”

“그러니까 쓸 곳이 어딘데?”

이성우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향해 묻자 한진영은 이성우의 손을 잡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물건을 하이식스가 아니면 어디겠어?”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잠시 멈칫하다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생각한 단어를 내뱉으려다 참았다.

차를 가지고 한진영의 비서가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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