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63화 (263/650)

263화 믿음에 관한 이야기

“지난 금요일 보여주셨던 세올컴퍼니의 사태를 반전시킬 방법을 생각해 왔어요.”

“이 팀장님이 가지고 온 방법은 어떤 방법인지 궁금하군요. 말씀해 보세요.”

한진영은 다리를 꼬고 앉아 이진경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

이진경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몇 차례나 입술에 침을 묻히고는 입을 열었다.

“세올컴퍼니의 사태가 일어난 발단이 난소암 치료제 때문 아닌가요?”

한진영은 이진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들었다.

“계속하세요.”

한진영이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진경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난소암 치료제에 대한 기대가 세올바이오의 가격을 밀어 올렸다고 생각해요.”

“맞습니다.”

“그리고 500배나 상승하게 된 또 다른 요인으로는 세올바이오가 장외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고요.”

“정확하게 보셨네요. 장외주식시장이기에 500배 상승이 나온 게 맞습니다. 적은 거래량만으로도 주가를 부양시키기 쉬우니까요. 자 그럼 이제 어떤 방법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가장 쉬운 방법은 난소암 치료제가 별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시장에 퍼져나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확실하게 하려면 임상이 실패했다거나 아니면 임상시험조차 승인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주가를 가장 확실하게 떨어뜨리는 방법이 될 거예요.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거예요. 그런 이야기는 억지로 만든다고 시장에 퍼지는 게 아니니까요.”

한진영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한진영이 듣고 싶어 하던 이야기를 이진경이 차분한 모습으로 잘 찾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진경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자신감을 가지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난소암 치료제를 사기 위해 발행했던 CB를 이용하는 것이 어떠냐는 생각을 했어요.”

“CB? 전환사채요?”

“네. 나중에 주식으로 바꿔 받을 수 있는 전환사채요. 그게 핵심 키가 될 것 같아요.”

전환사채를 발행할 당시 세올컴퍼니는 무리하면서까지 전환사채를 발행하여 오레오의 손에 쥐여주고 나서야 난소암 치료제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이진경은 바로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세올컴퍼니의 자산보다 더 큰 난소암 치료제를 구매하기 위해 경영권을 위협받을 정도의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말았어요. 그때야 어떻게든 치료제를 손에 넣겠다는 생각으로 미래를 도외시한 채 발행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세올이 발목 잡힐 가능성이 커졌다고 생각해요.”

“전환사채…… 좋은 의견입니다.”

한진영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히 찾아 이야기한 이진경에게 만족감을 느꼈다.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깊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한진영의 모습에 이진경은 자기가 정확히 핵심을 찔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진경은 자기가 한진영의 믿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즐거운 마음으로 한진영의 사무실을 나왔다.

한진영은 이진경이 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정 회장님께 연락 넣어. 내가 좀 뵙고 싶다고 말이야.”

안혁규와 약속한 대로 안혁규가 아닌 정병선에게 연락을 넣은 한진영이었다.

하지만 이번 만남에서 한진영은 세올컴퍼니의 이야기에 앞서 정병선과 확실히 해야 할 것 한 가지를 이야기하려 했다.

믿음에 관한 이야기.

정병선에게 얼마나 자기를 믿고 있는지 한진영은 우선 그것부터 확인받은 뒤 그다음에 세올컴퍼니 이야기를 하려 했다.

***

그날 저녁 정병선과 한진영은 오랜만에 둘만 마주하고 앉았다.

“어떻습니까? 더 좋은 곳으로 모셨어야 했는데 급하게 자리를 잡느라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매번 회장님께서 좋은 곳을 소개해주시는 덕분에 눈만 높아졌습니다.”

“눈이 더 높아지셔야죠. 대표님이라면 그렇게 돼도 괜찮습니다.”

프라임리츠의 정병선 회장은 크게 웃고는 한진영의 잔에 와인을 따랐다.

“이곳의 암소 스테이크가 그만입니다. 먼저 맛부터 보시고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저도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식사부터 하시죠.”

한진영과 정병선은 일 이야기 전에 먼저 밥을 먹으며 배를 채웠다.

일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밥을 먹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스테이크 하나를 모두 먹고 후식으로 나온 초콜릿 케이크까지 모두 해치우고 나서야 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지난번에 부탁한 일의 방법을 찾으셨다면 그냥 이렇게 보자고 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정병선은 한진영이 혹시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하기 위해 만나자고 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찾아간 곳에 돌아온 답변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방법이 없다.’

운이 안 좋았다는 말만 들었던 정병선과 안혁규였다.

몇 군데에서는 지금이라도 재산을 돌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듣기도 했다.

그만큼 이번 일에서 안혁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정병선은 한진영이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진영은 거의 마음을 놓은 것 같은 정병선 회장을 바라보고 가만히 물었다.

“정 회장님과 안 의원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안혁규 의원과의 관계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그것부터 알아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흠…….”

한진영의 알 수 없는 말에 정병선이 짧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한진영에게 약속을 구했다.

“한 대표님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신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꼭 약속해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세요. 정 회장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저도 안 의원과는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하하하.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단숨에 약속한 한진영의 모습에 정병선은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조금은 작은 목소리로 한진영을 향해 은밀히 말했다.

“초선에 불과한 안혁규 의원이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게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요?”

한진영이 모르는 척 추임새를 넣자 정병선은 더욱 신이 난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지금은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에서도 그렇고 당 밖에서도 힘을 못 쓰는 게 맞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이 아니라 조금 먼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먼 미래라면…….”

“차기요.”

“차기요?”

한진영은 정병선의 말에 깜짝 놀란 듯이 반응했다.

실제로도 한진영은 정병선의 말에 놀랐다.

‘정 회장이 생각보다 정보망이 뛰어나구나.’

부동산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기에 남들이 모르는 정보까지 모두 취급할 거로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숨어있는 안혁규까지 찾아낼 줄은 몰랐던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정병선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차기를 바라보고 안 의원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겁니다.”

“차기와 안혁규 의원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관계를 맺으시려는 건가요?”

한진영은 이유를 알면서도 정병선에게 물었다.

정병선의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정병선은 한진영의 질문에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한진영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정말 어디에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이건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이야기입니다.”

“알겠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한진영이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정병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기 청와대의 주인에 가장 근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혁규 의원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쉿.”

정병선이 급히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고는 주변을 살폈다.

룸에 머무는 두 사람이었지만, 혹시라도 누가 듣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매우 신중한 표정의 정병선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 너무 조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안 의원과 그분과의 관계는 사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수행비서로 그분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모셨다는 이야기는 익숙한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한진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제가 듣기로는 말이 좋아 수행비서였지 사실은 운전기사였다는 말이 있던데요?”

“맞습니다. 한 대표님도 많이 아시는군요.”

놀란 표정의 정병선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정병선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돈과 권력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주의 깊게 여의도를 바라보고 있기는 했습니다. 어쨌든…… 그런 사람이 그분과 친분을 유지한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정병선은 급히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그리고 한진영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손까지 입을 가린 채 말했다.

“그분과 연락하기 위해서는 안 의원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통화를 하고 싶으면 안 의원에게 통화를 할 시간을 먼저 약속을 잡거나 아니면 허락받은 뒤에야 그분과 전화 연결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한진영이 무슨 농담을 하냐는 식으로 몸을 뒤로 젖히며 웃으려 했다.

그러나 진지한 정병선의 모습에 웃으려는 것을 참고 다시 몸을 정병선 쪽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정말입니까?”

“제가 지금 한 대표님과 농담 따먹기를 하기 위해 여기 앉아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정말입니다. 그러니 제가 이렇게 공을 들이는 거지요.”

한진영이 믿기 어렵다는 눈으로 정병선을 바라보자 정병선은 답답한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이걸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한진영은 정병선이 이렇게까지 모습을 보이자 의심의 눈초리를 거뒀다.

그러나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은 한진영의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 정 회장님의 말씀은 일개 운전기사가 연락선을 손에 쥐고 있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일개 운전기사 ‘였었던’ 사람이지요. 지금은 엄연히 국회의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이해가 가기도 하네요. 하긴 일개 운전기사를 그냥 국회의원 자리에 앉게 하지는 않았겠지요.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일개’ 운전사가 아니었거나…….”

한진영은 지난날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정병선의 눈에는 한진영이 자기의 말에 설득이 되어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병선은 한진영을 향해 다시 한번 열성적으로 이야기했다.

“이번 정권도 어차피 말기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슬슬 차기 정권을 생각해야 할 때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차기 정권의 실세가 될 가장 유력한 사람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해왔습니다. 어찌 이런 기회를 그냥 보고 넘기겠습니까?”

“차기 정권의 실세…… 반대쪽 당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그럴 수가 없죠.”

정병선은 탁자를 검지손가락으로 찍어 누르며 말했다.

“선거는 조직으로 결정이 됩니다. 그런데 저쪽의 조직은 이제 겨우 결성된 수준에 불과해요. 반대로 이쪽은 10년이 넘게 탄탄하게 갖추어져 있고요.”

정병선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아무리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고 이름이 많이 오르내린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어느 조직이 더 크고 더 단단하며 더 잘 뭉치느냐의 싸움이에요. 정치 그중에서도 선거는 말이죠.”

“조직이라…….”

한진영은 정병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부터 벌써 선거의 결과를 그들은 알고 있었구나.’

한진영은 두 번 말하는 것조차 입이 아픈 듯한 정병선을 빤히 바라봤다.

이미 선거의 결과를 알고 있던 한진영이었다.

그리고 선거의 진행 상황도 이미 경험했었다.

다음 대선은 팽팽하게 흘러가며 누가 이기더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긴장감이 흘러넘치던 대선이었다.

그런데 그건 일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던 이야기인 듯했다.

“결과는 이미 정해졌고, 차기 정권의 실세가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게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시기예요. 그러니 저를 믿으세요. 안혁규 의원은 차기 정부의 실세가 확실하니까요.”

정병선의 말에 한진영은 가만히 정병선을 바라봤다.

“정 회장님.”

“네.”

“만약에 말입니다.”

한진영에 말을 하다 말고 정병선을 빤히 바라봤다.

정병선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고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네. 말씀하세요.”

정병선이 말을 하라는데도 한진영은 입을 열지 않고 정병선을 계속 바라보기만 했다.

정병선은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왜 그렇게 보십니까?”

“만약에 저와 안 의원을 놓고 선택하라고 한다면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얼굴을 쓸어내리던 정병선은 그대로 손이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이런 거지요. 이제 그만 안 의원과 멀어져라. 그래야만 저와 함께 갈 수 있다. 뭐 이런 말을 한다면 정 회장님께서는 안 의원을 버리고 저와 함께 가실 수 있겠습니까?”

“멀어져라? 친해진 다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애초에 친해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친해진 뒤에 이쯤에서 안 의원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란 말을 건네게 될 것 같습니다.”

정병선은 한진영의 말에 오른뺨에 올려둔 손을 그대로 내려 팔짱을 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빈 접시만 내려다봤다.

마치 정병선은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는 듯한 모습을 한 채로 한참을 말없이 빈 접시를 바라보기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