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좋은 성과를 올려 많은 돈을 가지고 가라
이종훈은 조지훈의 안내를 따라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찾으셨습니까?”
“앉으세요.”
한진영은 인사카드를 쥔 채로 이종훈에게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이종훈이 우물쭈물하며 자리에 앉을 때도 한진영은 인사카드를 내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경기증권에도 WS본부가 있네요.”
“아…… 그게…… 저희가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성장성을 보고 박지훈 전 사장님께서 야심 차게 진행하셨던 사업입니다.”
“야심 차게 진행했다. 그런데 진행만 했을 뿐이지 실제로 사업을 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올린 성과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 말입니다.”
“그게…… 회사가 아무래도 이번에 출시한 펀드에 모든 자원을 소모하느라 진행이 더뎠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그냥 자리만 마련된 껍데기뿐인 본부라는 뜻이네요.”
“그건 아니지만…….”
뼈를 때리는 한진영의 말에 이종훈이 아니라고 변명하려 했다.
그러나 한진영의 말대로 껍데기뿐인 본부가 맞았기에 변명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진영은 그런 이종훈의 모습에 입꼬리를 말아 올린 후 카드 뒤에 붙어있는 이진경의 평가를 읽어갔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강하지만 그게 회사인지 전임 사장인 박지훈 사장을 향해서인지 명확하지 않다. 업무 처리 능력도 오래전 자료들뿐이라 지금 상황에서 어떤 평가를 해야 할지 확실하지 않은 정도이다. 평가 등급 C-.”
한진영은 인사카드를 덮고 이종훈을 올려다봤다.
“이게 우리의 평가인데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한진영의 말을 들으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이종훈이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한진영을 향해 애원했다.
“대표님. 저를 받아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충성이요?”
“대표님이 하라는 일은 무엇이라도 다 하겠습니다. 바다에 뛰어들라고 하면 그렇게 할 테고 산을 오르라고 하신다면 에베레스트라도 맨몸으로 오르겠습니다. 대표님. 한 번만 저를 받아주십시오.”
한진영은 이종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저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종훈은 한진영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사람이나 집단에 충성한다는 사람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종훈은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다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다른 사람과 다릅니다. 한번 모시면 끝까지 갑니다. 박 전 사장님도 그렇고 그전에 모셨던 상사도 그렇고…….”
“그렇게 모시는 분들을 계속 바꿔오셨네요.”
“네? 그게 아니라…….”
이종훈은 한진영에게 자기의 충성심을 이야기하다 과하게 이야기하여 지난 과거까지 이야기한 걸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나온 실수에 이종훈이 얼버무릴 때 한진영이 먼저 말했다.
“저는 충성심은 돈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충성심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러니 처음부터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 굳이 저에게는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말로 충성을 다짐하는 사람은 믿지도 않고요.”
한진영은 이종훈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능력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돈을 안기는 걸 좋아하고요. 그런데 이 본부장님이 내세우는 건 충성심인데…… 충성심은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대표님…….”
이종훈은 잔뜩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불쌍한 표정을 통해 상대에게 자비심을 끌어내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한진영에게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았다.
“오늘까지 자리를 비우십시오. 정리하고 그만 돌아가세요. 세이지 증권에서는 이 본부장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몸을 다시 소파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손을 들어 다음 임원을 불러들이도록 지시했다.
“대표님! 한 번만 저를 믿어 주십시오. 대표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문 앞에 서 있던 경호원들에게 조지훈이 이종훈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조지훈의 지시를 받은 경호원들은 이종훈에게 다가가 양쪽 팔을 잡고 사장실에서 끌어냈다.
이종훈은 끌려 나가면서도 한진영을 애타게 불렀지만, 한진영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지훈은 끌려 나간 이종훈에 이어 다음으로 들어올 사람을 불렀다.
“김우성 재무 이사님. 들어오세요.”
이종훈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본 김우성은 몸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김우성 이사님.”
“네?”
재차 부르는 조지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김우성은 굳어버린 몸을 이끌고 한진영이 있는 사장실로 향했다.
왼발에 왼손을 내밀며 어색한 자세로 들어간 김우성은 여전히 인사카드를 확인하고 있는 한진영을 향해 인사했다.
“대표님. 김우성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앉으세요.”
한진영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잔뜩 주눅이 든 김우성은 조금 전까지 이종훈이 앉아 있던 소파에 엉덩이 끝을 걸쳤다.
한진영은 보고 있던 인사카드를 읽어 내렸다.
“경기증권의 살림꾼으로 경기증권이 사용하는 모든 돈은 김우성 재무 이사를 통해 움직인다. 볼펜부터 종이까지 모든 살림살이를 챙기며, 경기증권의 실질적인 금고지기 역할을 지금까지 수행했다. 경기증권이 지금까지 굴러가는 것에 김우성 재무 이사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평가 등급은 A.”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김우성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우성은 한진영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인지 여전히 긴장한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평가가 좋으시네요.”
“네?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평가가 좋다면 제가 다른 곳에 계신다고 해도 함께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정도니까요.”
김우성의 귀에 함께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그제야 굳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걸 느꼈다.
한진영의 입에서 꼭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끌려가면서도 애원하던 이종훈의 모습이 이해가 갔던 김우성이었다.
더러워서 다른 곳에 가서 일하면 된다고 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다른 곳도 아니라 경기증권 출신이라는 게 그들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말단 직원이라면 눈을 낮춰 다른 곳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임원급은 그렇지 못했다.
눈을 낮추더라도 사고가 터진 경기증권의 임원을 받아줄 곳은 없었다.
사고는 최종필을 비롯한 그 일당이 벌였음에도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 공범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우성은 한진영이 함께하고 싶다는 말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가는 딸과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아들의 얼굴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김우성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한진영을 향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
다짐과 같은 말에 한진영은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조지훈을 향해 손짓했다.
조지훈은 한진영에게 다가와 준비해 놓은 계약서를 건넸다.
한진영은 계약서를 확인한 뒤 김우성을 향해 내밀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니 계약서도 새로 쓰셔야죠?”
“이건…….”
“근로계약서입니다.”
“근로계약서요?”
김우성은 그렁그렁하던 눈의 눈물을 훔치고 한진영이 내민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연봉과 상여금을 비롯하여 업무 내용 같은 것들이 쓰여 있었다.
“연봉…… 3억이요?”
김우성은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쳐다봤다.
한진영은 김우성의 눈빛에 웃으며 손가락으로 계약서를 가리켰다.
“그 밑에 상여금 부분도 확인하세요.”
김우성은 한진영의 말에 급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계약서를 살폈다.
그리고 한진영이 보라고 한 상여금 부분을 확인했다.
“상여금은 분기별로 지급될 것이며 영업이익의 30%가 직원들에게 상여금으로 지급될 것이다. 30%?”
김우성은 계속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이지의 말도 안 되는 성과급 시스템을 이야기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김우성은 놀라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총 상여금은 성과별로 나누어질 것이며 최고 등급 A부터 D등급까지 나뉘어 상여금을 받게 될 것이다. 등급은 직급과 무관하게 부여가 될 것이며 임원이라도 D등급을 받거나 신입사원이더라도 A등급을 받을 수 있다.”
김우성은 고개를 들어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마지막 쓰여있던 말을 한진영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A등급이 전체 상여금의 절반을 받게 될 것이며 B등급은 30%를 C등급은 15%, D등급은 5%를 받게 된다.”
“영업이익이 1,000억이 나왔다면 300억이 총 상여금으로 책정이 될 것이고 그중 절반인 150억이 A등급의 상여금을 책정될 겁니다. A등급을 받은 직원이 10명이면 한 명당 15억씩 받아 가게 되겠군요.”
“분기마다…… 받게 된다는 말씀이시죠?”
“네. 분기마다 받게 될 겁니다.”
김우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오랜 시간 회사생활을 하며 이제는 월급에 큰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김우성이였다.
오를 만큼 오른 직급에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오래 회사에 다니는 것을 목표로 삼아 일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모두 바뀌게 할만한 제안이 세이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한진영은 눈에서 욕망의 빛이 보이는 김우성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저에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김 이사님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할 곳은 바로 계약서에 쓰인 상여금 부분이어야 하니까요.”
한진영은 여전히 계약서를 바라보고 있는 김우성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저에게 충성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저와 김 이사님은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 정도면 딱 좋습니다. 제가 드리는 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시면 되는 거고 제가 드리는 돈이 만족하신다면 거기에 맞게 일하시면 될 일입니다. 더 일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돈에 걸맞은 수준으로만 일하시면 됩니다. 저도 거기에 맞게 돈을 드릴 테니까요. 그게 저와 이사님의 관계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김우성은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이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으며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업무능력에 따라 돈이 나가고 거기에 맞게 일하면 된다.
느긋하게 시간만 죽이려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무서운 말이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김우성은 후자에 가까웠다.
“이제서야 제대로 된 대표님을 만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려워하던 김우성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야망에 불이 지펴진 것 같았다.
한진영은 그런 김우성을 바라보고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열심히 일하시고 좋은 성과를 얻어 많은 돈을 가지고 가십시오. 저는 회사가 돈을 벌면 저 혼자만 돈을 먹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세이지는 그런 곳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김우성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사장실을 나서면서도 한진영을 향해 몇 번이나 인사하고 다짐했는지 몰랐다.
이런 이종훈과 김우성의 모습이 약 한 시간에 걸쳐 계속 경기증권 사장실에서 이어졌다.
***
세이지의 사명이 정식으로 세이지증권으로 바뀌었다.
자산 7조.
비록 경기증권의 부실 자산을 넘겨받은 세이지 증권이었지만 부실 부분을 소각하는 절차를 진행한 만큼 7조라는 돈은 세이지증권의 순수한 운용 자산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세이지 고객 내부에서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괜히 경기증권의 부실 자산을 떠안아 자기들에게도 피해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론과 인터뷰한 최석영의 말에 세이지의 고객들도 더는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경기증권 고객들이 원금을 찾게 되면 기존 세이지 고객들의 예치금은 두 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저희는 세이지나 경기증권의 자산을 나누어 운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모두 함께 진행할 것이며 모두 같은 수익을 얻게 될 겁니다.
지금도 놀랄만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세이지 펀드였는데 여기서 두 배가 된다고 하니 반대할 이유가 없어졌다.
세이지 고객들도 쌍수를 들어 경기증권의 고객을 받아들였다.
경제방송에서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증시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상황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시장에 나왔었습니다. 김기출 기자님. 정리해주시겠습니까?
아나운서의 말에 김기출 기자가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했다.
-네. 지난 몇 달 동안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세이지 자산운용의 경기증권 인수 이야기였죠?
-그렇습니다. 시장에서는 인수가 가능하다는 것과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나뉘어 이야기됐었습니다. 그리고 인수가 가능하다는 곳에서도 과정 자체는 어렵게 진행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도 관련 이야기를 다루며 몇 차례나 진행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었는데요. 결과는 의외였죠?
아나운서와 기자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야기 속에서 화면에서는 관련 내용이 정리되어 나왔다.
시간대별로 나누어 나온 이야기는 세이지의 경기증권 스토리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김기출 기자는 화면에 나온 이야기를 바라보고 말했다.
-너무나 스무스하게 넘어가 시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경기증권과 세이지의 고객들 모두에게 환영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보시다시피 중간중간 불만이 나오는 지점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불만이 나올 때마다 적절한 반응으로 불만을 잠재웠습니다. 이런 세이지의 반응은 정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 이렇게 적절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습니다.
-노련하다 못해 마치 전부터 경기증권을 인수하려 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시장 관계자 중 일부는 세이지가 처음부터 경기증권을 노리고 있던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성우는 화면을 바라보다 곁에 있는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 대답은?”
“뭘 물어봐. 알면서…….”
한진영이 넥타이를 만지며 화면을 바라보고 웃었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의 웃음에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