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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82화 (82/650)

82화 본사와 이야기가 가능한 사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자 일부에서 남유럽에 대한 불안감을 담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리스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전 정부의 숨겨놓은 부채를 새 정부가 과연 해결할 수 있겠냐는 시각으로 그리스를 바라본 것이었다.

그리스의 새 정부는 이런 자국 내의 문제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 전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며 세계에 전 정부의 무능함을 알리려 노력했다.

그리고 일부에서 제기되는 이야기에도 빠르게 인정했다.

새롭게 수립된 정부는 전 정부와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는 것으로 새해 첫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그리스 내부의 혼란을 부추기고 말았다.

외부에 전 정부의 비난을 쏟아내는 것만큼 내부를 다스리지 못한 것이었다.

공무원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의 대규모 감원과 월급의 지급유예.

이것을 부채를 줄이기 위한 첫 디딤돌로 삼은 것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 해를 즐기기 위한 축하 인파로 가득해야 할 그리스의 광장이 시위대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런 시위대를 막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 시위대 앞을 가로막으며 팽팽히 둘이 맞서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로 전해졌다.

그래도 처음 한두 번은 같은 유럽연합의 구성원들이 도와주지 않겠냐는 희망에 시위대들도 격렬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모이는 것만으로 자기들의 주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모습이 전파를 타고 나간다면 세계 각국 특히, 같은 유럽연합 내의 여러 국가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주변 국가들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부채의 늪에 빠진 것은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PIGS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포루투칼,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묶어 부채의 늪에 빠진 국가들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이제 부채 문제는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리스 국민들은 도움이 없다는 것을 알자마자 폭도로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그걸 막는 경찰들 또한 강경 진압으로 무자비하게 시위자들을 탄압했다.

수백 명의 사상자.

그리스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의 국채를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등급 전망 또한 부정적(Negative)을 유지하며 하향 정도를 정크본드 수준으로까지 낮출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로 인해 그리스의 국채 금리는 10%를 넘어 15%를 넘보기 시작했으며 가격은 지하 맨틀을 뚫고 말았다.

그리스 국채의 폭락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스 사태가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불안감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채권을 던져댔다.

그리고 이런 채권 가격의 하락은 국가 부채를 넘어 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아직 서브프라임의 기억이 모두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여전히 시장은 불안했으며 안정되지 못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투자은행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이 세상에 안전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시장은 그리스 사태로 인해 경제가 다시 침체기에 들어설 수 있음을 걱정했다.

유가는 폭락했으며 환율은 튀어 올랐다.

100불 탈환은 당연할 것처럼 여겼던 유가는 100불 코앞에서 경제 침체로 인한 수요 불확실이라는 명분으로 폭락에 폭락을 이어갔다.

시장이 흔들리며 사람들은 기축통화를 찾기 시작했다.

달러의 가치는 급등했고 원화의 가치는 급락했다.

결국, 달러는 1,200원대에서 안정되던 것이 단숨에 1,500원대를 돌파하고 말았다.

한진영이 대한그룹에 판 상품들이 단, 몇 달 만에 하늘 높은 수익을 보이고 만 것이었다.

***

한진영을 비롯한 TF팀의 팀원들이 점심을 먹고 난 뒤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대한그룹 이야기가 뜨겁긴 뜨겁나 봐요. 문의 전화가 어제도 열통이 넘게 왔어요.”

라떼를 든 채 이야기하는 조수아의 말을 받아 김석현도 입을 열었다.

“그럴 만도 하죠. 처음 우리가 대한그룹에 상품을 팔았을 때 얼마나 말이 많았어요. 대한그룹이 사기를 당했다는 소리까지 나왔었던 것 아직도 기억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상품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으니 주변에서 부러워할 만도 하죠.”

“지금 다른 증권사에서도 우리가 만든 상품을 기초로 해서 여러 상품을 설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유사하게 설계했다고 하던데…… 참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지. 우리가 로열티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조수아의 말에 김석현과 고제상이 맞장구를 쳤다.

김준하는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한진영은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한동안 그렇게 다른 곳들의 양심 없음을 토로하던 조수아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팀장님.”

“네?”

“저기…… 우리 TF팀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조수아의 말에 관심이 없다는 표정을 짓던 김준하마저 한진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TF팀이 대한그룹에 상품을 팔아먹은 뒤 손을 놓고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한그룹에 판 상품을 추적하고 사후처리를 해주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때그때 상황을 모니터링해주는 것도 TF팀의 몫이었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외부 상황에 따라 상품 가격의 변화까지 세심하게 관리하며 대한그룹의 판단에 도움을 주는 것까지가 TF팀이 할 일이었다.

그렇게 대한그룹 측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TF팀도 그런 관계 속에서 계속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 사태가 터지며 상품이 빛을 발하는 지금에 와서는 그런 일들이 이제는 필요 없어지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상품을 언제 정리해야 하는지 대한그룹의 결정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TF팀의 존재 의의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팀원들은 TF팀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중이었다.

“이대로 계속 우리 팀이 이어지지는 못하지 않나요?”

“혹시 이대로 팀이 해체되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프로젝트를 생각해 두신 것이 있으시나요? 이번 건으로 여러 곳에서 의뢰가 들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말이 나온 김에 사람들은 한마디씩 한진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일이었다.

국내 증권사에서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냄으로써 자부심과 성취욕에 가득 찬 팀원들이었다.

이런 감정이 한 번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쉬웠던 사람들은 한진영을 향해 갈망의 눈빛을 보냈다.

한진영이라면 이대로 그냥 TF팀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을 낼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이제는 완연한 봄 날씨를 느끼며 아이스커피를 들어 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이대로 끝낼 거면 지금까지 TF팀을 유지하지도 않았겠지요. 대한그룹에 상품을 팔아먹은 시점에서 TF팀을 해체하고 유지관리에 대한 일을 각 팀에 넘겼을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김석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무언가 생각해놓은 게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한진영은 기대했던 대답을 들어 만족해하는 김석현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이제 시작입니다. 저는 TF팀을 조금 더 키울 생각입니다. 권한도 더 많이 가졌으면 하고 팀원도 이렇게 조촐한 수준이 아닌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원합니다. 할 일도 이번처럼 단순히 상품을 설계하여 팔아먹는 것으로 끝을 내고 싶지 않습니다.”

유지되느냐 아니냐를 걱정했던 팀원들은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마시던 커피를 끝까지 단숨에 들이켰다.

조수아는 한진영이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말했다.

“회사에서 그렇게 해준다던가요?”

“회사에서는 그렇게 해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한진영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다 마신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먼저 몸을 돌려 회사로 걸어갔다.

이미 예전부터 생각하고 준비했던 일이었다.

그 결과가 이제 슬슬 드러날 때가 됐음에 한진영은 팀원들에게 자기의 계획을 말해줬다.

이제 그들의 불안감을 씻어줘도 될 때가 됐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엄청난 일을 해낸 것처럼 보이겠지만 한진영의 입장에서는 이제 겨우 한발을 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이걸 바탕으로 회사 내에서 입지를 다져야 했고, 자기의 이름을 업계에 알려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팀을 움직이는 자리에 있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 팀의 권한이 더 커야지만 움직일 반경이 넓어지며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한진영은 차분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만을 기다렸다.

한진영은 찌가 물밑으로 모습이 사라지면 낚싯대를 잡아챌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그리스 사태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그리스 정부는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며 오히려 채권을 발행하여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규모는 1,100억 유로에 달하며 이 채권발행이 실패하게 되면 모라토리엄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을 흘리며 세계를 향해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각 투자은행에 익스포저. 즉, 위험에 노출된 채권 규모를 파악해 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미국이 지금의 위험을 얕게 보고 있지 않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었다.

***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한진영을 김정대의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올 때 부문장님하고 전화했는데 이렇게 나와서 기다리고 계신 겁니까?”

“오시자마자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요.”

“많이 급하신가 보네요.”

“한 팀장님이 오기만 기다리고 계셨어요.”

한진영은 김정대 비서의 말에 웃으며 가방을 자리에 놓은 후 말했다.

“그럼 가시죠.”

한진영은 김정대 비서의 뒤를 따르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회사로 오는 차에서 김정대의 전화를 받은 한진영이었다.

김정대는 사장님이 찾는다며 빨리 회사에 오자마자 자기와 함께 사장님을 뵈러 가자고 말했다.

한진영은 드디어 드리워진 낚싯대의 찌가 물속으로 사라졌음을 느꼈다.

원하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에 만족해하며 김정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한진영이 김정대의 사무실에 도착하자 김정대가 한진영을 불러들였다.

“어서 와.”

한진영은 의자에 앉으며 김정대에게 말했다.

“바로 가실 겁니까?”

“어. 사장님이 한 팀장 오면 바로 올라오라고 하셨어.”

“사장님도 일찍 나오셨네요.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사장님에게 직접 연락이 왔나 봐.”

“어떤 연락이요?”

“청와대에서 연락이 온 것 같아.”

“청와대요?”

의아한 표정의 한진영을 향해 김정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공식적인 확인은 기재부를 통해 오겠지만 그 전에 청와대 경제수석 라인을 통해 확인이 들어온 것 같아.”

“무슨 확인이요?”

“미국이 익스포저를 확인하고 있으니 우리도 확인 작업에 들어가는 거지.”

“우리나라는 유럽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양이 많지 않잖아요?”

“맞아. 유럽 채권. 그중에서도 남유럽 채권은 인기가 많지 않아. 그런데 최근에 채권가격이 내려가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꽤 여러 곳에서 남유럽 쪽 채권을 매입한 것 같아. 그게 문제가 될지도 모르니 미리 확인해놓겠다 이거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래서 우리 쪽도 파악하기 위해 연락을 했다는 건가요?”

“그래. 그리고…….”

김정대는 웃음을 참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진영에게 일어나라는 뜻을 보인 후 이야기했다.

“사장님도 알게 되신 거지. 우리는 미리 남유럽 쪽 위기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야.”

김정대는 한진영을 향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알게 됐다는 것에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사장님께서 답답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해해줘야 해.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우리 업계의 분이 아니셔서 그렇지요?”

“알고 있었나?”

김정대는 놀랍다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사장님이 본사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은 모든 직원이 다 아는 사실인데요.”

“하긴 모를 수가 없겠지.”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자네 말대로 사장님께서는 다른 곳에 계시다가 오신 분이라 잘 모르셔. 그래서 답답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런데…… 좋은 면도 있어. 본인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계시거든.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도 웬만해서는 들어주려고 노력하시는 분이야.”

“그것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옆집 할아버지 같다고요.”

“하하. 그래. 맞는 표현이네. 옆집 할아버지.”

인자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같은 가족은 아닌 사이.

이게 바로 지금 사장에 대한 평가였다.

신성증권의 사장 자리에 앉아있지만, 권한도 많지가 않고 있는 권한도 잘 쓰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게 말해서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이루어지는 것은 많지가 않은 사람이었다.

본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사람.

딱 이 정도가 지금 사장에 대한 평가였다.

하지만 이런 면이 좋은 점도 있었다.

어쨌든 본사와 이야기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하려 했다.

본사에 다이렉트로 이야기를 넣을 수 있는 사장.

지금 한진영에게 신성증권의 사장은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은 매우 좋은 능력을 숨겨놓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럼 가세나. 사장님께서 기다리시겠어.”

김정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진영도 뒤를 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직은 어둠이 내려앉아 출근한 직원이 많지 않은 사무실을 지나 신성증권의 사장이 있는 곳으로 함께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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