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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16화 (316/650)

316화 이곳에 온 이유가 있었다

호텔 라운지에 앉아 신문을 읽던 한진영과 그의 곁에서 서울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브리핑하던 조지훈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실장님.”

서 있던 조지훈이 깜짝 놀란 얼굴로 비틀비틀 걸어오는 이성우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겨우 부축하며 이성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말할 기운도 없으니까 그냥 자리에 앉혀줘.”

이성우는 말을 하고는 조지훈의 부축을 받아 한진영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한진영의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죽는 줄 알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 있었냐고?”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발끈하여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몸에 부하가 걸렸던지 이성우는 이내 몸을 무너뜨리며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구구. 허리야. 야 인마. 너…….”

한진영은 이성우를 향해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문서영에 관해 물었다.

“서영 씨는 어디 갔냐?”

“오랜만에 소호 거리 가서 놀다 오신단다.”

“너는 다 죽어가는 데 서영 씨는 아무렇지 않나 보다.”

“내 기운 다 빨아 갔어. 그러니 기운이 넘쳐나겠지.”

“기운을 어떻게 빨아 갔는데?”

한진영이 모르겠다는 듯이 물어보자 이성우가 눈을 한껏 흘겼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양손을 들어 올렸다.

“알았다. 알았어. 그만 물어볼 테니까 눈으로 레이저 좀 그만 쏴라. 그러다 가슴에 구멍 뚫리겠다.”

“야. 너 인마. 너……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이성우가 한진영을 향해 흘기던 눈을 내려뜨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왜 그래? 너도 재미있었던 거 아냐? 내가 총각이라 잘 모르지만 손바닥도 서로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이…….”

“야야. 그만해라. 나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 기분 매우 불쾌해.”

찜찜하면서도 말하기 불편한 모습을 숨기지 못하게는 이성우였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즐거운 듯이 한참을 웃고는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라운지에 준비된 먹을거리를 담아 돌아왔다.

그리고 먹을 것이 담긴 접시를 이성우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거라도 먹고 기운 차려라. 서영 씨가 소호 거리에서 돌아오면 또 힘써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야!”

이성우가 참다못해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그러자 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진영이 있는 곳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익숙한 사람의 시선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진영이 웃으면서 한쪽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경기증권의 박지훈이 서 있었던 것이었다.

“안녕하셨습니까?”

한진영과 눈이 마주친 박지훈은 한진영이 있는 곳을 걸어오며 인사했다.

한진영은 그런 박지훈의 모습에 웃는 얼굴로 박지훈의 인사를 받았다.

“어떻게 여기서 다 만나 뵙습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저야말로 한 대표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한진영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한 박지훈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박지훈을 향해 이성우를 소개했다.

“인사들 하시죠. 여긴 기풍철강의 이성우 미래전략실 실장입니다.”

“아~ 이 실장님이셨군요.”

이성우를 향해 반갑게 인사해오는 박지훈이었다.

이성우는 눈빛으로 누구냐는 질문을 한진영에게 했다.

“인사해. 경기증권의 박지훈 사장님.”

이성우는 경기증권이라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갑게 인사했다.

“아~ 경기증권 박지훈 사장님이셨군요. 죄송합니다. 지난 증권사 사장단 회의에서 만나 뵈었을 텐데 제가 몰라뵈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증권사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서 저를 못 보셨을 겁니다.”

“아~”

이성우도 대충 경기증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그가 증권사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던 이성우였다.

이성우는 이런 곳에서 경기증권의 사장을 만나게 된 것과 그가 한진영을 향해 먼저 다가와 인사하는 것에는 무슨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하며 흥미로운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인사를 대충 마무리한 박지훈이 고개를 다시 한진영 쪽을 돌리자 한진영은 조금 전 나누던 대화를 이어갔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인들과 함께 잠시 놀러 왔습니다. 박 사장님도 놀러 오신 겁니까?”

“지인이라면…….”

“이 실장의 약혼녀인 서준일보의 문서영 씨도 함께 왔습니다. 박 사장님께서는 궁금하신 게 많으십니다.”

“아~ 실장님의 약혼녀께서도 동행하셨습니까? 그럼 진짜로 여행을 오셨나 보군요.”

“네.”

한진영이 입가에 가득 웃음기를 머금고 박지훈을 향해 다시 물었다.

“저는 박 사장님께서 궁금해하시는 것에 대해 대답을 했지만 정작 박 사장님께 대답을 듣지 못했네요.”

“아. 죄송합니다. 저만 생각했네요. 저도 업무차 미국에 왔다가 잠시 뉴욕에 들렀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이 자본시장의 메카라서요. 여기 공기라도 마시고 돌아가면 돈을 좀 많이 벌지 않을까 싶어 들린 겁니다.”

이성우는 박지훈의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소문들과 함께 지금의 모습을 보자 박지훈이라는 존재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박지훈은 이성우가 보내온 시선이 익숙했는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성우와 한진영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지인들과 오셨는데 제가 더는 방해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재미있게 놀고 한국에 돌아가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박지훈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자 이성우가 물끄러미 박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냐?”

“여기 공기 마시기 위해 왔다잖아.”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진짜 왜 여기 왔는데?”

박지훈이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돌아봤다.

조금 전까지 기가 빨린 듯한 표정은 더는 이성우의 얼굴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성우는 확신에 찬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저 사람 여기 있는 이유 있지?”

이성우는 아무런 대답이 없는 한진영의 모습에 이번에는 조지훈을 돌아보고 물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것도 이유가 있는 거고? 혹시 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내가 여기 있는 거냐?”

“무슨 소리야? 누가 너 목덜미 잡아끌고 데리고 왔어? 네 발로 이곳에 왔으면서 왜 엄한 조 비서를 닦달하려고 그래?”

“그래. 내 발로 온 거기는 하지. 여기 오겠다고 이야기한 것도 나고 너와 같은 숙소로 잡아 달라고 이야기한 것도 나고…… 그런데…….”

이야기하던 이성우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래도 이상해. 내가 조 비서한테 네 스케줄 물었을 때 친절히 뉴욕에 간다는 이야기를 대답한 것부터가 의심스러워. 만약 정말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면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몰래 다녀와도 나는 알 수가 없었거든. 거기다 나를 데리고 오면서 서영 씨까지 물고 같이 이곳으로 몰아온 것도 지금 이걸 위해서 그런 것 같고…….”

이성우는 박지훈을 만난 뒤 저절로 꿰맞춰지는 퍼즐을 보며 한진영을 향해 눈을 홉떴다.

“너 여기 그냥 온 거 아니구나? 뭐야?”

“역시 너도 많이 늘었다.”

이성우는 한진영이 스스로 인정하는 듯한 말투에 무릎을 쳤다.

“그렇지? 내 말이 맞지?”

“나하고 같이 다닌 지 시간이 꽤 돼서 그런 거냐? 눈치가 이제는 100단이야.”

“내가 너를 좀 알지 않냐? 네가 그냥 움직이는 놈이 아니라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그런 네가…… 대한민국도 아니라 땅덩이 넓은 미국에서 그것도 호텔 라운지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경기증권의 사장을 만나는 이 상황은 우연일 수가 없거든. 내가 알고 있는 한진영이라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편이 더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진영이 인정하는 듯한 말을 건네자 이성우는 신난 듯이 자기가 유추한 것들을 늘어놨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무나 쉽게 인정하는 한진영의 모습에 이성우가 오히려 허탈할 지경이었다.

이성우는 긴장했던 몸을 풀어 젖히며 한진영을 향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박지훈 사장을 안달 나게 만들기 위해서 너와 서영 씨가 필요했다.”

“안달 나게? 왜 우리가 있으면 안달 나는 건대?”

“너희가 있으면 내가 억지로 지금 자리를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한다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거든. 그리고 그걸 토대로 내가 움직이는 이번 일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잘 표현이 되는 것이고…….”

“그게 다 무슨 소리야?”

“내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친분이 있는 기풍철강과 서준일보를 이용했다. 그렇다면 그 속이고 진행하는 일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겠어?”

“그렇겠지. 그런데 속이고 무슨 일을 진행하려고?”

“가자. 약속 시간이 다 됐다.”

한진영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성우가 앉아서 한진영을 올려다보자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못 일어나겠냐?”

“그냥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 앉아있었던 거야.”

이성우는 한진영에게 큰소리친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이쿠. 조심하세요.”

그러나 일어나자마자 이성우의 몸이 휘청이자 곁에 있던 조지훈이 급히 이성우를 부축했다.

이성우는 빨개진 얼굴로 조지훈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조지훈은 더욱 강하게 이성우를 부축했다.

“야! 나 아무렇지 않아. 호들갑 떨지 마.”

“쓰러지실 뻔했어요.”

“아니야.”

“맞아요.”

“야 놔봐. 나 혼자 걸을 수 있어.”

“손 놓으면 분명 쓰러지실 것 같아요. 그러니 천천히 저한테 기대서 가세요.”

“이게 정말…… 나 괜찮다고.”

억울한 표정의 이성우를 보고 한진영은 즐거운 듯이 웃으며 라운지를 빠져나갔다.

***

맨해튼 57번가에서 59번가 거리는 뉴욕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뉴욕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초고가 주택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호텔과 오피스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억만장자 거리(billionaire’s row)라고 흔히들 불렀다.

“우리도 여기에 사무실 하나 내야 하는데.”

이성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거닐었다.

마천루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이성우는 머리까지 뒤로 젖히고 바라봤다.

“너 여기 처음 오냐?”

“처음은 아니지. 몇 년 전에 한번 왔었어.”

“그런데 뭘 새삼스럽게 그렇게 촌놈처럼 바라봐?”

“그때하고 지금과는 내 위치가 다르지 않냐?”

고개를 들어 빌딩 꼭대기를 바라보던 이성우는 곁에 있는 한진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알잖아.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바라보는 풍경도 다르다고 말이야. 그때는 그냥 높은 빌딩들이네 하고 생각 없이 바라봤는데 지금은 좀 다르다.”

“어떻게 다른데?”

“야망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여기에 우리 사무실은 물론이고 집 하나 얻어서 지내는 뉴요커의 삶을 지향한다고 해야 할까? 뭐 그런 큰마음이 생기고 있다. 이게 옛 성현들께서 말씀하시던 호연지기가 아니냐는 생각도 들고 있고…….”

“지랄하네. 호연지기는 무슨 얼어 죽을 호연지기? 너 뭐 머리가 어떻게 됐냐?”

한진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이성우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눈빛으로 건물들을 살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막말로 사려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살 수 있잖아.”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깜짝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너랑 같은 줄 아냐? 너야 돈 쓰는 거 누가 뭐라고 안 하지만 난 여기에 집 샀다가는 아버지한테 발목 부러진다. 한두 푼짜리도 아니라 수백억이 넘어가는 놈을 퍽이나 사라고 하시겠다.”

“그럼 딜을 넣으면 되지.”

“딜?”

“그래. 네가 만족할만한 성과를 올리면 하나 얻어달라고 말이야.”

“만족할만한 성과가 있어?”

이성우가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물어보자 한진영은 웃으며 이성우의 등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아야!”

“그건 네가 만들어야지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생각해 놓은 게 있으니까 이야기 꺼낸 거 아니야? 뭔데? 성과가 뭐가 있는데?”

이성우는 한진영이 내리친 등을 손을 돌려 어루만지며 한진영의 뒤를 따랐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뒤로하고 레스토랑 앞에 섰다.

그리고 뒤에서 여전히 그게 뭐냐고 묻는 이성우를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나는 들어가서 볼일을 볼 테니까 너는 밖에서 잠시 커피나 마시면서 대기해.”

“에? 대기하라고? 나는 들어가지 않고?”

“그래. 나만 들어갈 거야.”

“나는 왜 못 들어가는데? 여기까지 와서 밖에 앉아서 커피나 마시라고 하면…… 여기 밖에 추워.”

이성우가 불쌍한 표정까지 지어 보이자 한진영은 이성우 뒤편에 서 있는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서영 씨 어디 있다고?”

“야야. 왜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를 않아.”

이성우는 급히 한진영의 시야를 손으로 가리고는 말했다.

“내가 애초에 이야기했던 게 이거잖아. 너는 안에서 볼일 보고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내가 원하던 거야. 그러니까 들어가서 볼일 보고 천천히 나와. 난 여기서 커피나 마시면서 기다릴 테니까.”

이성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레스토랑 밖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부르며 한진영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고는 조지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지시에 문을 열었고, 한진영은 열린 문을 통해 최종필이 기다리고 있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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