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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45화 (245/650)

245화 공포의 20분

회의실에서 나스닥 화면을 띄운 채 이어진 간단한 맥주파티는 시간이 갈수록 흥이 올라갔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이성우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김준하를 향해 물었다.

김준하는 이성우의 반응과 주변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눈빛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이성우는 그런 김준하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다시 한번 재촉하듯이 물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했냐고?”

“집에 가서 먹겠다고 했어요.”

“하하하하.”

이성우는 배꼽이 빠지라 웃으며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얘 좀 맛있는데도 데리고 다니고 그래라. 아니 아이스크림 집에 가서 어떻게 드시겠냐는 질문에 집에 가서 먹겠다고 대답하는 놈이 어디 있어?”

“그때 처음 갔다니까요.”

“처음이더라도 느낌이 오지 않냐? 계산하는 곳 앞에 컵 모양하고 콘 모양의 전시품도 있잖아.”

이성우의 말에 김준하의 얼굴이 빨갛게 변해갔다.

자기가 생각해도 창피하게 느껴진 듯한 모습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거 좀 모를 수도 있지. 나도 딸내미랑 아이스크림 집 갔다가 그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어.”

“그거야 최 과장님이 노인네니까 그렇죠. 그에 비해서 얜 젊은이예요.”

“야. 노인네는 무슨 노인네야. 나하고 너희하고 나이 차이 얼마 나지도 않아. 그리고 차장이야 차장. 언제까지 과장이라고 부를래?”

“우리 회사 있었을 때 과장님이었으니까 과장님이라고 부르죠. 차장님이라는 이야기 듣고 싶으면 우리 회사로 넘어오세요. 안 그래도 과장님 보고 싶다는 사람들 많으니까요.”

“됐다. 내가 한 대표하고의 의리가 있는데 거기 갈 수는 없지.”

“의리가 아니라 돈 때문에 아니에요?”

“의리가 돈이야. 돈 잘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는 게 의리라고.”

“그거 말 되네요.”

이성우와 최석영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벌써 시간은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이성우는 말을 하다 말고 시계를 쳐다본 뒤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어이. 한 대표님.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야? 내일도 일해야 하잖아. 집에 안 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성우의 말에 일제히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성우의 말대로 언제까지 있는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장이 열린 지 한 시간이 넘었건만 특이한 움직임은 나오지 않았다.

1,950대에서 움직이는 나스닥 선물지수는 지난 이틀간의 하락세를 복구하겠다는 모습으로 힘찬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맥주캔이 어느새 수북이 쌓이고 말았다.

조지훈이 가지고 온 안주들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제는 정리하고 일어나는 게 맞는 시간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하긴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지.”

“그래. 그렇다니까. 그럼 이쯤에서 정리하고 일어나볼까? 지훈아. 준하야. 여기 치우자.”

“잠깐.”

이성우가 들어가자는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한진영의 모습에 정리하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막아 세웠다.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왜 잠깐이라는 거야? 설마 더 있자고? 내일 너희 회사는 일 안 해?”

“조금만 더 기다려봐. 아직 보고 싶은 광경을 못 봤으니까.”

“아니 뭔 광경을 본다고…… 아~ 그거? 그거 오늘은 안 돌리나 보지. 걔들도 생각이 있으면 하루쯤은 쉬지 않겠냐? 어제 그 난리를 피웠으니까…….”

이성우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맥주캔들을 정리하며 말을 하다 화면의 변화를 보고 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그래프 아래 보여주는 거래량이 급격히 올라가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뭐야?”

“시작하나 보다.”

한진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화면에 꽂혀 들어갔다.

박도하가 보여주던 멈춰있던 그래프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순간 치고 올라가는 거래량의 폭증은 쉽게 설명이 어려운 형태로 장을 이끌어 갔다.

“거래량이 저렇게 폭증하는데도 지수 움직임이 없다고?”

이성우는 설명하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함께 자리하고 있는 박도하를 돌아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달라는 듯한 눈빛의 이성우였다.

박도하는 그런 이성우의 시선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 지금의 광경을 설명했다.

“HFT 프로그램의 경우 거래량의 증가에 따른 가격의 변화를 최소한으로 잡는 게 바로 기술의 핵심입니다. 거래량이 증가하며 가격이 변하는 것은 단순히 속도만 빠르게 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죠.”

“거의 변화가 없는데…… 그럼 그만큼 세이지에서 만들었던 프로그램이 좋았다는 건가요?”

박도하가 스스로 얼굴에 금칠하는 것이 어색했던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한진영이 박도하를 대신해서 이성우에게 말했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최고였지. 그러니까 2억 달러나 주고 팔아먹은 거 아니겠냐?”

“하긴. 나도 그 이야기 들었을 때 놀라기는 했다. 뭔 프로그램이 2억 달러나 하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직접 보니까 다르긴 다르네. 미친 거래량이 나왔는데 가격이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이성우는 점점 더 늘어나는 거래량에도 가격이 변하지 않는 것에 신기한 마음을 거두지를 못했다.

이렇게 이성우가 신기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사이 시장은 급격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거래량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증했다.

거래량 차트가 천장을 뚫을 기세로 높아져만 가서 연신 차트 기준선 값을 바꿔놓고 만 것이었다.

“초당 거래량이…… 2만 거래를 넘었습니다.”

“현물 시장에도 거래량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상위 10개 종목의 경우에 벌써 전일 거래량을 뛰어넘고 말았습니다.”

한진영은 자리에 앉아 보고를 들으며 앞에 놓인 캔맥주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신 후 박도하에게 물었다.

“만약 저런 상황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박도하는 폭증하는 거래량 차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한진영의 질문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저 상태로 이어진다면…….”

“아니요. 저 거래량의 폭증이 계속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저 상태에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상승하는 모습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상승하는 게 이어진다면…… 그게 궁금합니다.”

박도하는 한진영의 질문에 머뭇거렸다.

저런 모습이 계속 유지되기도 어려운데 상승하는 것이 이어진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도하는 최대한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정을 섞어 예상했다.

“프로그램을 판매할 때 초당 거래량 1만 5천 회를 넘지 못하도록 세팅해 놓은 상태로 넘겼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구입한 3사가 모두 한계치까지 돌린다면 약 5만 회에 조금 모자란 거래가 이루어질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니 그전에 서버가 먼저 뻗어 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문을 보내는 쪽이나 받는 쪽 둘 중의 하나가 먼저 뻗어버릴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그리고 그 뻗어버리는 서버가 주문받는 쪽이라면…….”

박도하는 잠시 마른침을 삼키고 화면을 바라봤다.

“시장이 모두 멈춰버릴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박도하의 말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시장이 멈춘다니? 박 팀장. 그게 무슨 말이야?”

최석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박도하에게 물었다.

박도하는 최석영만큼이나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서버가 처리용량을 넘어선 정보를 받게 되면 셧다운이 걸리게 되어있습니다. 들어오는 정보가 넘쳐 나머지 것들이 접시 바깥으로 흘러넘치게 하느니 아예 정보가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지요. 나머지 것들이 접시 바깥으로 넘치며 정보의 왜곡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박 팀장 말은…… 저기 나스닥 선물 시장이 꺼져버린다는 거야?”

“나스닥뿐만이 아닙니다. S&P와 다우의 선물시장도 모두 순서대로 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곳이 멈추면 다른 곳으로 넘어가 그곳을 박살 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마치 메뚜기떼처럼 말입니다.”

박도하의 말에 질문한 최석영이나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이성우 모두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박도하의 말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거래량 폭증은 멈추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친 것들 저거 멈추라고 할 수는 없는 거야? 적당히 해야지. 시장을 꺼뜨려 버리는 짓은 선 넘는 짓이잖아.”

이미 초당 거래량 3만 계약을 넘어서고 있었다.

세 곳 모두 멈출 생각이 없는 듯이 마구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사간 세 곳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먹은 술기운이 모두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미 거래량 차트 속의 차트 길이는 그전에 나와 있던 그래프를 바닥에 붙여버릴 정도로 높게 솟아 있었다.

과거와 지금은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수준이 다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소름 돋는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고 있을 때 한진영만은 평상시 기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웃는 모습까지 보이는 것이 다른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이성우는 이런 한진영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한 대표는 왜 안 놀라?”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상황이 떠올라서…….”

“더 재미있는 상황이요?”

한진영의 말에 박도하가 바로 반응했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거래 서버가 나가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우리나라도 자주는 아니지만 드물게 나타났기에 더욱 이런 생각에 확신을 가졌던 박도하였다.

하지만 한진영은 거래 서버가 죽어버리며 이 상황이 끝나는 걸 떠올리지 않았다.

한진영은 과거 공포의 20분이라는 지금의 상황이 또렷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들고 있던 캔맥주를 천천히 들어 마신 뒤 박도하를 향해 웃으며 이야기했다.

“박 팀장님의 말씀대로 거래 서버가 나가는 것이 가장 타당한 모습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상식만을 쫓아가지는 않는 법이니까요.”

“그럼 지금 상황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신가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진영의 입에 집중했다.

한진영이 말하는 것이 바로 다음에 펼쳐질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자기에게 집중해 있는 사람들을 보고 턱짓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장의 거래자들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무서워하겠죠. 그럼 어떤 행동을 보일 것 같습니까?”

“관망이요?”

고제상이 한진영의 말에 대답했다.

한진영은 그런 고제상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었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관망할 게 분명합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의 판단으로 쉴 수가 있으니까요. 갑작스럽게 폭증한 거래량에 이상함이 느껴질 테니 가지고 있는 물량들을 저렇게 던지기 시작할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사람들은 차트로 고개를 돌렸다.

계속 잡혀있던 가격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물량을 들고 있던 이들이 지금의 상황에 당황하여 들고 있던 것들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모습이 그려지는 화면을 바라본 채 계속 이야기했다.

“저렇게 되면 제가 알고 있는 프로그램은 추세를 잡아먹기 위해 빠르게 추세 방향으로 시장을 이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박도하는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추세가 나온다면 결대로 따라가게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문제는 그런 프로그램이 3개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급히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추세는 하락으로 결정이 됐다.

갑작스럽게 터진 물량에 긴장한 매매자들이 물량을 던져대며 관망 포지션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추세가 하방으로 나오자 그 방향 그대로 거대한 거래량과 함께 프로그램이 마구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물이 하방 추세를 잡자 현물도 하방 추세로 돌입했다.

미국의 3대 지수의 선물과 현물이 모두 하방을 향해 마구 달려 내려간 것이었다.

“저거 막아야 하는데…….”

박도하는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프로그램에만 정통한 자기가 보기에도 지금 저 모습은 위험한 모습처럼 보였다.

거래량까지 실려 추세를 따라 움직이다 보니 꺾여 내려오는 각도가 점점 가팔라질 거라는 것이 쉽게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박도하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3분도 지나지 않아 화면에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 3분 만에 2% 상승을 보이던 선물지수가 단번에 -2%까지 빠져 내려온 거야?”

“거기가 끝이 아니에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고제상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소리쳤다.

“미친놈들…… 이제 보니 프로그램을 하나만 돌린 게 아니었나 봐요. 그러니 쿨다운 지표가 저렇게 나오는 거 아니에요?”

모니터링 화면에 따로 띄워진 쿨다운 지표가 마구 점을 찍어대고 있었다.

한 회사가 하나의 프로그램만 돌렸다면 10초마다 하나씩 찍히는 점이 이렇게 마구 찍혀댈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선물 거래량은 초당 5만 계약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물 시장은 이런 선물 시장의 자극에 더하여 더욱 큰 폭격을 맞는 중이었다.

“P&G -15%, 3M -20%, 애플 -22%…… 지금 현물시장에 물량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HFT 프로그램이 바스켓 매매를 진행하는 프로그램까지 자극한 모양입니다. 바스켓 매매 프로그램이 대량의 매도 물량을 뱉어내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나스닥하고 S&P 선물이 -8%를 찍고 있어요.”

이야기하는 잠깐 사이에 -2%에 있던 선물지수가 -8%를 찍으며 서킷을 코앞에 두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대표님…….”

홍대민이 긴장한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보고했다.

“필립모리스 -96%, 액센츄어 -99% 그리고 엑셀론은…… -100% 하락을 보였습니다. 시장이 붕괴됐습니다.”

선물지수가 서킷브레이커를 눈앞에 두는 시점에 현물시장은 붕괴라는 말이 어울리는 광경을 연출하고 말았다.

전날까지 50달러에서 거래되던 종목이 1센트에 거래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시장은 더는 거래를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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