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우리는 일시적으로 해외시장에서 철수한다
오일이 급격히 하락한 이유가 밝혀졌다.
바로 OPEC 국가들이 합심하여 셰일오일 측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은 사우디 석유장관을 비롯하여 중동의 석유장관들이 셰일 산업에 눈에 띌만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 한 오일 감산은 없다는 발표를 하며 공식화가 되어 버렸다.
하락의 이유가 밝혀진 이후 오일은 가속을 더 해 빠져 내려갔다.
올라갈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OPEC 국가가 원하는 상황이 펼쳐지기 전까지 오일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셰일오일 생산원가로 예상되는 60달러 아래까지 가격이 내려가자 하나둘 셰일 업체들의 RIG 숫자가 줄어들었다.
당장의 생산량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그래도 석유를 뽑아 올리는 관인 RIG 숫자가 준다는 것은 앞으로의 생산량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런 모습에도 OPEC은 물러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괴롭다는 30달러까지 몰아붙여 셰일 업체들을 고사 시키겠다는 게 OPEC과 사우디의 생각이었다.
시장은 이런 사우디의 생각을 읽고 하락 포지션을 더욱 강하게 구축해 나갔다.
뻔히 이득이 보이는 포지션에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이었다.
120달러에서 150달러를 이야기하며 하방은 없다는 사람들이 50달러가 깨진 시점에 30달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고제상은 바뀐 분위기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먹을 구간이 많이 남은 것 같은데 지금 정리하는 건 너무 이른 것 아닌가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일 선물이 계약당 얼마의 이득을 보고 있는 겁니까?”
“회의에 오기 전에 확인한 바로는…… 82,000달러의 이득을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82,000달러?”
고제상의 대답에 자리에 있던 팀장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난 자리에서 50,000달러의 수익을 이야기했던 고제상이었다.
그래서 팀장들은 지금도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을 것으로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예상 금액이 팀장들의 생각을 뛰어넘은 것에 모두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한 계약당 대략 1억 정도의 수익을 보고 있는 상황이네요?”
“네. 맞습니다.”
“여전히 2,000계약을 가지고 있고요.”
“네.”
고제상의 대답에 자리에 있던 팀장 중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낮은 휘파람을 내뱉었다.
“휘유~ 2,000억?”
선물 하나만으로 2,000억이라는 수익을 올린 것에 자리에 있던 팀장들은 놀랐지만 빠르게 차분함을 되찾았다.
지난번 3배수 인버스 때의 일이 예방주사가 되어 2,000억이라는 소리를 듣고서도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한진영은 이제는 2,000억이라는 말에도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는 팀장들을 한번 훑어본 후 고제상에게 시선을 다시 돌려 말했다.
“물론 먹을 구간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아 있는 구간까지 다 먹는 것보다 빠져나오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혹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유? 이유 있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이런 상황에서 한진영이 내놓는 이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팀장들은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이유 때문일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에게 짧게 이유를 이야기했다.
“시장이 혼란스러워질 테니까요.”
“혼란이요? 어떤 혼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진영은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혼란이 이어질지 지난 경험을 통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혼란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한진영은 당시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자리에 있는 팀장들에게는 그럴듯한 말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자재와 채권, 주식 등등 시장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모두 한데 묶여있는 생물이라는 것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이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의 말대로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모두가 다른 것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매우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이렇게 잘 알려진 이야기를 전제로 깔아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일 시장이 현재 고점 대비 60%가 넘는 하락을 보였습니다. 반등다운 반등 한번 없이 계속 음봉에 음봉으로 무너져 내려온 상태죠. 이러면 어떻게 될까요?”
한진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팀장들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한진영이 짚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차라리 지난 미국 신용등급 사태 때처럼 한 방에 푹하고 떨어지는 편이 시장에는 나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회복도 빠르고 다른 시장으로의 영향도 적었을 테니까요.”
확실히 한진영의 말이 맞았다.
순간적인 폭락은 그만큼 회복도 빠르게 되는 법이었다.
지금의 오일 하락과 같이 수개월에 걸쳐 이어진 하락은 시장을 옥죄다 못해 다른 시장으로까지 패배감을 전해주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손절이라는 것도 할 것 없이 시장이 내려갔다 다시 올라온다면 괜찮았겠지만, 지금처럼 바닥이라 예상한 곳을 뚫고 계속 떨어져 내려만 온 덕분에 타격을 받은 곳이 꽤 생겼을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그리니치 펀드를 떠올렸다.
오일에서 손해를 본 기관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분명 그리니치 펀드의 환매를 요청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그리니치는 급히 자금을 메우려 여기 대한민국까지 직접 찾아온 게 아니냐는 생각이 조지훈의 머릿속을 강하게 때렸다.
한진영은 뭔가 떠오른 듯한 조지훈의 모습을 살피고는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 있는 팀장들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오일의 움직임으로 손해를 본 곳이 상당히 많을 것이고 금액 또한 상당히 클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손해를 본 곳은 분명 다른 곳에서 그 손해를 메우려 할 겁니다. 그리고 베팅은 과감하다 못해 무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가 될지 모릅니다. 우린 충분히 먹을 만큼 먹었으니 그런 위험한 상황을 회피하여 재정비에 들어가도록 합니다. 고 팀장님.”
“네.”
“선물 시장에 충격이 가지 않는 선에서 차분히 정리에 들어가도록 해주세요.”
“홍 팀장님.”
“네.”
“200만 달러가 적은 돈이지만 그것도 다 정리하도록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국내 주식도 정리에 들어갈까요?”
홍대민의 말에 한진영은 낮게 눈을 깔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우선 그건 놔둡니다. 국내시장은 조금만 더 두고 보도록 하죠. 우리가 신경 써서 만져야 할 곳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시장이니까요. 채권과 외화도 모두 거둬들입니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해외시장에서 철수합니다.”
한진영은 팀장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회의를 마쳤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뒤에서 한진영이 나스닥을 비롯한 미국 시장을 경계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경계하는 만큼 무언가 사고도 터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한진영과 함께하며 한진영의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 알게 된 것들이었다.
‘어쩌면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조지훈은 조용히 한진영의 뒷모습을 보며 사고를 확장해 나갔다.
나스닥을 비롯한 미국 시장에서 무언가 사고가 터지고 그 사고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아예 당분간 발을 빼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200만 달러에 불과한 것까지 모조리 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앞서 걷던 한진영은 머리가 복잡해 보이는 조지훈의 뒷머리를 손으로 훑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단순하게 바라봐 단순하게…….”
말을 마치고 다시 머리를 쓰다듬은 한진영은 앞서 걸어갔다.
그러나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을 듣고 나서도 단순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하나가 의심되자 다른 하나가 튀어나와 꼬리에 꼬리를 잡아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생각이 깊어질수록 앞으로 벌어질 일이 또 무엇인지 두려워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
세이지 자산운용의 청산 작업은 한진영의 지휘 아래 빠르게 진행됐다.
약 6개월에 걸쳐 보유하고 있던 것들을 일주일 사이에 모두 정리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하루에 약 500계약씩 오일 선물을 정리해 나갔다.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저녁 시간은 물론이고 아시아 시장에까지 오일 선물 시장이 열리는 23시간을 폭넓게 활용해 나간 것이었다.
이런 작전으로 인해 세이지 자산운용이 오일 매도 포지션을 정리해 나가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청산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설혹 알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곳에 신경을 쓰느니 한시라도 빨리 돈을 모아 그리니치 펀드에 가입하는 것만이 현재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 참여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세이지 자산운용의 청산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국내 주식시장만을 제외한 모든 포지션 청산은 결국 계획대로 일주일 만에 손쉽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총 수익 금액은 오일 선물에 나스닥, S&P 주식 등을 더하여 2,505억입니다.”
“채권 부문과 외환 관련 선물 등은 어때?”
“네. 채권 파트와 외환 파트를 포함하여 CME 등과 같은 해외 거래소를 이용한 상품들에서 모두 발을 뺐습니다. 오일 선물과 주식을 제외한 채권과 외화에서의 수익은 대략 150억 정도 나왔습니다.”
“나쁘지 않네.”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지훈의 보고를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이익을 본 것에 한진영은 만족해했다.
이번 일로 인해 국내 주식을 제외하고도 9,000억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9,000억의 수익이 모두 세이지 자산운용의 수익이 되지는 못했다.
세금 등 처리해야 할 비용을 제외하고도 30%만이 세이지 자산운용의 수익이었기 때문에 대략 2,000억이 못 되는 돈이 세이지 자산운용의 몫으로 떨어진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기록적인 수익이 아닐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직 코스피 시장은 정리하지 않은 상태였다.
코스피 시장에 들어있는 돈까지 정리를 한다면 그 수익은 엄청날 게 분명했다.
“모두 수고했으니 특별 상여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해.”
“특별 상여금이요?”
“그래. 많이 벌었으니 많이 베풀어야지. 나는 번 만큼 직원들과 나누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번에 얻은 수익 중에 200억 정도를 풀도록 해.”
“200억이나요?”
“200억이나요가 아니지. 생각 같아서는 500억을 풀고 싶어. 하지만 어쩌겠나? 회사가 아직 설립된 지 1년이 안 됐으니 지금은 자중하면서 지내야지.”
“대표님.”
조지훈은 아쉬워하는 한진영을 향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200억이면 단순하게 생각해도 1인당 평균 3억에 가까운 돈을 가지고 가는 건데 그걸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좋아하면 좋아하지, 싫어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처음 성과급을 푸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벌써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인데 성과급이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조지훈의 말대로 세이지는 벌써 올해에만 세 번에 걸쳐 성과급이 지급됐다.
굵직하게 먹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한진영의 신조대로 크게 먹을 때마다 성과급을 풀다 보니 벌써 세 번째가 된 것이었다.
한진영은 마치 화를 내는 듯한 조지훈을 보고 웃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불만을 보이는 사람은 제가 가만히 두지 않겠습니다.”
“하하. 알았어. 알았어. 뭘 그렇게 화까지 내고 그러나? 알았으니 그만해.”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다른 이야기를 물었다.
“그리니치 건은 어떻게 됐어?”
한진영의 질문에 얼굴 가득 화를 내던 조지훈은 급히 표정을 바꾸고 대답하려 했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유정 본부장이 꽤 무리해서 돈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넣었다고 하던가?”
“지인은 물론이고 은행권에 기풍 지분을 담보로 하여 대출받은 것까지 총 500억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500억? 그게 다가 아닐걸?”
“그게 다가 아니라고요?”
“그래. 더 있을 거야.”
한진영이 더 있다는 말에 조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표님.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유정 본부장은 이성우 사장님이 받았던 신용대출까지 진행하여 은행권에서 돈을 빌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집어넣은 돈만 해도 50억이 넘는다고 알려졌고요. 이유정 본부장이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동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 비서.”
“네?”
“그런 정도로 모든 것을 걸었다고 말하지는 않아.”
한진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는 조지훈에게 더 알아볼 것을 지시했다.
“이유정 본부장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어.”
“500억도 작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500억이 물론 큰돈이기는 하지. 하지만 지금 이유정 본부장 입장에서는 인생을 걸어야 하는 타이밍이야. 이런 상황에 은행권 대출만 받고 만다고? 천만에 그럴 리가 없어.”
“설마…… 그럼…….”
“사채시장. 거기까지 알아봐. 얼마를 사채시장에서 끌어들였는지 궁금하니까.”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조지훈은 한진영의 지시를 받아 이틀 뒤 답을 가지고 다시 한진영을 찾았다.
“대표님. 사채시장에서 이유정 본부장이 얼마를 동원했는지 확인했습니다.”
한진영은 하던 것을 멈추고 조지훈을 올려다봤다.
“얼마나 했던가?”
“그게…….”
조지훈이 당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한진영에게 말했다.
“사채시장에서 1,000억까지 조달했다고 합니다.”
“1,000억?”
한진영은 생각보다 많은 금액을 끌어온 것에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