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06화 (206/650)

206화 풀 배팅

“빨리 체결 내역 확인해서 보고해!”

최석영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는지 큰소리로 직원들의 정신을 깨웠다.

“삼선전자 820,000원에 5,000주. 815,000원에 5,000주. 810,000원에 5,000주. 도합 15,000주 매수 완료됐습니다.”

“LZ화학. 230,000원에 12,000주. 210,000원에 15,000주. 도합 27,000주 매수 완료됐습니다.”

“미래중공업. 170,000원에 20,000주. 168,000원에 20,000주. 167,000원에 20,000주. 총 60,000주 매수 완료됐습니다.”

하나씩 매수 완료된 보고가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석영은 코스닥 종목에 그물을 쳐놓고 있던 직원을 향해 소리쳤다.

“코스닥은 어때?”

“코스닥 보고드리겠습니다. 하한가에 걸어놓은 청운 바이오 전량 매수 완료됐습니다. 동호 제약도 총 135,000주 매수 예약 건 물량 중 80,000주 매수 완료된 뒤 잔량 55,000주 계속 계좌로 들어오고 있는 중입니다.”

최석영은 보고를 들으며 시선을 시세 전광판 쪽으로 돌렸다.

뉴스 발표 이후 폭포수처럼 지수가 쏟아져 내렸다.

김정일 사망이라는 말과 함께 지수는 점프대에서 뛰어내린 것처럼 직각으로 꺾여 내려오고 만 것이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비교하자면 김일성 사망과 비교를 해야 할 정도였다.

선배들에게 듣기로 당시 창구에서는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짐과 동시에 창구 문을 닫아버렸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최석영이었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주식을 던지는 것을 막는다는 그럴듯한 변명이 있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냥 문을 닫아걸고 나 몰라라 배를 째 버린 것으로 봐도 무방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김일성 사망 때는 주식시장이 완전히 개방되기 전이었고 상하한가 폭도 지금의 반 토막밖에 되지 않는 시절이었다.

빠져봤자 -5%가 전부였으니 그냥 문을 닫아걸어버리나 하한가에 들어가 문이 닫혀버리나 그게 그거란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식시장이 완전히 개방된 시기였다.

마음대로 문을 닫아버렸다가는 외국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에 한 발짝 걸쳐놓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일을 벌였다가는 손가락질은 물론이고 무역 보복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절대 과거처럼 행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모든 것을 금융 시장에서는 온몸으로 얻어맞는 중이었다.

“정부에서는 전 군에 경계 태세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북한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이거 정말 전쟁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걱정돼서…….”

보고를 하던 이가 불안한 눈으로 최석영을 바라봤다.

최석영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심하면 들려오는 북한의 쿠데타 이야기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당시에는 그냥 루머겠거니 하고 넘겼던 이야기들도 김정일이 죽은 뒤에 이야기가 들린다면 그냥 루머처럼 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가장 걱정되는 이야기를 직원 하나가 최석영을 대신해서 이야기했다.

“이대로 북한이 무너지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뭐 군부 내부의 분열이라던가…… 후계자라고 내놓은 자식이 아직 서른도 안 됐다면서요?”

최석영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최석영을 대신해서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그건 우리가 아니라 저기 정부에서 걱정할 일이고 우리는 돈을 법시다. 외환 팀. 현재 환율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한진영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가장 급격하게 움직이는 외환시장에 먼저 확인을 들어갔다.

“현재 시장에 급격한 달러 사재기가 들어와 50원 오른…… 1,280원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정부의 개입은…….”

“없을 겁니다. 1,300이 뚫리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1,300에 최대한 붙어서 때립니다.”

“괜찮을까요? 이미 상단이 다 뚫려 버린 상황입니다. 게다가 저기…….”

김석현이 걱정된다는 듯이 손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정부 관계자가 나와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현재 정부는 모든 라인을 동원하여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려 하고 있습니다. 현재 군은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무력 충돌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우리 군은 즉각적인 반격을 준비할 것이며…….”

“으아~ 또 떨어진다.”

정부 관계자의 말속에 즉각적인 반격과 같은 말이 튀어나오자 시장은 발작하듯이 쏟아져 내렸다.

“선물시장 사이드카 진입했습니다. 코스닥 시장도 사이드카 발동됐습니다.”

“계획대로 프로그램 작동하세요.”

한진영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1초에도 수십 번의 매매가 가능하도록 개선한 HFT(High Frequency Trading) 프로그램은 변동성이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장에 거래되는 물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돈이 됐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시장은 HFT 프로그램에게는 물 반 고기 반의 시장이었다.

“어떻습니까? 잘 작동합니까?”

“네. 예상대로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유동성이 풍부해서 그런지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한진영이 웃으며 묻자 김준하가 모니터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현재 승률 96%예요.”

“승률 96%? 죽이네.”

“네. 죽이네요. 예상했던 것보다 3%나 높아요. 이대로라면…… 오늘만 300억 수익이 예상돼요.”

“1,000억을 집어넣어서 300억 수익. 좋네. 근데…… 한 100억 정도에서 끊어.”

“100억 정도에서 끊으라고요?”

김준하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300억을 벌 수 있는데 100억 수준에서 끊으라고 지시한 한진영이었다.

돈을 더 벌 수 있는데도 일부러 수익을 제한하라는 말에 평소의 김준하답지 않게 한진영을 향해 의문을 가졌다.

“이런 날 자주 오지 않는다는 거 아시잖아요. 평소에는 이렇게 벌지 못해요.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나 가능한 일이죠. 1년에 한 번. 아니. 3~4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날인데…… 이런 날에 100억만 벌고 말자고요?”

“오늘만 버리는 게 아니야. 앞으로 HFT 매매는 자제할 거야. 그리고 오늘 같은 날 유독 눈에 띄어서는 안 돼. 뭐 100억을 벌어들여도 눈에 띄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니 괜찮아. 하지만 300억은…… 괜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재수 없으면 오늘 금융 시장이 혼란스럽게 만든 원흉으로 지목될 수도 있고…… 나는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아.”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이 이해가 됐다.

이렇게 분위기가 살벌하게 벌어지는 날에 큰 수익을 본 곳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고운 눈으로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HFT 매매로 당일 큰 수익을 얻었다고 하면 한진영의 말대로 괜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한진영이 무얼 걱정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오늘은 그렇다 쳐도 앞으로는 왜 HFT를 왜 자제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프로그램만 작동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돈이 되는 프로그램인데요.”

수익을 줄이는 한이 있어도 돌리면 무조건 이득을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프로그램을 한진영은 탐탁지 않아 하는 모습을 김준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회만 되면 자기도 하나 들고 집에서 돌리고 싶을 정도로 HFT의 능력은 강력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고개를 들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기를 보고 있는 김준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의문은 차차 시간을 두고 이야기하도록 하고…… 지금은 여기에 더 집중해야겠지?”

한진영이 모니터를 두드렸다.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한진영의 말대로 지금은 그런 의문을 가지기보다 먼저 현 상황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김준하를 확인하고 자리를 옮겼다.

“채권은 어떻습니까?”

“미친 듯이 물량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거 나라가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고제상은 마치 디폴트 선언을 한 것과 같이 무너져 내리는 채권시장을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이대로라면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님. 오늘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요. 오늘입니다.”

한진영은 고요하기만 하던 채권 가격의 등락 차트를 고제상과 함께 바라보고는 지시했다.

“우리나라가 망한 게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 한도 끝도 없이 빠져 내려가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 어느 지점을 기준으로 하락 폭이 둔화될 겁니다. 그곳을 기점으로 매입해 들어가세요.”

“하락 폭이 둔화되는 지점이요?”

“네. 분명 둔화됩니다. 이대로 계속 채권 가격이 빠질 수는 없으니까요. 주식이라면 또 모르지만…….”

한진영이 말을 마치고 시세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최석영을 향해 지금 상황을 물었다.

“현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매수 주문 집어넣은 물량의 70%가 잡힌 상태입니다. 나머지도 곧 다 잡힐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별일…… 없겠지요?”

“별일 없습니다. 여기가 바로 변곡점이 될 테니까요.”

사이드카가 풀린 종합주가지수는 1,730선마저 뚫고 내려가 버렸다.

뉴스가 나오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100포인트가 넘게 하락을 하고 만 것이었다.

분위기로 보아 서킷도 무리가 없어 보이는 듯했다.

점심시간에 나가 식사를 하러 나갔던 각 증권사의 직원들이 돌아오며 하락세를 더욱 키웠기 때문이다.

“코스닥은…… 서킷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변동성이 코스피에 비해 큰 코스닥은 결국 서킷브레이크에 들어가고 말았다.

“환율은…… 1,300원 돌파했습니다.”

환율도 하루 70원 상승이라는 기록적인 상승을 보이며 시장은 결국 패닉에 들어가고 말았다.

“매수주문 넣은 물량 모두 매집 완료됐습니다.”

“3년물, 5년물, 10년물 국채 매집도 완료됐습니다.”

“원달러 환율 1,300원 기준으로 하여 하방 세팅 완료됐습니다.”

“HFT 프로그램 수익 100억 목표 달성 완료됐습니다. 프로그램 종료 사이클에 들어갔습니다.”

한진영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완료 목소리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진영이 지시를 내리고 준비를 하는데 열흘이 넘는 시간이 걸렸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준비를 한 시간까지 더한다면 몇 달 혹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뉴스 발표 이후 단 한두 시간 만에 모두 완료되고 말았다.

기업들에서 투자받고 기풍증권에서 의뢰받았던 4,000억이라는 돈이 모두 집행되는 데 걸린 시간이 한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한진영은 전광판에 띄워진 세이지 자산운용 계좌 상태를 확인하고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

“아으~ 좋다.”

사우나 탕에 몸을 누이며 눈을 감고 따끈한 물을 즐긴 문 대리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방 과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뭔 노인네처럼 그렇게 소리를 지르냐?”

“과장님도 들어와 보세요. 과장님 입에서도 같은 소리가 나올걸요?”

“아무렴 노인네처럼…… 아으~ 좋다.”

“하하하. 거봐요. 뜨거운 탕에 들어오니까 좋으시죠? 이게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니까요.”

문 대리는 재미있다는 듯이 방 과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방 과장은 탕 안의 물로 얼굴을 씻은 뒤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으~ 정말 좋기는 무지하게 좋네. 오늘 하루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

“그러게요. 몸 녹이고 올라가서 저녁부터 먹어요. 그리고 술 한잔 마시고요.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와인 한잔 더하고요. 그러고 자면 딱 좋을 것 같은데요.”

“아주 오늘 코스 다 생각하고 왔구먼그래.”

“그럼요. 오기 전에 코스부터 다 짰죠. 어. 저기 우 대리도 오네. 여기야. 여기.”

문 대리가 손을 들어 이제 막 사우나로 들어오는 남자를 불렀다.

“너는 다른 사람도 있는데…… 여기 전세 냈어?”

우 대리는 탕 안에 들어앉아 손을 들어 자기를 부르는 문 대리가 창피했는지 문 대리 근처에 오자마자 등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여기선 살짝만 말해도 다 들려 그러니까 조용히 말해.”

“알았어. 알았어. 어서 들어와.”

“몸부터 씻고…… 너 씻고 들어간 거 맞지?”

“거참. 사람을 뭐로 보고…… 어서 씻고 들어오라는 말이었어. 그러니까 어서 씻고 들어와.”

우 대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문 대리를 내려다봤지만, 주변 시선 때문에 더는 문 대리를 추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 대리까지 탕 안에 들어오자 세이지 자산운용의 세 직원들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얼마 집행한 거래요?”

우 대리가 방 과장에게 묻자 얼굴에 수건을 덮고 있던 방 과장이 일어나 수건을 걷어내고 대답했다.

“3,000억. 풀 배팅 하신다고 하더니 진짜로 풀 배팅 하셨어. 1,000억이야 프로그램으로 돌리는 거라 오버나잇이 없으니 우리가 운용할 수 있는 4,000억을 모두 하루 만에 집행했다고 보면 돼.”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다 때려 박으셨네요. 그것도 오늘 같은 날에요.”

“알고 계셨던 것 같아.”

방 과장은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며 말했다.

“아니면…… 어떻게 그 상황에서 풀 배팅이 들어가겠어. 하여튼 대단해. 정말 대단해. 사이드카 터지고 서킷이 코앞인 상황에서 풀 배팅. 캬~ 정말 말이 안 나온다. 말이 안 나와.”

“저는 그것보다 그게 더 대단하게 느껴져요. 환율이요.”

“그래. 그것도 대단하지.”

방 과장은 문 대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맞장구를 쳤다.

“환율이 미친 듯이 오르는 딱 그 타이밍 맞춰서 진입하자마자 정부에서 개입해서 한방에 50원이 떨어졌잖아. 환시장에서만 얼마 벌었다고?”

“200억이요.”

“그럼 도대체 오늘만 얼마를 번 거냐? 막판에 하한가에 물려 있던 것들 들어 올린 것까지 해서 한 500억 땡긴건가?”

“그 정도쯤 될 거예요. 오늘 호텔 풀 코스로 쏘신다고 하실 때 투자금 받자마자 너무 기분 내시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쏘실 만하시네요. 첫 거래에 500억을 한 방에 땡겼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비싼 거 먹어도 되겠죠?”

“비싼 거뿐이냐? 룸서비스도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하시지 않더냐? 그러니 오늘 걱정 없이 놀자고.”

탕 안에 앉아있던 세 사람은 즐거운 듯이 서로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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