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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74화 (274/650)

274화 한 달이라는 시간

어느 순간부터 대경TV에서 가장 인기를 얻는 방송은 종목분석이나 고민 해결 방송이 아니게 됐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답해주는 방송이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지금은 그런 방송을 모두 최석영의 방송이 밀어내고 말았다.

최석영이 정기적으로 대경TV에 얼굴을 비추는 것은 아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비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어쩔 땐 두 달에 한 번 방송에 나오는 게 전부였다.

물론 실제로 바빠서 그런다기보다는 비싼 척하기 위해 안 바빠도 바쁜 척하며 방송에 얼굴을 자주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최석영의 방송이 대경TV의 모든 방송을 압도할 정도로 많은 사랑과 인기를 끌고 있었다.

탁월한 안목과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예언에 가까운 예측까지 방송을 보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두 잡아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방송에서 최석영은 시장의 조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모든 이슈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면 시장은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장의 충격…….

진행자석에 앉아있던 아나운서는 최석영의 말에 불안한 듯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파급력이 있는 방송에서 최석영이 하는 말이 얼마나 힘을 받을지 생각하는 아나운서의 마음이 화면을 통해 조지훈에게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잘 되겠어.”

한진영도 그런 마음이 느껴졌는지 편안한 자세로 앉아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다.

한진영은 앞에 놓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이제 하나는 마쳤으니 다른 것도 해야지.”

한진영의 말이 마치 신호라도 된 것인지 아나운서는 급히 화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시장 상황이 그렇군요. 자 그럼 이쯤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나운서는 조금 전까지 굳어있던 얼굴을 어느새 풀고 웃으며 최석영에게 말했다.

-세이지 자산운용에서 새로운 펀드를 출시하셨다고요? 어떤 펀드인지 소개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최석영이 방송에 나간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최석영은 자세를 다시 고쳐 앉고는 카메라를 응시한 채 아나운서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희가 새롭게 해외시장에 투자하는 펀드를 출시했습니다.

-해외투자요?

아나운서는 마치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하고 천천히 말했다.

-해외투자라고 하면 몇 년 전에 유행했던 퓨처에셋의 펀드가 떠오르는데요. 그것과 비슷한 건가요?

아나운서의 질문에 최석영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것과는 같은 펀드가 아닙니다.

-그럼 어떤 게 다르지요?

-우선 저희 펀드는 퓨처에셋의 펀드와 달리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입니다.

-미국이요?

-네. 물론 미국 시장만 단일로 공략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서는 유럽과 일본, 홍콩 등지에 투자를 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 시장에 투자를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전적으로 중심이 되는 것은 미국이 될 겁니다.

-미국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라…… 특이한데요. 어떤 이유에서 그런 펀드를 출시한 거죠?

아나운서의 말에 한진영이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경TV가 확실히 잘해주기는 하네. 매끄럽게 분위기를 몰고 가. 다음에도 방송에 관해서는 대경TV와 우선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짧게 대답하고는 화면을 바라본 채 이야기했다.

“대경TV가 오래전부터 최 차장님과 함께 작업을 해서 그런지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이네요.”

“어. 내 생각에도 그래.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나와야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데 그걸 대경TV가 잘하네. 만족스러워.”

한진영이 만족해하는 사이 최석영은 화면 속에서 펀드의 출시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최근 저희가 미국에 투자하여 꽤 재미를 보았습니다.

-아~ 저도 이야기 들었습니다. 이번에 나스닥에 상장한 테라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계신다고요?

-네. 꽤 많은 지분을 취득한 상태입니다.

-테라는 상장 첫날 나스닥지수가 급락하는 하락장세 속에서도 41% 급등하는 기염을 토했는데요. 이와 같은 급등세는 상장 첫날 44% 급등했던 파이낸셜 엔진스에 이어 두 번째로 좋은 흥행 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약 나스닥이 급등이 아닌 보합만 되었어도 어쩌면 두 번째가 아닌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을 수도 있었는데요. 어떻습니까? 기분이 좋으실 듯합니다.

조지훈은 아나운서의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돌아봤다.

테라는 공모 희망 가격을 훌쩍 넘긴 19달러에 시작가가 잡혔다.

그런 상황에서 장이 시작하자마자 상승세를 이어가 25달러를 탈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3달러에 지분을 획득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상장 첫날 거의 100%에 가까운 성과를 올린 것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개인적으로 투자한 돈을 빼는 게 어떠냐고 말했던 과거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상장하자마자 잡으라며 돈까지 빌려줬던 한진영이 고맙게 느껴졌다.

19달러에 잡은 조지훈조차 20%가 넘는 수익을 올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조지훈이 바라보는 사이 화면 속 최석영은 아나운서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기분이 좋지요. 하지만 마냥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마냥 좋지는 않다고요?

-네. 이런 좋은 주식을 많은 분께 소개해 드리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매우 흔한 상투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말을 한 사람이 최석영이 되는 순간 이 상투적인 이야기가 절절하게 가슴이 아픈 이야기처럼 변했다.

그만큼 최석영이 풀어내는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했다.

최석영은 카메라를 바라본 채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테라는 지난 1956년 포드가 이후 처음 미국 자동차업체가 뉴욕 증시에 상장한 겁니다. 이런 테라가 화려하게 증시 상장에 성공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잃어버린 자동차 제국의 지위를 전기차로 재건하고자 하는 미국인들의 바람이 담겨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최석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카메라를 응시한 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물론 테라는 안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달고 다녔습니다. 재정적 문제는 꼬리표처럼 테라를 따라다녔으며, 제대로 된 생산을 해본 적이 없다는 시각은 테라를 제조업 회사가 아닌 여전히 스타트업 회사쯤으로 여기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안 좋은 이야기 속에서도 결국 상장에 성공했으며 저희는 테라에서만…… 약 1,300억.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습니다.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계신다고요? 놀랍습니다. 테라의 주식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상장하자마자 급등 속에서 큰 수익을 올리신 건가요?

놀란 듯한 아나운서의 질문에 최석영은 차분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사실 저희는 상장 전에 지분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회사를 발굴하여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지분을 획득한 것이지요.

사실 테라에서 지분 투자를 요청하여 이루어진 거래였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여 이야기했다.

그래야 듣는 입장에서 관심을 더 가지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앞뒤가 조금 바뀐 정도였다.

테라에서 요청하지 않아도 한진영은 테라의 지분을 획득할 계획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석영은 계속 이야기했다.

-그래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고, 전기차 시장이 확대될 때까지 계속 끌고 갈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1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음에도 계속 끌고 가신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이번 테라의 IPO 성공을 마켓워치에서는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테라는 앞으로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며, 연간 2만 대 규모의 생산력을 갖춘 공장을 인수한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경과 유가에 대한 소비자와 정부가 모두 관심이 있는 만큼 전기차 시장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벌써 미국은 2015년까지 전기자 100만 대 시대를 열겠다며 대당 7,500달러의 세제 혜택을 결정했습니다.

전기차 시장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아나운서는 최석영의 설명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군요. 말씀을 들으니 앞으로 전기차 시장이 굉장히 유망해 보이는데요. 그런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테라라는 회사의 지분을 선취매 형식으로 확보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것과 새롭게 출시하려는 펀드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요?

-아주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최석영은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정확히 핵심을 짚어준 아나운서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바로 이런 게 호흡이 맞는다는 뜻이었고, 대경TV와는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을 보인 최석영이었다.

최석영은 아나운서의 질문을 받아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렇게 좋은 회사를 많은 분과 공유하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에 펀드를 출시한 겁니다. 주식시장은 정보와의 싸움입니다. 그건 국내시장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회사에 대한 정보는 소수만이 가지고 있으며, 일반 개인들이 알기에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특히, 해외시장에서의 정보는 개인이 알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미 외부에 드러난 정보는 그 효용가치를 다 소모한 뒤가 될 테니까요.

최석영은 시선을 다시 카메라 쪽으로 돌렸다.

이번에도 타는 듯한 눈빛을 카메라로 쏘아 보낸 최석영은 듣기만 해도 신뢰가 쌓일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정보를 모으는 일은 저희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보를 선별하여 투자하는 일도 저희가 하겠습니다. 저희와 함께하는 고객 여러분들은 그저 펀드가 제대로 잘 굴러가는지만 확인하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테라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린 세이지 자산운용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 신뢰가 가는데요. 이번에 출시한 펀드에는 특이한 게 있다면서요?

-네. 계약 조건이 조금 특이합니다.

최석영은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달리 얼굴에 표정을 풀어가며 말했다.

-저희는 다른 곳과 달리 선취수수료를 포함하여 보수수수료 그리고 취급수수료 등등 수수료를 받지 않을 계획입니다.

-수수료를 받지 않으신다면 무엇으로 돈을 버실 생각인 겁니까?

-수익이 난다면 수익 난 돈의 30%를 수수료 대신 받을 계획입니다.

-수익의 30%를 떼어간다? 손해를 본다면…….

-손해를 본다면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겠습니다. 환매수수료도 부과하지 않을 테니 언제든 넣었다 빼시고 싶을 때 빼셔도 됩니다. 다만 나가시면 다시 들어올 수 있다는 보장은 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정한 금액 이상을 계속 받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파격적으로 들리는 조건에 아나운서도 진심으로 놀란 눈으로 최석영을 바라봤다.

최석영은 그런 아나운서의 시선에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떻습니까? 아나운서님도 저희 펀드에 가입하시는 게 말입니다.

최석영의 제안에 아나운서는 솔깃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이지 자산운용의 펀드는 예전부터 많이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수익률을 보인다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었지요. 하지만 그동안 저와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문이 열리지 않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이 열렸으니…… 들어가야지요. 어디서 가입하면 되죠?

-가입은 두리은행 각 지점에서 다음 달 초부터 받을 계획입니다.

-다음 달이요?

바로 열리지 않아 아쉽다는 표정의 아나운서였다.

최석영은 그런 모습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웃으며 아나운서를 다독였다.

-이해해주십시오. 사실 저희가 펀드를 새롭게 연다는 것은 여기 대경TV에서 처음으로 오픈하는 겁니다. 어디에도 이야기하지 않은 따끈한 최신 소식이지요. 그러다 보니 조금 일찍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제가 방송 초반에 이야기한 내용이 맞는지 잘 살펴보시면서 펀드에 투자할 것인지 아닌지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 조건도 같이 고민하시면서 말입니다.

최석영의 말에 아나운서가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부분 회사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오픈하고 자기 말이 맞는다며 들어오라고 이야기하기 바쁜데, 역시 세이지 자산운용은 다르시네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라니요? 하하. 제가 대경TV에서 오래 있었지만 이런 말은 또 처음 들어봅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럼 앞으로 여러분과 가족이 되어 함께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날을 기다리며 다음에 또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세이지 자산운용의 최석영 차장님이셨습니다.

방송이 끝나자 한진영은 마시던 캔맥주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조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책상을 치우며 한진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질까요? 아무래도 조건이 다른 곳들과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많이 꺼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뿐이겠어? 퓨처에셋이 거대하게 똥을 싼 덕분에 한동안 해외투자의 ‘해’자도 꺼내지 못했잖아. 아직도 그 트라우마가 남아있는데 사람들이 해외투자에 호의적일 리가 없지.”

조지훈은 분명 여기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진영이라면 기필코 이 펀드를 흥행시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가만히 안주와 맥주를 정리하는 조지훈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래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준 거야.”

“그래서요?”

“그래. 잘 확인해보라고 말이야. 우리가 한 말이 맞는다면 아마 출시하고 며칠 되지 않아 완판될 거야. 사람이란 게 그렇거든.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도 잘 맞추는 거 보면 트라우마고 나발이고 돈을 밀어 넣기 바쁘니까.”

“그럼 결론적으로…… 그리스 이야기와 미국 이야기가 빨리 나와야겠네요.”

조지훈의 말에 한진영이 달력을 바라보고 물었다.

“프랑스 선거가 언제라고?”

“다음 주 토요일이요.”

“다음 주 토요일.”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슬슬 사전 작업을 하듯이 다음 주부터 움직이기 시작하겠네.”

그리스와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프랑스 대선을 묻는 한진영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대선 날짜에 맞춰 움직일 거라는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이유를 지난 회의 시간에 듣기는 했지만 말로 들은 것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프랑스 대선 날짜가 적혀있는 토요일을 유심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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