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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61화 (61/650)

61화 너의 매매를 내가 도와주겠다

김준하와 함께 점심을 먹는 일이 일주일이 지났을 때쯤 한진영이 아무리 말해도 김준하는 자리를 떠나지 않게 됐다.

“맛있는 밥을 먹었으니 우리 차라도 한잔할까?”

김준하는 말을 편하게 하는 한진영을 돌아봤다.

날카로운 눈을 뜬 게 반말을 하는 게 싫다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어차피 너나 나나 동기 아니냐? 같은 동기끼리 존댓말 쓰는 것도 우습고…… 편하게 지내자 편하게…….”

어깨를 둘러오는 한진영의 손을 김준하가 털어내고는 엘리베이터에 먼저 몸을 실었다.

“아이고 사나워라.”

한진영은 웃으며 김준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에 타고나서도 한진영은 끊임없이 김준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너는 어디 사냐? 괜찮으면 퇴근할 때 내가 태워줄까?”

“마포에 산다면서 태워주기는 어딜 태워준다는 거예요? 갔다가 다시 오게요?”

“하하. 지금 말에는 반응했네? 그래서 어디 사는데?”

한진영이 웃으며 김준하에게 다시 말을 걸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뭐야?”

한진영은 자기에게 쏠리는 시선에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시선은 김준하에게는 치명적인 광선이라도 되는지 김준하는 급히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도망쳤다.

“야야.”

한진영이 김준하를 불렀을 때 조수아가 한진영에게 달려왔다.

“두바이 채권 누구에게 팔았어요?”

“그건 왜요?”

“대박이에요. 두바이 채권 산 사람 대박 났어요.”

한진영은 김준하의 뒷모습을 바라본 채 대답했다.

“채권단들이 추가 대출을 승인했대요?”

“어? 알고 있었어요?”

“알았으니까 팔았죠. 모르는 상태에서 팔면 사기를 치겠다고 나서는 것밖에 안 되는 거니까요. 에이. 벌써 가버렸네.”

한진영은 발소리에 날아가 버린 새처럼 금세 사라져버린 김준하를 보고 발을 굴렀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다들 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거예요? 뭐 대단한 일이라고…….”

“지금 이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요?”

“대단한 일은 아니죠. 채권이 살아난다고 우리에게 좋은 일 있어요? 없잖아요. 이미 우리 손에서 떠난 거 가지고 뭐 대단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리로 돌아간 한진영이었다.

그러나 이런 한진영과 달리 직원들은 한진영과 다른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한진영에게 다가와 두바이에 관한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알고 팔았다고?”

“알고 팔건 모르고 팔건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알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뭐가 어떻게 달라진단 말입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팔 수도 있었어.”

“누구에게요?”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나 기업에…… 그들에게 넘길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래야 나중에도 힘든 일이 있으면 우리를 도와줄 테니까.”

성현수까지 와서 한마디를 던졌지만, 한진영은 코웃음을 쳤다.

“힘들 때 도와줘야 함께하는 사이지 좋은 일만 쏙쏙 빼먹는 사람과 뭐 하러 함께합니까? 나중에 도와줄지도 모른다고요? 팀장님께서는 혹시 회사에 나가시게 되면 장사를 하거나 사업하지 마세요. 딱 사기당하기 좋으니까요.”

“뭐라고?”

한진영의 말에 성현수가 화를 내려 하자 한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한진영의 모습에 성현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혹시라도 자기에게 덤벼들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현수의 생각과 달리 한진영은 고개를 숙였다.

“왜?”

성현수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한진영을 바라보고 뭐라 말하려 할 때, 자기의 어깨를 누군가가 잡아 오는 것을 느꼈다.

“뭐야?”

성현수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김정대가 서 있었다.

김정대는 성현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진영이 말이 맞아. 우리가 힘들 때 도와줘야 친구지. 좋은 일만 받아먹으려 하는 사람에게 굳이 왜 우리가 나서서 호구가 되려고 하나?”

“부문장님.”

“진영이의 판단이 너무 좋았어. 아마 채권을 매수한 쪽에서는 우리에 대한 신뢰가 하늘을 찌르게 올라갔을 거야. 그리고 채권 매입을 권유했던 사람들도 다음에는 우리 말에 한 번은 더 귀를 기울여줄 테고…… 이거 뭐 빨리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을 지경이야. 하하하.”

김정대는 기분이 매우 좋았는지 큰 소리로 웃으며 한진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는 했지만 오자마자 이렇게 큰 건을 터트릴 줄 몰랐어. 회사 내부에서 지점 영업 1등 직원을 왜 데리고 가냐고 말들이 많았는데, 아마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사람들 입이 싹 다물어지고 말았을 거야. 하하하”

김정대는 한진영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이제 바빠질 거야. 생각도 못 한 일이 벌어졌으니 외환시장도 요동칠 테고, 채권 가격도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흔들릴 테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김정대의 말에 우렁찬 대답이 들렸다.

김정대는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손을 들어 휘두른 후 한진영의 귀에 속삭였다.

“솔직히 긴가민가했는데 덕분에 큰 도움 됐다. 뭐 필요한 거 있어?”

한진영의 모라토리엄이 없다는 말에 배팅을 자제한 FICC였다.

다른 증권사의 외환 파트와는 달리 신성증권에서는 원달러의 매수 포지션을 과감하게 잡지 않았다.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인한 원달러의 상승은 두바이의 모라토리엄 선언 때문이었고, 이런 모습은 한진영의 말대로 된다면 금세 가라앉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채권 쪽도 마찬가지였다.

채권 매도자들에게 지금의 일은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며 진정시켰다.

그래도 매도하겠다며 고집을 피운 사람 들 것만 모아서 한진영에게 넘겼던 것이었다.

신성증권의 말을 듣고 채권 매도를 결정하지 않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며, 그래도 고집을 부린 사람들은 신성증권의 말을 듣지 않은 자기를 원망했다.

그리고 양쪽 모두 앞으로 신성증권의 말에는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게 될 것이 분명했다.

두바이 모라토리엄 사태는 이제 막 새롭게 사업부를 정리한 신성증권의 FICC에 큰 기회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미리 알려준 한진영에게 김정대는 고마움을 느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하게. 내가 자네 부탁이라면 다 들어줄 테니까.”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FICC 사업부의 직원들은 살갑게 구는 김정대의 모습에 놀랐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김정대와 사이가 돈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깊은 관계에 한진영이 다르게 보였다.

“돈이나 잘 챙겨주세요.”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돈은 섭섭하지 않게 정리해서 줄 테니까.”

“그거면 됐습니다. 어차피 돈 벌려고 일하는 거니까요.”

“하하하. 좋아. 좋아. 그런 마음가짐 참 마음에 들어. 열심히 일해서 그에 걸맞은 보답을 받는 건 모든 직장인이 원하는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도 그런 마음에 맞는 합당한 행동을 보여줘야지.”

김정대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모두 들으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누구도 정리하지 못한 채권을 정리했고, 우리 FICC 사업부에 큰 도움을 준 한진영 사원에게 특별 상여금 천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으니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사람들은 김정대의 말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제 전출 온 지 얼마 안 된 직원이 특별 상여금을 천만 원씩 받아 가는 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FICC 사업부는 이렇게 특별 상여금을 수여하는 일이 종종 있을 테니, 모든 직원이 열심히 일해야 해. 신생 사업부의 특별함이 사라지기 전에 모두 한몫 챙겨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니까 다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내 말 명심해.”

김정대는 지켜보고 있는 직원들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는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절 동기부여의 재료로 삼다니. 천만 원으로 너무 많은 것을 얻어가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겸사겸사지. 하하하.”

김정대는 큰 소리로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김정대가 자리를 떠난 뒤 직원들의 눈빛은 달라졌다.

특별 상여금을 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

한진영에게 특별 상여금을 수여하는 날도 김정대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일부러 한진영이 있는 자리까지 찾아와 돈이 들어왔냐고 다른 직원들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물어봤다.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진짜 천만 원으로 너무 뽕 뽑으려는 거 아니십니까?”

“천만 원이면 이 정도 뽕은 뽑아야지. 자네에게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일 테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이니까.”

“저에게도 큰돈입니다.”

“그럼 뽕 뽑는 것도 아니구먼. 내가 제대로 생색냈네.”

김정대는 웃으며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리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의 뒷모습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한진영과 달리 다른 직원들은 김정대의 등장에 제대로 반응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로 직원들은 다음은 자기라는 식의 열정을 보인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열정 속에서도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곳을 가만히 쳐다봤다.

“생각보다 참 어려운 친구야. 그래도 이제 슬슬 이 정도면 된 것 같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야지.”

“뭐가요?”

조수아가 한진영의 혼잣말에 반응했다.

그녀는 처음 한진영이 자기 옆에 앉았을 때 자기가 운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일도 바빠 죽겠는데 OJT까지 맡아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 한가득이었다.

게다가 OJT를 받는 직원의 반응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열의도 없었으며 성의도 없었다.

조수아는 왜 자기 옆자리를 한진영이 선택했다는 것에 한동안 짜증이 솟구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한진영이 옆자리에 앉았다는 사실만으로 커다란 도움을 여러 번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이 직접 알려준 적은 없지만 혼잣말과 같이 그냥 던지는 말에 해답을 찾아 몇 번이나 큰 도움을 받았던 조수아였다.

그래서 조수아는 한진영의 옆자리에 앉아 귀를 열어놓고 있었으며 지금도 한진영의 혼잣말과 같은 말에 반응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자기 말에 반응하는 조수아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닙니다.”

“뭐가요? 누가 어려운 친구인데요?”

한진영은 조수아의 질문에 미간을 찌푸리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수아는 한진영이 조금 전까지 바라보던 곳을 쳐다보고 말했다.

“저쪽은 파생팀인데…… 파생팀의 누가 한진영 씨를 불편하게 만들어요?”

한진영은 조수아를 말없이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돌려 김준하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조수아는 그런 한진영을 잡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한진영이 누구에게 가는지를 유심히 바라봤다.

김준하는 자리에 앉아 멍한 얼굴로 천장 무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김준하의 눈에 한진영이 들어오자 김준하는 급히 고개를 숙여 앞에 놓인 서류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오니까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어?”

김준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진영이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게 막았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의 곁에 빈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김준하는 오히려 의자까지 가지고 와 앉는 한진영을 보고 기분이 나쁜 듯이 고개를 돌렸다.

“자꾸 왜 이래요?”

“뭐가? 친해지려고 하는 게 그렇게도 불편해?”

“불편해요. 그러니까 제발 다른 곳에 좀 가요.”

“왜 불편하지?”

“사람들이…….”

김준하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폈다.

한진영도 김준하를 따라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파생팀에 찾아간 한진영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진영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김준하도 유심히 살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한진영이 의자까지 가지고 와 김준하의 곁에 앉는 것인지 알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의 시선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김준하를 향해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거야?”

“쫌~ 그냥 좀 가시면 안 돼요? 저는 당신하고 친해질 생각이 없다고요.”

“그렇지 않을걸? 내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절대 그럴 일 없어요. 저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생각이 없다고요.”

“절대라는 말로 호언장담하지 마. 사람 일이란 건 모르는 거니까.”

“절대.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를 보고 살며시 미소 지었다.

‘이 정도면 슬슬 친해졌고…….’

가시가 돋친 말투였지만 어쨌든 처음과 달리 계속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한진영은 이 정도면 충분히 대화를 나눌 만큼 친해졌다고 생각하여 본격적으로 김준하를 끌어들이기 위한 말들을 꺼냈다.

“오늘 지수가 꽤 많이 올랐어. 두바이 사태가 점차 정리되는 분위기야. 그 덕분에 건설주들도 꽤 많이 올랐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준하의 머리가 한진영의 말에 반응을 보였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지수는 오르는데 네가 투자한 주식은 시원치 않지? 정리했던 주식은 올라서 속을 더 쓰리게 만들고…… 내가 도와줄게.”

한진영의 말에 숙였던 김준하의 고개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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