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96화 (196/650)

196화 본능이 살아 움직이는 놈

선강그룹의 파트너사 선정 이후 각 증권사는 들썩였다.

어떻게 기풍증권이 선정된 것인지부터 시작하여 선정된 이유 등이 그들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선강그룹에서 제시한 선정 이유는 너무나 단순했다.

단순하게 하이식스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 시황 자체를 철저하게 분석해서 선강그룹에게 반도체 시장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 증거로 다른 증권사들이 전혀 내보이지 못한 유가 가격대별 영업이익 추세와 같은 것을 들었다.

반도체 가격의 상승과 하락만이 아니라 외부 요인에 의해서 반도체 회사들의 영업이익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를 선강그룹에 제시한 것이었다.

이런 선강그룹의 설명에 선정에서 탈락한 증권사들도 더는 볼멘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보지 못한 길을 기풍증권이 앞서서 보았기 때문이다.

기풍증권 내부에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선강그룹 파트너 자리를 따낼 것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기풍증권 직원들은 모이기만 하면 한진영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진짜 한진영 부문장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걸 어떻게 따오지?”

리서치 센터 직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계속 이야기했다.

“이성우 사장이 뭐 IB 파트를 강화해야 한다느니 이야기할 때 뭐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어. 왜 그 사장이 되면 늘 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야.”

“그래. 나도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걸 실제로 만들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거 다 한 부문장이 만들어낸 거지?”

“그래. 선강에서도 선정 이유를 말했잖아. 남들이 제시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의 반도체 시장 예측을 제시했다고 말이야. 허 참.”

직원들은 자기 귀로 직접 듣고 봤음에도 믿기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했다.

“그걸 어떻게 생각해낸 거지?”

“그러게 말이야. 유가가 80에서 90달러에 자리했을 때 영업이익이 10%가 넘게 하락한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야?”

“나도 그게 신기하다니까. 그냥 보통 생각하듯이 유가가 오르면 오르는 대로 영업이익이 하락하는 것도 아니라 특이하게 그 구간에서만 급락한 뒤에 오히려 90에서 100달러 구간에서는 회복하여 3%의 영업이익이 오른다는 거. 이건 또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내느냐고.”

“참 난 사람이다. 난 사람이야. 이러니 선강그룹이 우리를 선택하지 다른 데를 선택하겠어? 다른 곳은 대충 누구나 생각할만한 거 내놨을 테니까.”

기풍증권의 직원들은 한진영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런 모습은 일반 직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임원 회의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로 이게 제가 제시한 방향입니다.”

이성우는 자리에 앉아있는 임원들을 상대로 큰소리를 쳤다.

“IB 파트의 강화. 어떻습니까? 이러면 좀 강화가 된 것 같지 않습니까?”

이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회의실을 돌아다니며 이야기했다.

“바로크 호텔의 인수와 함께 하이식스의 인수전 참여.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우리가 이루어낸 업적입니다. IB 파트가 전무했던 우리가 바로 단숨에 대한민국 IB계의 신흥강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성우는 자기에게 모인 시선을 향해 주머니 속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전화기에는 부재중 전화 20통이 떠 있었다.

이성우는 그런 전화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도 제 전화기에는 다른 증권사 사장님들의 연락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발 자기네들과 함께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중소 증권사로서 아무런 IB 파트에 업적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위상까지도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대목입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곁에 다가가 한진영의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바로 이걸 해낸 것이 바로 한진영 부문장입니다. 자 박수 한번 쳐 주세요.”

이성우의 말에 임원들은 열렬한 박수 세례를 쏟아냈다.

실제로 그들도 바뀐 기풍증권의 위상을 피부로 느끼는 중이었다.

협력관계에 있는 증권사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것이 첫 번째였으며, 상대방이 기풍증권을 대할 때 조심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말로 표현하지 못할 세 번째와 네 번째 등등 짧은 시간 만에 시장에서 기풍증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성우는 임원들의 박수가 자기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찬사.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이성우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칭찬을 받는 것은 한진영이었지만 이런 모든 성과가 자기에게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양어깨를 한번 주무른 후 이야기했다.

“약속대로 한진영 부문장은 돌아오는 신임 인사발표에 이사로 승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기풍증권을 위해 많이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성우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자기를 향해 박수를 치는 다른 임원들을 향해서도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의자 등받이를 잡은 채 임원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 목표로 했던 신흥강자가 된 만큼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더 위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임을 알아주십시오. 모두 다 함께 새로운 기풍증권을 만들어 보도록 합시다.”

이성우의 힘찬 외침에 자리에 있던 직원들은 크게 이성우의 외침을 따라 했다.

뒤에 앉아 있던 권수형 부사장은 이번 일로 기풍증권의 임원들까지 크게 고무되었음을 알게 됐다.

***

이정훈 회장은 권수형 부사장에게 임원 회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다.

“그래서? 다들 이성우를 잘 따르던가?”

“잘 따르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는 이성우 사장님의 지시라면 껌벅 죽는시늉까지 하고 있습니다.”

“허허. 정말이야?”

“정말입니다.”

이정훈 기풍철강 회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그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성과를 냈다면 아래 직원으로서 윗사람을 믿지 말라고 해도 믿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정훈 회장은 무릎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처음 숙제를 내줬을 때 이런 식의 해답을 찾아올 줄은 몰랐어.”

“저도 그렇습니다. 이건…… 기대 이상입니다.”

권수형은 한진영의 부탁을 받아 이정훈 회장에게 테스트할 것을 권한 후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며 지냈었다.

한진영의 제안이 타당하여 들어준 것이지만 혹시라도 일이 잘못될까 걱정하며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졸이던 것이 헛수고였다는 듯이 뜻밖의 커다란 선물을 한진영과 이성우가 안겨줬다.

권수형은 이런 결과에 흐뭇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이정훈 회장에게 기풍증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하는 중이었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사장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가고 있습니다. 이름이 바뀌는 것에 반발이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난 신성증권일 때보다 단합력이 더 좋아진 것 같다는 것이 내부의 평가입니다.”

“이제 자네도 슬슬 돌아와도 되겠어.”

“네. 안 그래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일에 대비해서 기풍증권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성우 사장님께서 아주 완벽하게 회사를 장악하셨습니다.”

아들을 칭찬하는 말에 이정훈 회장에는 얼굴에 가득 웃음기가 넘쳐갔다.

이정훈 회장은 넘치는 웃음을 감추지 않은 채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전에 성우를 잘못 봤다는 생각이 깊어지고 있어. 생각보다 성우가 능력이 좋아.”

“그뿐이 아닙니다. 직원들과의 친화력도 남다르십니다. 도련님. 아니. 사장님은 생각보다 큰 그릇이셨습니다.”

“그래. 큰 그릇이 맞아. 물론 한진영이가 도와주고 있겠지만, 정말 못난 놈들은 옆에서 제아무리 도와줘도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니까.”

“맞습니다. 좋은 부하직원을 품는 것도 능력아닙니까?”

“그렇지. 어쩌면 내가 그동안 너무 안 좋은 쪽으로 본 것일지도 모르겠군. 본래 써야 할 곳에 쓰지 않고 자꾸 자기 몸보다 작은 곳에 앉혀놨으니 그리 삐뚤게 행동했던 게 아닌가 싶어. 왜 안 그러겠어. 몸에 맞지 않은 옷은 보통 사람도 불편해하는 일일 텐데 말이야.”

이정훈 회장은 이번 결과에 아주 흡족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기풍증권을 인수하고 연달아 터지는 커다란 사업 성과에 7,000억의 인수자금이 아깝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면 7,000억 회수는 머지않은 시간 안에 모두 회수할 것만 같았다.

“하이식스 인수 건이 대단하긴 대단한 것 같아. 나한테도 여러 회장님이 연락을 해오고 있어.”

“사장님에게도 수십 통의 전화가 오고 있다고 직접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하하하. 원 녀석…….”

권수형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이정훈은 잠시 무릎을 두드리며 기쁜 마음을 만끽했다.

그리고 천천히 권수형을 바라보고 물었다.

“한진영이를 이사로 올리겠다고?”

“네. 어찌 됐건 1등 공신은 한진영 부문장이니까요.”

“단순히 1등 공신 수준이 아니지.”

권수형은 말을 마치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 듯한 이정훈 회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숙제가 왜 나온 것인지를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직도 한진영에 대한 의심이 가시지 않으셔서 그러십니까?”

잠시 생각을 하던 이정훈은 권수형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해.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믿지 못한다면 그건 내가 의심병이 생긴 거겠지. 그럴 땐 자네가 말려야 하는 거야.”

“안 그래도 저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번 일의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본 입장에서…… 한진영은 믿을만한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앞서 생각하는 모습에…… 소름이 끼칠 때도 있었습니다만 말입니다.”

“바로 그 부분이 마음에 들어.”

“네?”

권수형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이정훈이 마음에 든다고 하여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말았다.

이정훈은 놀란 권수형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소름 끼칠만한 일이야. 마치 모든 것을 알고 행동하는 듯한 모습에 불편함마저 느껴지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어.”

이정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통은 그러지 못하거든. 눈앞에 있는 이득과 당장의 안위를 위해 선택을 해. 하지만 그놈은 달라.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까지 다 계산하고 움직여. 이건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엄청난 경험이 밑바탕에 깔렸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야.”

권수형은 이정훈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봐야 이제 서른 아닙니까? 경험을 해봤다고 해 봤자 얼마나 했겠습니까? 신성증권이 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이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난 놈이라는 거지.”

이정훈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양 무릎을 손으로 짚으며 웃었다.

“경험도 없는데 그런 식으로 일한다? 이건 타고났다는 뜻이야.”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는 이야기군요.”

“그래. 본능. 그놈은 본능이 살아 움직이는 놈이야.”

이정훈은 무릎에 올렸던 손을 올려 팔짱을 꼈다.

“그런 의미에서…….”

권수형은 이정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 한진영에 대한 다른 생각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정훈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권수형을 향해 말했다.

“데리고 있는 게 아까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풍이라는 울타리에 묶어 놓는다는 게 아깝다는 의미야.”

권수형은 이정훈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진영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기풍이라는 울타리에 묶어 놓는다는 게 아깝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유능한 사람이니 회장님 품에 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회장님의 뜻대로 움직일 테니 말입니다.”

“적당한 놈이라면 그게 낫지. 내 수족처럼 부리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끼고 있는 게 좋을 테니까. 그런데 그놈은 그 이상이야. 오히려 내가 놈의 손과 발을 묶는 게 될 수도 있어.”

“그렇다고 밖에 나갔다가는 회장님 말씀을 안 들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내 말 듣지 않아도 괜찮아.”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회장님 말을 듣지 않아도 괜찮다니요?”

권수형은 깜짝 놀라 이정훈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정훈은 그런 권수형에게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권수형은 이정훈 회장이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기풍증권은 내부적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

바로크 호텔 인수 건은 기풍증권이 출시한 PEF(사모펀드)에 관심을 끌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굉장히 싼 가격에 바로크 호텔을 인수한 만큼 기풍증권의 능력에 후한 평가를 했다.

그래서 다음에 나올 PEF에 가입하기를 많은 사람이 원했고 언제 또 새로운 PEF가 출시되느냐며 기풍증권의 다음 PEF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이식스 인수 건은 다른 기업들에 기풍증권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선강그룹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여러 대형 증권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기풍증권을 파트너로 삼은 것에 기풍증권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한 번에 크게 올라갔다.

선강그룹이 기풍증권을 파트너로 삼은 이유도 주변에서 보기에는 타당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분야를 본다는 것에 기풍증권과 함께한다면 단순히 업무적인 도움 외의 것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업계에 파다하게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이렇듯이 주변에서 기풍증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자 기풍증권도 그에 맞춰 몸을 변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성우 신임 사장이 주장하던 IB 파트의 강화가 현실이 되어 가는 것이었다.

“야. 네가 해라.”

이성우는 한진영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애원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 시켜.”

“너 말고 누구를 시키냐? 어차피 너 임원도 달고 그랬으니 자격은 충분해. 그리고 너 말고 누가 신임 IB 본부의 본부장을 맡겠어? 네가 다 이렇게 키운 건데. 그러니까. 네가 맡아.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에는 그게 제일 좋아 보여.”

이성우는 늘어난 고객들의 요구와 기풍증권의 성장을 위해 IB 본부를 새롭게 구성했다.

그리고 그곳의 신임 본부장으로 한진영이 앉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이성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슬슬 기풍증권에서 떠나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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