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21화 (221/650)

221화 하락이 아닌 폭락

한진영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있는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야. 실버만삭스에서 찾아왔거든 나도 좀 소개해주지. 치사하게 혼자 알고 소개도 안 시켜주냐?”

한진영에게 불만을 쏟아낸 이성우는 한진영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다시 입을 열어 투덜댔다.

“꼭 우리 기풍증권과 실버만삭스가 뭘 맺지 않아도 좋아. 그저 실버만삭스의 COO와 식사 자리라도 한번 만들어주는 정도로도 충분했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정 없이 입을 싹 닫고 마냐? 내가 실버만삭스하고 너희하고 업무 협약식을 맺었다는 것을 신문 보고 알아야 했어?”

이야기하면 이야기할수록 섭섭함이 치솟아 오르는 건지 이성우의 목소리에는 촉촉함마저 담기기 시작했다.

“내가…… 너하고 알고 지낸 게 얼마냐?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라 나한테? 어? 나한테 그럴 수가 있냐? 내가 뭐 엄청난 걸 원한 것도 아니야. 그저 얼굴 한번 마주 보고 서서 인사 한번 나누는 것만 해도 이렇게 서운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어? 어떻게 나한테…….”

“그보다 너 암처럼 너희 회사에 상주해 있던 사람들은 다 쳐냈냐?”

“어?”

투덜대던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대충 솎아내서 하나씩 모가지 날리고 있기는 해.”

“회장님께서 좋아하시지.”

“좋아하시지. 아주아주 좋아하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촉촉하게 젖어있던 이성우의 목소리가 한껏 고조되어 톤이 올라갔다.

“내가 전에도 이야기하지 않았냐?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게 회사를 좀먹는 놈들이라고 말이야. 특히 월급은 우리한테 받아 가면서 다른 쪽에서 뒷돈 받아 챙겨 다른 곳 사정 봐주는 놈들. 그런 놈들 제일 싫어하셔. 그런데 그런 놈들 특징이 뭐냐? 자기 모습 잘 드러내지 않는 거잖아. 그런데 이참에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고 무지무지 좋아하셨다.”

“회장님께서 너를 생각하시는 것도 조금은 높아졌겠네?”

“조금뿐이냐?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좋아지셨지. 어떻게 그런 생각 해냈냐고…… 흐음~”

신이 나서 이야기하던 이성우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운전대를 잡은 채 그런 이성우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젠 별 불만 없지?”

“차 좋다. 이거 이번에 뽑은 거냐? 지난번 차도 좋기는 했는데 이번 건 더 좋네. 그런데 이런 차는 기사 두고 쓰는 차 아니냐?”

이성우는 말을 돌리려는 듯이 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한진영과 이성우가 탄 차는 고급 차종에서도 특별하다는 평을 받는 차였다.

차값만 수억을 호가하는 것으로 기업체 사장님이나 회장님이 타는 차라는 이야기가 자자한 차였다.

그런 차를 한진영이 직접 몰고 있으니 이성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건넨 것이었다.

한진영은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는 이성우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가는 거다.”

“그것 때문에 간다고? 어딜? 친척 동생 졸업식 가는 거 아니었어?”

“내가 언제 친척 동생 졸업식 간다고 했냐?”

“뭐 친척 동생 졸업식 간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귀에는 대충 그런 식으로 들리던데?”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대충 그런 식으로 들려? 대학교 졸업식에 간다고 말한 게 전부였는데.”

“그래? 내 귀에는 사촌 동생 졸업식에 간다고 들렸어.”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이길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창 졸업식 시즌에 돌입한 대학가였다.

학사 모를 쓰고 가족 즐거워하는 젊은이들은 10여 년간의 긴 학생 시절을 끝내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것에 설레하며 마지막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여긴 왜 온 거야?”

“아까 못 들었어? 이 차 몰 사람 찾으러 왔다고 했잖아.”

“차를 몰 사람? 난 당최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이성우는 세이지 자산운용에 놀러 갔다가 회사를 나가는 한진영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한창 졸업식이 진행되는 대학에 따라오게 된 것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내려. 다 왔다.”

방문객들로 북적이는 대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운 한진영은 차에 내린 뒤 주변을 살폈다.

“대학교 참 오랜만에 온다.”

한진영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린 이성우는 차를 살피며 말했다.

“무슨 말투가 20년 만에 온 사람처럼 그러냐? 이야. 이거 죽인다. 아까 주차장에 있을 때는 내가 자세히 살피지 못했는데…… 죽이네. 이거 얼마 줬냐?”

“왜? 너도 사게?”

“내가 어떻게 사냐? 너도 아니고…….”

“그런데 얼마인지는 왜 물어?”

이성우는 차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나는 못 사지만 아버지는 살 수 있지. 아버지 차 이거로 바꾸라고 하시고…… 나중에 내가 물려받으면 되지.”

“돈도 많은 놈이 뭘 물려받을 생각을 해? 그냥 네가 사.”

“야!”

이성우는 차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허리를 펴서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이런 거 사봐라. 돈이 문제가 아니라 허파에 바람났다고 아버지가 날 가만두지 않을 거다.”

“그치. 분명 그러시고도 남을 분이시지.”

한진영이 인정하자 이성우는 다시 몸을 숙여 차를 쓰다듬었다.

“아버지한테 기풍의 체면도 있으니 하나 뽑으라고 말해야지. 그리고 전 기사에게 차 조심하게 몰라고 하면 깨끗하게 내가 물려받을 때까지 쓸 거야. 그리고 한 5년 뒤쯤에 차 새로 뽑으라고 하고 이건 나한테 달라고 하면…… 보면 볼수록 탐난다. 차 잘 빠졌다.”

밖에 나와 햇살에 비친 자태에 이성우는 감탄사를 계속 내뱉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에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너 계속 차 끌어안고 있을 거면 나 먼저 간다.”

한진영이 더는 이성우를 기다려줄 수 없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기자 이성우는 아쉬운 표정으로 차와 인사를 나누고 한진영의 뒤를 따랐다.

그래도 시선은 계속 차에 머무르는 것이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이성우가 그러거나 말거나 졸업식이 펼쳐질 건물 앞에 서서 건물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곳에는 지난 시절 한진영과 함께 동고동락을 같이한 비서가 이제 막 졸업을 하려 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다.”

한진영은 졸업하기 전에 먼저 그를 데려올까 고민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와 함께하여 복수를 하는 것이 더욱 뜻깊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자기는 지난 시절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는 그러지 못하다는 생각에 조금 더 학창 시절을 느낄 수 있도록 시간을 줬다.

그게 자기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했으면 그 녀석도 불만이 없겠지. 충분히 배려했으니 데리고 와야지.”

한진영의 혼잣말에 이성우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뭔데? 그 녀석은 누구고 충분한 배려는 뭐야?”

“있어. 내 반쪽.”

“네 반쪽? 네 여자친구가 이번에 졸업하냐? 나이 차이가 꽤 나네. 그래도 뭐 열 살 차이 아래면 괜찮아. 열 살이 넘어가야 조금 세대 차이도 느껴지고 불편해지는 거니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이성우를 향해 한진영은 웃어 보인 후 졸업식이 펼쳐질 강당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입구부터 졸업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든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성우는 그런 모습을 돌아보며 한진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도 하나 사 들고 올 걸 그러지 않았냐? 이렇게 덜렁덜렁 빈손으로 가는 것도 좀 민망한데…… 내가 지금이라도 나가서 꽃다발 사 가지고 올까? 들어올 때 보니까 정문 앞에 꽃 파는 분들 엄청나게 많던데.”

실없어 보여도 누구보다 이런 예의만큼은 잘 아는 이성우였다.

그는 축하를 해주러 가는 길에 빈손인 게 영 찜찜하던지 손을 비비며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빈손은 좀 그런데…….”

“빈손 아니야. 여기 선물 준비했다.”

한진영은 가슴을 한번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뒤에 졸업식이 펼쳐져서 그런 것인지 강당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졸업을 축하하는 가족들과 졸업을 하려는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있는 곳에 한진영과 이성우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진영과 이성우가 자리를 잡은 얼마 뒤 졸업식은 시작됐다.

사회자의 식순 소개부터 시작하여 학교 교가 그리고 총장의 축하 이야기까지 이어지자 자리에 앉아있던 이성우가 좀이 쑤신 듯이 몸을 비틀었다.

자기 졸업식이더라도 지루할 것만 같은데 남의 졸업식에 참기가 어려웠던 것이었다.

“야.”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잠시 몸을 기울인 뒤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아까부터 이야기 한다 한다 했는데 잊어버리고 못 했거든. 그래서 까먹기 전에 물어보려고.”

“뭔데 까먹기 전에 물어봐?”

“아니. 내가 뭐 대단한 거 물으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그래서 물어보려고…….”

지루한 총장의 말을 듣는 것보다 차라리 이성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재미있겠다고 느낀 한진영이 이성우에게 말했다.

“조용히 물어봐. 다른 사람들 시끄럽지 않게.”

한진영이 허락하는 말을 건네자 이성우가 신나서 한진영을 향해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그…… 오해하지 말고 들어.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니까.”

“빨리 물어봐. 어영부영하다가 졸업식 끝나면 물어볼 기회 없어지니까.”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이야기가 점차 막바지로 치닫는 총장을 한번 바라보고 급히 한진영을 향해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억 달러 받았잖아. 그거 가지고 뭐 할 거야?”

이성우의 질문에 한진영이 고개를 돌려 이성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이성우를 물끄러미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그걸 네가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궁금해서…….”

“같은 업계의 관계자로 묻는 거야 아니면 친구로 묻는 거야?”

둘 사이에 대답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듯한 한진영의 말투에 이성우가 급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대답했다.

“친구로서…… 당연히 친구로서 궁금해서 묻는 거지. 2억 달러면 적은 돈이 아니니까. 그리고 너라면 그 돈을 가지고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을 것 같아서 묻는 거야. 나도 좀 알고 싶어서.”

“그래서 너도 따라 하려고? 그러면 친구가 아니라 업계 관계자로서 묻는 거 같은데?”

“아 치사하게 왜 그러냐? 내가 뭐 맨날 너 따라 하는 줄 알아?”

“또 따라 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아 뭐 그렇긴 한데…… 이야기해주기 싫으면 이야기하지 마. 치사하게.”

삐쳤다는 듯이 이성우가 손을 휘젓고 몸을 돌리자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가만히 이야기했다.

“삐치지 마. 네가 따라 할까 봐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 내가 따라 하는 게 싫어서 그런 거야?”

“그게 아니라 네가 따라 하다가 다칠까 봐 그런 거다.”

“내가 다쳐? 아니지. 내가 곧 기풍이니까. 기풍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야?”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나야 내가 진행해도 누구 하나 나에게 이유를 묻는 사람이 없겠지만…… 너는 다르잖아. 네가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한 것 아니냐?”

“그렇지. 나야 뭐…… 그렇지. 도대체 뭔데 그러는 거야?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하다.”

이성우는 궁금증이 더욱 커진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한진영은 가만히 이성우에게 몸을 기울이고 이성우의 귀에 그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유가 폭락을 대비하려 한다.”

“어?”

이성우는 자기가 잘못들은 게 아니냐는 생각으로 눈을 찌푸리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뭘 준비해?”

“유가. 봐봐. 너도 나한테 물어보는데 말하는 사람이 너라면 어떻겠어? 사람들에게 뭐라고 설명할 생각이냐? 날 따라 하는 거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유가가 폭락해?”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이 손가락을 입에다 가져다 댔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행동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표정으로 돌아본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시끄러운 소리에 이성우의 말은 묻힌 듯이 보였다.

이성우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이번에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가가 폭락해? 네가 폭락이라고 말하는 것 보면 조금 떨어지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맞아. 하락이 아니라 폭락이야.”

“도대체 어디까지 떨어지는데 그래? 지금 100불에서 놀고 있잖아. 지난 미국의 그 황당한 사건이 지나고 다시 경기가 살아난다는 기대감에 유가도 100불 선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던데 말이야. 들리는 이야기로는 100불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오를 가능성도 높다는 보고를 받은 지 얼마 안 됐어.”

“기풍증권의 내부 분석에 의하면 상승이 유력해 보인다는 거지?”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몸을 깊게 숙이고 말했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라는 것도 너도 알 거 아냐? 일반적인 예상이 그렇다는 게 정설인데…… 그런데 하락이 아니라 폭락이라고?”

“그래. 폭락이야.”

한진영의 단호한 말에 이성우는 의심을 더는 할 수 없었다.

이 정도의 단호한 말을 하는 한진영의 예상이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거하고 2억 달러하고는 무슨 상관인데? 폭락을 준비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야?”

“그래. 내 주머니의 돈이 필요해서 지금 제일 값이 나가며 더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판 거다.”

“너 수익의 30%를 수수료로 떼어가면서도 그것도 부족하다는 거야?”

“그래. 30%가 아니라 100%가 필요한 지점이었으니까. 고객 돈에 더해 우리 자본이 필요한 시점이었어. 세이지 자산운용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돈. 그게 지금 필요했거든.”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 확신하고 있구나.”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의 웃는 얼굴과 함께 졸업식이 끝이 나며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기까지다.”

한진영이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 강당 앞으로 걸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