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98화 (398/650)

398화 돈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쿵 쿵 쿵 쿵.

방 안에서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작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가 이곳에 있는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방 안에 자리하고 있는 네 명의 남자 중 하나인 한진영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노아 스미스를 향해 웃으며 묻자 노아 스미스는 힘들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뉴욕의 모든 클럽을 다 뒤졌습니다. 지난 만남에서 클럽 이야기를 물어보신 것으로 보아 클럽에 큰 관심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이 친구가 클럽을 좋아하거든요.”

한진영이 손가락으로 이성우를 가리키자 이성우는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클럽을 좋아하기는? 나는 유부남입니다. 아이도 있습니다.”

“저도 결혼했고 아이도 있습니다. 그것도 셋이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런 곳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아니라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성우는 노아 스미스의 말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노아 스미스는 그런 이성우를 향해 웃어 보이고는 곁에 앉아있는 아가씨들을 두 사람 앞에 내보였다.

“괜찮은 친구들입니다. 함께 노시면 재미있으실 겁니다.”

노아 스미스가 말을 하고 좌우에 앉아 있는 여자들을 향해 눈짓하자 여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진영과 이성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성우는 팔짱을 껴오고 곁에 바짝 붙는 여자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함께 놀고 싶지만, 서울에 있을 부인과 이제 막 아빠를 알아보는 딸의 얼굴이 눈에 어른거려 이성우는 여자의 손을 눈물을 머금고 뿌리쳤다.

한진영은 이성우와 달리 여자가 안겨 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다만, 시선만큼은 노아 스미스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오늘 그냥 놀러 오신 겁니까?”

울려 퍼지는 낮은 저음의 베이스 소리에도 한진영의 목소리는 똑똑히 노아 스미스에게 전해졌다.

“무슨 뜻입니까?”

“놀러 오셨으면 신나게 놀자는 뜻이지요.”

한진영은 말을 하고는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올렸다.

“놀면서 마시는 술은 판단력을 흩트려 놓기 때문에 저는 노는 자리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고 이러는 걸 싫어해서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한 잔 먼저 시작하고 같이 놀아볼까요?”

한진영이 웃으며 잔을 크게 들어 올리자 여자들이 음악 소리에 신이 난 듯이 어깨를 들썩이며 환호를 질렀다.

그리고 한진영을 따라 잔을 들어 올렸다.

이성우 또한 파트너처럼 곁에 붙어있는 여자에 의해 잔을 들어 올렸다.

한진영은 눈빛으로 노아 스미스에게 말했다.

‘당신만 잔을 들면 그때부터 시작한다.’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 노아 스미스로 시선을 모았다.

어서 잔을 들어 올리라는 무언의 재촉이 담긴 시선들이었다.

“잠깐 나가들 있어.”

노아 스미스는 여자들을 향해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여자들은 이제 시작하려는 분위기에 갑자기 왜 나가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여전히 술잔을 들고 노아 스미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노아 스미스는 자기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여자들을 향해 이번에는 큰 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꺼져!”

여자들은 그제야 노아 스미스의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노아 스미스를 향해 손을 내밀자 노아 스미스는 지갑을 열어 여자들을 향해 돈을 집어 던졌다.

여자들이 돈을 들고 나가기 위해 문을 열자 클럽에서 울려 퍼지는 커다란 음악 소리가 문을 넘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나 방 안에 음악 소리보다 먼저 자리한 무거운 공기가 음악 소리가 문 앞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문이 닫히고 여자 둘이 나가자 조지훈이 뒤를 이어 밖에 나갔다.

앞으로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노아 스미스는 방 앞을 지키고 있는 자기 경호원들이 있는데도 나가는 조지훈을 보고는 그의 뛰어난 충성심에 감탄했다.

“좋은 비서를 두셨습니다.”

“좋은 친구지요.”

한진영은 노아 스미스가 문을 바라보고 하는 말에 동의하고는 들고 있던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술을 마시고 재미있게 놀려고 했더니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저한테 할 말이 있어서 오셨습니까?”

“네. 할 말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이런 자리와 이런 상황은 피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런 자리에서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이성우는 바로 죄송하다고 말하는 노아 스미스의 모습에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지난번과는 노아 스미스의 모습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노아 스미스는 부탁하러 오기는 했지만 자존심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한진영이 에둘러 말한 말에도 강하게 반응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지난번이었으면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기에 이곳이 적당하지 않다면 하지 않으면 되냐는 모습을 보였을 노아 스미스가 이번에는 바로 죄송하다는 말을 건넨 것이었다.

여자들을 내보낸 것만 해도 지난번이었으면 왜 여자들 앞에서 이야기하지 못하냐고 되물었을지도 몰랐었다.

그러나 한진영의 말에 바로바로 반응하는 것이 한진영의 기분을 상하지 않겠다는 뜻이 다분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진영도 이런 노아 스미스의 행동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노아 스미스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번 공매도세가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알고 계셨군요.”

“네. 알고 있었습니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매일, 매시간 한국에서 보고가 들어오니까요.”

노아 스미스는 알고 있다니 이야기가 쉽겠다는 생각으로 와이셔츠 윗단추를 풀어 젖히며 말했다.

“맞습니다. 나흘 전 독일의 도이치뱅크와 스위스의 크레디트 스위스에서 약 1,000억 치의 공매도가 들어왔습니다. 그로 인해 약 3%가 넘는 하락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3%의 하락이 문제가 아닙니다. 공매도 잔량만 벌써 30억 달러라는 겁니다. 우리 회사 시총의 1/10 가까이가 공매도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들이 계속 공매도 물량을 쌓아놓고 올라가려는 우리를 찍어 누르고 안 좋은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가만히 노아 스미스의 말을 듣기만 했다.

노아 스미스는 이야기할수록 화가 치미는지 술잔을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성우는 그 모습을 보고 술잔이 노아 스미스의 손안에서 깨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그러나 노아 스미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하루가 멀다고 매도 리포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방송에 나와서 심심하면 우리는 망할 곳이라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수백 대 밖에 차를 팔지 못했으며, 주문이 들어와도 만들 공장이 없다는 말로 우리를 놀리고 있습니다.”

“그냥 참고 계획대로 계속 진행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한진영이 노아 스미스에게 지난 시절 그가 했던 방법을 이야기했다.

“물론 가만히 참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당연히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주장을 반박은 해야겠지요. 그리고 그들보다 더 많이 대중과 소통하며 대중의 힘을 스미스 씨에게 끌어오는 것은 어떻습니까? SNS를 통해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노아 스미스는 여전히 손안에 술잔을 쥔 채로 물었다.

“SNS를 통해 여론전을 펼치라는 말입니까?”

“그렇죠. 언론과 시장 참여자들이 적이라면 그들을 제외한 모두를 테라 편으로 만들면 되는 일 아닙니까? 사람들은 시대를 앞서간 전자기기에 환장합니다. 남들보다 더 낫고 획기적인 기기에 눈이 돌아가죠. 테라의 전기차는 자동차이면서 전자기기일 수 있습니다. 이걸 포장한다면 피어 사의 휴대폰과 같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노아 스미스는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그가 건넨 말이 언뜻 듣기에 매우 그럴 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노아 스미스가 자기가 건넨 말을 그럴듯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이해됐다.

바로 노아 스미스가 지난 시절 써먹었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여론을 움직여 적대적인 곳들의 기세를 죽여버린다.

매우 간단하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적대적으로 나오는 곳 또한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곳들이었기에 대중의 힘이 실린 테라와 끝까지 싸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을 확실하게 유혹할 수 있는 물건을 테라는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한진영은 잠시 고민하는 노아 스미스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한진영은 예상했던 노아 스미스의 대답에 얇게 미소 지었다.

앞에 뻔히 한진영이라는 해답이 자리잡고 있는데 굳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건넨 제안이었다.

노아 스미스는 예상대로 한진영에게 다시 부탁했다.

“테라가 새롭게 주식을 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걸 세이지가 받아주십시오.”

“공개매수가 아니라 유상증자를 시행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그거라면 세이지도 부담이 덜하지 않습니까?”

“유상증자로 주가를 부양하겠다? 꽤 고민을 많이 하셨나 봅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여러 곳에서 조언을 들었고, 회사 내부에서 면밀히 검토하여 내린 결론입니다. 어떻습니까?”

한진영은 앞에 놓은 술잔을 끌어당겼다.

“우선 제안이나 마저 들어보도록 하죠. 유증을 어느 가격에 얼마큼 내놓을 생각이십니까?”

노아 스미스는 한진영의 손에 들린 술잔에 시선을 뺏겼다.

술잔에 담긴 술이 어느 순간 한진영의 목을 타고 넘어가느냐에 따라 오늘 자리의 성패가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의 입에 술이 들어가게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노아 스미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체 발행물량의 10%를 유증 진행할 생각입니다.”

한진영은 피식 웃고는 몸을 앞으로 굽혔다.

그리고 노아 스미스를 빤히 바라보고 말했다.

“공매도로 주가가 빠지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었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여기 우리끼리 있는데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자금이 모자란 상황입니까?”

한진영이 다시 몸을 곧추세워 앉고는 다리를 꼬았다.

모든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았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온 몸의 자세였다.

노아 스미스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더욱 주눅 드는 것을 느꼈다.

어떤 방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한진영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대주주임에도 경영 보고서를 요구하지 않는 세이지의 모습에 자신이 너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그저 투자만 진행하고 회사 내부의 일에는 관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건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다 알고 있어서 굳이 경영 보고서를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노아 스미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성우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노아 스미스를 보고 급히 그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손을 뻗은 건 이성우보다 한진영이 먼저였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손을 막고 가만히 지켜보라는 뜻으로 이성우를 쳐다봤다.

이성우가 한진영의 눈빛을 눈치채고 손을 내릴 때 격앙된 노아 스미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돈이 부족한 것일 뿐,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우리를 몰라주는지…… 나는 그게 화가 납니다.”

노아 스미스는 몸을 돌려 분노한 모습으로 한진영을 내려다봤다.

한진영은 앉은 채로 노아 스미스가 모든 분노를 표출하도록 도와줬다.

“그들에게 테라가 얼마나 위대한 회사인지 보여주고 싶습니까?”

“맞습니다.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를 무시하는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 돈이 필요합니다.”

노아 스미스는 선 채로 방 안을 서성였다.

밖에서 들려오는 낮은 베이스 소리에 노아 스미스는 리듬을 맞추듯이 리듬 소리에 말을 얹어 소리쳤다.

“중국에 생산공장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그것만 완성이 된다면 연간 생산량 50만 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독일과 캘리포니아, 텍사스까지 모든 공장이 가동된다면 연간 생산량 100만 대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시장의 확실한 지배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진영은 테라의 목표가 앞으로 3년 내 연간 생산량 50만 대가 목표라는 것을 지난 시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노아 스미스가 원하는 말을 건넸다.

“돈이 있다면 그렇다는 거죠?”

“맞습니다. 돈. 돈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노아 스미스는 당장에라도 벽을 주먹으로 때릴 것같이 벽에 붙어 서서 분노를 쏟아냈다.

“기존 자동차 회사들의 사주를 받은 언론사 새끼들과 주식쟁이들이 담합하여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목을 죄어와 우리가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생산량을 확충하지 못하면 우리는 정말로 죽습니다.”

노아 스미스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절규를 내뱉고 한진영을 향해 다가갔다.

“유증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면 상하이 공장확장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성공한다면 독일과 텍사스 쪽의 공장확장에도 숨통이 트입니다. 도와주십시오.”

“10%라면 현재 주식 가치로 30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내라는 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세이지에게는 많은 돈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30억 달러는 저희에게도 부담이 되는 돈입니다. 30억 달러면 원화로 4조가 넘는 돈이니 당연히 부담되지요. 하지만…….”

노아 스미스는 부담이 된다는 한진영의 말이 점점 거멓게 변해갔다.

그러다 나온 ‘하지만’이라는 단어에 발작하듯이 한진영에게 다가갔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문제를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해결해보겠습니다.”

손을 잡고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하는 노아 스미스를 보고 한진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문제는 테라에 있는 게 아니니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그저 저희 혼자 4조라는 돈을 대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여기 있는 기풍을 포함하여 테라와 연관이 있는 대한민국 기업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합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여 꺼낸 말이었습니다.”

“함께 도와주신다는 겁니까?”

“아직 확정된 건 없습니다. 그저 함께 머리를 맞대보는 건 어떨까 고민해보자는 이야기지요.”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희가 삽니다.”

노아 스미스는 당장에 무릎이라도 꿇을 듯이 한진영을 향해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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