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65/94)


65화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202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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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확인되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연회가 열리는 황궁은 오늘도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울피림 대공가를 대하는 사용인들의 태도도 여전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나.

황궁에 올 때마다 벨리온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에, 왜 그가 계속 가면을 쓰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에 완전히 적응한 델리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많이들 와 있네.’

이제는 몇 번 와 본 곳이 되었지만, 연회장은 올 때마다 새로웠다. 각 연회에 따라 분위기도, 보이는 사람들도 제각각이었는데 오늘은 제 또래의 영애 영식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들뜬 얼굴로 한데 모여 있는 중이었다.

“델리나!”

델리나가 들어오기 무섭게 에일리가 반갑다는 듯 외치며 다가왔다. 에일리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좀 늦을 줄 알았더니.”

“마차를 좀 빨리 달린 모양이더라고. 그런데 벌써 사람들이 엄청 많이 있네. 순간 내가 늦은 줄 알았어.”

“당연히 많지. 다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그렇게 말한 에일리가 델리나 곁에 있던 벨리온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뵈어요, 대공 전하. 오늘도 한결같이 멋있으시네요!”

장담컨대 델리나를 제외하고서 벨리온에게 저리도 친근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영애는 에일리뿐일 것이다. 델리나를 따라 대공가에 몇 번 놀러 온 적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얼굴 봤을 때가 반응이 정말 굉장했지.’

가면 속에 가려진 벨리온의 외모에 대해 설명해 줬을 때 에일리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대공가 저택에서 처음으로 벨리온의 맨얼굴을 보고는 며칠이나 벨리온의 외모 찬양만 하고서 돌아갔었다.

오죽하면 벨리온도 나중에는 복도에서 에일리가 보이면 슬며시 피할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펠릭은 전하를 도망가게 한 최초의 영애라며 에일리를 대단히 여겼었다.

“그러면 저 델리나 데리고 갈게요!”

에일리는 벨리온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델리나를 끌고 갔다. 적극적인 에일리의 행동에 델리나가 힘없이 질질 끌려갔다.

“또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신났어?”

“왜긴! 드디어 오늘 내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는데!”

그토록 고대하던 성년식을 맞이한 에일리가 근처에 있는 영식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제국의 또래 영식들을 이렇게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 응? 황궁 연회장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두 남녀의 만남! 서로 잔을 잡으려다가 손이 맞닿은 걸로 인연이 될 수도 있고, 우연히 눈이 마주칠 수도 있고, 그러다가 서로 그렇게 웃어 보이면서……!”

에일리의 상상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델리나도 영식들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런 거라면, 저기 둘은?”

“누구?”

외모, 권력, 재력까지. 사실상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칼릭스와 반센트였다. 멀리에서 봐도 다른 영식들보다 외모도 빼어나 이미 수많은 영애가 알게 모르게 시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저기는 아니지.”

하지만 의외로 에일리는 단호했다.

“왜?”

“아무리 내가 만남을 좋아한다 해도 친구의 남자는 안 건드리거든.”

“친구의 남자는 무슨, 그런 거 아니라니까. 게다가 너는 어차피…… 아니다.”

친구의 남자는 안 되고, 친구의 오빠는 되는 것인가 싶었다. 곧 델리나는 저 멀리 있던 기드온을 발견했다. 

‘윽.’

기드온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델리나였다. 덩달아 기드온의 얼굴도 찌푸려졌고, 곧 아는 체하지 말라는 듯 기드온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뭐야, 기드온 쟤는 왜 저래?”

“자기 결혼하는 거 보고 싶으면 오늘 아는 체도 하지 말래. 내가 오면 영애들이 근처에도 안 올 거라고.”

“하긴. 쟤도 백작위 물려받으려면 이래저래 할 일이 많긴 하겠네. 근데 누가 기드온이랑 결혼할지 궁금하긴 하다.”

“……응. 그러게. 너무 궁금해, 나도.”

시간이 더 흐르자 연회장에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러자 한데 모여 있던 영애들이 델리나에게 하나둘씩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영애. 오늘도 드레스가 무척이나 아름다우시네요.”

“저 기억하실까요? 예전에 모임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에 영애께서…….”

대화라기보다는 어떻게든 친해지기 위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델리나는 익숙했다. 이는 델리나가 대공가의 후원을 받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대공가의 후원을 받는 광대.

광대라는 호칭을 제외하고, 대공가의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후원을 받다 못해 아예 대공가에서 살고 있으니 더더욱 그랬다. 워낙 폐쇄적인 가문이다 보니 사람들은 울피림 대공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고, 델리나라는 존재는 그들의 호기심을 채우기 좋은 통로였다.

물론 영애들의 경우는 좀 달랐지만.

지금까지 현 사교계를 쥐어 잡고 있는 로즈립 후작가보다 신분이 더 높은 영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대공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델리나는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존재가 되었다. 예전에 실비아가 델리나 앞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간 것이, 그 시발점이기도 했다.

“모임에 자주 좀 나오셨으면 좋겠어요. 지난번 모임도 재미있었는데.”

“이것저것 일들이 많아서요. 다음에는 꼭 참석해 보도록 노력할게요.”

상황이 이리되자 영애들은 델리나와 친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델리나가 영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그녀들 뒤쪽으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바로 실비아였다.

“…….”

“…….”

물론 예전 그 모임 이후로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실비아는 항상 델리나를 보며 분한 표정을 지었다.

몇 년이 지나도 참 한결같은 태도에 델리나는 늘 덤덤하게 반응했다. 사실 델리나 주변에 모여드는 영애들이 너무 많았고, 질문들도 끊임없이 이어졌기에, 애초에 실비아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실례합니다, 영애분들.”

델리나의 주변으로 영애들이 모여 있자 자연스레 영식들도 하나둘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델리나는 저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한 영식을 주목했다.

‘자르버네 후작가?’

원래 알고 있던 가문인데다가, 그 가문 영식의 기본적인 정보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그가 바로 델리나에게 약혼장을 보낸 영식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플로렌 영애. 지난번 파티 이후로 처음이시죠?”

“네. 그렇네요. 오랜만이에요.”

머닌 자르버네.

후작가라는 지위도 있고 최근 사업을 확장하며 성장하고 있는 가문이기도 해서 그런지 머닌의 얼굴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번보다 더욱 아름다워지신 것 같습니다. 이거야 원, 멀리서도 바로 알아볼 정도의 외모십니다.”

“과찬이세요. 영식도 그런걸요. 특히 옷에 달린 보석도 멋지고요.”

머닌의 칭찬에 델리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신이 난 머닌이 자랑스레 가운데로 있던 보석을 보여 주었다.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숲의 노래’라는 보석입니다.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보석이죠. 혹시 이 시계는 알고 계십니까? 이것 또한 이 보석과 같은 종류의 보석으로 세공한 것인데…….”

한마디 칭찬을 하니 열 마디의 자랑이 이어졌다. 델리나는 급격하게 피곤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온 것이 누가 봐도 칭찬해 달라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한마디 건넸을 뿐인데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아, 그리고 제가 보낸 약혼장은 잘 받으셨습니까?”

‘으응?’

이어지는 머닌의 약혼장 이야기에 델리나의 눈이 커졌다.

“물론 아직 영애께서는 생각을 해 보신다고 하셨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라서요. 영애께서만 괜찮으시면 한번 나중에 단둘이 만나 뵈었으면 하는데 어떠십니까?”

약혼장을 보내는 것이야 귀족들 사이에서 무척이나 흔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다 들리도록 말하는 일은 없었다.

그것도 약혼이 확실시되지 않았을 때는 더더욱.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할까요?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해서요.”

“예, 물론 그렇습니다만, 가문과 가문의 중차대한 일이니만큼 빠르게 진행해야 할 듯해서요. 아니면 어떠십니까? 제가 한번 대공가에 가는 것은요.”

‘뭐지?’

돌려서 거절을 했는데도 머닌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기는커녕 주변에 있던 영식들에게 들리게끔 일부러 크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 탓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예,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아, 그러면 아예 다른 곳에서 이야기할까요? 그래도 좋은데요.”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니 이제는 델리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는 머닌이었다. 정말로 데려가려는 듯 머닌이 델리나를 향해 손을 뻗자, 델리나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그 순간이었다.

“사람이 보석을 단 건지 보석이 사람을 단 건지 헷갈려서 와 봤더니. 웃긴 일이 벌어지고 있었네.”

누군가의 말에 머닌이 멈칫했다. 그의 얼굴을 본 영애 영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델리나 또한 저를 보며 웃는 익숙한 얼굴에,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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