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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반지 줄까 (74/94)


74화 반지 줄까
202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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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어가 있어. 보석이 너도 여기서 놀고 있고.”

“그래, 그럼. 나 먼저 간다.”

“끽!”

에일리를 먼저 보내고, 보석이까지 나무 위로 보낸 델리나는 노아와 반센트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델리나를 본 노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설마 로즈립 후작가에서 플로렌 영애의 마중을 받을지는 몰랐는데.”

“그럼, 원한다면 레드 카펫도 깔아 줄 수 있어.”

서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모두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밖에는 델리나와 노아, 그리고 반센트 셋만이 남았다. 델리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자, 들어가기 전에 나한테 줄 게 있지?”

델리나의 의미심장한 말에 반센트가 먼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놀란 듯 델리나의 눈이 커졌다.

“너도 줄 거 있어?”

델리나가 일을 부탁한 건 노아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센트의 행동에 델리나는 얼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자세히 보니 손수건만 한 크기의 천 조각이었다.

“뭐야, 이게?”

“생일 선물.”

“생일 선물이라고?”

델리나는 실험밖에 모르는 애가 제 생일을 챙겼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용도가 뭔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선물에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 그러니까…… 손수건?”

“아니. 그건 천 조각이고, 천들은 대공가로 보내 놨어.”

“그러면 옷감이라는 거야?”

“그렇지. 근데 그냥 옷감은 아니고, 총알을 막아 주는 옷감.”

“진짜?”

델리나가 신기한 듯 천 조각을 이리저리 살폈다. 확실히 일반 천에 비해서 무언가 촘촘하고 질긴 느낌이었다.

“……으로 개발하고 있었는데, 실패해서 나온 거지. 그래도 어지간한 천보다는 튼튼해서 쉽게 안 찢어져. 누나랑 같이 만든 합작품. 기존 섬유 조직을 강화해서 다발로 잘 묶은 다음에 아예 재질을 다르게 해서…….”

“…….”

“아무튼 튼튼한 천.”

“오, 대단해.”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난해해지는 델리나의 표정에 설명하기를 포기한 반센트가 간단히 정리했다.

“그러면 잘 안 찢어지려나?”

“웬만큼 날카로운 건 막아. 기사들이 작정하고 칼 들고 덤비면 죽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그러잖아도 수련할 때 자꾸 옷이 찢어졌는데……. 고마워. 잘 쓸게.”

예상치 못한 선물에 델리나가 싱글벙글 웃었다.

“그런데 정말 총알 막는 옷도 나오면 대단하긴 하겠다.”

“그러니까. 더 연구해야지.”

실험 정신은 여전한 듯 반센트가 대번에 답했다. 그러자 델리나가 실실 웃었다.

“설마 이것만 주고 모임 참석 안 하고 도망가려는 건 아니지?”

“…….”

“그러다 또 후작님한테 혼나려고.”

반센트가 흔쾌히 사교 모임에 오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델리나였다. 그러자 반센트가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인간을 대체하는 기구는 없는 건지.”

그것도 조만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는지 반센트의 얼굴이 진지했다. 그때 노아가 나섰다.

“이제 내 생일 선물도 받아야지.”

“아, 아, 맞다.”

노아가 종이봉투를 내밀자 델리나가 반색했다. 자연스레 반센트도 봉투로 시선을 보냈다. 노아의 눈매가 휘어졌다.

“내 생일 선물은 보려면 돈 내야 하는데. 정보료.”

“……간다, 가.”

정보료라는 말에 반센트도 더는 미련을 가지지 않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비로소 둘만 남게 되자, 노아가 가지고 있던 봉투를 델리나에게 건넸다.

“생일 선물로 나한테 정보를 살 생각을 다 하고. 많이 컸네, 광대.”

“난 원래 컸거든. 그나저나 내가 의뢰한 건 다 있는 거야?”

단단히 봉해져 있는 서류를 보다가 주위를 둘러본 델리나가 낮게 소곤거렸다.

“셀린에 관한 거 말이야.”

셀린이 대공가에 오기 전의 행적을 노아에게 따로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델리나였다. 그리고 이제 그 정보가 델리나의 손에 쥐여졌다.

“네가 궁금해하는 건 다 들어 있을 거야.”

“…….”

“그런데 생각보다 찾기가 까다로웠어. 뭐, 어차피 나도 궁금하던 차여서, 네가 아니었더라도 따로 알아봤겠지만.”

디아몬 가문에서도 정보를 찾기 힘들 정도라면 다른 곳에서는 거의 찾기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 말을 들은 델리나는 디아몬 공작가에 부탁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추가 비용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돈 문제만 빼면.

“됐어. 추가 비용은 서비스야.”

또 심각해지는 델리나의 표정에 웃음을 참듯 손가락으로 입가를 꾹 누른 노아가 다시 물었다.

“근데 그걸로 돼? 생일 선물?”

그러자 질렸다는 듯 델리나가 고개를 내저었다.

“응. 이미 다른 건 전하한테 차고 넘치게 받아서 괜찮아.”

“그래도 선물을 더 받으면 좋긴 하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진짜 뭐 또 주려고?”

다른 선물까지는 예상치 못했던 델리나였다. 그것도 노아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그러면 나야 고맙게 받지.”

딱히 준다는 선물을 거절할 델리나도 아니었다. 그렇게 답하면서도 델리나는 제 손에 있는 봉투를 살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읽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면 진짜 줄까.”

봉투를 내려다보고 있는 델리나를 보면서 노아가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최근 다이아 광산 개발한 것 중에 최고 품질의 다이아몬드가 나왔는데, 그걸 세공해서 줘도 될 것 같은데.”

“응, 그거 좋네.”

“그런데 생각보다 보석 크기가 작아서 말이야. 목걸이나 팔찌 용도로는 부적합해 보이고, 반지가 제일 좋을 것 같고.”

“응, 반지도 좋지.”

“그러면 치수 재 본다?”

“응, 그래…… 뭐?”

종이에 뭐라고 쓰였을지 생각하며 멍하니 대답하던 델리나가 제 손가락으로 감겨 들어오는 감각에 놀라며 퍼뜩 고개를 들었다. 노아가 제 손가락을 잡고 있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뭐긴. 반지 치수 재 보라며.”

“원래 이렇게 손으로 재?”

“아마도?”

어느새 두 사람의 손가락이 단단히 얽혀 있었다. 델리나의 손가락을 지분거리던 노아의 손가락이 스르륵 빠져나갔고, 델리나는 노아와 감겨 있었던 손가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그…… 그래. 아무튼, 이제 그만 들어갈까? 모임 시작했겠다.”

당황한 채 종이를 품에 넣은 후 델리나는 차마 노아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몸을 돌려 안쪽으로 향했다.

델리나의 발걸음이 무척 빨라져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방금 전 노아에게 잡혀 있던 손가락 감각을 떠올렸다. 정확히 왼손 넷째 손가락에 감겨 왔던, 그 감각을.

* * *

안으로 들어서니 여러 개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델리나가 제 자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델리나!”

영애들의 중심에 있던 셀린이 옆자리를 가리키며 외쳤기 때문이었다.

“네 자리는 여기래. 얼른 와서 앉아.”

셀린 곁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델리나에게 쏠렸다. 실비아와 실비아에게 항상 붙어 다니는 영애들이었다. 델리나는 천천히 제 자리를 확인했다.

“…….”

셀린 바로 옆에 붙여 놓은 자리하며, 그들을 둘러싸듯 앉아 있는 실비아와 그녀의 추종자들, 그리고 또 다른 맞은편 자리에는 반센트와 기드온, 그리고 에일리가 앉아 있었다.

‘이것 봐라.’

반센트는 그렇다 쳐도, 기드온과 에일리까지 한 테이블에 붙여 놓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사이 자기 자리가 반센트의 옆자리인 것을 확인한 노아도 재미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디아몬 공자님이시죠?”

델리나와 함께 들어온 노아를 보며 셀린이 웃으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셀린 울피림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셀린과 노아,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봤다. 델리나는 내심 긴장하며 둘을 바라보았다. 셀린을 본 노아도 웃으며 답했다.

“예,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노아와 셀린, 두 사람의 시선이 묘하게 얽혀 들어갔다. 그때 실비아가 입을 열었다.

“어머, 대공녀님. 지금 하고 계신 목걸이는 혹시 울피림 가문의 인장이 아니던가요?”

셀린이 찬 목걸이에 실비아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것도 설마 대공 전하께서 주신 목걸이인가요?”

“네.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주신 것을 제가 다시 받았죠.”

“어머, 그러셨구나. 그러고 보니까 드레스도 정말 아름다우시고……. 전하께서 정말 대공녀님을 아끼시나 봐요.”

굳이 델리나를 곁에 앉혀 놓고 셀린에게 칭찬을 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다른 영애들도 이때다 싶어 셀린을 칭찬하기 바빴고 델리나는 체념한 얼굴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에일리와 기드온까지 있는 이 자리에서 저를 어떻게 해서든 망신시키고 싶음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저와 가까운 사람들이었으니까. 두 사람이 앞자리에 앉은 것을 보고 충분히 예상한 일이기에 델리나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왜 자리가 두 개가 비지?’

모임의 주최자인 실비아가 앉은 테이블이니, 자리를 일부러 비워 놓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영애도 그것이 궁금했는지 실비아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실비아 영애, 여기 테이블에 앉으실 분들은 다 앉으신 걸까요?”

“어머, 그렇지 않아도 알려 드리려 했는데 정말 좋은 질문을 하셨네요.”

영애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냉큼 답하는 실비아였다.

“그 자리에는 조금 특별하신 손님 두 분께서 앉으실 예정이시랍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저희 가문에 오고 싶어 하시는지, 모임에 꼭 참석하고 싶다고 하시지 뭐예요.”

“어머, 도대체 누가……?”

“타국에서 오신 귀빈분들이시죠. 이제 오실 때가 되긴 했는데요.”

‘뭐?’

타국에서 온 귀빈이란 말에 델리나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델리나의 불길한 느낌이 맞다는 듯 저 멀리서 사람들의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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