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직원에게는 성의를 다하지 않는다
휴지 묶음을 든 김준하는 집에 들어와서도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큰 집과 그 집을 돋보이게 하는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김준하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지난 집도 자기가 사는 곳에 비할 바가 아니었는데 지금 이곳은 궁궐을 옮겨놓은 것만 같게 느낀 김준하였다.
김준하는 슬리퍼를 신은 채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김준하에 비해 이성우는 조금 나은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한진영보다 먼저 들어와 살아서 그런 것인지 익숙한 모습으로 한진영의 이사한 집을 이성우는 살피는 중이었다.
“여기까지는 우리 집하고 똑같은데…… 크기가 다르네. 여기가 몇 평이라고?”
“공급면적이 150평이랬나? 170평이랬나? 나도 정확하게 모르겠다.”
“넓긴 무지하게 넓네.”
운동장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거실을 둘러본 이성우는 서울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문 앞에 서서 말했다.
“뷰 봐라.”
이성우는 뒤에 서 있는 한진영을 돌아봤다.
“여기 뷰 죽이는데?”
“너희 집하고 몇 층이나 차이 난다고 뷰가 죽여?”
“그래도 그 몇 층 안 되는 게 큰 차이다. 우리 집에서는 이런 시야가 안 나와. 봐라. 시야가 탁 트여서 서울숲이 한눈에 들어오잖아.”
이성우가 연신 한진영네 집의 뷰를 칭찬하는 사이 김준하는 소파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건 뭔데 가죽이 이렇게 부드러워요?”
한진영은 휴지를 어디에 내려놓을지 몰라 여전히 들고 돌아다니는 김준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휴지를 받아 들고 대답했다.
“나도 몰라. 선물 받은 거니까.”
“선물?”
창문을 통해 서울숲을 내려다보던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몸을 돌려 소파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이야! 이거…… 프랑스제 아니냐?”
“어디 건지 나도 몰라. 그냥 받은 거니까.”
“그냥 받아? 이거 비싼데…….”
이성우는 소파에 앉아 쿠션 감을 살폈다.
그리고 가죽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거 세미아넬린 통가죽 쓴 거 아니야? 대충 1,000에서 1,500쯤 줘야 할 것 같은데?”
“소파가 1,000만 원이라고요?”
“그것도 예약을 걸어놓고 일이 년 기다린다는 조건이 붙었을 때나 1,000만 원이야. 그렇지 않고 바로 사려고 하면 2,000도 모자랄걸?”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 계속 쓰다듬던 김준하는 놀란 얼굴로 소파에서 손을 뗐다.
혹시라도 만지다가 상처라도 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파에서 멀어지기 위해 뒷걸음질 치다가 한쪽에 놓여있던 스탠드를 건드렸다.
“어이쿠.”
김준하는 깜짝 놀라 쓰러질 뻔했던 스탠드를 잡았다.
스탠드가 휘청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쓰러져 전구가 깨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김준하는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스탠드를 다시 세웠다.
이성우는 소파에 앉아 그런 김준하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했다.
“소파에 뭘 놀라? 네가 지금 깨 먹을 뻔했던 스탠드는 이탈리아제야. 지오반니 제품. 그거 스탠드만 700인가 그럴걸? 그치?”
김준하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스탠드가 700만 원이나 한다는 소리에 기겁했다.
그리고 놀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거실에서 석상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좀 부셔도 괜찮아.”
한진영은 몸이 굳어 있는 김준하를 데리고 소파로 다가가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그리고 나도 선물 받은 거라서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니까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스탠드가 700만 원이건 7만 원 나에게는 별 차이가 없으니까.”
“히야~ 도대체 누가 너한테 이런 선물을 다 하는 거냐? 대단하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을 들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집에 놓여있는 가구들을 살피며 말했다.
“하나하나 비싸지 않은 게 없어. 비싸기만 하냐? 저 식탁은 돈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거야. 도대체 이런 대단한 걸 선물한 사람이 누구야?”
이성우는 질투가 난다기보다 순수하게 놀라는 마음으로 한진영의 집을 살피며 말했다.
그만큼 그가 보기에도 좋은 것들로만 집안이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깔아준 거야.”
“회사? 어떤 회사?”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던 이성우는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하던 것을 멈추고 한진영을 바라본 것이었다.
한진영은 가지고 온 과일을 여전히 굳어 있는 김준하에게 건네고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았다.
그리고 커다랗게 나 있는 거실의 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사가 어디겠어? 내가 다른 곳에 다녀?”
“우리 회사? 신성증권에서 이렇게 좋은 가구를 놓아줬다고?”
“가구만이 아니야. 네가 만지작거리는 리모컨으로 작동시키는 TV와 저기 뒤에 서 있는 스피커를 포함해 오디오까지 싹 다 회사에서 깔아준 거다.”
“회사에서 왜?”
“글쎄? 잘했다면서 깔아주던데.”
한진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했다.
“잘했다고 수천만 원짜리 소파를 사줘? 그리고 저 오디오도 서 있는 스피커 모양만 봤을 때 소파 가격 못지않을 것 같은데…… 이걸 회사가 다 해줬다고? 너 나랑 같은 회사 다니는 거 맞냐?”
돈 때문에 이성우가 놀란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성과급으로 1억을 지급했다면 오히려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돈보다 한진영이 새롭게 집에 들어가며 필요한 게 무엇이 있는지 고르는 귀찮음까지 감수하면서 물건을 깔아준 성의에 놀란 것이었다.
게다가 아무 가구나 들인 것이 아니라 색깔이며 스타일 그리고 가전과의 어울림까지 신경 쓴 것이 하루 이틀 대충 준비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성우는 소파의 팔걸이 부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회사에서 널 예뻐하기는 엄청나게 예뻐하나 보다. 어떻게 이런 걸 다 선물하냐?”
“예뻐한다고?”
한진영은 건네준 그릇 위에서 조심스럽게 껍질을 까는 김준하의 손에서 오렌지를 뺏어 들었다.
혹시라도 오렌지 껍질을 까다 과즙이 소파에 떨어질까 봐 걱정됐던지 김준하는 껍질을 제대로 까지 못하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의 손에서 오렌지를 빼앗아 들고 과즙이 뚝뚝 떨어지게 껍질을 까며 이성우의 말에 대답했다.
“명목상으로는 일을 잘해서라는데, 보다시피 많이 과한 면이 있지. 아무리 일을 잘했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챙겨줄 정도는 아니거든.”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진영이라면 이 정도 대우는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이성우는 열심히 오렌지 껍질을 까고 있는 한진영에게 말했다.
“이 정도로 너한테 성의를 다하는 걸 보니 앞으로 잘하자는 뜻에서 그런 거일 수도 있는 것 같은데?”
“아니. 꿍꿍이가 있어서 이러는 거야.”
한진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꿍꿍이가 있다고?”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김준하에게 오렌지를 건넸다.
김준하는 껍질이 다까진 오렌지에서 과즙이 떨어져 내리는 걸 그대로 받아 들었다.
그리고 과즙이 소파를 적시는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손으로 과즙이 떨어져 내린 곳을 닦아낸 후 그 손을 소파의 머리 부분에 얹었다.
한진영에게는 고급 소파라서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그냥 평소와 같은 일을 시키려고 했다면 이러지 않지. 말 그대로 성과급 몇 푼 던져 주면 될 일이니까.”
“그럼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건데?”
“평소와 같은 일이 아닌 다른 걸 시키기 위해 밑밥을 까는 거야. 이렇게까지 우리가 공을 들이고 있으니 이것도 해달라고 말이야.”
“회사에서 일 말고 다른 걸 시킬 게 뭐 있어?”
한진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이성우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진영은 신성증권과 그 위에 해당하는 신성그룹이 어째서 자기에게 이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맘때쯤에 신성그룹에서 큰 이슈가 한가지 나온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성증권 매각]
벌써 시간이 흘러 그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사실 신성그룹에서 이렇게 나오지 않았어도 자기가 맡아서 진행하려 했던 일이었다.
그래야 한진영이 원하는 방향대로 매각 건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서서 선물까지 주면서 해달라고 하니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
한진영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성우를 빤히 바라봤다.
이성우는 갑자기 이야기하다 말고 자기 얼굴을 쳐다보는 한진영을 보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한진영은 새삼스러운 눈초리에 부담스러워하는 이성우를 바라보고 말했다.
“우선 회사가 나에게 부탁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어? 그게 뭔데?”
왜 자기를 보고 그 말을 하는지 모르게는 이성우였다.
그러나 한진영이 이성우를 바라보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였다.
바로 이성우와 관련된 일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널 기풍그룹의 위에 올려놓기 위한 작업. 그걸 또 해야지.”
“기풍그룹? 뭔 소리야? 우리는 기풍철강인데?”
“이제 기풍철강이라는 간판을 기풍그룹으로 바꿔야 하지 않겠냐? 그룹사로서 나아가야지. 그리고 너는 그 위에 올라앉아야 하고.”
“뭐 기풍철강이나 기풍그룹이나 매한가지니까 그렇다 치고……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을 하면 되는데? 지난번에 네 덕분에 일 잘해서 아버지가 여기 집을 주기는 하셨다만…….”
“이번에는 집이 아니라 회사를 받아야지.”
“회사? 회사를 어떻게?”
“당장은 아니지만 회사를 받기 위한 작업. 이제 그 작업을 할 차례다.”
한진영은 여전히 조심스러워하는 김준하의 손에 남아있던 오렌지를 받아 들고 과즙이 뚝뚝 떨어지게 한입에 오렌지를 베어 물었다.
***
일본의 대지진이 대한민국에게는 오히려 이득이었다는 것이 현실로 증명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부터 해외 수출액이 증가하며 시장의 예측이 정확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상승세를 타던 증시는 전망이 맞았다는 것에 더 탄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0을 넘기고 다시 2,100을 엿보던 시장이 기어코 전고점을 넘기며 다시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힌 것이었다.
아웃사이트 펀드와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던 투자전략사업부의 신규 펀드의 수익률 또한 증시만큼이나 큰 폭의 수익을 올리는 중이었다.
국내증시에 투자한 것만으로 벌써 펀드 수익률이 20%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펀드가 개설된 지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벌써 20%가 넘는 수익을 보인 것은 기록적인 수치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저점 대비 20%의 수익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개설된 뒤 올려진 수익으로 그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을 만큼 좋은 수익을 보이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새롭게 유치된 2,000억의 사용처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 돈을 탐내게 된다면 투자자들의 비난과 원망을 한 몸으로 받아야 하는 만큼, 노 전무조차 입을 다물고 그저 펀드가 좋은 수익을 올리기만을 기대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높은 펀드의 수익률 속에서도 투자전략사업부 내에서는 새로운 의견이 나오는 중이었다.
“왜 이번에 모집한 펀드의 경우에는 퀀트 프로그램을 적용하지 않는 건가?”
최준호가 회의실에서 궁금하다는 듯이 한진영을 바라보고 질문했다.
“퀀트 프로그램은 수익의 30%를 우리가 먹는다는 조건이 있지 않아? 그럼 수익이 오르면 오른 만큼 우리가 더 큰돈을 벌 수 있는데…… 왜 하지 않는 거야?”
2,000억 펀드에 대한 운용 수수료는 연간 1% 남짓이었다.
이것도 오픈되어 있는 펀드가 아니었기에 꽤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한 결과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최준호를 비롯하여 투자전략사업부의 직원들은 그보다 더 높은 수익을 원했다.
그리고 방법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퀀트 프로그램을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퀀트 프로그램을 적용하게 되면 수수료 외에도 올리는 수익의 30%를 수수료로 회사에 낸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펀드 가입자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펀드 가입자들인 VIP들이 퀀트 프로그램을 먼저 알고 적용해 달라고 말할 정도로 그들은 퀀트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상태였다.
확실히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답게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것임에도 그들은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한진영은 새롭게 조성된 펀드에 퀀트 프로그램을 적용하려 하지 않았다.
가입자들이 수익의 30%를 수수료로 내겠다는데도 한진영이 거부하는 중이었다.
최준호를 비롯하여 사업부의 직원들은 이런 한진영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입자들이 하겠다는 것을 운용자가 거부하는 경우를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단호했다.
“이번에 조성된 펀드에 퀀트 프로그램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퀀트 프로그램을 적용했던 것들도 슬슬 적용 범위를 좁히거나 뺄 생각입니다.”
“적용 범위를 줄인다고요?”
“뺀다는 이야기는 퀀트 프로그램을 운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인가요?”
“혹시…… 프로그램에 이상이 있는 건가요?”
자리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김준하와 박도하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기들이 모르는 사이에 퀀트 프로그램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개발하여 운용하는 사람들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선에서는 프로그램에 전혀 이상이 없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김준하와 박도하는 오히려 한진영에게 시선을 보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싶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