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89화 (189/650)

189화 더 재미있는 일을 하자

“들어오시죠.”

동우산은 이성우의 모습을 모른 척하고는 안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한진영은 그런 동우산의 안내에 주저하는 이성우의 등을 살며시 어루만진 후 안으로 들어갔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손에서 나온 따스함에 마음이 조금 안정됐는지 한진영을 따라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니 문 앞에서 볼 때보다 더 강한 불당의 느낌이 전해졌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향냄새가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동우산은 거실로 보이는 곳 한쪽에 놓여있는 향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성우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제가 두 분이 오시기 전까지 기도를 올리느라 향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가 조금 메울 수 있으니 이해해주십시오.”

“기도에 대한 대답을 들으셨습니까?”

“신께서 그리 쉽게 기도를 들어주시지는 않지요. 한 부문장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잘 아시고 계신가 보십니다.”

동우산이 기대에 찬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보통은 이성우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이었다.

법당에는 사람들이 두려워할 만한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커다란 언월도는 물론이고 한쪽에는 작두가 입을 벌린 채 놓여있었다.

날이 잘 서 있는 칼과 핏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 같은 그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하였다.

그러나 한진영은 달랐다.

오히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법당을 채우고 있는 것들을 살폈다.

그 모습을 보며 동우산은 한진영이 혹시 자기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느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진영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신기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놀라운 적중률.

분석이 아니라 마치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한 예측하는 능력.

이런 것들은 모두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듣는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이 이렇게 서늘하게 느껴지는 법당에서도 태연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런 게 효과가 있었다면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겠지.’

선강그룹의 최대일 회장이 파생에서 엄청난 손실을 보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 동우산이 잘 맞추지 못해서였다.

그래서 최 회장이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가 그 사달이 나고 만 것이었다.

한진영은 으스스해 보이는 것들이 아무짝에도 효과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었다.

“글쎄요. 잘 알지는 못하지요. 그저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아 그러는 것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일반인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혹시 시간이 되시면 저희 신 엄마를 한번 뵙겠습니까? 저희 신 엄마께서는…….”

“아니요.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시지요. 오늘 그 말씀을 하기 위해 저희를 부른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한진영이 불편한 모습을 보이자 동우산이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오늘 그를 부른 진짜 이유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제야 든 것이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우선 앉으시지요.”

동우산이 한진영과 이성우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 그는 옆방으로 들어가더니 비타민 음료 박스를 가지고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는 이성우와 달리 한진영은 동우산의 손에 들려진 비타민 음료 박스를 유심히 바라봤다.

동우산은 비타민 음료 박스 두 개를 좌우에 내려놓고 한진영과 이성우 맞은 편에 앉았다.

“두 분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실 제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만 들어주지 못한다고 말씀하셔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선강그룹의 도움인데 어찌 거절할 수 있었겠습니까?”

“선강그룹의 이름으로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말씀대로 선강그룹의 이름을 이용했다면 사실 기풍증권까지 찾을 필요도 없었지요. 저희 선강그룹에도 증권사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성우는 동우산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대화하며 점차 분위기에 적응해 나가는 이성우를 슬며시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동우산에게 말했다.

“재미를 많이 보신 것 같습니다.”

동우산은 한진영의 말에 바로 인정했다.

어차피 속이려 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겠지만 돈은…… 뭐 소소하게 벌었습니다. 저희가…….”

동우산은 말을 하다 말고 잠시 한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문득 동우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동우산의 생각을 읽고 먼저 입을 열었다.

“약 3억 정도 벌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것까지 아십니까?”

“사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생각하신 것보다 더 많이 말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습니다. 기관 등과 게임을 하는 건 손안에 있는 패를 펼치고 치는 고스톱과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알고 있는데…… 영~ 그 양반이 말을 듣지 않아서…….”

동우산은 말을 조심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포기한 듯이 양손으로 무릎을 털어내며 말했다.

“에이. 뭐 두 분과는 함께 많은 일을 해야 할 사이이니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박수무당입니다.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게 제 일입니다. 그러다 연이 이어져 지금의 선강그룹과 함께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지금은 파생에 흠뻑 빠져 있는 최 회장님께 선물지수의 방향을 조언해 드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직업이 이런데도 선물지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맞히기란 영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동우산이 법당으로 쓰이는 집안을 손으로 가리켰다.

직접 자신의 직업이 박수무당임을 밝힌 동우산이었다.

선강그룹의 최대일 회장과의 인연까지 이야기함으로써 한진영과 이성우를 믿는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었다.

한진영은 이렇게까지 나오는 동우산의 행동에 말없이 미소 지었다.

다음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 뻔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동우산은 한진영과 이성우를 번갈아 바라본 뒤 말했다.

“꽤 난감한 상황에서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최 회장님께서 소소하지만 오랜만에 선물에서 돈을 버실 수 있었습니다. 사실 3억이라는 돈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크겠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그까짓 3억쯤은 회장님의 하룻밤 술값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말입니다.”

동우산은 멋쩍게 웃고는 계속 이야기했다.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보다 벌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제가 부문장님께 받은 자료를 토대로 회장님께 이야기했는데 그대로 상황이 연출되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예상한 대로 시장이 흘러가는 것만큼 짜릿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 맛을 오랜만에 보셔서 그러신지…… 매우 기분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그동안은 거의 돈을 벌지 못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성우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동우산이 그런 이성우의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했다.

“네. 회장님께서 파생에 재미를 붙이신 지난 5년 동안 돈을 번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지금까지 선물 투자로만 약 1,000억 정도 깨졌습니다. 야금야금…….”

“얼마요? 1,000억이요?”

이성우가 놀란 얼굴로 동우산을 바라봤다.

그러나 동우산은 이성우가 아닌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한 부문장님께서는 놀라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이것도 예상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1,000억까지 날렸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상황을 대충 예상한 정도이지요.”

“휴우~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요. 부문장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최근에는 회장님께서…… 조금 안 좋은 생각까지도 하실 정도였습니다.”

“안 좋은 생각이요?”

이성우가 깜짝 놀라 동우산을 향해 물었지만, 대답은 동우산의 입이 아니라 한진영의 입을 통해 나왔다.

“아마 자금이 부족하다고 느끼셨나 봅니다. 그래서…… 회사 자금에 손을 대려 하신 것 아닙니까?”

동우산은 한진영을 바라보고 혀를 내둘렀다.

“다 알고 계시군요. 박수무당은 제가 아니라 부문장님이신가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파생에 빠진 누구나 다 하는 실수니까요. 그저 회장님께서는 스케일이 조금 더 크셨던 것뿐입니다.”

예상한 것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한진영이지만 사실은 최대일이 회사 자금에 손을 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시절 이것 때문에 최대일이 감옥까지 갔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한진영이었다.

“주식과 파생에 사람이 미치면 흔히들 이런 식의 오해를 하고는 합니다. 돈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돈을 끌어와 자금을 더 크게 만들어 들어가고는 하지요. 그래도 말씀을 들으니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 같습니다.”

“네. 덕분에 최악은 피했습니다만, 거의 최후의 최후까지 가셨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안 된다면…… 큰돈을 끌어오려 하셨었지요.”

“다행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한진영은 실제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시절에 결국 선강그룹이 하이식스를 인수하기는 했지만, 이 문제로 인수과정이 순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자기가 개입하려 한 이상 이런 류의 장애물은 치우고 가려 마음먹었다.

“우선은 오랜만에 승리의 맛을 봤다니 축하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욕심내지 마십시오.”

“욕심내지 말라고요?”

“네. 이쯤에서 정리를 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그만하라는 한진영의 말에 동우산은 물론이고 이성우도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쳐다봤다.

최대일에게 동우산에 대한 신뢰를 쌓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기에 분명 앞으로도 계속 지수의 방향을 알려주어 신뢰를 쌓게 하려는 게 아니냐고 생각한 이성우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만두라고 이야기하니 이성우는 한진영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진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이성우를 슬쩍 바라보고 동우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동우산이 양쪽에 놓인 비타민 음료 박스를 들어 한진영과 이성우 앞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냥 기풍증권의 뷰를 공유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염치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이곳에서 뵙자고 한 겁니다. 남들의 눈을 피하기에는 여기만 한 곳이 없어서 말입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한진영이 비타민 음료 박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성우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겠는지 박스를 열어봤다.

“어?”

이성우는 박스 안에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하고 급히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도 이성우가 열어 본 박스 안의 물건을 확인했다.

“이게 무엇입니까?”

한진영의 질문에 동우산이 웃으며 대답했다.

“자그마한 성의입니다.”

“무엇에 대한 성의죠?”

“도움을 주신 데 대한 성의입니다. 우선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팩스 한 장에 음료수 박스 하나씩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우산의 말에 한진영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한참을 그렇게 웃던 한진영은 음료 박스를 동우산 쪽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이런 걸 100박스를 건네주셔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더는 정보를 내어 드릴 수 없으니 말입니다.”

“틀릴 걸 걱정하시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틀렸다고 하여 부문장님께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의미라는 말씀입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동우산이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한진영은 착잡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제가 드린 정보가 확실한지 의심이 되어 지금까지와는 달리 소량으로만 매매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저도 확인이 필요했으니 그런 건데…… 그게 문제가 됩니까?”

“네. 문제가 됩니다. 원래 하던 대로 수백 계약씩 진입한다면 제가 방향을 가르쳐 드려도 잡아 먹히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정보를 드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방향을 부문장님이 가르쳐줘도 잡아먹힌다고요?”

한진영은 놀란 표정의 동우산을 향해 말했다.

“선물 시장에 큰손 개인의 등장은 호구가 도박판에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관과 외국인들이 큰 흐름 속에 잔파동을 만들어 어떻게든 털어먹으려고 달려들 겁니다. 이런 사실은 이미 느끼고 계셨을 텐데요. 아닙니까?”

“흐음…….”

동우산의 입에서 짧은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몇 년 동안 최대일 옆에서 느꼈던 것이 바로 한진영이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신음 소리로 인정을 한 것과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인 동우산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아마 회장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시겠지요. 호구 잡힌다는 것은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니까요. 그래서 돈으로 찍어 누르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려고까지 하셨을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동우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솔직히 말씀드려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눈감고 동전 던지기를 해도 50%의 확률이 나와야 하는 게 정상인데 지금 회장님의 승률은 정상이 아니니까요. 저도 예상은 하기는 했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증명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테스트하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니까요.”

“테스트요?”

“네. 100계약 이상을 한 번에 들어가 보십시오. 그럼 잡아먹겠다고 득달같이 달려오는 무리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진입 방향과 반대로 대규모의 물량이 들어와 손절을 시키려 할 겁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니 해보시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용하여 회장님에게 신뢰를 더 쌓으십시오.”

“신뢰요?”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입으로 말을 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저를 믿고 확신에 찬 말로 회장님에게 선물 투자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말씀하십시오. 신이 몸에 들어와 방향을 알려준다고 해도 중간중간 들어오는 저들의 농간까지는 다 막아낼 수 없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일을 하자고 하시면 됩니다.”

“재미있는 일이요?”

동우산은 한진영의 말에 흠뻑 취해 있었다.

이성우는 두 사람 곁에서 도대체 누가 박수무당이고 누가 평범한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는 중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슬쩍 돌아보고는 미소 지은 후 동우산에게 말했다.

“정부에서 하이식스 인수 건에 대한 검토를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떻게 아는 것보다 어떻게 할지가 중요한 일이겠지요. 선물 투자는 관두고 더 재미있는 일인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인수합병 건을 성사시키자고 하십시오.”

“역사상 최대의 인수합병 건?”

한진영의 말에 동우산의 시선이 갈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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