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68화 (268/650)

268화 예상외의 일은 소홀함 때문에 일어난다

세올컴퍼니의 문제는 공매도가 아닌 과도한 전환사채 발행으로 인한 불공정 거래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법적으로 허용된 발행량을 넘어선 세올컴퍼니의 전환사채 발행은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주장이 나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전환사채 발행은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었기에, 전환사채 발행부터 시작하여 합병까지 모든 거래가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이런 주장은 전에 이어졌던 이야기들보다 더욱더 강하게 힘을 받았다.

이야기를 주장한 이들이 다른 곳이 아니라 증권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동 대책을 마련하여 세올컴퍼니에 대한 지원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문제의 방향이 전환사채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조지훈은 현재 흘러 다니는 이야기를 수집하여 한진영 앞에서 보고했다.

한진영은 가만히 조지훈의 이야기를 듣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분위기는 어떻지?”

“언론에서도 더는 공매도에 관한 이야기는 흘러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숏 스퀴즈를 이야기하며 공매도 물량을 청산하기 위해 매수세가 들어올 거라는 기대에 찼던 장외시장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세올바이오에 매도호가는 13,000원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매수호가는?”

“매수호가는 10,000원 아래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괴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거래량은 얼마나 되지?”

“거래량은 500주였습니다.”

“거래량도 많이 줄었네.”

“네. 보도가 나간 이후 급격하게 줄어든 상태입니다.”

조지훈은 가지고 온 서류들을 살펴보며 계속 한진영을 향해 보고를 이어갔다.

“현재 금감원에서는 세올 그룹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정부에서도 이번 일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흘렸습니다.”

“게임 끝났네.”

조지훈은 보고 있던 서류를 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여차하면 세올컴퍼니에 증시 퇴출을 명령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유는 부정한 전환사채 발행으로 잡았겠지?”

“네. 자기 자산보다 더 많은 전환사채를 발행했다는 게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신고서에 작성한 것보다 난소암 치료제에 대한 가치가 부풀려졌다는 이유도 함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많을수록 좋을 테니까. 여러 가지 가져다 붙일 거야.”

한진영의 생각대로 모든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공매도 이야기는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사람들은 공매도에 대한 이야기보다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려고 했던 기업의 검은 속내에 대한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쪽이 돋보이도록 언론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온 덕분이었다.

게다가 이제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부정한 방법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올라간 주가에, 증시 퇴출이라는 결론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더는 볼 것도 없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었다.

“안 의원이 날 잡고 그렇게 고맙다고 할만했어. 좋아.”

한진영은 세올 이야기가 마무리된 것을 확인하고 조지훈에게 물었다.

“그날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는 언제쯤 완성돼?”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내일이면 보고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 급한 거 아니니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자세히 알아보고 놓친 게 없나 확인해봐. 정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으니까.”

“네. 크로스체크에 삼중 사중 체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놓친 것 하나 없도록 확실하게 준비해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을 향해 약속한 후 자리를 떠났다.

“그럼 이제 기다리면 되나?”

한진영은 차분히 면접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

“……이의경 변호사의 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958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난 이의경은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재학 중 사시에 합격했습니다. 그 후 해병대 법무관으로 재직하며 병역을 마쳤습니다. 병역을 마친 후 광주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하여 부산과 서울 그리고 법무부까지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갔습니다. 이후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전주지검 검사장 그리고 대전고검 검사장까지. 차기 검찰총장에 유력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검찰 내에서도 촉망받던 사람이겠어?”

“네. 맞습니다. 따르는 사람도 많아 무난하게만 공직생활을 이어간다면 법무부 장관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 검찰 내부의 판단이었습니다.”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이의경은 차기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이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까지는 알겠고…… 동우 로펌과의 관계는 어떻게 이어진 거야?”

한진영이 궁금해하던 것은 바로 동우와의 연결고리였다.

지난 시절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그저 동우가 인맥을 넓히기 위해 그를 고문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냐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단순하게 컬렉션 형식으로 이의경을 영입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이유가 있어 보였고 그 이유에 따라 이의경도 움직인 것처럼 보였다.

한진영의 질문에 조지훈이 대답했다.

“동우의 대표인 김교철 대표 변호사가 경남고등학교 출신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대학교도 나왔겠지?”

“네. 맞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의경 변호사가 뛰어나서 그런 것이었는지 서울대 재학시절부터 동우의 장학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하는 도중 미국에 건너가 학위를 받은 것에도 동우의 지원받았다고 합니다.”

“동우가 키운 인재라는 이야기인가?”

“거의 그렇게 보입니다. 동우가 키운 1세대 검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한진영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런 그가 왜 검사직을 그만둔 거지? 검찰총장까지는 프리패스라는 말을 듣던 사람이?”

“실제로 지난 정부 시절 검찰총장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전고검 검사장 이후 서울고검 검사장을 맡아 검찰총장에 내정되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어쩐 일인지 서울고검 검사장 이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스스로 물러났다고?”

“네.”

한진영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에는 뒷이야기가 더 재미있지. 좀 파봐. 아직은 시간이 더 있으니 천천히 해도 돼. 대신 깊게 파봐. 숨겨진 이야기가 뭐가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라는 뜻이야. 분명히 무언가 있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스스로 물러났다? 검찰총장까지 카펫이 깔린 사람이?”

지난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냈기에 어쩌면 검찰총장 이상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차기 정부에서의 장관이 유력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검찰총장 정도는 건너뛰었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지난 시절 한진영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이 검찰총장 자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더 빠르게 VIP의 부름을 받아 검찰총장 자리를 건너뛴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다.

당장 민정수석을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 적임자인 이의경을 검찰총장 자리에 올리느니 청와대로 불러들이는 편이 낫다고 청와대 측에서 판단했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같은 상황을 다시 마주하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민정수석하고 법무부 장관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자리지. 하지만 검찰총장은 달라. 그만두면 돌아가 다시 할 수가 없어.’

검사직을 버린다면 검찰총장 자리에 도전할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민정수석과 장관 자리는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검찰총장이 가진 권력은 두 자리에 비해 낮을지 몰라도 기회는 다른 두 자리보다 더 적은 게 바로 검찰총장이라는 자리였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사람이 검사들의 꼭대기 자리를 눈앞에 두고 포기를 했다는 것이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한진영은 그 부분을 관심 있게 바라본 것이었다.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다시 한번 주의를 주는 말을 건넸다.

“예상외의 일은 소홀함 때문에 일어나고, 소홀함은 게으름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어. 세심하게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 테니 주의해서 잘 살펴봐. 그렇게 찾아낸 것들이 모두 우리의 자산이 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조사해올 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의 이야기를 들은 뒤 생각이 바뀐 조지훈이었다.

한진영의 의심대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보였다.

조지훈은 돌아가 자세히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지훈이 돌아간 뒤 홀로 남은 한진영은 TV를 켰다.

TV에서는 청와대에서 조금 뒤 신임 내각을 발표한다는 속보가 나오는 중이었다.

-임기 말이라는 시기적 특성 때문에 이번 개각은 소폭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비롯한 개각이 예상되는 부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면에서는 청와대에 나가 있는 기자들이 자기들이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하여 이번 내각 인선을 예상하였다.

따르릉.

한참 TV를 바라보던 한진영은 전화벨 소리에 TV 소리를 줄였다.

그리고 전화기에 띄워진 전화번호를 내려다봤다.

“누구지?”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한진영은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전화에 잠시 전화기를 다시 내려놨다.

요즘 따라 몰려오는 광고 전화에 한진영은 이번에도 광고 전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내려놓은 전화기가 몇 차례 더 벨 소리를 울렸을 때 한진영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급히 전화기를 들어 벨이 끊어지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제가 바쁜 시간에 전화를 드렸나 봅니다. 다음에 다시 전화 드릴까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진영이 예상했던 인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잠시 손이 미끄러져 전화를 늦게 받은 겁니다.”

한진영은 상대방이 전화를 끊을까 걱정하는 말투로 전화를 늦게 받은 이유를 설명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그런 한진영의 대답이 재미있었던지 자그마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진영은 상대가 마음에 들어 한다는 모습을 느끼며 잠시 소리가 죽어있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TV에서는 청와대 대변인이 나와 신임 내각 인사가 발표되는 중이었다.

[해양수산부 장관에 재선의 홍경덕 의원이 내정]

한진영은 화면 아랫부분에 나온 자막을 보고 미소 지었다.

한진영의 예상대로 지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한진영을 떠보기 위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시험에 합격이 되어 지금 이렇게 안혁규로부터 직접 전화가 온 것이었다.

-한 대표님. 오늘 시간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동우로 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동우로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언제 만나자는 말도 없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안혁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만나자고 하는 것은 지금 보자는 뜻이었다.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터폰으로 조지훈에게 차를 대기시킬 것을 지시했다.

***

한진영과 조지훈은 동우 법률사무소에 일주일 만에 두 번째 방문하게 됐다.

커다랗게 세워진 건물과 건물의 이름이 적혀있는 입구의 현판.

그리고 잘 닦여진 창문까지 일주일 동안 바뀐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하나 바뀌어 있었다.

“오늘은 마중 나오는 사람이 없네요.”

“한번 와봐서 그들 데이터 속에 있으니까. 다시 나올 필요가 없는 거지. 가자.”

한진영은 지난번과 다른 반응의 동우 로펌에도 어색한 모습 없이 거침없이 행동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도 지난번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빈틈만 보이면 게이트를 넘어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사람들과 그런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보안요원들이 치열하게 로비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한진영은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보안요원을 향해 가볍게 인사하고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조지훈은 우선 데스크에 방문을 알리는 것이 먼저가 아니냐고 생각했다.

이렇게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다가는 보안요원들이 막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지훈의 생각은 여지없이 부서졌다.

한진영의 인사에 보안요원들도 마주 인사를 하며 한진영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은 것이었다.

게이트 또한 막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가림판으로 막혀 카드를 찍거나 아니면 보안요원이 열어줬을 때야 문이 열리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문을 열고 한진영을 맞이했다.

조지훈은 이런 광경에 어리둥절하며 한진영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왜? 신기해?”

“네. 신기해요. 지난번에만 해도 죄인 호송해 가듯이 우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마치 동우에서 일하는 직원이 온 것처럼 행동해서요.”

“그뿐이 아니야.”

“그뿐이 아니라고요?”

한진영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사람이 한진영을 향해 급히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진영이 가만히 마중 나온 사람 앞에 아무런 말 없이 서 있자 그제야 그는 자기소개를 놓쳤음을 깨닫고 급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 소개부터 하는 것이 먼저인데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대표님의 비서실장직을 맡은 박경진이라고 합니다.”

조지훈은 박경진이 말한 대표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동우 로펌의 대표 변호사인 김교철이 비서실장을 내려보내 한진영을 맞이하도록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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