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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밥 좀 먹어 (50/94)


50화 밥 좀 먹어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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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셨어요, 아가씨? 수도에서 논 건 재밌으셨고요?”

“……좀 많이 힘들기는 했는데, 그래도 대충 다 잘된 것 같아.”

며칠 동안 후작가에 이어 공작가까지 각 가문에서 놀고 온다는 핑계를 대고 다녀왔지만 사실은 놀지도 못한 채 이런저런 일을 해결해야 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델리나가 대공가로 돌아오니, 펠릭이 반갑게 반겼다.

“끽!”

“어, 그래. 나도 반가운데…… 나중에 놀아 줄게.”

델리나를 본 원숭이가 놀아 달라는 듯 달려드는 것을 힘없이 거절하고, 퍽 지친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그때 델리나의 뒤에서 펠릭이 외쳤다.

“피곤하시면 식사는 나중에 하시겠어요? 아니면 나중에 방으로 음식을 들여보내 드릴 수도 있고요.”

“그럴래. 일단은 잠 좀 자고.”

“그러실래요? 손님이 오시기는 했지만 인사는 조금 후에 하셔도 괜찮을 거예요.”

“뭐?”

대공가에 가면 침대에 누워 바로 잠을 청하려고 했던 델리나의 계획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손님이라는 말에 델리나가 몸을 돌렸다.

“설마 그 손님이 칼릭스랑 연관 있어?”

“네, 맞아요. 이미 들으셨나요? 전하의 먼 친척 형님이시고, 칼릭스 님의 친아버지시기도 하시거든요.”

“그 사람이 지금 와 있다고?”

“그렇죠. 아마 지금쯤 전하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 것 같긴 한데…… 아가씨? 어디 가세요?”

“칼릭스한테!”

<예비 흑막>

<칼릭스>

곧장 델리나는 창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유달리 반짝이는 칼릭스의 이름을.

쉬는 시간 정도는 달란 말이야, 제발 좀!

대공가로 돌아오자마자 벌어지는 일에, 델리나는 눈물을 삼키면서 단숨에 복도를 가로질렀다. 귀퉁이에서 몸을 트는데 순간 델리나의 몸이 무언가에 의해 강하게 튕겨 나왔다. 델리나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

“미안해. 괜찮니?”

엉덩이로 느껴지는 아픔에 델리나가 얼굴을 찌푸리자,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정신을 차린 델리나가 몸을 일으켰다.

“아뇨. 제가 급하게 가다가 이렇게 된 거니까…….”

순간 델리나는 말을 멈췄다. 눈앞에서 저의 눈높이에 눈을 맞추고 있는 남자의 얼굴 때문이었다.

‘전하?’

남자는 벨리온과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놀란 델리나의 눈이 커졌다. 벨리온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의 눈 색은 모두 붉은색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진찰을 받아 보는 게 어때? 의사한테 가는 건? 많이 아파 보이는데.”

괜찮다는 말에도 남자는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델리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중에도 델리나는 남자의 얼굴을 신기하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언제 온 거지?”

그때 남자 뒤에서 벨리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델리나가 중얼거렸다.

“진짜 전하다.”

“?”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이분은?”

벨리온을 보고서 정신을 차린 델리나가 눈앞의 남자를 흘끗 보며 물었다. 마찬가지로 벨리온과 델리나를 번갈아 보던 남자가 물었다.

“누구야, 벨리온? 차림을 보니 사용인은 아닌 것 같은데.”

“광대.”

“광대?”

‘으아아아!’

벨리온의 말에 델리나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델리나 플로렌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전하의 후원을 받아 대공가에서 살고 있어요.”

“아, 그렇구나. 반가워. 나는 디오르야. 디오르 버번.”

‘버번?’

낯선 이름에 델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디오르가 이어 말했다.

“아마 나를 모를 거야. 나는 헬리움 제국이 아닌 곳에서 왔으니까. 타국 가문의 데릴사위로 갔거든.”

“아,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여기 이 사람이 칼릭스의 친아버지인…….’

외모는 분명 벨리온과 칼릭스를 닮았는데 행동과 표정이나 분위기가 정반대였다. 디오르의 얼굴에는 다정한 미소가 떠 있었다. 그 낯선 얼굴에 델리나가 적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정도면 차라리 전하랑 칼릭스가 아빠랑 아들 같은데.’

“우리 칼릭스랑 비슷한 또래 같은데, 둘이 같이 놀기도 하려나? 칼릭스는 잘 지내고 있고?”

“네? 아, 그러니까 칼릭스는요…….”

무척이나 흥미로운 얼굴로 디오르가 묻자 당황한 델리나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칼을 무척 잘 다뤄요. 일반 어른들보다도 더 잘요. 그리고 조금 수줍음이 많아서…… 말을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잘 어울리고 있어요.”

“그래?”

칼릭스가 잘 지낸다는 말에 디오르의 얼굴이 밝아졌다.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네.”

그렇게 말한 디오르가 뒤쪽에 가만히 서 있던 벨리온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말이야, 역시 칼릭스는 다시 데려가야 할 것 같아.”

“…….”

“버번 가문 사람들도 언제쯤 칼릭스를 다시 데려오냐고 하고, 나도 그래. 칼릭스는 내 아들이니까 내가 키워야지.”

‘데려간다고?’

칼릭스를 데려간다는 말에 델리나가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델리나는 벨리온의 답을 기다렸다.

“안 돼.”

벨리온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디오르가 받아쳤다.

“이번에 칼릭스가 데뷔탕트를 했다는 건 들었어.”

“…….”

“네가 주도해서 데뷔탕트를 시키다니. 설마 했지만 너 정말 칼릭스를 울피림 대공가 후계자로 키울 셈이야?”

“그래.”

한순간 분위기가 묘해졌다. 그 사이에 있던 델리나조차 눈치를 볼 만큼. 벨리온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디오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애초에 네가 결혼에 큰 관심이 없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래도 칼릭스는 내 아들이고, 버번 후작가의 하나뿐인 후계자이기도 해.”

“…….”

“그러니까 역시 칼릭스는 내가…….”

“아들이니 뭐니 하는 것치고 애가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데.”

‘뭐?’

델리나는 칼릭스 이야기를 듣고 놀라서 디오르를 쳐다봤다. 부정할 수 없는 듯 디오르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건…… 나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어색해서 그러는 걸 거야.”

“…….”

“물론 억지로 애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우선은 기다려 봐야지. 나도 아이를 방치하고서 떠맡기듯 이곳에 맡긴 잘못이 있으니까.”

정말로 괴롭다는 듯 디오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 디오르의 모습을 보고 있던 델리나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 * *

대공가의 밤은 고요했다. 어느샌가 사용인들의 발소리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저택에는 숨 막힐 듯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모두가 사라진 복도 너머, 굳게 닫힌 문 안쪽에는 여전히 숨을 죽인 채 웅크려 앉는 이가 있었다. 바로 칼릭스였다.

“…….”

칼릭스는 어두워진 밤하늘을 보고 시간이 한참 지났음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굳게 잠가 놓은 방문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

노크 소리에 안색이 달라진 칼릭스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노크 소리는 몇 번 더 이어졌고 곧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자고 있어?”

델리나의 목소리였다. 밖에 있는 이가 누군지 깨달은 칼릭스의 얼굴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문을 열어 주지는 않았다. 델리나는 문밖에서 말을 이었다.

“안 자고 있으면 밥 좀 먹어. 너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다며.”

칼릭스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델리나가 계속 말을 걸었다. 칼릭스가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한 번 더 바깥에서 델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문 열면, 디저트 열 접시 먹는 거 보여 줄게.”

“…….”

“열 셀 때까지 안 열면, 그냥 가고. 자, 하나…….”

델리나가 둘을 외치기도 전에 서서히 문이 열렸다. 슬며시 문을 여는 칼릭스와, 밖에서 음식 바구니를 들고 있던 델리나의 눈이 마주쳤다.

“들어간다?”

칼릭스를 보며 씩 웃은 델리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칼릭스가 잠시 머뭇거렸지만 델리나가 들어오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베티한테 부탁해서 특별히 네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챙겨 왔어. 어때? 맛있겠지?”

델리나가 바구니에서 가지각색의 디저트들을 꺼냈다. 하나같이 화려하게 생긴 데다 먹음직스러워 보였지만 칼릭스는 입을 꾹 다물고 물러났다.

“왜 그래? 안 먹어?”

“…….”

“아, 내가 열 접시 먹는 거 먼저 보려고?”

“…….”

“그래, 대신 딱 한 번만 보여 줄 거니까 잘 봐 둬. 알겠지?”

어쩔 수 없다는 듯 델리나가 바구니에 같이 넣어 온 접시들까지 하나하나 꺼냈다. 칼릭스가 눈을 빛내며 델리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하지만 막 턱 근육을 풀고 디저트를 입에 넣으려던 델리나의 행동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칼릭스…….”

때마침 방문이 열리며, 디오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디오르에게 칼릭스와 델리나의 시선이 쏠렸다. 그러나 디오르의 시선은 줄곧 칼릭스에게 고정되어 있는 채였다.

“우리 아들…… 많이 컸구나.”

디오르는 낮에 만났을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정하고 상냥했던 느낌은 온데간데없었다. 곧 델리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코를 찌르는 독한 술 냄새가 디오르에게서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만에 안아 보자. 응?”

“…….”

그런데 디오르를 본 칼릭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칼릭스는 창백해진 얼굴로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델리나 또한 바짝 긴장한 얼굴로 디오르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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