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8화 (18/650)

18화 상황도 사람도 바뀌지 않았다

화면 속의 앵커는 물론이고 TV를 보고 있던 이들 모두 놀라고 말았다.

약세장에 돌입하여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는 와중에 매수를 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석영 과장님. 지금 화면에 보이기는 미래차를 매수하겠다고 나와 있는데 제가 잘못 본 게 아니지요?”

“잘못 나온 게 아닙니다. 저는 익일 9시 정규장이 열리는 대로 바로 미래차를 매수할 생각입니다.”

“지정가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시가에 바로 들어가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지정가 매매를 하다가는 원하는 가격을 찍지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얼마에 시작하건 시가가 형성되는 가격에 매수할 생각입니다.”

“대단합니다.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앵커는 최석영의 단호한 표정과 말투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사람들이 비난하거나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매수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기만 하던 최석영이었다.

그런 그가 한 톨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매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TV 화면을 쳐다보고 최석영의 말을 들은 사람의 믿음이 공고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무실에서 함께 화면을 보던 이들은 일제히 시선을 한진영에게로 돌렸다.

신뢰가 가는 목소리로 매수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최석영이지만,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진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주도주인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은 아직 꺾이지 않았습니다.”

한진영은 자기에게 쏠린 시선을 느꼈는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매수 이유에 대해 대답했다.

최준호 지점장은 그런 한진영의 말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건넸다.

“차화정 모두 꺾였잖아? 미래차의 경우에는 12만 원에서 10만 원 이탈을 걱정하는 수준까지 빠졌고……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해 화학주와 정유주도 별 볼 일 없고…….”

최준호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돌린 한진영은 최준호를 비롯한 자리에 있던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900에서 1400선까지 50%가 넘게 상승했으니 쉬어갈 타이밍이었죠. 그래서 지수를 주도적으로 끌어올린 차화정이 함께 조정을 받은 것이지 상승 모멘텀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수가 돌아나가며 더 탄력적으로 상승할 겁니다.”

마치 해가 지면 밤이 찾아온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와 같은 말을 하는 한진영을 향해 이유를 물을 수가 없었다.

그저 TV에서 똑같은 말을 하는 최석영과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

“고객님. 지금은 다른 거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눈감고 자동차, 화학, 정유 이것만 들고 가시면 됩니다.”

“고객님. 불안하시죠? 그럴 땐 정유주입니다. 유가의 흐름에 따라 등락이 있기는 하지만 든든한 배당을 하고 있어서 큰 하락은 피할 테니 믿고 타셔도 됩니다.”

“고객님. 지금 자동차 판매량을 보면 관련주를 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무조건 자동차. 먼 길을 갈 때는 자동차. 잊지 마세요.”

“고객님께서 입고 있는 옷과 신발 그리고 쓰시는 핸드폰에 들어가는 배터리 모두 화학 회사의 원료를 이용하여 만드는 겁니다. 옷걸이에 옷을 걸어놓듯이 화학주를 사서 계좌에 걸어놓으십시오. 그럼 이번 겨울 든든히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시흥지점을 찾은 고객들은 어떤 창구를 찾던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직원들은 찾아오는 고객은 물론이고 기존의 고객들에게도 전화를 돌려 차화정 주식을 추천했다.

이런 움직임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의심의 눈초리로 시장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직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쉽사리 매수를 권유하다가는 있던 고객도 쓸려나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였다.

그러나 오늘 가격이 제일 싸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지수와 함께 차화정이 살아나는 모습에 사람들은 한진영의 말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기 커피.”

한진영이 이성우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이성우는 한진영이 내민 커피를 받아 들고 고개를 들었다.

“진영아.”

“왜?”

“이게 맞아?”

“뭐가?”

“난 아무리 봐도 아닌 거 같아서…….”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곁에 의자를 가지고 와 이성우 앞에 앉은 뒤 말했다.

“뭐가 아닌 거 같은데?”

한진영의 진지한 물음에 이성우가 주변을 살핀 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매수할 때가 아닌 거 같아. 특히, 차화정의 경우에는 한번 해먹은 업종인데 다시 오른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가 않아.”

“그래?”

“내 말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아. 난 그런 의견 듣는 거 좋아하니까 이야기해봐. 네 생각에는 어떤데?”

이성우는 진지하게 앉아 의견을 들을 자세를 잡은 한진영을 보고 용기 내 이야기 했다.

“경기를 타는 화학의 경우는 물론이고 유가에 영향을 받는 정유주는 지금 잡으면 안 되는 종목 같아. 아, 물론 지금 바닥을 찍고 다시 오르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더 깊은 하락을 위한 일시적 반등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그래?”

“그렇다니까. 이건 정말 아니야.”

한진영만큼이나 이성우도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자동차는 특히 아닌 거 같아.”

“특히 아닌 것 같아? 정말? 그렇게 느껴져?”

“어.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내 느낌이 그래. 돈 있는 사람들은 외제 차 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차를 바꾸기보다는 있는 차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거 같아. 그래서 한동안 주가가 계속 빠졌던 거고……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안 좋아.”

“그래?”

이성우는 이야기하면서 한진영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했다.

그런데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한 한진영의 모습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기분 나쁘지 않아?”

“기분 나쁠 게 뭐 있어. 네 의견이잖아. 나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특히 네 의견이라면 더더욱 받아들이기 좋고. 난 네가 이렇게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까 내가 더 고맙지.”

“아니야. 앞으로도 나한테 허심탄회하게 네 의견을 이야기해 줘. 알았지?”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네 느낌을 있는 그대로 나에게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어. 내 부족한 부분을 네가 채워줘.”

이성우는 한진영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당연히 기분 나빠해야 할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다 못해 용기까지 북돋아 주는 한진영의 모습에 고마운 마음마저 일어났다.

스스럼없이 의견을 낼 수 있게 편하게 대하는 한진영의 배포에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한 이성우였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네 의견을 돌아가서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으니까.”

“그래. 혹시 몰라 다시 말하는데. 지금 차화정은 아니야. 특히 자동차는…… 하향세가 확실해.”

한진영이 편하게 받아주자 용기 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성우가 이야기했다.

그런 이성우를 향해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슴을 두드리며 이성우의 말을 명심하겠다는 뜻을 보인 뒤 몸을 돌렸다.

한진영이 자리로 돌아갈 때 어느새 지점장실 문을 열고 나온 최준호가 한진영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한진영의 어깨를 툭 하고 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었어?”

“뭘 말씀입니까?”

“에이~ 나한테는 그러지 않아도 돼.”

“뭘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뭐가 됐건 제가 알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치? 알고 있었지?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자신 있게 미래차를 매수하겠다고 말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야.”

최준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한쪽에서 최준호가 그리한 이유가 터져 나왔다.

“미래차 지난달 실적이 뭐가 이렇게 좋아?”

“실적이 정신이 나갔는데. 뭐야? 전년 동월 대비 61% 상승?”

“기저효과 있었다지만 뭐가 이런 실적이 나오냐? 전월 비로는 25% 상승이야. 이거 기저효과라고만 마냥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어이가 없네. 국내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20% 상승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죄다 차 바꾼 거 아니야?”

직원들 사이에서는 술렁거림이 잦아들지 않았다.

미래차가 전월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충격적인 실적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거 이번 분기 실적 전망치 다시 써야겠다. 이대로 이 기세로 이번 달 실적까지 잘 나오면 역대 최대 실적 찍겠는데?”

“전 세계 점유율도 5% 넘기겠어.”

“내수의 미래차라는 이야기도 싹 사라지겠다.”

최준호는 한진영을 향해 눈을 흘겼다.

“미래차에 아는 사람이 있어?”

“으음. 거기까지는 말씀드리기는 어렵죠.”

“하긴 이해해. 그런 거 다 공개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골치 아파지니까. 그냥 내가 알아서 생각할게. 하하하.”

최준호는 즐거운 듯이 한진영의 어깨를 연신 두드렸다.

이렇게 파격적인 실적이 나오면 주가는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최준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지 객장에 있는 상황판의 숫자가 요동쳤다.

“발표 나오자마자 5% 상승했고, 지금은 7%까지 올라갑니다.”

“어제도 오르더니 오늘 급등으로 전고점은 한번 갈 것 같은 모습인데요.”

“이건 무조건 전고 돌파지. 실적이 이렇게 좋은데 전고가 무슨 의미가 있어. 돌파하고 탄력받으면 15만 원대까지 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최준호는 소란스러워지는 사무실 가운데 서서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어서 고객들에게 전화 돌리고 미래차 매수하지 않은 고객들은 지금이라도 매수하도록 유도하세요. 우리 경험상 전월 실적이 이렇게 좋으면 당월 실적은 물론이고 한동안 실적의 상승세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직도 먹을 게 많이 있다고 고객들을 설득하세요. 객장에 찾는 고객들에게도 미래차 적극 추천 하는 것도 잊지 말고요. 그리고 잠시 시간을 내서 전화를 돌리기 전에 미리 정보를 습득해서 대처할 수 있게 해준 한진영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합시다.”

최준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직원들의 박수와 인사가 한진영에게 쇄도했다.

한진영 덕분에 실적 발표 전에 고객들에게 미래차를 추천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됐기 때문이다.

최석영은 자리에서 엄지를 치켜세워주며 한진영의 판단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진영은 앉은 자리에서 직원들의 인사를 가볍게 받았다.

그리고 모든 인사를 향해 답한 뒤 슬쩍 이성우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미래차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을 쏟아내던 이성우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의 판단이 어디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진영은 연신 모르게는 얼굴로 자기 판단이 왜 잘못됐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이성우를 보며 생각했다.

‘상황도 바뀌지 않았지만, 사람도 바뀌지 않았어.’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이성우의 모습이 그대로 잘 드러나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보며 만족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됐다.

과거 그가 겪었던 일이 그대로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미래차가 폭발적인 성장세와 그에 맞춰 한 단계 도약하는 주가.

한진영은 그 시기에 맞춰 투자대회에 미래차를 집어넣은 것이었고, 그 작전은 성공했다.

그리고 함께 확인해 본 이성우의 분석.

그때도 그랬지만 희한하게 이성우는 분석을 거꾸로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추천하는 종목은 기가 막히게 추천 이후부터 뒷걸음질 치고는 했다.

반대로 그가 안 좋게 보는 종목의 경우에는 거침없이 상승하며 이성우를 허탈하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 하게 나타나고는 했다.

어쩔 땐 맞추고 어쩔 땐 틀리는 복불복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모자랄 정도로 백발백중의 모습을 선보여 보는 사람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오게 만드는 것이 이성우의 분석이었다.

그 누구보다 탁월하고 예민한 본능을 타고난 이성우.

문제는 그게 증시의 순방향이 아니라 역방향이라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 이성우의 예민한 능력을 이용하여 기억을 보정하려 했다.

한진영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성우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미래차의 주가는 거침없이 상승했다.

실적을 바탕으로 오르는 주가에 누구도 상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폭발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실적에 주가가 따라가는 폭이 뒤처진다는 평가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래차를 포지션에 담은 최석영의 수익률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0만 원 초반대에 잡은 포지션이 일주일 만에 12만 원까지 상승하며 10% 후반대의 수익률을 선보인 것이었다.

제자리에 멈춰 서서 눈만 끔벅이고 있는 2위권과의 차이가 확실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2위권 그룹도 부랴부랴 무포지션을 풀고 새롭게 종목을 찾아 복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미 전고점에 다다른 미래차에 몸을 담그기보다 차라리 미래차 실적의 수혜주를 찾아 뒤늦게 오르는 종목에 타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수혜주는 수혜주일 뿐이었다.

수혜주가 주도주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위권이 올라탄 종목도 상승하기는 했지만, 전고점 돌파를 시도하는 미래차에 비해 상승폭은 뒤처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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