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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76화 (76/650)

76화 없는 시간을 만들면 해결된다

김석현은 한진영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떻게 당긴다는 말입니까? 제가 몇 번이나 두성병원에 가서 빈 게 아닙니다. 담당 의사에게도 제발 우리 아이의 순번을 당길 수 없냐고 애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는데…….”

한진영은 불안에 떠는 김석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믿고 싶지만 아직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의 김석현이었다.

“두성병원에서 이야기하길 우리 아이를 앞 순번에 넣으면 다른 아이를 치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성병원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도 다른 아이도 다 똑같은 환자라고…… 특혜는 줄 수 없다고 했는데…….”

“특혜를 바라니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없는 시간을 쪼개서 시간을 만들면 됩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바라는 듯한 김석현이었다.

이미 마음은 흔들리는 듯했다.

한진영의 설명이 타당하기만 하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한진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가만히 김석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술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의사 아닙니까? 의사가 시간을 낼 수 있게 만들면 됩니다.”

“의사가 시간을?”

“두 달 뒤에 제주도에서 진행하는 심포지엄이 있다고 하더군요. 두성병원에서 주최하는 것으로 국내 및 해외의 유명 의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심포지엄이라고 합니다.”

꿀꺽.

김석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불신에 가까웠던 한진영의 말들이 이제는 점점 믿을 만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도 김석현의 변하는 눈빛을 느꼈다.

그런 김석현을 향해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한 채 이야기했다.

“그걸 서울에서 진행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시간을 하루 정도 여유를 가지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김 대리님의 아이를 수술할 수 있다면 다른 아이들의 순번을 뺏는 것이 아니겠지요.”

“그걸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이미 정해진 장소를 어떻게 바꾼단 말입니까?”

“심포지엄의 주최는 두성병원에서 진행하지만, 후원하는 곳은 다른 곳이지요. 결국, 후원사가 모든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데 그 후원사가 심포지엄의 개최장소를 바꾸자고 이야기하면 바꾸지 않고 고집하지는 못합니다.”

“그럼 후원사가 제 아이를 위해 움직여 준다는 겁니까?”

“네.”

“어딘데…… 어디길래 그렇게 해준다는 겁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김정대도 궁금했는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혹시 프라임리츠인가? 자네하고 관계가 돈독하다고 이야기 들었는데 말이야.”

한진영은 곁에서 궁금한 듯이 쳐다보는 김정대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세계적인 심장 전문의들이 모인 심포지엄입니다. 아직 프라임리츠가 그런 심포지엄의 후원사를 하기에는 부족하지요.

“그럼 누구? 누가 이런 부탁을 들어준다는 건가? 그런 세계적인 심포지엄의 후원사를…….”

김정대의 말에 한진영이 웃으며 고개를 돌려 김석현을 바라봤다.

“후원사는 대한그룹입니다.”

“대한정유의 대한그룹이요?”

김석현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김석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리님과 함께 일을 해서 거래를 하고 싶은 곳이고도 하고요.”

한진영은 김정대로 시선을 돌렸다.

“대한그룹에 요청은 해놨습니다. 김 대리님의 사정과 해결 방법 등을 이야기했지요.”

“그래? 그런데 그들이 그런 요청을 들어준다고 하던가? 아직 그들과 우리는…… 거래를 하기 전인데?”

“대한그룹의 윤 회장님도 아시는 거죠. 이번 거래가 중요하다는 걸 말입니다.”

한진영은 다시 김석현을 바라봤다.

김석현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에라도 무릎이 꺾일 것만 같은 김석현을 바라보며 한진영은 말했다.

“그만큼 대한그룹에서도 기대가 크다는 겁니다. 그들이 일부러 두성병원에 요청을 할 정도로 말입니다. 직접 김 대리님 아이의 수술을 부탁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저와 일을 해볼 생각이 생기셨습니까?”

“하겠습니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아이의 수술만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리님이 결정을 내린 순간 바로 연락을 넣을 테니 말입니다.”

“그럼 바로 이야기해 주십시오. 저는 어떤 조건이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일을 같이하자고요? 좋습니다. 지금부터 일하면 되는 겁니까? 지금부터 하겠습니다. 부문장님. 바로 지금 복직하겠습니다.”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흥분한 김석현을 가만히 안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이는 지킬 수 있습니다.”

“제가 무엇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아이만…… 우리 아이만…….”

한진영은 가만히 김석현을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에 벅차올라 김석현은 한진영에게 기대어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한진영은 회사에 일주일간의 휴가를 요청했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휴가 계획서를 받아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팀이 꾸려지지도 않았는데 휴가는 왜? 하루 이틀도 아니라 일주일이나 무슨 일로 간다는 거야? 게다가 김준하까지 같이 휴가를 낸 게 무슨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그리스에 잠시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리스?”

김정대는 한진영의 휴가 계획서를 들고 가만히 한진영을 바라봤다.

갑자기 지금 그리스를 가겠다는 한진영이 이상하게 보이는 듯했다.

“아시다시피 조만간 그리스 문제가 터질 겁니다. 다만 조금 더 확실히 하고자 그리스 상황이 어떤지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휴가를 냈습니다.”

“이런…….”

김정대는 휴가 계획서를 잠시 내려뜨리고 감탄했다.

“자네는 참…….”

감동에 찬 표정을 한 김정대는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 한진영에게 물었다.

“돈은? 경비는 어떻게 하려고?”

“휴가니 당연히 제 돈으로 지불해야지요.”

“그건 휴가가 아니지…….”

김정대는 잠시 휴가 계획서를 들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휴가 계획서를 찢어버리며 말했다.

“출장으로 해. 그리고 많은 돈은 아니지만, 출장비도 지급할게. 이런 일이 있으면 진작에 이야기했어야지. 비행기표에 숙박비까지 어떻게 개인 돈으로 낼 생각을 했나?”

“부문장님.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아니야. 비행기표하고 숙박비는 내가 내주지 못하더라도 가서 쓰는 돈은 내줘야지. 퇴근하기 전에 김 비서에게 이야기해서 내 카드 가지고 다녀와. 그리스는 개인적으로 놀러 가는 게 아니지 않나? 하여튼 자네는…….”

김정대는 끓어오르는 감동에 참지 못하고 한진영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다른 놈들은 회삿돈 빼먹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데 자네는…… 내가 미안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이번에 일이 잘 진행되면 무조건 자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사장님에게 직접 보고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

한진영은 김정대의 말에 가볍게 대답하고 김정대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사실 그리스에 가는 모든 경비는 프라임리츠에서 제공해주기로 약속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저 한진영은 이번 일이 벌어지는 그리스에 가서 직접 두 눈으로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가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회사에 휴가를 낸 한진영이었다.

회사 일을 하러 간다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대는 오해했고 가서 쓰는 돈만큼은 자기 돈으로 쓰라고 카드까지 내어줬다.

이번 일에 대한 한진영의 노력에 감동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김정대의 카드를 들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가볍게 꾸린 짐을 가지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이. 여기.”

한진영은 자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이성우를 보고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런 한진영과는 반대로 이성우는 반가운 표정으로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이제 왔어?”

한진영은 이성우의 인사에 결국 눈을 뜨고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야. 이건 좀 과하잖아. 아무리 놀러 간다고 했지만…….”

화려한 하와이안 티셔츠에 커다란 모자 그리고 쫙 달라붙은 바지가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일찍 오셨네요.”

김준하도 막 도착했는지 한진영과 이성우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인사했다.

한진영은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한진영을 어지럽게 만드는 김준하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어디 이사하냐?”

이성우도 김준하의 모습에 어이없어했다.

캐리어 3개를 끌고 온 김준하는 손에도 가득 짐을 들고 있었다.

“처음 해외여행 가는 거라 그래요.”

“누가 보면 전쟁 난 줄 알겠다.”

한진영은 이런 친구들을 데리고 가야 하는 게 맞느냐는 생각을 하며 먼저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프라임리츠는 한진영을 위해 그리스로 가는 항공편과 숙박 장소 등을 모두 최상급으로 마련했다.

“키야~. 일등석.”

이성우는 비행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좌석을 쓸어내리며 즐거워했다.

“일등석이면 경유하는 것도 할만할 거 같아.”

아테네까지 직항노선이 없는 상황에서 두바이를 경유해야 아테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데만 대략 하루의 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노선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일등석 좌석을 보고 나서는 그런 걱정이 없어진 이성우였다.

“프라임리츠에서 신경 많이 쓴 거 같다. 난 끽해봐야 비즈니스석 정도를 준비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셋 모두 일등석이라니…… 올 때도 일등석 맞지?”

“맞아. 맞으니까 창피하게 그러지 말고 이제 좀 앉지 그러냐?”

스튜어디스들이 짐을 정리해주기 위해 곁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우는 앉을 생각이 없는지 계속 건너편에 서 있는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두바이에서 얼마나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건 옆에 스튜어디스분에게 물어보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이렇게 너하고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쟤 뭐하냐?”

이성우가 감상에 젖은 얼굴로 이야기를 하다 말고 김준하가 있는 쪽을 손가락질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손가락을 따라 뒷자리에 자리한 김준하를 돌아봤다.

김준하는 자리에 놓여있는 잡지부터 시작해서 미리 준비해놓은 음료들을 쓸어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야야.”

이성우는 급히 김준하에게 달려와 뒤통수를 때렸다.

“아야! 왜 그러세요.”

“너 인마. 뭐 하는 거야?”

“이거 혹시 몰라서 가방에 넣어놓으려고요. 나중에 목마르면 이거 먹으려고요.”

“달라고 하면 또 주지. 너 왜 그러냐? 창피하게. 내가 빈 캐리어 가지고 왔을 때부터 알아봤다. 어이가 없어서…….”

처음 만났을 때 어디 도망가는 사람처럼 캐리어 세 개를 끌고 왔던 김준하가 이상해 보였던 이성우였다.

그러나 짐을 부치는 자리에서 그 캐리어들이 모두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성우는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캐리어의 용도를 확인하고 기겁했다.

김준하는 여행 도중 얻는 것들을 다 캐리어에 싸서 가지고 오기 위해 빈 캐리어를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너 설마 가지고 오겠다는 것이…… 이런 것들 싸서 오려고 그런 거 아니지?”

“이거 다 비용에 포함된 거 아니에요? 그럼 가지고 와야죠. 아깝게…….”

“진영아. 얘 왜 데려온 거냐?”

한진영은 비행기에 탑승하고 10분이 지났건만, 자리에 앉지도 않고 투덕거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창피한 듯이 눈을 가렸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슬라이딩도어를 닫고 담요를 뒤집어써 버렸다.

그래도 일등석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허사였다.

비행기가 떠서 벨트를 풀 수 있게 되자마자 이성우와 김준하는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모였다.

“이럴 거면 왜 일등석을 탄 거야?”

“혼자는 심심해.”

“저는 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성우는 손을 들고 스튜어디스를 불렀다.

“여기 라면 세 개요.”

“라면도 해줘요?”

“야. 모르냐? 비행기에서 먹는 라면이 장난이 아니야. 먹어봐.”

한진영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이성우를 바라보고 말했다.

“라면을 왜 모여서 먹어? 네 자리에서 먹어.”

“라면은 같이 모여 먹는 게 제맛이지.”

“그건 맞는 말이에요. 라면은 같이 먹는 게 맛있어요.”

김준하는 이성우의 말에 맞장구치고 가지고 갈 게 뭐가 없는지 눈으로 한진영 자리를 스캔하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모든 걸 포기했다.

“알아서들 해라.”

널찍하게 누워서 가라고 만든 일등석에 옹기종기 세 명이 모이니 자리가 비좁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성우와 김준하는 떠날 생각이 없는지 라면을 먹고 나서도 한참 동안을 그렇게 한진영의 자리에서 놀다가 떠났다.

두바이에서 6시간의 대기 후에 겨우 아테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세 사람은 22시간이 넘는 시간 끝에 겨우 아테네에 도착하게 됐다.

한밤이 되어 출발해서 다음 날 오후가 돼서야 도착한 아테네는 서울과 달리 포근한 날씨를 보여줬다.

아무리 일등석을 타고 왔다고 하더라도 경유까지 한 22시간이 넘는 여행은 이성우와 김준하의 기운을 빼게 했다.

힘겹게 게이트에서 짐을 끌고 나오는 그들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호텔에 오고 나서 바뀌었다.

“와~”

“와~ 정말 좋다.”

창문 너머로 아크로폴리스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품고 있는 스위트룸은 감탄이 나오게 했다.

“그럼 즐겁게 즐기시기 바랍니다.”

인사를 하고 잠시 제자리에 서 있는 호텔 직원을 보고 이성우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갑에서 100유로짜리 지폐를 꺼내 내밀었다.

그러자 직원은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객실을 나섰다.

방을 둘러보며 감탄을 내뱉던 김준하는 그런 이성우의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100유로를 줘요?”

“너는…… 이 정도 방에서 지내면 거기에 맞게 행동해야지.”

“그럼 짐은 제가 들 테니까 저한테도 100유로 줘요.”

“너는 호텔 직원이 아니잖아.”

“제가 호텔 직원 할게요.”

“야. 내가 진영이한테 들으니까 너 카드론이며 제2금융권에 제3금융권까지 수 억을 땡겨 한 방에 주식에 꼬라박았다며? 근데 왜 이래? 네 돈 쓰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돈 쓰겠다는데…….”

“그 이야기는 지금 왜 하세요?”

한진영은 호텔에 도착하자 기운이 솟아나는 두 사람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머물 곳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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