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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12화 (312/650)

312화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현봉국에 이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김교철에게로 모여들었다.

현봉국과 마찬가지로 모두 김교철이라면 무언가 방법이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자리하고 있는 방안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런 침묵 속에서 김교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었지요.”

“있었다는 말씀은…… 지금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현봉국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김교철은 그런 현봉국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었는데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지금은 이 추세 그대로 진행이 되는 게 최선입니다. 오히려 격차가 줄어들어 결과가 안갯속에 빠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시점입니다.”

“결과가 안갯속에 빠진다니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현봉국은 김교철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돌아보며 동의를 구했다.

결과만큼은 확신이 있었기에 김교철의 말이 의아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김교철의 말에 하나둘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도 지금의 상황이 마냥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말에 공감했다.

“확실히 여기서 더 밀리면 상황을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악재 한두 방이면 뒤집히지 말란 법이 없지요.”

“악재가 아니라 루머에도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확실히 지금은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승리만큼은 확신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패배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한진영은 김교철의 말 한마디에 바뀐 분위기를 가만히 바라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감정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저 성격은 여전하네.’

한진영은 김교철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경각심을 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연출하는 것을 김교철은 좋아한다는 것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진영은 김교철의 말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김교철은 잠시 상황을 즐긴 뒤 차분한 목소리로 소란스러워지려는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그래도 결과가 바뀌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언뜻 들으면 흥분하려는 사람들을 달래는 말처럼 들릴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진영은 김교철이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흥분한 사람들을 향해 기름을 끼얹는 의미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한진영의 생각이 맞는 것인지 사람들은 김교철의 말에 바로 반응했다.

“네.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뿌린 씨앗을 다른 놈들이 수확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전화라도 한 번 더 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저도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앉아서 시간을 허비하느니 투표에 도움이 될만한 이들과 한마디라도 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말을 마친 채영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이어 현봉국과 주기문 등도 채영석의 뒤를 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진영의 눈에는 대선에서 패배했을 때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을 사람부터 순서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채영석은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을 한번 쓸어본 후 여전히 앉아있는 김교철을 향해 인사했다.

“술은 승리가 확정되는 날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군이 주군을 향해 인사를 하는 것처럼 크게 고개를 숙인 채영석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가시죠. 가서 승리를 우리 손으로 얻어 오도록 합시다.”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사람들은 채영석의 말에 동의하고 차례대로 김교철을 향해 인사했다.

한진영은 코미디를 방불케 한 모습을 보고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그러나 아무리 우스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동조해야 무리에 계속 끼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한진영도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한진영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자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복도를 걸어가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을 나누었다.

누구에게 연락하는 게 좋은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풀어가야 하는지 한참을 의견을 나누던 사람들은 어느새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들이 떠난다는 것을 미리 연락받은 차들이 차례대로 주차장에서 나와 현관 쪽으로 들어왔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주기문 전 장관을 시작으로 하여 채영석과 이의경 변호사 그리고 현봉국 차관 등이 차례대로 차에 올라타고는 동우 법률사무소를 떠나갔다.

안혁규 의원과 프라임리츠의 정병선 회장마저 떠나자 자리에는 한진영만이 남게 됐다.

한진영이 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를 향해 김교철의 비서인 박경진이 다가왔다.

“대표님.”

한진영은 바지춤에 손을 넣은 채로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박경진과 차를 빼 와야 할 조지훈이 서서 한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등장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신가요?”

“네. 대표님께서 잠시 뵈었으면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과 달리 모두 떠나도록 한 뒤에 따로 부르신 것을 보니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올라가셔서 직접 한번 여쭤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시지요.”

박경진은 한진영에게 김교철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한진영은 그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후 박경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는 가득 찼던 엘리베이터가 이제는 박경진과 한진영 단둘만을 태운 채로 조금 전 내려왔던 곳을 거슬러 올라갔다.

***

“와서 앉게.”

김교철이 들어온 한진영을 향해 앉을 것을 권하자 한진영은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김교철은 그런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이리 오게.”

“다른 분께서는 안 오시는 건가요?”

“다들 가는 걸 보고 올라왔다면서 그런 소리는 뭐 하러 하나? 어서 오게. 그렇게 떨어져 있으면 이야기하는 데 목 아파.”

김교철의 말에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교철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도 김교철이 손바닥으로 두드린 바로 옆자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김교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고 하더라도 어깨를 마주할 정도로 가까워지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이 자리에 앉자 김교철은 와인을 들어 한진영에게 권했다.

“자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지.”

한진영은 살짝 자리에서 일어나 김교철이 내민 와인을 공손한 자세로 받았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를 알겠나?”

한진영은 다시 자리에 앉아 김교철이 건넨 와인의 맛을 본 뒤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김교철은 한진영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다고 하지는 말게. 나는 굳이 그런 말을 들으며 기분 좋아할 사람은 아니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겉치레로 하는 말을 싫어하신다는 걸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대표님께서 왜 저를 부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진영이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김교철은 그런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의 말이 진심임을 느끼고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사실 한진영은 김교철이 부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말과 달리 김교철은 입에 발린 말을 좋아한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시절 그의 곁에 다가가기 위해 또는 그의 눈에 들기 위해 그에게 할 말 못 할 말을 다 했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히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교철은 그런 사실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을 싫어했다.

누군가가 자기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김교철은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조금 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감정을 지배하려 하듯이 모든 사람이 자기 손바닥 위에서 놀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 바로 김교철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김교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하며 그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김교철은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한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자네를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에 따로 부른 건 다름이 아니야.”

김교철은 잠시 말을 멈추고 한진영을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들고 있던 와인잔에 담긴 와인을 맛보며 눈빛만큼이나 은근한 어조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자네도 이번 대선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어?”

김교철의 말에 한진영의 얼굴에서는 빠르게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김교철에게서 듣고 싶어 했던 말이 드디어 나왔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마음을 다스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도 오래전부터 어떤 방법으로 도움이 되어야 하는지 많은 고민했습니다. 대표님께서 제게 길을 알려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자네의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드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알려주도록 하겠네.”

오랫동안 김교철은 한진영을 지켜봤다.

동우 법률사무소의 꼭대기 층의 멤버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일정 공간 이상 떨어져 한진영을 관찰했던 김교철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일도 시키지 않았다.

내 편이 아닌 사람에게 일을 시킬 만큼 김교철이 내리는 일들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한진영을 지켜본 김교철은 한진영이 믿음직스럽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얼마 전에 있었던 안혁규의 일만 아니었다면 결론 내리는 순간이 조금 더 뒤로 밀렸을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김교철은 사람을 판단할 때 빠르면 1년 길면 3년에서 4년까지도 지켜보고는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혁규의 일 때문에 한진영에 대한 결론을 다른 때보다 빠르게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안혁규의 일을 처리하느라 많이 피로해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한진영에 대한 판단이 소홀했다고 김교철은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상으로 보았을 때 지금까지 무탈한 인물이라면 이후로도 괜찮다는 경험이 오랜 시간 쌓였기 때문이다.

“자네가 할 일은 간단하네. 돈. 돈을 맡아주면 된다네.”

“돈이요?”

한진영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김교철을 바라보고 말했다.

“설마 기부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부금이라고 해 봤자 그게 얼마나 된다고 내가 그걸 자네에게 맡으라고 하겠나? 그건 아니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여쭤본 거였습니다.”

한진영은 김교철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요? 돈과 관련된 일 중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있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무엇입니까?”

“안 의원에게 제안했던 것. 그걸 우리에게 해주면 되네.”

“안 의원에게 제안했던 것이요? 무얼 말씀하시는지…….”

한진영은 김교철을 향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의원에게 자기가 제안했던 것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김교철은 그런 한진영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클론 매매. 그걸 해주면 되네.”

“클론 매매요?”

조금 전까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던 한진영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다.

클론 매매라는 말이 김교철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혹시 제가 안 의원에게 타점을 알려주고 똑같이 따라 매매하라고 했던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클론 매매하고는 조금 다른 것입니다. 그건…….”

한진영이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려 하자 김교철이 한진영의 말을 막아섰다.

“그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네.”

“알고 계신다고요? 알고 계시는데도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나는 그걸 하고 싶네.”

한진영은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김교철 앞에서 지어 보였다.

김교철과 클론 매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한진영은 조금만 시간을 달라는 말을 한 뒤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조지훈이 미리부터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고는 동우 법률사무소를 떠났다.

“피곤해. 피곤해.”

“이야기는 잘 나누셨습니까?”

조지훈이 피로가 가득 얼굴을 덮고 있는 한진영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한진영은 눈을 감은 채로 조지훈의 질문에 대답했다.

“뭐 예상대로야.”

“정말 김 대표변호사님께서 대표님께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신 건가요?”

“왜 안 그러겠어. 안혁규의 빵구난 돈을 메우려면 김교철로서도 만만치 않았을 거야. 그렇게 싹싹 비어버린 주머니와 나를 보고 김교철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비어있는 주머니 좀 채워달라고 말할 게 불 보듯 뻔했어.”

한진영은 김교철이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을 예상했었다.

그리고 어떤 방법을 써서건 한진영에게 돈을 벌게 해달라는 부탁을 할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클론 매매를 하겠다고?”

한진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조지훈은 한진영의 혼잣말 속에서 알지 못하게는 단어를 듣고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클론 매매가 무엇입니까?”

혼잣말을 내뱉던 한진영은 조지훈을 바라보고 대답했다.

“내 계좌와 연동시켜서 내가 하는 매매를 똑같이 따라 하는 게 클론 매매야. 자동으로 본 계좌가 매수하면 클론 계좌도 매수 주문이 들어가고 매도하면 매도 주문이 들어가고…….”

“그런 게 있습니까?”

“어. 있어. 있는데…… 이걸 김교철이 어떻게 알았지?”

한진영은 김교철이 클론 매매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실 김교철이 할만한 제안으로 예상했던 것은 한진영이 안혁규 의원에게 제안했던 방법.

바로 타점 자리를 알려주어 그걸 따라 매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교철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히 똑같이 매매하겠다는 클론 매매를 제안했다.

한진영으로서는 의외의 제안에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미 안혁규를 김교철에게 보낸 순간 결론은 나와 있었고, 그 결론을 향해 나아갈 뿐이라는 것이 한진영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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