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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그런 선물을 원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68/94)


68화 그런 선물을 원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202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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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식이 끝난 후 대공가의 하루하루는 고요하고 평범했다.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델리나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다 썼다.”

델리나의 앞에는 편지 몇 통이 놓여 있었다. 이윽고 편지를 완벽하게 봉한 델리나는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부르셨습니까.”

줄을 당기기 무섭게 베티가 방으로 들어왔다. 델리나는 편지를 베티에게 내밀었다.

“이 편지들, 적혀 있는 각 가문으로 좀 보내 줄래?”

“예. 알겠습니다.”

델리나에게 편지를 받아 든 베티는 각 가문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러자 델리나가 덧붙였다.

“그때 나한테 약혼장 보냈던 가문들이야.”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이건…….”

“응, 답장. 다 거절하는 거지만.”

약혼이니 결혼이니, 그런 것들을 아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저에게는 이르다고 느꼈고, 급하게 약혼을 하면서까지 만나고 싶은 영식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베티가 편지를 정리하는 사이, 델리나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 모습을 보던 베티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데?”

“아가씨 생일 선물 관련해서 말입니다.”

“……그래, 벌써 또 그 시기가 왔지.”

베티의 말에 델리나의 얼굴이 급격히 피곤해졌다. 사실 이번 생일은 본격적으로 성인이 되는 생일이었기에, 몇 주 전부터 펠릭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그래. 그만큼 매년 생일마다 범상치 않은 걸 주셨으니까.’

첫 생일 선물로 받았던 젠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매년 델리나를 어떻게 놀라게 해 줄지 연구라도 한 듯 벨리온은 해마다 기상천외한 것들을 델리나에게 선물로 줬다.

‘그래, 13살 때는 인형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영지 하나를 사들여서 실물 크기의 인형 마을을 제작해 줬지. 16살 때인가, 그때는 목걸이 하나 가지고 싶다고 했더니 어느 왕국의 인장을 목걸이로 만들어서 걸어 줬고…….’

누차 작고 소소한 선물을 강조했지만 돌아오는 건 언제나 제 예상을 가뿐히 압도하는 것들이었다. 그랬기에 이제 생일은 항상 다른 의미로 두근거렸다.

“전하께서 혹시 가지고 싶은 선물이 있으시면 말씀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말해야 하는 거지?”

“예. 딱히 생각나시는 게 없으시면 알아서 준비하시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아냐, 아냐. 그건 안 돼.”

또 말도 안 되는 선물을 준비할까 봐 이번에는 최대한 생각해 본다는 핑계를 대고 생일을 며칠 앞둔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는 싫든 좋든 무엇이 받고 싶은지 말해야 했다.

‘그래. 이번에는 아예 구체적으로 조건을 제시하자.’

두루뭉술하게 말해서 일을 크게 만드느니, 최대한 못 구할 것 같은 선물을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델리나가 입을 열었다.

“사람.”

“사람 말씀이십니까?”

“응. 근데 조건이 있어. 전하처럼 잘생기고, 재력 있고, 권력 있는 사람.”

“…….”

“꼭! 그런 사람이어야 돼. 그거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어디 찾아보시지.’

절대 못 구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델리나는 의기양양해졌다. 그 말에 묘한 표정을 짓던 베티가 곧 고개를 숙였다.

* * *

“괜찮아, 델리나?”

“그럼. 그냥 가벼운 근육통이야.”

복도를 걸어가면서 젠이 걱정스레 묻자, 어깨를 주무르던 델리나가 애써 웃어 보였다. 곁에 있던 칼릭스도 델리나의 어깨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봐주지 말고 덤벼 달라고 했잖아. 너희들 상대로 이 정도면 진짜 안 다친 거지.”

이제는 펠릭조차 일대일로 상대하기 까다롭다며 진저리를 치는 칼릭스와 젠이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대련을 신청했으니,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게다가 봐주면서 했으면서.’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리나는 두 사람을 건들지도 못했고 혼자 만신창이가 되었다.

“좀 이른 것 같지만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이대로 바로 가면 식당이잖아.”

델리나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걸어가자 식당 문이 보였고, 문 앞에 있던 사용인들이 다가오는 세 사람을 보고서 문을 열어 주었다.

“아가씨!”

문을 열자 식탁에 앉아 있는 벨리온과 펠릭이 보였다. 펠릭이 식당으로 들어오는 델리나를 보고 눈을 빛냈다.

“오셨습니까?”

“응. 그런데…… 전하도 일찍 오셨네요?”

벨리온이 조금 이른 시간에 식당에 있는 것을 본 델리나가 놀라 물었다. 그러자 펠릭이 대신 답했다.

“오늘 일이 좀 있으셔서 일찍 드시겠답니다.”

“아, 그랬구나.”

세 사람은 별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델리나를 보며 싱글거리던 펠릭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아가씨. 베티한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응? 뭘?”

“아가씨 생일 선물이요.”

아.

그새 베티의 이야기가 벨리온에게 전해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펠릭은 상당히 기뻐 보였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가씨가 그런 선물을 원하실 줄은요.”

“……?”

“생일 선물로 신랑감이라니, 성인이 되는 해의 생일 선물로 정말 딱이네요.”

컥.

이어지는 펠릭의 말에 물을 마시던 델리나가 사레가 들렸다. 기침을 하던 델리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게, 왜 그게 신랑감으로 연결이 되는데?”

“전하처럼 잘생기고, 재력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기는 했는데, 그런 의미로 달라는 건 아니었거든?”

“네? 그럼 신랑감이 아니면 무슨 이유로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까?”

진심으로 궁금한 듯 펠릭이 물었다. 할 말이 없어진 델리나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런 이유도 있는 것 같긴 하네.”

“역시 그렇죠?”

결국 별다른 핑계를 찾지 못한 델리나가 한숨을 쉬며 답하자 펠릭의 안색이 밝아졌다.

“걱정 마십시오. 전하께서 분명 아가씨의 마음에 꼭 드는 신랑감을 찾아 주실 거니까요. 사실 당장에라도 찾으려면 찾을 수…….”

“시끄러우니까 나가.”

“예, 좋은 식사 되시지요.”

벨리온이 펠릭의 말을 끊었다. 고기를 써는 벨리온의 손에서 형형히 빛나고 있는 나이프를 보고 본능적으로 입을 다문 펠릭이 재빠르게 식당을 빠져나갔다.

펠릭이 나가자 식당 안에 정적이 흘렀다. 고기를 느리게 썰던 벨리온이 입을 열었다.

“선물은……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아, 네. 그럼요. 천천히 찾으셔도 돼요.”

사실 내년 생일까지 안 찾아도 괜찮았다.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벨리온이 다시 말없이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곁에 있는 칼릭스와 젠도 말이 없었다.

“…….”

칼릭스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다가 스푼에 비친 제 얼굴과 벨리온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젠은 대뜸 델리나에게 물었다.

“델리나.”

“응?”

“나 잘생겼어?”

“그럼.”

밖에 나가기만 하면 여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젠이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자 젠이 만족한 듯 웃더니 다시 음식을 먹는 것에 집중했다.

그 말에 벨리온이 눈썹을 치켜올리곤 델리나를 바라보았다.

“훈련을 한 건가?”

“네. 셋이서 했었어요.”

“누가 이겼고?”

“당연히 전 아니죠.”

맨몸으로 싸워서 저가 이길 리가 없었다. 몸집이며 먹는 양이며 모든 것이 저보다 몇 배는 큰 두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가진 힘과 기술은 델리나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델리나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다음에는 능력을 쓰고 해 볼까.’

순수한 대련으로는 이길 수 없지만 능력을 쓴다면 얼마나 달라질지 조금 기대가 됐다. 열심히 식사하고 있는 칼릭스와 젠을 보며 델리나가 살짝 웃었다.

‘쟤들이) 먹어 치우는 양은 능력을 써도 따라가기 힘들겠는데.’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것일까. 아직도 성장하는 중인지 어마어마한 양을 먹는 두 사람을 델리나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식당 문이 요란스레 열렸다. 그 문을 연 이는 펠릭이었다.

“아, 아가씨!”

무슨 일인지 다급해 보이는 펠릭의 얼굴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펠릭의 손에는 편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왜? 무슨 일인데?”

“그게, 아가씨께 약혼장이 도착했습니다.”

“……응. 그런데 왜?”

고작 약혼장 하나 도착한 거 가지고 펠릭이 이리 당황할 리 없었다. 그러자 벨리온의 눈치를 보던 펠릭이 말을 이었다.

“예. 편지 자체는 평범한 약혼장이죠. 문제는 그 약혼장을 보낸 곳인데, 그게…….”

“그래, 어디길래 그래.”

“루넨 제국에서 왔습니다.”

“……뭐?”

루넨 제국이라는 말에 델리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 이름에 델리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그 약혼장 보낸 사람이…….”

“예, 그러니까, 그게…… 데카르 황제입니다.”

식당 안에 울려 퍼지는 데카르라는 이름에 누군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손에 든 잔을 박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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