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73화 (273/650)

273화 같은 포지션을 잡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최석영은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그걸 누가 들려고 할까?”

최석영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이야기했다.

“보통 대표적으로 펀드를 운용하는 곳들이 많이 하는 게 선취수수료잖아. 선취수수료가 1%라고 한다면 100만 원을 집어넣었을 때 1%의 수수료를 떼고 99만 원부터 시작하는 선취수수료 말이야. 이걸 일회성으로 적용하고 매년 보수 수수료를 적용해서 떼어먹는 게 일반적인데…….”

최석영은 최근에 많이 팔리는 펀드들의 조건을 떠올리고 계속 이야기했다.

“최근에 많이 나오는 펀드들은 선취 수수료가 0.5%에 운용보수로 0.4%, 판매보수로 0.5%, 수탁보수로 0.03% 뭐 이쯤 떼어 갈 텐데…… 이거 아무리 다 더하고 뭐하고 해 봤자 2%가 넘지 않아. 물론 집어넣고 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수탁보수가 높아지니까 수수료도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그래 봤자 아니냐? 10년을 들고 있는다고 해 봤자 0.5%가 안 되는데 수익의 30%를 떼어가겠다고 한다면 누가 들려고 하겠어?”

“말씀 잘하셨네요.”

한진영은 최석영이 수수료를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다 들은 뒤 이야기했다.

“말 잘했다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수수료를 쭉~ 이야기하셨잖아요?”

“어? 그게 왜?”

“그렇게 복잡하니 사람들이 계산하기 힘들어하죠.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깔끔합니까? 선취수수료 같은 지저분한 것도 받지 않고, 운용보수라든지 판매보수 같은 것도 받지 않을 테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탁보수 같은 것을 받지 않으니 얼마나 양심적인 곳이에요?”

“아. 그거야 그렇지.”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한 대표 말이 맞아. 우리만큼 깔끔한 곳이 없기는 해.”

최석영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여 마른 입을 축이고 이야기했다.

“지저분하게 이거저거 다 붙여가면서 떼어먹지 않고 게다가 손해를 보면 수수료 한 푼 받지 않겠다는 곳이 세상에 어디 있어? 아니. 뭐 다른 곳도 있기는 하겠지만…… 뭐 어쨌든 대한민국에는 우리밖에 없어. 그건 인정해. 인정하는데…….”

최석영은 여전히 꺼림직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말없이 바라봤고, 최석영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다.

이번에도 최석영이 먼저 이야기했다.

“30%는 크지 않아? 막말로 1%도 아까워서 벌벌 떠는 게 사람 심리인데 떡하니 30%를 떼어가겠다고 하면…….”

“하겠다는 사람만 받으면 되죠.”

한진영은 별것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하기 싫다는 사람 목에 칼 들이밀고 가입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하겠다는 사람만 받아도 충분합니다.”

“하겠다는 사람만 받아도 충분하다고?”

최석영의 눈이 흔들렸다.

너무나 자신 있어 하는 한진영의 모습에 자기가 무언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느낌마저 받았다.

한진영은 혼란스러워하는 최석영을 향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기존에 판매했던 펀드의 기준을 따라 그대로 판매하면 됩니다. 다만 전에 출시한 펀드들과 달리 이번에는 해외시장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출시했다는 것만 다를 뿐이죠. 퓨처에셋의 펀드와는 조금은 다르다는 뜻을 보여주기는 해야 할 겁니다.”

한진영은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최석영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을 보고 바로 지금 한진영이 말하려는 것이 펀드의 핵심임을 알게 됐다.

“뭐가 다르다는 건가?”

“퓨처에셋의 경우에는 중국 주식에 집중했는데, 우리는 미국 주식에 집중하여 투자할 계획이니까요.”

“미국에? 미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고?”

기존에 오랫동안 주식시장을 지배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신흥국에 투자하라.

이제 막 산업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곳에 투자해야만 돈을 벌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 말의 반대에 해당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선진국에 투자한다면 안정적이지만 큰돈을 벌 수 없다는 말도 있었다.

지금까지 이 말은 오랫동안 시장에 맞아떨어졌다.

미국의 다우와 S&P500에 들어간 종목들의 경우에는 변동성이 극히 작았다.

변동성지수를 따졌을 때도 20을 채 넘기지 않을 정도로 하루 변동폭이 다른 신흥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래서 퓨처에셋도 신흥시장에 해당하는 중국 시장을 공략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미국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나서니 최석영의 혼란스러운 머리는 더욱 엉켜버리고 말았다.

한진영은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복잡해 하는 최석영을 향해 기준을 세워줬다.

“기준은 이겁니다. 수수료는 기존대로 수익의 30%, 투자처는 미국, 판매는 원하는 사람에게만 하는 것으로 할 겁니다. 다만 이번에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판매처를 정해야겠지요.”

“그래. 판매처 수수료는 어떻게 할 건데?”

최석영은 이야기 잘했다는 듯이 소리 높여 말했다.

“우리야 수수료를 안 받겠다고 하지만, 판매처의 수수료는 어떻게 할 거야? 판매처에 수수료는 줘야 하잖아.”

최석영의 말에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판매처에 수수료를 줘야지 판매처도 저희 펀드를 판매하겠지요.”

한진영은 잠시 최석영의 말에 팔짱을 끼고 턱을 쓰다듬으며 계산했다.

“보통 판매처에 보장하는 판매보수는 0.5%니까. 보자. 100억에 0.5%는 5,000만 원. 1,000억이면 5억.”

한진영은 잠시 계산하더니 최석영에게 말했다.

“대충 5,000억만 모집하려고 했는데 그렇다면 수수료가 25억쯤 나오겠네요.”

“그렇지. 그 정도를 판매처인 은행에 제공해야…….”

“그거 우리가 보장하도록 하지요.”

“뭐?”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에 말을 하려던 것을 멈추고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한진영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황당해하는 최석영을 향해 말했다.

“5,000억을 모집하는데 25억이면 뭐 큰돈 아니잖아요. 그거 우리가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으로 하지요. 그냥 서비스로 하기는 그러니까 대신 좀 생색내면서 하기는 해야 할 겁니다.”

“한 대표. 판매보수를 우리가 왜 내줘?”

“이익의 30%를 떼어갈 텐데 그까짓 25억을 아까워해서는 안 되죠.”

“우리가 돈을 벌지 못하면 25억이 고스란히 우리 손실로 잡히는 건데?”

최석영의 말에 한진영이 커다랗게 웃었다.

“차장님. 5,000억을 유치해서 30%만 수익을 올려도 우리에게 떨어지는 돈이 450억이에요. 거기서 25억쯤 내놓는 걸 아까워해서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내 말은…….”

“알고 있어요. 손실을 보게 되면 우리가 받는 타격이 두 배가 된다는 걸요. 하지만 차장님.”

한진영은 웃는 것을 멈추고 은근한 어조로 최석영을 불렀다.

최석영은 그런 최석영의 목소리에 홀린 듯이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향해 조금 전 최석영을 불렀든 그 목소리 그대로 이야기했다.

“저는 손실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손실을 본 적이 있던가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만한 말이었다.

그러나 말한 사람이 한진영이라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졌다.

“손실 본 적이…… 없지. 그래. 없기는 해.”

손실은 고사하고 1~20%의 수익으로 끝을 낸 적도 없었다.

우선 먹었다 하면 100% 이상이었으며, 심하게 먹었을 때는 10배 넘게 먹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손실을 걱정하고 있으니 어쩌면 자기가 너무 앞서 나가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 최석영이었다.

한진영은 의문이 거둬진 최석영의 얼굴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걱정할 건 그게 아니에요.”

“그럼? 수수료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럼요. 있죠.”

한진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최석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5,000억을 모으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죠. 수수료? 그건 다 모으고 나서 생각해도 될 문제잖아요.”

“어~ 그렇네.”

“그래서 최 차장님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5,000억을 모으기 위해서요.”

“나한테? 5,000억을 모으기 위해?”

“네. 최 차장님이 나서줘야 5,000억을 모을 수 있으니까요.”

“내가 나서야 모은다니? 내가 어떻게? 아니. 내가 뭔 수로 5,000억을 모아?”

한진영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최석영에게 손가락으로 TV를 가리켰다.

최석영은 한진영이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TV를 바라보고 말했다.

“설마 나보고 TV에 나가서 펀드를 광고하라는 건 아니지?”

“그럴 수는 없죠. 그저 차장님은 평소처럼 방송에 나가서 우리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공개하고 개인들에게 펀드 가입의 문을 열어주려 한다는 것만 이야기하시면 돼요.”

“평소처럼?”

“네. 평소처럼요.”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은 그제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런 거라면…… 야 걱정하지 마. 그거야말로 내 전문 분야니까.”

최석영은 말을 할수록 자신감이 차올랐던지 나중에는 가슴까지 두드리며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어려운 것도 없잖아. 그냥 우리가 지금 시장을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해외투자 펀드를 개설하려 하니까 다들 관심 많이 가져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나한테 맡겨.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

한진영은 자기만 믿으라는 표정의 최석영을 향해 웃었다.

“차장님을 믿으니 부탁을 드리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시장을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만으로는 사람들을 홀리기에는 부족할 거예요. 그래서 한 가지 더 차장님 손에 무기를 쥐여주도록 할게요.”

“무기? 무슨 무기?”

최석영이 무얼 말하려는 건지 궁금해하자 한진영은 최석영의 손을 덥석 잡고 진짜로 손에 무언가를 건네주는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테라요.”

“테라?”

“네. 나가서 테라를 이야기하시면 돼요.”

최석영은 어째서 테라가 무기가 된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한진영이 건네준 손을 가만히 내려보기만 했다.

***

조지훈은 화면에 나온 최석영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최 차장님은 화면에서 볼 때하고는 딴판이야.’

직접 회사에서 마주할 때는 세상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을 정도로 어딘가 나사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는 했다.

게다가 방송이 있는 날에는 화장실을 열댓 번은 다닐 정도로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최석영이었다.

그런데 화면 속에 있는 최석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한 표정으로 앉아 여유롭게 이야기를 이끌어가고는 했다.

바로 지금도 화면 속의 최석영은 분위기를 휘어잡고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제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언제나 위기는 안도 속에서 찾아오는 법입니다. 지금은 안도하고 상방을 바라봐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위기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위기입니다.

단호한 최석영의 말에 진행자석에 앉아 있던 아나운서는 마른침을 삼켰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최석영이 하는 말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투자시장, 그중에서도 주식시장에서의 최석영은 다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기가 막힌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최석영의 말은 법칙과도 같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최석영이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분위기가 좋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아나운서였다.

진행자석에 앉아 있던 아나운서는 잠시 마음을 다스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최석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각 증권사에서는 하반기 코스피의 상단을 2,500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코스피 하단은 지금 있는 자리인 2,000선을 하단의 가장 밑바닥으로 설정해 놓고 있고요. 모든 분위기는 시장에 호의적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기라고 말씀하시니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그럼 제가 지금이 왜 위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석영은 아나운서를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카메라 쪽을 응시했다.

카메라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최석영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조지훈은 그런 최석영의 눈빛에 흠칫 놀라고는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조지훈과 달리 최석영의 눈빛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하여튼 저 양반 웃긴다니까. 방송국에 가기 전까지는 휴지를 손에 들고 다니지 않았냐?”

“네. 먹으면 바로 싼다고 점심도 안 드셨어요.”

“그런 양반이 눈이 살아 있어. 우리 몰래 방송국에서 뭔 약이라도 주는 거 아냐?”

한진영의 농담에 조지훈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사이 화면 속의 최석영은 지난 회의 시간에 이야기했던 내용을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럽 쪽의 문제와 미국 쪽에서 이야기 나온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섞여 휘몰아칠 시장 상황까지.

무엇 하나 회의 시간에 했던 내용과 다른 것이 없었다.

조지훈은 그런 최석영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은 걱정이 됐다.

“너무 많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요?”

“아니. 딱 좋아. 저렇게 다 풀어줘야 사람들이 제대로 지금의 상황을 인식할 수 있어.”

“만약 다른 곳이 우리의 전략을 이야기 듣고 따라 한다면 어떡해요?”

조지훈의 걱정에 한진영은 화면을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조지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따라 하면 더 좋지.”

“네? 더 좋다고요?”

“그래. 시장에서 나 홀로 포지션을 잡고 있는 것만큼 불안한 게 없는 거야. 이게 로또 번호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같은 포지션을 잡아야 그 시너지가 더 크니까 더 좋은 거지. 생각해봐. 나 혼자 하방 잡은 상태에서 하방 이슈가 터지면 상방 잡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하방으로 떨어져 내려가려는 것 막으려 할 거 아냐? 그런데 나 외에 다른 사람도 하방 포지션을 잡았어 봐. 그럼 이슈에 옳다구나 하고 더 깊게 밀어버리지 않겠어? 그러니 다 같이 잡고 있는 게 좋은 거지.”

한진영이 말을 듣자 조지훈은 그제야 최석영이 방송에 나간 숨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음을 알게 됐다.

세이지만이 아닌 다른 곳에도 주의를 같이 포지션을 잡자는 무언의 신호를 주기 위해 최석영을 방송에 내보낸 것이었다.

한진영의 그림이 이제서야 조지훈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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