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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8화 (48/650)

48화 공범이 될 수는 없다

이성우 곁에 다가온 한진영은 코를 손으로 막았다.

“뭔 냄새냐?”

이성우는 여전히 정신이 몽롱한 모습으로 찾아온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뭔 냄새기는…… 술 냄새지. 네가 하라는 대로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지. 아우. 정신없어. 아침에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겠다.”

“잘했냐?”

“그럼 잘했지. 봐봐.”

이성우가 턱짓으로 박기수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박기수는 이성우보다 더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어떻게 씻고 출근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반쯤은 나가 있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박기수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잘 집에는 들어갔다 나왔나 보다. 저 상태로 출근한 게 용한데?”

“집에 들어가기는…….”

이성우가 한진영의 말에 머리를 누르던 손을 멈추고 대답했다.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성우를 보고 의아한 듯이 물었다.

“집에 안 들어갔어?”

“어떻게 들어갔겠어.”

“그럼?”

이성우는 진저리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호텔 데려가서 재웠지. 그리고 씻기고 나하고 같이 출근했어. 어제 그대로 집에 보냈으면 오늘 출근 못 했을 거야.”

“네가…… 씻겼어?”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웃던 것을 멈추고 한진영을 쳐다봤다.

그리고 점차 괴상해지는 한진영의 얼굴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호텔 사우나에 던져놨다고! 아니. 대체 날 뭘로 보고 그딴 생각을…….”

“하하하. 아니다. 아니야. 그냥 장난친 거야.”

화를 내는 이성우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다시 박기수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든 잘한 거지?”

“잘했지. 그런데 자기가 너보다 더 큰 고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

“그렇게 말했다고?”

“그래. 그래서 출근 뒤에 우리에게 그 고객들을 넘겨준다고 했어. 어휴~ 머리야.”

생각대로 박기수가 움직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조금 뒤에 가서 그 고객을 잘 전달받아라.”

“그런데 진짜 고객이 있기는 해? 아무리 봐도 허풍 같은데…….”

“고객이 있기는 하지.”

“진짜 있다고?”

“있기는 한데…… 방법이 잘못됐어.”

“방법?”

“그래. 사고를 치려고 할 거야. 그걸 막는 게 네 임무니까 잊지 말고 박 차장 앞에서 들키지 않게 표정 관리 잘해. 어떤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말고…….”

이성우는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박기수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들키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저 양반 나한테 홀딱 빠졌어. 봐봐.”

이성우는 휴대폰을 한진영 앞에 들어 보였다.

휴대폰에는 오늘 또 갈 수 있겠냐는 뜻의 문자가 박기수에게서 와 있었다.

“어제는 내가 냈으니 오늘은 최 과장님이 내면 어떠냐고 그런다. 그다음에는 자기가 내겠다는데…… 이거 전형적인 사기꾼 마인드 아니냐?”

“흐흐흐. 그런데 최 과장님은? 어디 있어?”

“최 과장님. 저기 계신다.”

이성우는 사무실 끝 벽 자리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전화를 받는 최석영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딱 전화하는 폼이 형수에게 미안하다고 싹싹 비는 것 같아. 외박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러게 과장님은 적당한 시점 봐서 들어가라니까. 그렇게 안 들어가더니…….”

이성우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부인한테 꽉 잡혀 사는 모습이 총각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듯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따 과장님하고 잘해야 한다. 절대 놀라는 빛을 보이면 안 돼. 박 차장의 계획이 기발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 잊지 마.”

“도대체 뭔데 그래? 너는 알고 있어?”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너한테 미리 이야기하는 거지. 그리고 난 그것 때문에 지점장님한테 가볼게. 잊으면 안 된다.”

몇 차례나 주의를 주는 한진영의 모습에 이성우는 알겠다는 뜻을 몇 번이나 보였다.

한진영은 이 정도면 자기의 말을 잘 알아들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최준호를 찾아갔다.

“어쩐 일이야?”

지점장실에 한가롭게 앉아있던 최준호는 찾아온 한진영을 앉은 채로 맞았다.

“중요한 일이 있어 이렇게 왔습니다.”

“중요한 일?”

직원들의 약정 기준을 바꾸는 큰일을 마무리하여 오랜만에 편안하게 지내던 최준호는 중요한 일이라는 한진영의 말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무슨 일인데 자네가 나한테까지 찾아와서 중요한 일이라고 그러는 거야?”

최준호는 한진영의 얼굴을 살핀 뒤 앞에 의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선 앉아서 이야기해 봐. 뭔데?”

한진영이 중요하다고 하면 자그마한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 최준호는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한진영의 말을 기다렸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를 향해 자리에 앉은 채 이야기했다.

“직원들의 약정 기준이 바뀌며 사고가 터질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약정 기준이 바뀌어서 사고가 터진다고?”

“네. 정확히는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불법을 저지르는 직원이 나올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불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돈을 만지는 직업이기에 법에는 상당히 민감했다.

자그마한 일에도 커다란 철퇴를 맞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지금 한진영이 경고하고 있었다.

최준호는 온몸이 긴장으로 바짝 조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진영은 조금 전과는 달리 잔뜩 굳어있는 최준호를 향해 말했다.

“기준을 넘지 못하는 직원 중의 일부가 오래된 고객의 계좌를 건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는 사고가 멈춘 듯이 갑자기 멍한 얼굴을 보였다.

그렇게 잠깐 온 세상이 멈추는 것만 같은 경험을 한 최준호는 급히 정신을 차렸다.

“정확하게 말해봐. 뭘 어떻게 한다고?”

“일임매매를 신청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묵혀놓은 계좌를 건드리는 직원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일임매매를 신청하지 않은 계좌를 어떻게 건드려?”

“그러니까 불법이지요.”

“미친…… 그게 뭔 소리야?”

최준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진영을 향해 소리쳤다.

한진영에게 화가 나 소리친 것이 아니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난다는 말에 화가 나 소리친 것이었다.

한진영도 최준호가 어떤 의미에서 소리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준호의 호통에도 기분 나빠하는 기색 하나 없이 계속 이야기할 수 있었다.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기준을 어떻게든 넘기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몰렸다고 생각하여 그러는 것 같으니 빨리 본사에 보고하여 각 지점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말도록 막아야 합니다.”

“각 지점이라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약정 기준이 바뀐 게 우리만이 아닐 테니까요.”

한진영의 말대로 본사는 물론이고 전국 모든 지점에 일괄적으로 적용이 된 기준이었다.

바뀐 기준으로 힘이 드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최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것들을 하나하나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러니까. 일임매매를 요청하지도 않은 계좌를 건드리는 직원이 생긴다는 이야기지?”

“일임매매를 요청하지 않은 계좌만이 아닙니다. 거액을 걸어 넣고 아무런 신경 쓰지 않는 계좌도 표적이 될 겁니다.”

“거액을 걸어놓고 신경을 쓰지 않는 계좌라니?”

최준호가 놀란 듯이 고개를 들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우리 지점에도 그런 계좌가 몇 개 있지 않습니까?”

“있어. 없다고 하지 않아. 그런데 그런 계좌는…….”

“지점에 오래 다닌 사람만 알고 있겠죠.”

“그래. 이미 오래전에 가입한 계좌라 누가 어떤 계좌인지 모르고…….”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을 하다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얼굴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이곳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이…… 사고를 친다는 거야?”

“대형 사고는 그런 사람들이 치지 않습니까? 저희같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사고를 치고 싶어도 뭐가 뭔지 잘 몰라 사고 칠 게 없지요. 반면 오래된 사람들은 그만큼 아는 것도 많아 사고를 치기 쉬우니까요.”

“누가…… 누가 사고를 친다는 거야? 알고 있는 게 있어?”

한진영은 최준호의 이런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박 차장이 계좌를 건드리려고 합니다.”

“증거는 있고?”

“안 그래도 지금 최 과장과 성우를 박 차장에게 붙였습니다. 제가 다가가면 경계할 것 같아서요.”

털썩.

최준호는 기운이 빠진 표정으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한진영의 말대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고객이 열 받아 금감원에 신고하고 기사라도 나간다면 회사 뿌리가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화살은 온전히 사고를 친 지점의 지점장에게 오는 것이기에 최준호의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 녀석을…….”

최준호는 당장 나가려는 듯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를 향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시만요.”

“왜 막아? 나에게 바로 움직이라고 이야기한 거 아냐?”

“여기서 당장 나가 박 차장에게 그렇게 하려고 했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발뺌할 겁니다.”

“그럼 계좌가 털리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라고? 그거 동의 없이 건드리면 범죄야. 범죄. 그냥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미리 말씀드리는 것 아닙니까?”

최준호는 당장에라도 나갈 것 같이 의자의 팔걸이를 붙잡았던 손을 풀었다.

그리고 책상에 몸을 바짝 붙여 맞은 편에 앉아 있는 한진영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좋은 생각이 있어?”

“제가 최 과장과 성우를 붙였으니 어떤 계좌를 건드리는지 알아 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계좌 주인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습니다.”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마른침을 넘겼다.

듣는 것만으로 아찔한 느낌이 든 최준호였다.

“그리고 지점장님께서는 미리 계좌 주인에게 통보하세요.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본사와 상의를 해보시고요. 그 부분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움직이기에는 부담이 가는 일이니까요.”

최준호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계좌 주인에게 미리 통보하라니? 당신 계좌를 우리 직원이 당신 몰래 만지려고 한다는 것을 미리 알리라고?”

“네. 미리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범죄를 저지르는 현장을 잡으려 한다는 게 되니까요. 그게 아니라 사후에 통보하면 같은 공범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책임을 피할 수가 없어요.”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는 기울였던 몸을 의자 등받이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정신이 나간 듯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봤다.

“그래. 맞아. 자네 말대로 일이 벌어진 뒤에 계좌 주인에게 통보하면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된다면…… 진짜로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어.”

“그러니 지점장님께서는 사고가 벌어지기 전에 먼저 조치부터 취하셔야 합니다.”

“맞아. 그래야 해. 그렇게 해야 해.”

한진영의 말에 마음을 다잡은 최준호는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한진영에게로 다가가 한진영의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고마워. 내가 이 은혜 잊지 않을게.”

“지점장님. 이제 일이 시작되려 하는 겁니다. 벌써 감사 인사를 하기에는 이릅니다. 일이 다 마무리 지어지고 난 뒤에 그때 다시 인사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래. 맞아. 나는 자네가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말만 해. 그럼 내가 지금 뭐부터 해야 하는 거야?”

한진영은 차분히 최준호에게 앞으로 할 일을 설명했다.

그렇게 약 한 시간여 동안 최준호와 앞으로의 일을 정리한 한진영은 지점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지점장실을 나온 한진영은 슬쩍 최석영과 이성우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자기가 지점장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 박기수와의 일을 잘 진행했는지 궁금한 마음에서 둘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한진영은 자기가 찾아오면 괜한 호들갑을 떨까 봐 조용히 둘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둘은 호들갑을 떨지 않은 채 가만히 자리를 지키기만 했다.

오히려 너무 조용히 있어 한진영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야. 성우야.”

한진영이 이성우를 툭하고 건드렸다.

그러나 이성우는 한진영의 손길에 눈도 돌리지 않았다.

“과장님.”

이번에는 최석영에게 말을 건 한진영이었다.

최석영도 한진영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진영은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에게 담배갑을 내보였다.

“담배나 한 대 태우고 오죠? 성우야. 잠깐 바람이나 쐬자.”

한진영은 이성우와 최석영에게 말을 건네며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서는 박기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 미소를 보고 두 사람이 왜 이러는지 알게 됐다.

‘놀라서 이러는 거구만. 뭘 이까짓 걸 가지고…….’

두 사람이 박기수에게 앞으로 할 일을 이야기 듣고 그대로 몸이 굳어진 거로 생각한 한진영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은 최준호 지점장도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으니 두 사람이 이러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한진영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이미 한 번 경험했던 일이었고, 이보다 더한 일도 많이 경험해봤기에 이 정도쯤은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의 일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게 만들려 한 것이었다.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오자. 과장님. 가요.”

한진영은 일부러 다른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이성우와 최석영을 끌어당겼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박기수가 오히려 더 강하게 두 사람에게 접근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다른 사람과 친한 사람을 뺏어온다는 마음을 박기수도 가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두 사람을 양쪽에 끼고 밖에 나가는 한진영을 향해 박기수가 샘이 가득 담긴 눈빛을 쏘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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