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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42화 (342/650)

342화 바닥을 쳐야 반등이 나온다

나창운은 다시 한번 손에 든 명함을 살피고는 한진영에게 말했다.

“이렇게 서 있지 말고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시지요.”

나창운은 한진영에게 들어갈 것을 권하고는 주변을 막고 있는 노인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니 비키셔도 괜찮아요.”

“그래?”

노인들은 한진영을 위아래로 훑고는 한진영을 향해 소리쳤다.

“허튼짓할 생각일랑 하지 마쇼. 우리 창운이는 우리 마을의 자랑이오.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기로는 영양에서 제일이었소.”

“그만하셔도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시죠.”

가만히 놔두었다가는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부터 대학 입학까지 모든 것을 읊을 듯한 노인들의 모습에 나창운이 나서서 노인들을 말렸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다시 한번 안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한진영은 김 기사에게 주변에 불편을 주지 않도록 차를 멀찍이 주차할 것을 지시하고 조지훈과 함께 나창운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들은 여전히 농기구를 든 채로 서슬 퍼런 눈으로 한진영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치 나창운을 해코지했다가는 자기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 노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간 한진영은 낮은 천장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집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욱 허름하기만 했다.

“불편하시겠지만 여기로 앉으시면 됩니다.”

나창운은 거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부엌 앞의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자그마하게 나 있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곳에는 몸이 불편하다는 나창운의 어머니가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방 안에서 잠시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린 후 나창운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변변한 차가 없습니다. 커피믹스라도 괜찮으시다면 그거라도 내드릴까요?”

커피믹스를 내놓는 것조차 부담된다는 것이 나창운의 말속에서 느껴졌다.

커피 내놓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물어볼 이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시원한 물이면 됩니다.”

한진영의 말에 다시 커피를 권하지 않은 나창운은 물컵에 물을 따라 한진영과 조지훈 앞에 내려놓았다.

컵 받침은 물론이고 변변한 상조차 내놓지 않은 나창운은 한진영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진영은 그런 나창운을 가만히 바라보고 먼저 입을 열었다.

“어르신들이 나 팀장님을 많이 좋아하시나 봅니다. 마을의 자랑이라고 이야기까지 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어렸을 때 귀여움을 받으면서 자라기는 했습니다. 나름 똑똑하기도 했고…… 마을에서는 한자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름을 날릴 거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를 통해 낙후된 마을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크게 기대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아직도 유효한 듯 보이고요.”

나창운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그런 나창운을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직도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보시면 아실 텐데 그런 말씀은 위로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나창운은 손으로 집을 가리키고 말했다.

“이것조차도 마을 사람들이 집을 내어주어 살 수 있게 된 겁니다. 저는…… 쫄딱 망했습니다.”

나창운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슬픔에 잠겼다.

한진영은 그런 나창운을 말없이 가만히 쳐다봤다.

지금은 나창운이 슬픔에 잠겨 좌절을 충분히 맛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주식도 그렇지만 사람도 확실하게 바닥을 쳤을 때 반등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자기가 그 이론의 주인공이었다.

지난 시절 바닥에 바닥을 경험해봤기에 지금은 승승장구를 달릴 수가 있었다.

한진영은 나창운도 바닥을 친 뒤에 비상할 것으로 생각했고 지금은 그 바닥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말없이 기다려 준 것이었다.

한참을 괴로워하던 나창운이 슬픔을 모두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세이지 자산운용이라면 회사 다닐 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가장 유명한 곳이라고 말입니다.”

“저희를 아신다니 이야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겠습니다.”

“설마 제가 세이지에도 물린 돈이 있던 겁니까? 저를 믿고 데미하이텍에 투자하신 겁니까?”

나창운이 불안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제가 나 팀장님을 믿고 데미하이텍에 투자했다고 하더라도 책임은 저에게 있지, 나 팀장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십니까?”

나창운은 씁쓸한 표정으로 한진영의 말에 대답했다.

“최근에 제가 그렇게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을 만나지 못해 오해한 것 같습니다. 그럼 그게 아니라면 저를 왜 찾아오신 겁니까?”

한진영은 조지훈에게 눈짓으로 준비하라는 뜻을 전한 후 나창운에게 말했다.

“제가 나 팀장님을 찾은 이유는 나 팀장님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 온 겁니다.”

“저와 함께 일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두리은행을 나와 세이지로 옮기시지요.”

나창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어서 그런 것인지 한진영의 말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한진영은 나창운의 모습에 빙그레 웃어 보이고는 조지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훈은 들고 온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꺼낸 서류를 나창운 앞으로 밀었다.

한진영은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나창운을 향해 말했다.

“안에 조건이 들어있는 계약서가 들어있습니다. 충분히 보고 검토 후에 이야기해주십시오. 웬만하면 나 팀장님이 원하는 대로 맞춰드릴 테니 말입니다.”

“저를 세이지에서 원한다는 말입니까?”

“네.”

나창운은 서류를 들어 안을 살펴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들어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한 대표님께서 지금 제 상황을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알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나창운이 입을 열어 말하기 전에 먼저 안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여러 가지 소송에 걸려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나 팀장님을 영입하게 된다면 그 화살을 저희도 맞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원한다는 말입니까? 만약 회사에 들어와 일하면서 소송은 따로 진행하라고 하실 거라면…… 그 생각은 접어주십시오. 저는 소송에 휩싸인 채로 일할 정신이 없습니다.”

“그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제 식구만큼은 확실하게 지키는 사람이니까요. 저와 한 식구가 되시면 소송은 제가 해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소송을…… 해결해 주신다고요?”

“네. 그냥 나 팀장님은 걱정하지 마시고 몸만 오시면 됩니다.”

나창운은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앉은 채로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자기 상황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를 원한다는 게 너무나 이상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나창운은 잠시 고개를 돌려 방을 쳐다봤다.

한진영은 나창운이 이번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듯이 먼저 말했다.

“어머님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나창운은 급히 한진영을 돌아봤다.

말하지 않아도 자기의 고민거리들을 알고 있는 한진영의 모습에 놀란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나창운을 향해 빙그레 웃고는 조금 전 내민 서류를 손으로 가리켰다.

“서류 안에 들어가 있는 조건을 보시면 제가 왜 어머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럼 저는 올라가 나 팀장님에게서 좋은 대답이 오기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한진영은 가볍게 나창운에게 인사를 건넨 후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한 노인들이 여전히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나오는 한진영을 이상한 듯이 쳐다봤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아직 밖으로 나오지 않은 나창운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대표님.”

조지훈은 집에서 충분히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조심스럽게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이것만으로 충분할까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한진영이 고개를 돌려 조지훈을 향해 물어보자 조지훈은 나창운의 집을 바라본 뒤 말했다.

“사실 계약서에는 나창운 씨의 어머니와 관련된 내용이 없지 않습니까? 소송도 소송이지만 나창운 씨에게는 어머니 문제도 중요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한진영이 만들어 오라는 계약서 양식에는 오직 나창운의 연봉에 대한 이야기만 적혀있었다.

부가적으로 나갈만한 혜택은 물론이고 다른 직원들이 계약할 때 통상 적어 넣는 의료혜택 등과 같은 것도 계약서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약서를 작성할 때 인센티브 부분을 제외하라고 하여 오직 연봉 자리만 공란으로 만들어 건넸던 조지훈이었다.

조지훈은 차 앞에 도착하여 문손잡이를 잡은 채로 이야기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어머니와 관련된 제안을 하고 올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머니 간병인을 책임져 주거나 원한다면 고급 요양원을 지원해주는 것만으로도 나창운 씨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왜 나보다 조 비서가 더 안달이야?”

“안달 나는 게 당연하죠. 얼마 뒤에 실버만삭스에서 제안이 들어갈 정도로 인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나창운 씨가 들어오면 대표님의 일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요. 지금 대표님께서는 일이 너무 많으십니다. 제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요.”

조지훈은 한진영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말했다.

한진영은 회사에서 18시간이 넘게 머무르며 업무를 처리했다.

주말은 물론이고 장이 열리지 않는 공휴일조차 회사에 있는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에 몇 배에 달할 정도였다.

수십억을 호가하는 그 좋은 집이 한진영에게는 잠만 자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모든 팀의 포트폴리오와 전략을 살폈고 때에 따라 조언해주는 일을 빼먹지 않고 매일 진행했던 한진영이었다.

사소한 것 모두 한진영의 손에서 처리가 되기를 바랐고,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려 했다.

세이지가 굴리는 자금만 해도 이번에 새롭게 투자받은 2조를 제외하고도 4조가 넘은 상태였다.

게다가 한진영이 개인적으로 굴리는 재산까지 더한다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선 상태였다.

지금까지 한진영이 끌고 온 것만 해도 탈 인간의 경지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한진영이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펀드는 기존의 펀드 규모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기풍철강을 비롯하여 한진영과 인연이 있는 이들이 내놓은 2조의 자금과 앞으로 개인들을 통해 모집할 자금까지 더한다면 신규펀드 자산규모는 기존 보유분을 넘어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자산을 직접 하나하나 컨트롤 했다가는 잠자는 시간조차 한진영에게는 허락되지 못할 게 눈에 선했다.

이렇게 버거운 상황이 펼쳐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새로운 펀드를 맡아 진행할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조지훈은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진영의 성격상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검토만으로 일의 범위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지훈에게 나창운의 존재는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었다.

한진영은 다급해 보이는 조지훈의 어깨를 두드리고 차 문을 직접 열었다.

그리고 몸을 안으로 집어넣기 전에 조지훈에게 말했다.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돼. 어차피 조만간 회사로 찾아올 테니까 기다려.”

“나창운이 직접 찾아올까요?”

“직접 찾아올 거야.”

한진영은 한 치의 의심도 담기지 않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직접 찾아올 수밖에 없는 금액을 적어놓았으니까.”

한진영은 차에 몸을 싣고 조지훈에게 어서 가자는 말을 남기고 차 문을 닫았다.

***

“여기로 오시면 됩니다.”

나창운은 안내받아 천천히 세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나창운 앞을 걸어간 비서실 직원은 나창운을 자그마한 회의실 한쪽으로 안내했다.

“여기입니다. 들어가시면 조금 뒤 대표님께서 오실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창운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조심스럽게 회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은 여느 회사의 회의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나창운은 회의실 한쪽에 자리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몇 차례 깊게 숨을 몰아쉬었을 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한진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 괜찮습니다. 그냥 앉아 계세요.”

회의실에 들어온 한진영은 손을 들어 일어나려는 나창운을 막아 세우고는 나창운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차 두 잔 부탁해.”

한진영은 따라 들어온 조지훈에게 지시하고는 나창운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저께쯤 오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늦으셨습니다.”

“기다리셨습니까?”

“기다렸지요.”

한진영은 조지훈이 나간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친구와 내기했거든요. 제가 나 팀장님이 그저께 온다는 데 돈을 걸었는데…… 졌습니다. 이틀만 일찍 오셨으면 저 친구 지갑을 털 수 있었는데…… 아쉽네요.”

나창운은 한진영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어서 그런 건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그런 나창운을 향해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셨으니 됐습니다. 그런데 조금 늦은 것을 보니 실버만삭스에서도 제안이 들어갔나 봅니다. 실버만삭스의 제안과 함께 고민하느라 늦으신 겁니까?”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만큼이나 실버만삭스도 나 팀장님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한진영은 의자에 기댄 채 편안한 자세로 물었다.

“그런데 저에게 오신 것을 보니 제 제안이 더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대표님. 한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웃고 있는 한진영과 달리 나창운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그는 한진영이 놓고 간 계약서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그리고 한진영이 손으로 적은 연봉 자리의 숫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연봉 20억. 정말입니까?”

한진영은 나창운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숫자를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세후 20억. 어쭙잖은 옵션은 모조리 제외한 보장 금액입니다.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나창운의 손가락은 20억이라는 숫자 위에 박혀 떨어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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