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첫 사교 모임
(73/94)
73화 첫 사교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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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첫 사교 모임
2023.08.12.
셀린이 대공가에 오고 시간이 조금 흘렀다. 새로운 울피림 대공가의 일원인 셀린의 등장에 대공가도 처음에는 약간 소란스러웠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해졌다. 물론 대공가 안에서만 그런 것일 뿐, 아마 바깥쪽은 시끄러울 것이다.
무려 벨리온의 숨겨진 딸이었다. 게다가 셀린을 바로 대공녀로 자리에 올려서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모두가 갑자기 등장한 셀린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대공가로 쉬지 않고 편지를 보내오는 에일리가 그 주된 예였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아가씨.”
“응.”
그러나 마냥 고요해 보이는 대공가에도 변화는 있었다.
“…….”
“…….”
펠릭이 부르는 음성에 자연스럽게 다가가던 델리나는, 곧 저와 같은 의자 옆에 선 셀린을 발견했다. 그러자 펠릭 또한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델리나 아가씨를 부른 거였는데요. 셀린 아가씨는 맞은편에 앉으시면 됩니다.”
“아, 그랬구나. 미안. 날 부른 줄 알았어.”
“아닙니다. 다음부터는 제가 이름을 불러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안에 아가씨가 둘이 되자 펠릭도 적응이 잘 안 되는 눈치였다. 베티의 표정은 한결같았지만 셀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은 모두 델리나와 셀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지?”
셀린의 아침 인사에 벨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잤어, 칼릭스? 그리고 젠도?”
두 사람은 셀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에 집중했다. 어느새 자연스레 세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셀린을 보면서 델리나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셀린의 사교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델리나가 잠시 감탄하는 사이에도 셀린의 말은 끊어지지 않았다.
“참, 그러고 보니까 저한테 편지가 왔더라고요.”
“무슨 편지.”
“로즈립 후작가에서 온 편지요.”
‘로즈립 후작가?’
저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름에, 순간 델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읽어 보니까 모임 초대장인 것 같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다른 영애 영식들도 초대하는 것 같던데, 가도 되나요?”
“마음대로 해.”
“정말요? 사실 이런 모임이 처음이라 궁금하기는 한데……. 아, 델리나. 너한테도 왔지?”
셀린이 델리나에게 물었다. 델리나는 대답 대신 뒤로 서 있던 베티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가씨한테도 왔습니다.”
“나한테도 왔어? 로즈립 후작가에서?”
“예. 책상 위로 올려 두었으니 나중에 확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웬일이래?’
예전 모임에서 망신을 당한 이후로 지금껏 단 한 번도 저를 먼저 초대한 적이 없었던 실비아였다. 하지만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셀린.
대공가의 후원을 받는 영애와 진짜 대공가의 일원이 된 대공녀. 그 둘을 놓고 저울질해 본 결과, 실비아는 셀린을 더 높게 본 듯했다.
‘내가 얼마나 주눅이 들었나 확인해 볼 생각인가 보지?’
편지를 쓰면서 얼마나 기고만장해 있었을지 눈앞에 훤했다. 델리나의 입꼬리가 비식대며 올라갔다.
“아까 편지에 보니까 동물을 데려와도 된다던데? 그러면 보석이 데리고 나랑 같이 가자, 델리나.”
“…….”
“아무래도 나는 이런 곳이 처음이니까 델리나 네 도움이 필요한데……. 응?”
셀리나가 조르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델리나를 간절하게 쳐다봤다. 잠시 말이 없던 델리나는 곧 대답했다.
“그래. 그러지, 뭐.”
어차피 셀린을 대하는 다른 이들의 태도도 궁금했다. 로즈립 후작가의 모임이라면 다양한 귀족들이 모이니 델리나도 딱 좋았다.
‘게다가 영식들도 초대한다면 걔들도 오겠지.’
델리나는 모임에 올 가능성이 무척이나 큰 두 사람을 떠올렸다.
* * *
로즈립 후작가의 사교계 모임.
원래 사교계에서 유명한 가문이니만큼 모임의 규모 또한 남달랐다. 게다가 이번에는 영식들도 초대했기에, 예전보다도 모임의 규모가 더 커져 있었다.
“여기가 로즈립 후작가구나.”
마차에서 내린 셀린이 로즈립 후작가를 구경하듯 주변을 살펴보았다. 셀린의 뒤에서 보석이를 어깨에 올려놓은 델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들어 본 적 있다고 했었나?”
“그럼. 내가 일한 곳에서도 로즈립 후작가는 엄청 유명했으니까. 그래서 궁금했었는데, 이런 저택이었구나.”
후작가를 감상하는 듯한 셀린에게로 수많은 시선이 쏠렸다. 셀린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영애와 영식들이었다.
“…….”
평소엔 델리나에게 빠르게 다가오던 영애들도, 오늘만큼은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하지만 저기서 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는 실비아만큼은 아니었다.
“로즈립 후작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녀는 델리나와 셀린에게로 다가왔지만 시선은 셀린에게만 향해 있었다.
“저와는 처음 뵙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대공녀님. 저희 후작가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저야말로 이런 멋진 모임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오가는 훈훈한 대화에 델리나는 끼지 못한 채였다. 그때 마침 저 멀리서 마차 한 대가 들어왔고 델리나가 한 걸음 물러섰다.
“먼저 들어가 있어, 셀린. 난 친구 좀 만나고 갈 테니까.”
“아, 그래?”
그러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연스레 실비아가 셀린을 이끌었다.
“그래요, 대공녀님. 안으로 들어가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거든요. 같이 가실까요?”
실비아가 먼저 셀린에게 다가가자 다른 영애들도 하나둘씩 셀린을 향해 다가왔다. 영애들에게 자연스레 둘러싸이게 된 셀린은 그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델리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너한테 잘 보인다고 달라붙을 때는 언제고, 아주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옆에서 에일리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일리도 셀린을 보고 있었다.
“셀린이라고 했지? 저기 저 사람이야? 이번에 대공가로 새로 들어왔다는 대공녀가?”
“맞아.”
“……확실히 전하랑 닮긴 닮았네.”
벨리온의 얼굴을 알고 있는 에일리가 부정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처음에 전하 딸이라고 해서 설마설마했는데, 저 정도면 가족이 아니기도 어렵겠는데?”
“…….”
“보니까 확실히 대공자 쪽하고도……. 아, 그래도 걱정 마. 난 항상 네 편인 거 알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에일리가 빠르게 말을 바꿨다.
“솔직히 여기 모임도 대공녀 얼굴이 궁금해서 온 거지. 그거 아니었으면 오지도 않았어.”
“정말?”
“그럼. 내가 여길 왜 와. 어? 감히 내 사랑하는 친구를 무시하는 로즈립 후작가에?”
“그런 것치고는 오늘 옷차림이 상당한데.”
누가 봐도 힘준 것이 티 나는 에일리의 옷차림에 델리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소리야, 나 원래 이렇게 입는데?”
“그래? 오늘 영식들도 온다는 거 듣고 그런 건 아니고?”
“…….”
그러자 에일리가 시선을 피했다. 델리나가 체념한 듯 물었다.
“네 운명의 남자랑 내가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래?”
“……운명의 남자랑 결혼한다는 전제하에?”
“됐다. 그냥 내가 헤엄쳐서 나올게.”
그걸 또 심각하게 고민하는 에일리의 뒤로, 또 한 명의 익숙한 얼굴이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건 또 왜 저래.”
에일리만큼 한껏 차려입고 온 기드온의 모습에, 델리나가 차마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고, 에일리도 웃기다는 듯 키득거렸다.
“보니까 간절해 보이긴 하네. 저러는 거 보면 진짜 궁금하다니까. 어떤 영애랑 결혼할지.”
“…….”
“아, 그래도 걱정 마. 기드온이랑 너랑 물에 빠지면 바로 너 구해 줄 테니까.”
“그것참…… 고마워라. 안심이 되네.”
퍽 영혼 없게 델리나가 답하는 사이 기드온은 그대로 델리나와 에일리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인사는 가뿐하게 생략한 채. 델리나가 아는 척하지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기드온 또한 최대한 델리나를 외면한 채 지나쳐 갔다.
“그러고 보니까 최근에 너희 둘 다 생일이었잖아. 선물 서로 챙겼었나?”
“챙기긴. 안 준 지가 언젠데. 그냥 서로 안 받고 안 주기로 했어.”
델리나가 대공가에서 온갖 선물을 받았다면, 기드온에게 선물을 보낸 곳은 디아몬 공작가였다. 기드온의 후견인이었던 에드윈은 매년 생일마다 기드온에게 다양한 선물을 보내 주었다.
“다이아몬드로 세공한 칼에, 광산에……. 그렇게 공작가에서 선물받아 왔는데 오빠도 이제 평범한 선물은 눈에도 안 들어올걸.”
“하긴. 다른 곳도 아니고 디아몬 공작가인데.”
디아몬 공작가의 재력이야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알 만한 수준이니, 에일리가 재빨리 수긍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속속 영애 영식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모습을 보던 에일리가 소곤거렸다.
“근데 그쪽들도 오는 건가?”
“누구?”
“왜, 네 남자들…… 아니, 영식들.”
델리나의 살벌한 눈빛에 재빨리 에일리가 말을 바꿨다.
“응. 오기로 했어. 그러지 않아도 지금 기다리는 중이야.”
“그래?”
곧 델리나는 멀리서 다가오는, 노아와 반센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