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14화 (314/650)

314화 같은 편일 때 누구보다 든든한 사람

한진영은 그렇게 한참을 웃고 난 뒤 조지훈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동우에 연락 넣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고 말이야.”

“그럼…….”

“클론매매. 하자고 해. 내가 동의한다고…….”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크게 놀랐다.

“정말 제안을 받아들이실 생각이십니까?”

“준비가 다 됐으니 받아들여야지.”

“준비라는 게 최종필이었던 겁니까?”

“맞아. 그가 이번 일의 키야.”

“그런데 그와 접촉을 한 이유가 경기증권에 보내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도 맞아.”

“그럼 경기증권과…… 동우가…….”

조지훈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건지 알지 못하게는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향해 리모컨을 든 채로 이야기했다.

“동우가 클론매매를 무슨 수로 하겠어? 아니. 애초에 클론매매라는 것 자체를 어떻게 생각했겠어? 그건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데 말이야.”

“저도 대표님께 처음 이야기 들었습니다. 회사의 트레이딩 담당 직원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요. 그런 게 애초에 된다는 생각조차도 못 했다고 했습니다.”

“맞아. 일반적이지 않은 걸 넘어서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게 정상일 정도의 매매법이야. 쓰는 사람도 없고, 그걸 받아주는 사람도 없는 방법이지. 그런데 그걸 동우의 김교철이 먼저 제안했다? 이건 누가 이야기하지 않는 한 일어날 수가 없어.”

“그럼 그걸 하자가 동우에 이야기한 사람이…….”

“경기증권이라는 거지.”

한진영은 팔짱을 끼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조지훈을 올려다보며 계속 이야기했다.

“추종 펀드나 설계를 따라 하는 방법에서 한 단계 나아가 아예 클론매매로 똑같이 하고 싶었던 거야. 그렇게 하면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 이득에 동우의 김교철도 동의한 것이고요?”

“그렇지. 동우의 김교철도 지금 쉽지만은 않거든.”

한진영은 화면에 나온 장관급 인선 예상 라인업을 보고 손가락질했다.

“알짜배기 라인은 대부분 동우 쪽 사람들이야.”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신임 정부 내각에 들어갈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고 있었다.

총리와 경제부총리 등 주요 라인부터 시작하여 해양수산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 그리고 농림부 장관까지 차례대로 내각에 등판할 사람들이 열거되고 있었다.

“저 라인업을 어떻게 꾸렸겠어? 안혁규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주고 받아낸 것들이야.”

“안혁규 의원이 그 정도의 힘이 있었나요?”

조지훈이 의문을 이야기하자마자 TV에서 조지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는 안혁규 의원이 발탁되었습니다. 안혁규 의원은…….”

조지훈은 멍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안혁규의 힘을 직접 마주하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핵심이었네요.”

“핵심 중의 핵심이지. 그러니 동우 쪽 라인으로 내각을 쫙 깔아놓을 수 있었던 거지. 자기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조건으로 말이야.”

한진영은 안혁규에게 달려든 기자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김교철이 해결해준 금액만 대략 6~7,000억쯤 될 거야.”

“그렇게 많나요?”

“해먹은 게 그 정도니까. 안 그래?”

한진영이 여전히 놀라고 있는 조지훈을 올려다봤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안혁규 의원이 해 먹었다는 일들을 떠올렸다.

“그렇네요. 처음 대표님께 8,000억을 들고 찾아왔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자금이 마지막에 가서는 2,000억밖에 안 남았다고 했으니…… 말씀대로 6,000억 이상을 해 먹은 거네요.”

“그래. 그 돈을 모두 메워줬다고 하면 6,000억이고 그것보다 더 해줬다면 그 이상이 되는 거지.”

“동우도 상당한 자금력이 있었네요.”

“국내 최대, 최고의 로펌이니 당연하지. 자기 주머니에 돈이 그만큼 없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금을 동원할 능력쯤은 됐을 거야. 그리고 그거로 안혁규의 어려움을 해결해준 후 저것들을 얻어냈겠지.”

방송에서도 동우에 대한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다.

전 민정수석이었던 이의경이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뒤를 이어 동우 고문이자 전 법무부 장관이었던 주기문 전 장관이 외교부 장관 등으로 보직을 바꿔가며 현 정권에 속속 이름을 올린 이야기가 뒤를 이어 나왔다.

모두 공직에서 내려온 뒤 동우 법률사무소 소속으로 지내다 다시 내각에 들어온 것에 언론에서는 회전문 인사라며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인재가 동우에 모여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요. 형평성을 맞춘다고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앉히는 것보다 비록 한곳에 쏠린 인사더라도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을 앉히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패널이 동우를 두둔하는 말을 한 것에 한진영은 크게 웃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그 사람의 출신을 따지기보다 능력을 먼저 보는 게 맞기는 하지.”

패널의 그럴듯한 말에 즐거워하는 한진영을 보며 조지훈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 그런데 한 가지 질문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뭔데? 해봐.”

조지훈은 한진영의 허락에 잠시 마른침을 넘기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우의 김교철 대표변호사가 대표님께 대선에 도움을 줘야 하지 않느냐며 클론매매를 제안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아.”

“그런데 대선은…… 끝나지 않았습니까?”

조지훈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사실을 겨우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한진영은 속이 시원해 보이는 조지훈 뒤편에 자리한 화면을 껐다.

그리고 리모컨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맞아. 대선은 끝이 났어.”

“그럼 처음에 제안했던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 것 아닙니까? 대선에서 도움을 주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런데 대표님 도움 없이도 대선은 끝이 났고…… 더는 대표님이 움직일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클론매매에 대해 동의하라고 전하라는 말씀도 그렇고 그걸 김교철 대표가 받아 줄 거로 생각하시는 것도 그렇고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진영은 궁금했던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오는 조지훈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자기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는지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제가 잘못 생각한 건가요?”

“아니. 맞아. 보통의 상황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아.”

한진영은 조지훈을 바라본 채로 그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설명했다.

“보통이라면 제안하고 그 제안을 받은 뒤 생각하여 답을 하는 게 맞는 거지. 하지만 이번은 달라.”

“다르다고요? 어떻게 다르다는 건가요?”

“제안하는 순간 나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

“네?”

조지훈은 놀란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우, 그중에서도 김교철이 이야기한 것은 말이 좋아 제안이지 지시나 마찬가지야. 선택권? 그런 건 애초에 있을 수가 없어.”

“대표님께서 분명 생각해보고 답을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김교철 대표변호사도 그 말에 동의해서 지금까지 기다렸고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생각해본다고 이야기한 순간 이미 알겠다는 대답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 그저 내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 기다렸던 것뿐이고…….”

“만약에 그렇다면…… 정말 만약에 말입니다.”

조지훈은 이야기하며 문득 떠오른 생각을 한진영에게 물었다.

“대표님이 싫다고 했다면…….”

“하하하. 그렇다면 지금 여기엔 나와 조 비서만이 있지 않을 거야. 검사를 비롯하여 수사관들과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겠지. 아니면 이야기 나누는 장소가 이곳이 아니라 구치소의 접견실이 되었던가.”

“검사와 수사관이요? 그들이 우리를 조사하러 왔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무슨 죄목으로요?”

“무슨 죄목? 그건 그때 기분에 내키는 대로 정하겠지. 그들이 원하는 건 죄목이 아니라 우리, 그중에서도 나를 집어넣는 것이 목표니까.”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울상을 지었다.

한진영의 말이 터무니없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조지훈이 충분히 자기 말을 알아들은 것을 확인하고 계속 이야기했다.

“김교철은 애초에 내가 거절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그랬으니 거침없이 수천억의 돈을 서슴없이 집어넣은 거지. 그게 자기 주머니에서 나왔든 아니면 남의 주머니에서 나왔든 말이야. 채워 넣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한진영은 이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조지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 경기증권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클론매매를 이야기하고 나에게 제안 넣은 거지. 아니면 누가 클론매매를 하겠다는 것을 승낙하겠어?”

한진영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초조해 보이거나 큰일이라는 모습은 한진영에게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는 것을 오히려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클론매매는 하겠다는 사람보다 승낙하겠다는 사람 쪽에 문제가 있어서 하지 못하는 방법이야. 남이 내걸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리고 본 계좌를 가진 사람이 만약 장난이라도 치는 날에는…… 카피 계좌는 난리가 나는 거야. 그러니 하기가 쉽지 않지.”

“그럼 대표님께서도…… 혹시…….”

조지훈이 조심스럽게 묻자 한진영이 손을 흔들었다.

“계좌 가지고 장난칠 거냐고? 나는 그러지 않지. 굳이 그럴 이유도 없고…… 뭐 하러 피곤하게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말이야.”

“더 좋은 방법이요?”

“그래. 최종필. 나한테는 최종필이라는 카드가 있으니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을 듣고 알게 됐다.

지난 안산문어 때와 마찬가지로 최종필이 경기증권에 들어가게 된다면 모든 일이 한진영이 원하는 대로 풀려갈 것이란 것을 말이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안혁규가 안산문어를 찾아 데리고 왔다면 이번엔 대표님이 직접 선택하여 집어넣으려는 사람이야. 그 효과는…… 지난번보다 더 확실하게 나타나겠지.’

조지훈은 한진영의 웃는 모습을 보고는 한진영이 자기와 같은 편에 서 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같은 편이었을 때 누구보다 든든한 사람.

하지만 서로 마주했을 때는 누구보다 무서운 사람.

조지훈의 눈에 한진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

최종필과의 협상은 생각보다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최종필이 좋다든가 싫다든가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지훈은 이런 최종필의 반응에 답답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차라리 같은 한국 땅에라도 있었다면 직접 달려가 이야기를 나눌 텐데 미국에 있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종필과의 통로는 현지에 있는 헤드헌터뿐이기에 이야기는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을 때 최종필 측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직접 대표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최종필의 제안을 들고 조지훈은 한진영을 찾아갔다.

“대표님. 제가 이제라도 그건 안 된다고 이야기할까요?”

제안이 왔음에도 한진영에게 말하지 않고 거절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최종필의 제안을 가지고 왔던 조지훈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최종필의 제안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한진영에게 거절 의사를 물었던 것이었다.

“아니. 됐어. 간다고 전해.”

“가신다고요?”

“그래. 오라고 했으니 가봐야지. 어차피 지금 특별히 바쁜 것도 없으니 가장 빨리 넘어갈 수 있는 티켓으로 알아봐. 내일이라도 당장 넘어갈 수 있는 거로 말이야.”

“대표님. 그…… 동우와의 일이 남아있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지금 대표님께서 자리를 비우셔도 괜찮을까요?”

동우 법률사무소에 클론매매에 대한 답을 전한 뒤 시스템에 대한 준비가 한창인 상황이었다.

단순히 계좌를 연동하는 것을 넘어 계좌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과 사람을 파견하는 것까지 서로 간에 맞춰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닌 상황이었다.

물론 진행은 실무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한진영이 직접 움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가 필요했고 한진영이 없다면 결정 단계에서 딜레이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한진영은 걱정하는 조지훈을 올려다보고 괜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됐어. 그냥 가. 어차피 최종 결정은 그곳에서 이루어질 테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최종 결정이요?”

“그래. 그러니 표하고 숙소부터 구해.”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걱정하는 마음을 지웠다.

한진영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종필에게서 넘어오겠냐는 이야기를 들은 지 사흘 만에 뉴욕행 비행기에 한진영과 조지훈은 몸을 싣게 됐다.

그리고 두 사람 외에도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사람이 더 있었다.

“넌 또 왜 왔냐?”

한진영은 옆좌석에 앉아 잡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성우를 바라보고 혀를 찼다.

“기풍은 요새 하는 일이 없어?”

“하는 일 많지.”

“그런데 전략실 실장이라는 놈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중요한 비즈니스 차 뉴욕에 가는 길이다. 신경 쓰지 마.”

이성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고는 건너편에 앉아있는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방 구해줘서 땡큐.”

“아닙니다.”

조지훈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이성우는 한사코 감사의 뜻을 표하려 노력했다.

“내 이름으로 방 구하기 어려웠는데 덕분에 좋은 곳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내가 감사의 의미로…… 어디 보자.”

이성우는 품에서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조지훈에게 내밀었다.

“자 받아. 뉴욕 닉스 티켓이야.”

“뉴욕 닉스요? NBA 그 뉴욕 닉스요?”

“그래. 뉴욕에 그것도 겨울에 뉴욕에 가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가서 농구 경기 하나 봐줘야 하지 않겠냐? 선수들 바로 앞에 있는 코트 좌석이야.”

이성우가 손을 쭉 뻗어 조지훈에게 내밀자 조지훈이 조심스럽게 티켓을 받았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표 한 장에 만 불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구하기가 힘들어. 코트 바로 앞에 있는 좌석은 시즌이 열리기 전에 모두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으니까. 그걸 내가 구했다는 거 아니냐? 어때? 신나지?”

“네? 네. 신나…… 네요.”

조지훈은 생글생글 웃으며 어떠냐고 질문을 던지는 이성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한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졌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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