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52화 (352/650)

352화 돈 되는 곳은 바로 답이 나온다

타일러 버드만큼이나 나창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표님. 2,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왜요? 적나요? 우선 1차라서 2,000만 달러를 이야기한 겁니다.”

“아니요. 적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나창운은 급히 손을 흔들고는 타일러 버드를 돌아봤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보나 마나 한 모습이 펼쳐졌다.

타일러 버드는 놀람과 기쁨 그리고 당혹이 뒤섞인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본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창운은 그런 타일러 버드를 대신해서 한진영에게 말했다.

“적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많아서 그런 겁니다. 사실…… 저희가 예상한 금액은 500만 달러입니다.”

나창운은 세이지가 코인 그라운드에 투자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면서 마찬가지로 세이지가 과한 투자를 하는 것을 막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생각했다.

코인 그라운드가 좋은 회사이기는 하지만 2,000만 달러 그것도 1차에 2,000만 달러를 투입할 만큼 좋은 회사인지까지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창운은 잠시 타일러 버드를 바라본 뒤 한진영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500만 달러만 있으면 우선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까지도 회사를 이어가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여기 코인 그라운드의 CEO를 모셔놓고 이런 말씀을 해서 무례할지 모르지만…… 우선 내년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회사니 투자에 조심하자는 말씀인가요?”

나창운은 타일러 버드를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제 판단입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한진영은 나창운의 말에 잠시 고개를 젓고는 타일러 버드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사실 저는 암호화폐가 무엇이고 블록체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구조가 어떻고…… 생태계가 어떻고……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말을 멈춘 한진영은 이번에는 나창운을 바라보고 말했다.

“우리같이 주식과 채권을 비롯한 금융시장에서 움직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암호화폐라는 것이 주장하는 미래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거창하게 기축통화인 달러를 대체하여 전 세계 어디서나 사용한다고 주장하는데…… SF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이야기지요. 그게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표님 그게…….”

타일러 버드가 급히 설명하려 하자 한진영이 손을 들어 타일러 버드의 말을 막았다.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지 마십시오. 그런 이야기는 귀가 따갑게 들었으니까요.”

지난 시절 암호화폐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을 경험한 한진영이었다.

그래서 암호화폐를 신봉하던 자들이 어떤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설득하려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때는 그런 그들의 말을 이해하려 꽤 많은 공부를 하기도 했던 한진영이었다.

늘 그들이 하는 말이 공부하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하고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도 한진영은 그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장밋빛으로 암호화폐라는 것을 바라보려 해도 그의 눈에는 절대 가치를 지닌 존재로 성장할 수가 없는 개념뿐인 망상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말하는 경제는 공산주의, 정치는 민주주의, 교육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상적인 나라에서나 쓸만한 화폐 가치처럼 한진영의 눈에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암호화폐에 대한 한진영의 생각이었고 그걸 세상으로 끌고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암호화폐 자체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알면 알수록 부정적이게 되더군요.”

“대표님.”

타일러 버드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2,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던 한진영이 암호화폐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한가득 쏟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창운은 이런 한진영의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뱉은 말이 있기에 한진영이 투자하겠다는 뜻을 거둘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자기 생각을 읽어내는 듯한 나창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암호화폐에 대한 생각이고…… 이게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놓고 따지자면…… 저는 돈이 된다는 쪽에 손을 들고 싶습니다.”

한진영은 타일러 버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암호화폐의 미래? 그건 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돈만 되면 저는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판단으로는 이건 돈이 아주 많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다시 돈이 된다는 말을 건넨 한진영이었다.

타일러 버드는 그런 한진영의 말에 그제야 안심하고 감격한 모습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그냥 버드 CEO께서는 제가 투자하는 돈을 밑바탕으로 삼아 업계를 평정해주시면 됩니다.”

“평정이요?”

타일러 버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창운을 바라봤다.

나창운도 한진영이 말한 뜻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정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압도적 1등. 제가 원하는 건 그겁니다.”

“압도적…… 1등이요?”

지난 시절에 코인 그라운드가 하지 못한 일이었다.

1등과 2등 자리를 놓고 싸웠다고 말하지만, 늘 1등은 다른 업체의 몫이었다.

코인 그라운드는 이벤트를 펼치거나 혹은 미국에서 코인 거래 붐이 불었을 때 아주 잠깐 1등을 해본 것이 전부였다.

그랬는데도 150조의 시총을 보여줬었던 곳이었다.

지금부터 공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여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다면 150조가 아니라 500조의 시총을 기대해도 될만하다는 것이 한진영의 판단이었다.

‘거기에 10%. 내 몫은 10%다.’

500조 중 50조의 몫을 노리는 한진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공격적인 사업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2,000만 달러를 통해 우선 보안 쪽부터 손질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뒤이어 수수료 할인을 통해 공격적으로 회원을 유치하도록 하십시오.”

“0.4%보다 더 낮추라는 말씀입니까?”

“네. 0.2%. 최후에는 0.1% 언더까지도 염두에 두시고 진행하십시오.”

“0.1% 이하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타일러 버드가 난색을 표했지만 한진영의 주장은 굽혀지지 않았다.

“회원 10만 명일 때는 당연히 남는 게 없겠지요. 하지만 회원이 1,000만이 된다면…… 혹은 1억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보다 100배, 1,000배 고객이 늘어난다면…… 그때에도 0.1%가 모자라게 느껴지겠습니까?”

“1억이요?”

타일러 버드가 코인 그라운드를 설립하면서 꿈꾸었던 고객 숫자가 100만이었다.

100만이 된다면 코인 업계의 지배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런데 한진영은 100만의 10배, 100배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타일러 버드는 감히 자기가 품을 수 없는 꿈을 가볍게 이야기하는 한진영을 바라보며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까 말한 대로 2,000만 달러는 1차입니다. 2차는 최소 5,000만 달러 그리고 최종 1억 달러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1억…… 달러요?”

“1억 달러요?”

나창운도 1억 달러라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타트업에 이제 막 시장에 진출한 기업에 처음부터 1억 달러를 배팅하는 일은 아무리 투자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놀라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계획을 계속 이야기했다.

“보안을 철저히 하고 수수료를 인하하여 고객을 유치한 다음 속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십시오. 속도가 생명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타일러 버드는 한진영의 말에 기쁜 듯이 맞장구를 쳤다.

한진영은 활짝 웃고 있는 타일러 버드에 마주 웃으며 이야기했다.

“자금을 꾸준히 투입해 드릴 테니 투자에 인색하지 마시고 고객을 소홀히 대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업계 1등, 압도적 1등도 가능할 겁니다.”

똑똑.

한진영의 말에 실제로 업계 1등을 꿈꾸던 타일러 버드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조지훈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누군가를 안으로 안내하는 중이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태훈 로펌에서 담당 변호사들이 도착했습니다.”

“어. 안으로 모셔.”

한진영의 지시를 받은 조지훈이 몸을 비켜서자 가방을 든 사람들이 일제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한진영을 향해 가볍게 인사하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한진영의 좌우로 펼쳐져 앉았다.

한진영은 어리둥절해 하는 나창운과 타일러 버드를 향해 들어온 사람들을 소개했다.

“태훈 로펌이라고 계약에 관련된 제반 업무를 담당해줄 곳입니다.”

“계약이요?”

“오셨는데 계약까지 마치고 돌아가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타일러 버드는 단숨에 일을 진행하는 한진영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다.

“조금 전 이야기한 일들은 남들보다 하루라도 빨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니 지금 계약 맺고 돈까지 받아 가십시오. 그런 뒤 바로 일을 진행하면 됩니다. 계약서는…….”

한진영이 태훈 로펌의 담당자를 향해 손을 내밀자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한진영에게 내밀었다.

“오시기 전에 미리 준비해놨습니다.”

“제가 오기 전에 계약서까지 준비하셨단 말씀이십니까?”

“네. 저는 나 팀장에게 코인 그라운드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결정했습니다. 바로 진행해야겠다고 말입니다.”

나창운은 타일러 버드는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타일러 버드가 계약서를 들고 미국에 있는 자문 변호사에게 계약에 관련된 것을 조언받은 뒤에 계약을 체결하겠다며 숙소로 돌아갔다.

한진영은 떠나는 타일러 버드를 따뜻하게 배웅한 뒤 태훈 로펌의 사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태훈과 업무 협약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형 계약을 체결하는 것에 태훈은 기뻐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에게 최대한 빨리 전담팀을 꾸려 달라고 요청했다.

계약은 이제 시작이며 앞으로 일거리는 터져나가도록 많아질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한진영은 바쁜 걸음을 돌아가는 태훈 로펌의 사람들까지 모두 떠나보낸 후에야 겨우 나창운과 마주 앉아있을 수 있게 됐다.

나창운은 둘만 남게 되자 그제야 걱정되는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뭘 말씀입니까?”

“코인 그라운드에 1억 달러를 베팅하는 것 말입니다.”

한진영은 나창운의 말에 해맑게 웃으며 나창운에게 오히려 되물었다.

“나 팀장님이 선택했고 추천하여 직접 데리고 온 곳 아닙니까?”

“그래도 정말 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창운은 잠시 고개 숙여 타일러 버드와 이곳에 오던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내심 저는 1,000만 달러까지는 기대하기는 했습니다. 타일러 버드 코인 그라운드 CEO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표님이시라면 통 크게 1,000만 달러까지는 내어주시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지요.”

나창운은 말을 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1억 달러라니요? 1억 달러는…… 너무 과합니다.”

“나 팀장님. 나 팀장님이 야심 차게 고른 첫 회사입니다. 그런데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대표님은 저를 믿고 1억 달러를 베팅하신 겁니까?”

“그럼요. 나 팀장님을 믿었지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믿는다는 말이 나온 한진영이었다.

나창운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진영은 당황한 표정의 나창운의 등을 두드리고는 웃었다.

“그리고 저도 믿었습니다.”

한진영은 천천히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계속 이야기했다.

“나 팀장님이 오기 전에 제 나름대로 분석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된다고 판단 내린 것이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짧은 시간에 말씀입니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의 나창운을 향해 한진영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나 팀장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실 텐데요. 될만한 곳은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나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된다고 생각하는 곳은 한진영의 말대로 오래 고민할 필요 없이 답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하루가 아니라 회사소개서 한번 보는 것만으로 느낌이 오는 것이 이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이해하는 듯한 나창운의 표정에 다시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되는 곳에는 과감하게 투자하겠다는 것이 제 신념입니다. 그리고 법적으로 묶어놔야 하는 것 또한 잘 알고 있고요. 페이스노트처럼 상장 전에 주식 희석을 통해 투자자들을 물 먹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상장까지도 노리고 계시는 겁니까?”

“그럼요. 저건 돈이 되는 일입니다.”

한진영은 나창운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암호화폐라느니 블록체인이라느니 그딴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탈중앙화? 아이들 장난 같은 헛소리에 불과하죠.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불을 지핀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게 만든다. 이거면 된 겁니다.”

한진영은 몸까지 살짝 비껴서서 나창운에게 말했다.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게 어떤 것이든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하는 게 옳은 것이지요. 논리적으로 맞든지 틀리든지는 나중 문제입니다. 그래서 투자하기로 한 겁니다. 저건 논리를 앞서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일이니까요.”

한진영은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의 욕망은 논리를 앞선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저건 그런 앞서는 욕망 중에서도 최대에 해당하는 일이라는 것을 한진영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 욕망이 날뛸 수 있는 곳에 투자한 한진영이었다.

바로 도박판에서 도박장이 돈을 제일 많이 번다는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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