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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5화 (25/650)

25화 알아두면 좋은 친구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김정대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프라임 리츠 이야기를 하러 왔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했어.”

“쓸데없기는요. 모든 게 다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겠지.”

김정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최준호를 돌아보고 말했다.

“프라임 리츠는 시흥지점에서 맡도록 하세요. 그리고 프라임 리츠가 원하는 대로 담당자는 여기 있는 한진영 사원이 맡는 것으로 하고요. 법인계좌를 이용하여 수수료도 법인 수수료로 진행할 겁니다. 그러니 개인 고객 계좌를 운용할 때처럼 하면 안 되는 그 부분만 신경 쓰시고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회전율을 높이는 행위는 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김정대는 충분히 뜻이 전해졌다고 생각하여 다시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0.4%로 이야기했다고?”

“네. 0.4%에 하겠다고 말했고 그쪽에서도 받아들였습니다.”

“좋아. 우리는 0.2%만 먹을 테니 나머지 0.2%는 자네가 먹도록 해.”

“본부장님!”

최준호는 깜짝 놀란 얼굴로 김정대를 향해 소리쳤다.

김정대는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을 예상한 것인지 최준호를 향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원래 우리 법인 수수료율은 0.2%입니다. 회사는 이것만 먹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받아온 사람이 먹을 일이죠. 한진영 씨에게만 특별히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다른 직원들도 한진영 씨와 마찬가지로 0.2% 이상의 수수료를 받아 올 수 있다면 나머지는 그 직원의 몫이 될 겁니다.”

최준호는 김정대가 앞으로 다른 직원들도 같은 혜택을 받게 될 거라는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0.2% 이상의 수수료를 누가 받아올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들에게 적용되는 0.0X% 대의 수수료를 생각한다면 0.2%는 열 배 정도의 높은 수수료율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수수료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을 생각했을 때 수수료율을 올려 받아 오는 일은 이번 경우 외에는 앞으로 없을 것만 같았다.

그것을 회사는 물론이고 김정대가 모르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저 특혜를 좋게 포장하여 한진영에게 내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일에 최준호가 반기를 들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희 직원들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습니다. 본부장님의 큰 결정에 시흥지점의 직원들을 대신하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최준호가 마치 은혜라도 입은 듯이 고개를 숙이자 김정대가 최준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됐습니다. 별것도 아닙니다. 제가 비록 여러분과는 다른 쪽 업무를 보고 있지만, 여러분의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많이 도와주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저도 도울 테니 말입니다.”

“회사를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전 최 지점장님만 믿겠습니다. 하하하.”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린 김정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일을 모두 마쳤다고 생각한 것인지 돌아갈 준비를 하는 김정대였다.

김정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진영과 최준호도 급히 김정대를 따라 일어났다.

김정대는 일어나는 최준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최준호는 허리를 숙인 채 김정대가 내민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김정대는 허리가 반쯤 꺾인 최준호를 내려다보고 웃으며 인사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본부장님. 자주 찾아와주십시오. 본부장님께서 오신다면 언제나 환영이니 말입니다.”

“그러게요. 저도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인사말로 건넨 이야기인데 김정대가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최준호는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들어 김정대를 올려다봤을 때 김정대는 최준호의 손에서 손을 빼 한진영에게 내밀고 있었다.

한진영은 일어나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손만 내밀어 김정대의 손을 잡았다.

김정대는 그런 한진영의 손을 오른손으로 꽉 쥔 채 말했다.

“이봐. 자네. 내 밑에 들어올 생각 없나?”

“홀세일본부로 오라는 말씀이십니까?”

“지금은 좀 그렇고…… 자네 말대로 내가 새롭게 통합되는 사업부를 맡게 된다면 그곳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나 해서 묻는 거야. 어떤가? 이곳보다는 그곳에 가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최준호는 김정대의 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라도 한진영이 김정대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봐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한 최준호의 귀에 한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부장님의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저를 어여삐 봐주셔서 그런 제안을 하신 것 같은데, 저는 아직 시흥지점에서 할 일이 있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점 이해해주십시오.”

“그래? 아쉽구먼. 자네와 할 일이 많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언제가 됐건 함께 일할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때 같이 일하도록 하시지요.”

“하하하. 그래. 자네하고는 함께 일할 날이 조만간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그때 같이 일해보도록 하세. 그리고.”

김정대는 오른손을 놓지 않은 채 자기 쪽으로 한진영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진영의 가슴을 꾹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의 조언 잘 들었네.”

“건방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김정대는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잡은 손을 놓았다.

그리고 손을 흔든 뒤 몸을 돌렸다.

“조만간 또 보세나. 그럼 난 갈 테니 나오지 마. 바쁜데 일들 해야지.”

김정대 본부장은 지점장실을 빠져나갔고 최준호가 급히 김정대를 따라 지점장실을 나가며 떠나는 김정대를 배웅했다.

지점장실에는 한진영만이 홀로 남아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

“너한테 0.2%의 수수료를 먹으라고 했다고? 정말로?”

창밖이 보이는 곳에 자리한 실내 자전거에 올라탄 이성우가 발을 힘겹게 구르며 물었다.

“그래. 나보고 먹으라고 하시더라.”

“와~ 그럼 그게 얼마냐? 20억이라고 했지?”

“어. 20억.”

“20억에 0.2%면 400만 원? 거래 한 번에 400만 원이 떨어지는 거야?”

“왕복이니까 800만 원. 매수할 때 한번, 매도할 때 한번.”

“그렇지? 수수료 왕복이지.”

이성우는 발을 빼 몸을 돌려 앉으며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너 금방 부자 되겠다.”

“이제 시작이지.”

“너 부자 되면 나 잊지 마.”

“이미 부자인 너나 나를 잊지 마.”

“이미…… 부자? 그게 무슨 말인지 나는 모르겠는데?”

“됐다.”

모르는 척 말을 얼버무리려는 이성우를 보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성우를 실내 자전거에서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런데 너는 왜 우리 집에 온 거야? 주말에도 너를 봐야겠냐?”

“주말이니까 온 거지. 나하고 놀러 가자.”

“아니. 내가 너하고 왜 놀러 가? 넌 연애도 안 하냐? 왜 주말에 우리 집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거냐고…….”

한진영은 토요일 아침부터 이성우가 벨을 눌러대는 통에 늦잠도 자지 못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문 앞에 서 있던 이성우는 문을 열어주는 한진영을 지나쳐 자연스럽게 한진영의 집에 들어왔다.

통상 처음 오는 집에 방문할 때는 손에 두루마리 휴지라도 하나 들려 있는 게 정상인데 이성우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오히려 오자마자 자기 집인 것처럼 실내 자전거에 올라타 장난까지 치는 것을 보자 얘가 언제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냐는 생각까지 든 한진영이었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었다.

한진영이 이곳으로 이사를 한 것은 다시 과거로 돌아온 이후에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바꾸며 말했다.

“연애 그거 하러 가자고 내가 온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주말 같은 이런 좋은 날에 이렇게 집에 있어야겠냐? 나하고 나가자.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쇼핑도 하고 저녁때는 근사한 곳 가서 한잔하면서 아가씨도 만나고…… 어때? 좋겠지? 가자.”

한진영은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꺼내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로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었는데…….’

회사 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던 이성우였다.

실적이 그 사람의 인성이 되고 그 사람의 교우관계에 척도가 되는 회사에서 이성우는 가까이해 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한진영이 다가왔다.

실적을 나눠주고 종목 분석을 성의 있는 자세로 경청하는 한진영을 보며 이성우는 급격히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한진영은 이성우의 깐부로 자리매김하게 되어 버렸다.

“빨리 준비해. 얼른 씻고 나가자. 오늘은 내 차로 갈 테니까 너는 그냥 몸만 와.”

“오늘은? 그게 무슨 소리야?”

“어. 다음 주는 네 차로 가자. 그게 좋겠지?”

이성우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과일 바구니에서 한진영에게 묻지도 않고 오렌지를 맨손으로 까먹었다.

‘너무 열었어.’

이성우와 열린 마음으로 친하게 지내기를 바랐던 한진영이었다.

그런데 이쪽에서 문을 살짝 두드렸더니 저쪽은 양 문을 활짝 연 채 버선발로 한진영에게 덤벼들었다.

띵동.

그리고 또 마음의 문을 연 사람 하나가 한진영 집의 벨을 누르고 있었다.

“어? 최 과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냐?”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이성우가 비디오폰을 통해 벨을 누른 사람을 확인했다.

“그러게…… 후우…….”

한진영은 최석영의 등장이 별로 반갑지가 않았다.

주말에 그냥 소파에 누워 쉬고 싶은 그에게 이렇게 사람들이 찾아오는 일은 피곤한 일이 일어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쉬고 있었지?”

“그러고 싶었죠.”

최석영은 한진영의 이상한 대답에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집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한진영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과장님! 어서 오세요.”

“성우 씨가 여긴 웬일이야?”

“진영이하고 놀러 가려고 왔지요. 그런데 과장님께서는 여긴 어쩐 일이세요?”

“나?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이성우의 등장에 최석영은 잠시 대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한진영은 문을 닫고 최석영을 안으로 이끌며 괜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석영은 그런 한진영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집사람이 진영 씨에게 고맙다고 집으로 초대를 해서 말이지. 같이 가서 식사나 하자고 온 건데…… 약속이…….”

“오. 그것도 좋겠다.”

이성우가 한진영에게 다가와 팔을 치며 최석영을 가리켰다.

“이쪽도 재미있겠는데? 과장님. 그렇게 하시죠.”

“아니. 나는 진영 씨에게…….”

“점심 드시러 가시는 거죠? 어디 보자. 제 차에 와인이 있으니까 그거 가지고 가면 되겠어요.”

“차에 와인을 싣고 다닌다고? 아니. 잠깐. 그게 문제가 아니고…… 자네도 가려고?”

“그럼 저는 초대 안 하려고 하신 거예요?”

“그게…….”

최석영은 생각지도 못한 혹이 하나 따라붙은 것에 괜히 찾아왔다는 생각하게 됐다.

최석영에게도 이성우는 탐탁지 않은 존재였다.

한진영의 충고를 듣고 고객을 넘겨주고는 있지만, 그가 보여주는 터무니 없는 성적에 괜한 일로 고객들에게 원망을 듣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를 통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괜히 휘말려 함께 안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존재가 이성우였다.

그런 이성우가 한진영과 함께 있다는 것에 최석영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기…… 진영아. 성우하고 왜 같이 있는 거야?”

“과장님. 저 친구가 좀 번잡스럽기는 한데 알아두면 좋은 친구입니다.”

“알아두면 좋다고?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

“제가 언제 틀린 말 한 적이 있던가요? 그러니 오늘부터 친해지도록 하세요. 분명 과장님도 도움을 많이 받을 겁니다.”

최석영은 탐탁지는 않았지만, 한진영의 말에 알겠노라고 대답했다.

한진영의 말도 있고 이미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초대하지 않을 수 없어 최석영은 어쩔 수 없이 이성우까지 초대하여 집으로 향했다.

***

계획이 없었던 이성우가 방문하자 최석영의 아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성우가 내민 와인에 놀람은 곧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냥 오시지. 이건…… 어머. 샤또 라뚜르잖아요. 여보. 샤또 라뚜르. 샤또 라뚜르야.”

최석영의 아내는 최석영의 팔을 치며 와인을 받아 들고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최석영도 아내의 말에 이성우가 선물한 와인 라벨을 확인했다.

그리고 와인 이름에 정확히 샤또 라뚜르(Chateau Latour)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놀란 얼굴로 이성우를 쳐다봤다.

“이거…… 비싼 거잖아.”

“비싸긴요. 초대를 받아서 왔는데 이 정도 선물은 드려야죠. 게다가 과장님이 누구입니까? 진영이랑 호흡이 제일 잘 맞으시는 분이잖아요. 이 정도 선물은 할 수 있으니 받으세요.”

“그래. 고마워. 그럼 이따가 식사하면서…….”

“에이. 그건 형수님하고 두 분이 오붓이 분위기 잡을 때 드시고 우리끼리 먹을 때는 간단하게 먹어요. 여기 있는 진영이가 술을 먹지 않으니까요.”

“아! 맞다. 그렇지. 진영이는 술을 마시지 않지. 그래. 고마워. 내가 이렇게 비싼 선물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

조금 전까지 집에 데리고 오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던 최석영은 한 병에 150만 원이 넘는 와인을 선물 받고는 단번에 마음을 바꿨다.

이제 최석영에게 이성우는 한진영 다음가는 동료가 된 것이었다.

“들어가자. 어이구. 우리 공주님. 왕자님은 어디 계시려나?”

이성우는 최석영의 집에서도 마치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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