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너는 결혼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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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너는 결혼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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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너는 결혼 안 해?
2023.07.27.
니엘과 샬롯은 제국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섬의 광산에서 10년 동안 노역하는 형을 받게 되었다.
말이 10년이지, 1년만 버텨도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그랬기에 델리나는 직감했다. 이것이 두 사람을 보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도와주셔서.”
재판이 끝난 후 델리나가 에드윈과 에스텔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델리나의 인사에 에드윈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우리 가문의 귀한 고객님한테 이 정도 서비스쯤이야. 그리고 노아 일로도 고마운 것도 있고.”
에드윈의 말에 에스텔이 덧붙였다.
“맞아. 나도 반센트 일이 고마운 것도 있고, 거기다 내가 말했잖아? 반센트 친구면 나한테도 동생 같은 거라고, 델리나 영애는.”
두 사람의 마음이 델리나는 너무나 고마웠다. 그때 잠시 기드온이 있는 쪽을 보던 에드윈이 눈짓했다.
“얼른 오빠한테도 가 봐. 광대 영애보다도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아, 네.”
델리나가 대답을 하곤 곧장 기드온 쪽으로 향했다. 재판 결과를 받아 본 듯 막 사람들의 무리에서 빠져나온 기드온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오빠! 괜찮아?”
“…….”
“할아버지는 어떠시고? 괜찮으신 거야?”
거동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 또한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기드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아직 모르셔.”
“뭐?”
“암살자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대공 전하의 그림자가 막았으니까. 당시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나도 재판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야.”
“그래……. 할아버지 몸을 생각하면 모르시는 게 더 나을지도…….”
자신의 아들이 저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면 분명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 사람이기에, 알게 된다면 더 상태가 악화될지도 몰랐다.
“너는 알고 있었지?”
“응?”
“작은아버……. 그 인간들에 대해 넌 알고 있었던 거잖아. 그러니까 나한테도 조심하라느니 그런 소리를 한 거고.”
그 말에 델리나가 침묵했다.
“네가 갑자기 대공가에서 후원을 받으려고 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어? 그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
이어지는 기드온의 말에 델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오빠. 내가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었던 건 맞지만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야.”
“그러면?”
“이 제국을 구하기 위해서.”
“…….”
“……라는 건 농담이고.”
물론 그 이유가 컸지만 기드온의 썩은 표정을 보고서 델리나는 잽싸게 말을 바꿨다.
“아무튼 후원은 내가 받고 싶어서 시작한 거고. 억지로 대공가에 있는 건 더더욱 아니야.”
“…….”
“백작가도 언제든지 들를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델리나의 말에 기드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내가 널 어떻게 말리겠냐.”
“응. 그럼. 그리고 공작님에 대해서도 걱정 안 해도 돼. 돈을 좀, 무척 좀 많이 좋아하시기는 한데……. 그래도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 그것도 뭐 그런 것 같지만……. 참, 대공 전하는?”
“대공 전하? 지금 저기 뒤에 계시는데.”
기드온은 델리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벨리온을 바라보았다. 곧 벨리온에게 다가간 기드온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전하. 저와 제 할아버지를, 더 나아가 가문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리고, 앞으로 델리나를 잘 부탁드립니다.”
매번 실실 웃으며 장난만 치던 기드온이 웃음기 하나 없는 태도로 인사하자 델리나가 그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자 기드온을 보던 벨리온이 말했다.
“제 할아버지랑 닮았군.”
“…….”
“광대랑도.”
“그건, 좀…….”
델리나와 닮았다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질색하는 기드온이었다. 델리나는 그런 기드온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하여간에 감동이 3초도 안 간다니까.’
“그건 아니죠, 전하. 딱 봐도 동생인 제 쪽이 좀 더 고급스럽지 않나요?”
“혹시 고급스럽게 맞아…… 아니, 대화를 좀 할래, 동생아?”
벨리온 앞이라 조심하면서도 언제나처럼 으르렁대는 기드온이었다. 쌍둥이가 투닥이는 모습을 벨리온이 관람하듯 보는 사이, 에드윈과 에스텔이 다가왔다.
“벨리온. 우리 둘 다 잠깐 할 말이 있는데. 잠깐 시간 좀 내줘.”
‘응?’
델리나가 곧 함께 자리를 뜨는 세 사람을 의문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 * *
“떠난다고? 노아랑 반센트가?”
“예. 그렇게 되었다고 공작님과 후작님께서 전하께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세 사람이 나눈 이야기의 내용을 델리나가 알게 된 것은 펠릭의 입을 통해서였다. 식탁 앞에 앉아 있던 델리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 왜 갑자기 그렇게 떠나는 건데?”
“실은 원래부터도 그러실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데뷔탕트를 일찍 치르신 거고요. 두 분 다 후계자 공부를 위해 언젠가 떠나신다는 것은 저도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건 그래도……. 그러면 언제쯤이나 돌아오는데?”
“글쎄요. 그건 저도 예상하기는 힘들지만요. 하지만 후계자 공부니 못해도 몇 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몇 년씩이나?’
제법 긴 기간에 델리나가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그때 벨리온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식사 준비를 하라고 할까요?”
“응.”
태연히 식탁에 앉은 벨리온이 방금 이야기를 들은 듯 입을 열었다.
“칼릭스도 떠날 거야.”
“네?”
“대공가 후계자로서 훈련받기 위해.”
그 말에 펠릭이 물었다.
“혹시 그 훈련받는다는 곳이, 혹시 예전 대공가가 있던 설원입니까?”
“응.”
“사계절 내내 눈이 쌓여 있는 그곳에요? 하지만 그 설원에서 훈련받는 건 상당히 오래전의 관습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런데도 칼릭스 님이 훈련을 받는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노아와 반센트에 이어 칼릭스까지. 상상도 못 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델리나가 멍하니 있다가 다급히 물었다.
“그러면 젠은요? 젠도 떠나요?”
“안 떠나. 다만…….”
‘다만?’
“강해지고 싶어 하길래, 권한 곳이 있기는 하지.”
그 어디든 간에 벨리온이 권한 곳이라면 결코 평범하지 않을 터였다.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얼떨떨해하는 델리나를 본 벨리온이 물었다.
“서운한 건가?”
“서운은…… 하지만요. 제가 막을 수는 없죠.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려는 건데요.”
그렇게 죽이네 살리네 하며 만난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정이 든 모양이었다. 이렇게 떠난다니 벨리나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러자 델리나의 마음을 눈치챈 듯 벨리온이 말했다.
“그러면 안 가게 해.”
“어떻게요?”
“가지 말라고 하면 되지. 아니면 내가 하고.”
“아뇨, 아뇨. 그냥 잘 배웅할게요.”
벨리온이라면 진짜 가지 말라고 아이들한테 말할 사람이었다. 그제야 델리나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그래도 바로 가지는 않겠죠?”
“떠나기 전 한 번씩은 여기 들르겠지.”
“아, 그렇겠네요. 전하께도 인사는 하러 올 테니까.”
‘그나저나 작별 인사라니…….’
저 없이 이놈들이 흑막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한편, 오랫동안 함께했던 이들이 떠난다니 괜히 마음 한편이 먹먹했다.
‘아쉬운 것 같기도 하고, 서운한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영원한 이별은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지만 포크질을 하던 델리나의 손이, 서서히 느려졌다.
* * *
“노아는 해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로 했다면서?”
비슷한 시각. 의자에 앉아 있던 에스텔이 맞은편에 앉은 에드윈에게 물었다.
“그것도 상당히 무법 지대로 들어가는 것 같던데. 괜찮겠어? 위험할 것 같은데…….”
“내가 강요한 건 아니야. 그 아이가 선택한 거지.”
황족이나 왕족도 건드리기 쉽지 않은 무법 지역. 디아몬 가문은 그런 지역의 주민들까지도 거래 대상으로 생각했다. 그 한가운데로 들어간다는 노아의 행동 또한 제법 아슬아슬했다.
“네 사촌도 아카데미로 들어간다던데.”
“응. 교수 과정을 밟는다고.”
학생이 아니라 교수 과정이라니. 남들이 들으면 놀랄 만한 소식이었지만 에스텔은 태연했다. 물론 반센트를 잘 아는 에드윈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기는 하단 말이야. 뭔가 묘하게 의욕이 있더라고. 원래 만사 귀찮아하던 애인데.”
“우리도 그래. 티는 별로 안 내려고 하지만 좀 달라졌지.”
‘그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지만…….’
동시에 델리나를 떠올린 에드윈이 가만히 입꼬리를 올렸다. 마찬가지로 반센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에스텔이 손뼉을 쳤다.
“아, 뭔지 알겠다!”
“뭔데?”
“아카데미에 뭔가 실험하기 좋은 게 생긴 거 같은데. 그러니까 그렇게 애가 적극적이지. 아, 그러면 나도 따라갈까? 진짜 후작 일만 아니면 같이 가는건데.”
“그래, 그런가 보네.”
결국 실험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는 듯 에드윈도 익숙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에스텔은 이유를 알아내고 의기양양했다.
“아카데미도 그렇고, 후계자도 일도 그렇고. 사실 반센트한테 이래저래 고마운 건 맞으니까. 사실 뭐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원해 주고 싶어. 그게 실험이든, 뭐든.”
“그래. 너도 항상 그러잖아. 빨리 후작 때려치우고 실험이나 하면서 살고 싶다고.”
“물론 그것도 맞지만.”
그 말에 웃던 에스텔이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너는 결혼 안 해?”
“…….”
“나야 어차피 결혼 생각이 없었지만 너는 좀 의외라서. 아예 노아를 후계자로 세운 거 보면 진짜 결혼할 생각이 없는 거야? 너는 뭔가 결혼도 돈이 오가는 거래다, 하면서 했을 것 같은데. 진짜 그렇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호기심 어린 에스텔의 말에 에드윈은 그저 턱을 괸 채 에스텔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머리가 한쪽으로 너무 발달하면 다른 쪽은 바보가 되는 건지…….”
“?”
“됐어. 난 이제 간다.”
“벌써 가? 간만인데 좀 더 있다 가지!”
그 말에도 에드윈은 자리에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를 보던 에스텔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에드윈을 배웅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